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은 저 유리문 앞에 모여있다.
죄다 유리문이 천하에 몹쓸 놈인양 우르르 모여서 두드려대며 소리를 질러댄다.
"...후우..."
여기다.
...심호흡.
"...스으읍!"
놈들까지의 거리는 대략 3미터!
뛰쳐나가며 발동시켰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크롸-아---아-----"
두우웅--두웅---
모든 것이 느려졌다.
내딛는 내 발소리도, 좀비들의 괴성도, 유리문을 두드려대는 불협화음도,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이 되어 눈 앞에 펼쳐졌다.
두걸음을 힘껏 뛰었다.
한 걸음을 힘껏 내딛었다.
두----다악----
두 손으로 검자루를 움켜쥐고 힘껏 찔렀다.
"흡!"
파각! 파각!
단숨에 두 놈!
"---아--아륽!"
풀렸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놈들은 아직 나를 눈치 못챘다!
힘껏 찔렀다!
파각! 파각! 파각! 파각!
단숨에 네마리!
"--르-롸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안경 낀 할배의 희끗해진 머리 뒤통수를 찔렀다!
팅-
...?!
개씨발! 벌써 힘이!
난 지체없이 몸을 돌려 오징어가게로 돌아 뛰어갔다.
벽을 짚고 코너를 돌자마자 가속이 끝났다.
우르르, 콰당탕!
여러명이 동시에 엎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캬아아악!"
씨발! 소리가 가까워져!
들켰나?!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위험은 감수하지 않는다!
난 곧장 오징어 선반을 짓밟고 뛰어나갔다.
바닥에 착지하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가속이 풀렸다.
"캬르르륵!"
들킨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가속은 다 썼다!
난 힘껏 달려 마트 옆으로 꺾어 주차장으로 달렸다.
그때, 뒤에서 와장창! 하며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유리문이 깨진거다!
"헉, 헉!"
즉시 주차장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찰칵!
잠그고 나서 문에 손을 짚고 귀를 기울였다.
"하악, 후우, 하아."
괴성이 들려온다.
마트 안쪽에서 들려오는건 아니다.
거리다.
밖에까지 나온거다.
"후우, 후우..."
...그래도, 문은 잠가놨다.
밖에서 캬아악 거리고 있어도, 내가 어디로 갔는지는 확실히 모르는 모양이다.
그냥 여기저기 헤메는게 고작이겠지.
조금 안심되는데.
의자를 당겨 문쪽 벽에 기대어 앉았다.
"...후우..."
눈 앞에 메세지가 떠있다.
[레벨이 6 올랐습니다.]
아까 오징어 점포 여자랑 해서 총 7업.
...좋아.
"하아, 후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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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45]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26/28] [감각 - 2/2]
[힘 - 0/7] [민첩 - 4/4]
[정신 - 0/20]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7]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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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렙이나 됐네.
좋아.
일단.. 체력에 2.
이걸로 체력 30이다.
체력은 이제 됐어.
남은 5점은...
...가속을 하나 더 확보하면 확실히 치고 빠지는데는 도움이 되겠지...
단, 횟수를 완전히 충전하는데 9시간이 걸린다는게 문제다.
...9시간이라...
...그래.
좀 답답해도, 안전하게 가자.
정신에 5점을 넣었다.
살아남는 것.
살아남아 렙업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폰을 보니 오전 10시 34분.
...저녁 식사 시간 아슬아슬하겠는데.
수현이한테 연락해둬야겠다.
[수현아. 오늘 좀 늦겠다.]
지잉-
답장이 왔다.
[얼마나 늦어요? 저녁때 닭죽 해주신대요.]
[글쎄. 여덟시나 아홉시? 모르겠어.]
[무사히 돌아와요. 오늘 밤에 보고싶어요.]
......꼭 돌아가야 되겠구만.
[새로 온 아저씨하고 아줌마는 좀 어때?]
[아저씨 아까 언니 준다고 영양제 같은걸 잔뜩 갖고 왔어요. 방금 또 나갔어요. 그리고 언니는... 말도 없고 우울증이 되게 심해 보이던데 잘 모르겠어요.]
[음... 아기는 건강하고?]
[괜찮은 것 같아요.]
[알았어. 있다 밤에 돌아갈게.]
...우울증이라.
...아기 낳자마자 종말이 찾아왔으니 뭐...
즐겁게 웃고 지내는 것도 무리긴 해.
쳐늙은 개병신 양아치 씹새끼들도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데다 경찰은 무쓸모가 되어버렸지.
흠...
갑자기 궁금해지네.
내가 처음 들어간 집이 아재네 단독주택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분위기 씹창났을까?
...아니.
자화자찬인 것 같지만, 내가 있었다면 분위기 꽤 달랐을거라고 본다.
그런 생각을 하자 웬지 우스워졌다.
종말이 왔는데 난 자뻑이나 하고있고 썅.
"크흡, 씨발."
코먹은 웃음 좀 웃다가 의자에 기대 반쯤 드러누웠다.
되게 좁네 여기.
잠이나 한 숨 잘까...
...어?
충전기가 있네.
넷플릭스 아직 되나?
되면 영화나 보면서 시간 때우자.
넷플릭스는 희한하게도 아직 작동했다.
요 며칠간 새로 업데이트 된 영상은 없는 것 같지만, 이미 서비스중인 영상을 보는건 별 문제 없었다.
가방에 있는 오징어를 뜯으며 영화 몇 편을 보고나니 해가 떨어졌다.
저녁 7시 13분.
으, 찌뿌드드해.
가속 5회. 완전히 충전됐다.
5회면 여유롭게 썰고 탈출까지 가능하지.
슬슬 가볼까.
주차장 사무실을 나섰다.
이번엔 머리 수를 제대로 세자.
7마리.
머리 7개를 뚫고, 곧장 탈출하는거다.
마트 벽을 돌아가자 박살난 유리파편이 흐트러져 나와있는게 보였다.
밖에까지 튀어나온 유리조각.
많지는 않다.
안쪽엔 많겠지.
저걸 밟으면 와그작 하는 소리가 제대로 날거다.
어지간한 소리엔 반응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다.
난 오징어 점포 선반을 밟고 넘어갔다.
탁.
"...후."
검을 뽑아냈다.
슈르릉-
...좋아.
안쪽에 어떻게 되어있나 보자.
문을 조심스레 나서서 포장대를 보니 사람의 모습 같은게 언듯 보인다.
저 근처에 흐트러져 있는 모양인데.
아마 엎어진 놈도 있겠지.
바닥을 잘 살펴야 돼.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며 마트 입구 쪽을 살펴봤다.
하나..둘..
...네마리라고?
아깐 저거보다 훨씬 많았는데?
...화장실이구나.
저기서 놈들이 들어갈 곳은 화장실 뿐이야.
젠장.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장애인 화장실.
세군데나 되는데.
...어쩌지.
후...
아무래도 작전을 변경해야 되겠어.
차라리 밖으로 끄집어내는게 낫겠다.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다시 되돌아와 오징어 점포 진열대를 밟고 넘어갔다. 그리고 마트 정문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안쪽으로 유리 파편들이 점점 많아진다.
문이 있었던 자리에 시체 여섯구가 엎치락 뒷치락 엎어져 있고, 박살난 유리조각이 흩뿌려져 있어 거의 뭐 폭탄 터진것 같다.
난 자동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곤, 휘파람을 불었다.
휘잇!
"크륵?!"
좀비들이 고개를 홱 돌리며 두리번거린다. 동시에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크르륵, 카르르륵!"
여러놈이 낮게 으르렁대며 두리번 두리번 돌아다니니 화장실에서도 몇몇이 나타났다.
대충 열마리 되겠는데.
좋아.
충분해.
이제 도발해보자.
...어떻게 도발하지?
...몰라 씨발, 생각 안 나!
그냥 해!
숨을 들이키고 자동문이 열려있는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야! 느금마 쩔드라!"
뭐냐 씨발 이건!
좀 멋있는 도발 없었냐!
놈들의 대가리가 홱 돌아간다.
눈알들이 희번득 나를 바라본다.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진다!
"크륵, 캬아아아악!"
씹!
난 곧장 오징어 점포쪽으로 한걸음 크게 뛰며 검을 뽑았다.
슈릉!
"훗, 후우!"
"크롸라락! 캬라라락!"
유리 짓밟는 소리가 우르르 들려오더니, 시커먼 것들이 눈앞에 와라락 나타났다.
씨발,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크롸-라---아-----"
결승점이 코앞인 마라톤 선수들같은 자세로 좀비들이 눈 앞에서 굳어버렸다.
난 곧장 뛰어들며 머리를 찔렀다.
파각!
하나 더!
파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