"전... 아내와 아기가 있어서... 놈들이 해꼬지 할까봐 두려웠습니다. 시키는대로 할테니 가족은 놔두라고..."
...아, 그래서 슈퍼에 몽키스패너 들고 혼자 나와있었구만.
아재가 옆집 문을 열었다.
또 다른 똥냄새가 훅 흘러나왔다.
방 안엔 초췌한 얼굴의 주부가 아기를 안고 있었다.
방 구석에, 또 부엌쪽에 몇번이나 다시 쓴건지 똥묻은 기저귀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주부가 나를 바라본다.
...시체 얼굴이라도 저거보단 생동감 있겠다.
눈에 촛점도 없고, 흑백화면같은 얼굴이다.
아재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너무, 너무 힘듭니다. 이제... 못 견디겠어요. 선생님. 흐흑..."
시체냄새와 똥오줌냄새, 그리고 우는 아재와 초췌한 주부.
난 그 사이에 서있다.
돌아버리겠다.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 씨발.
아재는 흐느끼고, 주부는 넋나간 얼굴이다.
나한테 다른 말은 안 한다.
도와달라는 절규를 온 몸으로 두 사람은 내게 표현하고 있다.
하아...
옆집엔 여대생 자살했고, 그러면 위에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가봤다.
문이 열려있다.
열고 들어가보니, 또 시체 썩는 냄새가 훅 올라온다.
얼굴 찡그리며 집 안을 살펴보니 마루 한구석에 노인이 죽어있고, 작은방 문은 박살나있다.
발만 보이는데, 아마도 저 발이 손주라는 사람 시체일거다.
20대 초중반?
꽤 저항했나보네.
4~50대 늙은 양아치 씹새끼들이 큰방이랑 아랫층 여대생 방에서 나눠 잤나본데.
...대충 알겠다.
내려와보니 아재가 마누라를 달래주고 있다.
어깨를 짚어주는데도 여자는 흔들흔들 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저렇게 놔 두면 저 여자도 자살하겠다.
난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나와요. 갑시다."
아재가 눈이 둥그래져서 나를 내다봤다.
"서, 선생님?"
"선생이고 좆이고 나오라고. 여기서 어떻게 살아? 나와요."
답답하네 씨발.
다른 집들도 이 지경인가.
...음. 다른 집들도 좀 심각하긴 하겠네.
어떤 집은 아빠가 나가서 안 들어오고, 또 어떤 집은 엄마가 나가서 안 들어올거다.
남은 가족들은 메말라가거나, 아니면, 이런 몰골이거나.
...그렇게 보면 우리 하숙집이 그래도 꽤 분위기 괜찮은 편이겠는데.
아저씨가 예 알겠습니다 어쩌고 대답하고는 물건을 챙기려 들었다.
옷가지랑 통장 따윌 챙기려고 하길래 난 이마를 짚고 말았다.
뭐 하냐 진짜 씨발.
"그냥 오라고. 몸만 와요. 이불도 필요없다고. 나와."
"아, 예. 선생님. 여보야, 가자."
아내를 부축하고 나오길래 한마디 더 해줬다.
"도끼 어쨌습니까? 챙겨요."
"아, 예, 예. 선생님."
부엌 한켠에서 도끼를 들고, 한손으론 아내를 부축하고 나온다.
...참 씨발 진짜.
"갑시다."
이 사람들 데리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여자들은 놀랐다.
당연히 놀라겠지.
먹을 입도 다섯이나 되는데 아기까지 셋이나 더 늘었다.
여자들은 아기 안은 주부를 보고 공감해주는 것 같았지만, 할매는 영 탐탁치 못한 얼굴이었다.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번만 받아주십쇼, 주인 아주머니."
덩치 큰 아재가 할매한테 쩔쩔매며 빈다.
씨발, 진짜.
"예? 아저씨. 힘은 좀 쓰나?"
아무래도 이 아재한테 전투력을 바라긴 좀 힘들겠지만 덩치를 보니 확실히 힘은 있어 보인다.
아재가 허리를 꼿꼿이 펴며 날 올려다봤다.
"예, 선생님. 생수배달 하고 살았습니다. 힘은 좀 씁니다."
...짐꾼이다 그럼.
난 들어가서 쏵 죽이고, 이 아재가 짊어메고 다니면 되겠네.
그나마 씨발 용도를 찾았다.
기왕이면 전투력도 좀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 아재 성격에 그건 도저히 무리다.
할매를 보니 영 떫은 표정이다.
난 말했다.
"아주머니. 남자가 하나 더 있으면 확실히 좋습니다. 아랫층 방 하나 비었죠? 거기 내 주시죠."
"...잉. 그려. 총각이 그리 말하니 내줘야제."
수현이랑 예은이, 소은이가 아기 안은 주부를 데리고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가요, 언니. 이불하고 있다 갖다줄게요."
"장농은 뜯어내서 없는데, 그래도 온수도 잘 나오고 괜찮을거예요."
난 할매한테 가볍게 말했다.
"좀 나갔다 옵니다."
"잉, 그려. 댕겨와. 조심허구."
주인집을 나와서 계단 내려가던 아재의 어깨를 짚었다.
"아저씨, 잠깐."
"예? 아, 예. 선생님."
"선생 소리는 좀 하지말고요. 내 이름은 성훈입니다. 한성훈."
"아... 예, 선생님. 서, 성훈씨."
으...
아재, 냄새나.
"가서 좀 씻으시고, 옷하고 필요하죠? 저기 저 키작고 안경쓴 여자애 이름이 수현인데, 내가 약도 그려주라고 했다고 하면 그려줄거요. 저쪽에 옷가게. 가서 옷하고 속옷하고 뭐 필요한거 갖고와요. 그리고 저쪽으론 약국이 있는데 거기도 비었어. 가서 필요한거 들고 오면 됩니다."
아재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봤다.
"...비...비었다고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 죽여놨어. 가서 그냥 들고 오면 된다고. 길거리 조심하고. 알겠죠?"
"아... 예, 예. 선생님.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아까부터 진짜 씨발.
존나 적응 안되네.
계단을 다 내려가서 뒤돌아보며 말했다.
"시간 되면 저기, 양아치들 죽여놓은 슈퍼에 가서 먹을거나 좀 쓸어담아 갖고와요. 주인집에 갖다주고, 아저씨도 먹고."
"아, 예. 알겠습니다."
아재가 날 따라오며 물었다.
"서, 선생님. 어, 어디 가십니까?"
...음.
뭐라고 해야되냐.
어차피 다음 목표는 중형마트다.
"기저귀 필요하다며. 다녀올려고."
라기 보다는, 렙업하러지.
아재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한걸음 다가왔다.
오지마, 씨발. 냄새나.
"서, 선생님. 저도 가겠습니다."
...아오 진짜...
중형 마트라고.
최소 20마리 이상이 거기 있을거라고.
이 아재는 좀비들의 떼거지에 포착되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죽던가 말던가는 상관 없는데, 괜히 어디서 뒤져버리면 씨발 저 주부랑 아기는 어쩌라고.
입만 늘어나는 셈이잖아 썅.
할매랑 여자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난 아재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거기 가면 죽어."
아재가 흡 하며 움찔거렸다.
난 말했다.
"...알겠지요? 내가 가라는 데만 가면 돼. 요 앞 편의점. 저쪽 옷가게. 이쪽 약국. 그리고 저기 슈퍼. 거긴 다 안전하니까, 가서 물건들 쓸어와요. 나갈 때 도끼 챙기고."
왔으면 알아서 밥값해라.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
...으 씨발.
"알았으면 됐어요. 있다 봅시다."
"서, 선생님!"
...큰소리는 씨발.
뒤돌아보자, 아재가 나한테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 인간이 진짜...
...밖으로 주의를 집중해보니 으르렁 소리는 안 들린다.
다행이라고 해야되나.
...개씨발 속터져 죽겠네...
"...큰 소리는 내지 맙시다."
아재 얼굴이 아차싶게 변한다.
...답답하다.
집을 나서, 늙은 양아치 시체들 누워있는 슈퍼쪽으로 걸어갔다.
씨발.
덩치 하나 보고 여차하면 고기방패로 쓸 수 있겠다 싶어서 마트 레이드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알면 알수록 짐꾼으로 밖에 못 써먹겠다, 저 인간은.
힘은 좀 쓴다니 물자조달을 아예 아재한테 맡겨버리고, 난 렙업만 하러 다니자.
약도를 보니 슈퍼에서 한블럭 더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큰 도로가 나온다.
도로 옆이 중형 마트다.
약국 쪽으로 걸어가도 되는데 그쪽 거리는 가게가 즐비해서 안에 있는 놈들을 일일히 처리하고 다녀야 된다.
이쪽이 더 빠르다.
단독주택 늘어선 거리는 꽤나 한산했다.
이따금 서너집 건너 하나씩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는데, 내가 들어가서 쳐부수지 않는 이상 저 놈들이 밖으로 나올 일은 없어보인다.
쓸데없는데 가속을 낭비할 이유는 없단말이지.
단독주택 거리가 끊기고 주차장이 나타났다.
꽤 넓다.
마트 주차장인가본데.
주차장 옆 마트는 창고형 가건물처럼 생긴 1층짜리 건물이었다.
꽤 괜찮은 마트네.
크르르르- 크르르르-
...제법 멀리서도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상당히 많이 있다.
걸음을 멈추고 주차장 쪽을 힐끗 바라봤다.
...주차장은 조용한 것 같은데.
마트를 습격하고 가속탈출한 뒤에 숨을 만한 곳이 있어야 돼.
난 몸을 숙이고, 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주차장으로 살며시 들어가봤다.
자갈이 자박자박 밟힌다.
주차장 안쪽은...
주차해놓은 차들이 군데군데 있긴 한데, 은신하기 좋아보이진 않는다.
주차장 사무실은?
조그만 야외화장실 정도 크기의 작은 사무실이다.
문은 철문이고, 창문은 작다.
...괜찮네.
주위를 살펴보며 철문에 귀를 대봤다.
...조용한데?
아무도 없나?
문을 슬쩍 당겨보니, 잠겨있다.
씨발.
한숨을 내쉬고, 주차장 안으로 천천히 옮겨봤다.
자갈 밟는 소리가 의외로 크게 나네.
자박- 자박-
주차장 사무실 벽에 붙어 심호흡하며 몇걸음 나아가자, 주차장 안쪽까지 눈에 들어왔다.
차 사이에 사람이 서 있다.
제복을 입고있는데.
...주차장 직원이다.
저기서 씨발 뭐 하는...
...아, 차 안내하다 물린 모양이네.
...그럼 저기엔 문 놈도 있을지 모른다.
난 주의를 집중하며 반대쪽 벽으로 걸어갔다.
걸음은 천천히.
소리를 최소한.
자박- 자박-
왼쪽 벽에 붙었다.
검은색 엑센트 헤트라이트 안쪽이 보인다.
일단 아무것도 없는 것같다.
난 엑센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검을 뽑았다.
슈릉-
주차요원 아재는 아직 날 눈치 못챘다.
엑센트에 도달해 건너편 틈새를 살폈다.
조심해야 된다.
차들 사이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도로와는 다르다.
차와 차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며 주차장의 칸과 칸을 전부 살폈다.
다른 곳은 전부 휑하다.
주차요원과, 그 앞에 엎어져 있는 놈 하나를 제외하면.
역시 두놈이었다.
난 차들을 다시 건너와, 주차요원의 등을 바라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정확히 등쪽이다.
일직선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후우..."
자박- 자박-
...5미터쯤 앞.
주차요원이 살짝 흔들거리고 있다.
...이대로 들이대서 찌를까.
...아니.
안전하게 가자.
욕심내지 말고.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흡!"
단숨에 두걸음을 내달려 주차요원의 뒤통수를 찔렀다.
파각!
검의 절반 정도가 머리통을 뚫고 들어갔다.
"흐읍!"
힘껏 당겨 뽑아내고는, 주차요원을 지나쳐 크게 내딛었다.
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