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도 있는건가.
몰라 씨발. 그냥 다 죽이면 돼!
계산대를 밟고 있는 놈, 뛰어 오르는 놈, 할퀼듯한 손으로 다이빙하려는 놈, 시체에 걸려 엎어지려는 놈.
언듯 봐도 열댓마리가 허공에서 멈춰있다.
좀비들의 얼굴이 코앞에, 겨우 한 걸음 거리에서 느릿하게 유영한다.
뭐가 됐든 다 와라, 찔러주지!
"흡!"
힘껏 검을 찔러넣었다.
파각! 파각! 파각!
한 걸음 물러섰다.
"--아-크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화면을 손으로 밀어 이동시킨 것처럼 와라락 움직이다 멈췄다.
내딛으며 힘껏 찔러넣었다.
파각! 파각! 파각!
한마리 더?!
아니. 안전하게!
다시 한 걸음 빠르게 물러섰다.
허공에 붉게 점찍어 놓은 것같다.
핏방울들이 일렁인다.
"--캬-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주위에 있는 놈들은 다 찔렀다.
바로 뒤에 있는 놈들!
좀비을 스쳐지나가며 한 걸음을 내딛었다.
시체를 밟고 넘어진 놈, 넘어지려는 놈!
파각! 파각!
계산대 위!
"흡!"
파각!
"--커-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시체를 밟고 넘어가, 오른쪽, 진열대에 부딪힌 놈!
파각!
대형 선반 아래에서 일어나려는 놈!
파각!
"--르-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계산대 앞 껌 진열대.
서로 부딪힌 두놈!
파각! 파각!
됐어!
난 즉시 계산대 위의 좀비의 바지춤을 붙잡고 뛰어올랐다.
동시에 가속이 풀렸다.
"--앍!"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계산대를 넘어, 오른쪽에 진열된 담배중 내가 피우는 놈을 한웅큼 집어다 두 손으로 나눠쥐며 동시에 달렸다.
"--아-욹!"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흣챠!"
힘껏 내달려 오징어 점포로 들어가 즉시 진열대를 넘어갔다
땅에 내리자 마자 벽 너머에서 뭐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려 씨발!
아, 맞아.
아까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니 코 앞 도로가 차 너머에 여자 좀비 하나가 서 있다.
가속!
...씹?!
씨발, 가속 없어!
못죽여!
가자!
마트 벽을 꺾어들어가 주차장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골목길로 힘껏 내달렸다.
[레벨이 13 올랐습니다.]
순식간에 13마리 해치웠다.
이렇게 성장해 나가면 금방 만렙 찍겠는데!
만렙이 어딘진 몰라도!
"후, 하아, 후우!"
골목을 한참 달리고 있는데 포효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놈들이 이제야 정문을 빠져나온 모양이다.
시체가 엎치락 뒷치락 엎어져 있어 저 좀비들도 빠르게 정문을 통과하진 못한거다.
내가 걷기 불편하면, 놈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이젠 그냥 달리는거지 씨발.
뒤를 힐끗거리며 뛰었다.
놈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됐어.
전봇대 서있는 골목을 돌자 슈퍼가 나타났다.
"헉, 헉, 헉."
길거리에 양아치 세마리가 죽어있다.
저 앞에는 한마리.
시체 썩는 냄새 씨발.
마트 안에 몇마리나 남았지?
아까 언듯 보니까 대충 열 몇마리 남은 것 같던데.
내일 오전중에 싹 쓸어버릴 수 있겠어.
"하아, 하아."
존나 뛰었더니 땀나네.
아까 파고들다 알게모르게 피를 좀 뒤집어 쓴 모양이다.
옷이 피로 얼룩덜룩해졌다. 씨발.
슈퍼 냉동고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뜯어먹으며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탁, 하고 대문을 닫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베이스 캠프에 귀환했다.
으아아아악-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밤에 들리는거라 좀 부엉이소리 같기도 하고?
여름밤에 듣는 부엉이소리는 운치있지.
난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현이가 내 이불에 엎드려 폰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 오빠."
반가운 얼굴로 날 보더니 곧 표정이 변한다.
응?
내 몸을 보니 역시 피가 꽤 묻었다.
난 웃었다.
"괜찮아. 내 피 아니야. 나 좀 씻는다."
옷을 벗어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두곤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다.
이젠 점점 자신감이 붙는다.
뭐가 와도 다 찔러 죽일 수 있을 것같다.
씻고 나오니 수현이가 여전히 엎드려 있다.
난 그대로 수현이 위에 엎드렸다.
내 가랑이에 닿는 엉덩이 감촉.
좋네.
* * *
희한하다.
상태창을 열어보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74]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24/30] [감각 - 2/2]
[힘 - 6/13] [민첩 - 4/4]
[정신 - 6/35]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13]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렇다.
두시간쯤 전에 마트에서 13마리 죽이고 13업.
이 상태창은 도대체 어떻게 된 물건이길래 렙업을 하면 할수록 렙업 속도가 더 빨라지지?
요상한 일이야.
가속을 확보하는건 무조건 중요하다.
공격할 때도, 염탐할 때도, 탈출할 때도.
내 목숨줄이나 다름없다.
더 확보해야 돼.
아까도 탈출할 때 가속이 없었고.
자칫하면 위험할 뻔했다.
정신에 10을 넣고, 힘에 3을 넣었다.
정신 45, 힘 16.
수현이는 이제 내려갈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체로 내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난 수현이를 뒤에서 껴안고 젖을 만지며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 후 좀 쉬었다 옥탑방을 나섰다.
마침 덩치 큰 아재가 도끼를 들고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등에 나처럼 가방을 하나 메고 있었다.
파밍하러 나온 모양이네.
"아이구, 선생님. 아침식사는 하셨습니까."
"예. 어디가세요?"
"아, 예. 사실은 요 근처를 살짝 돌아봤거든요. 치킨집도 깨끗하던데 선생님께서 하신거지요?"
아, 치킨집.
고개를 끄덕였다.
아재가 말했다.
"거기서 닭이나 좀 갖고 올까 해서요. 주인집 아주머니가 고기하고 야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갖고."
아, 고기랑 야채.
씨발 까먹고 있었다.
"그럼, 다녀 올게요 선생님."
으음.
"잠깐만요."
"예?"
아재가 날 돌아본다.
중형마트...
몇마리나 남았지?
20마리가 채 안 될것 같은데.
어쩌면 지금 나가서 바로, 혹은 오늘 밤에 완전히 쓸어버릴 수 있을 것같다.
난 좀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마트가 거의 다 정리됐거든요. 아마 오늘중에 안전해질 것 같은데... 있다 저녁때 시간 비워두세요."
아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선생님."
"예. 있다 봅시다."
아재가 나한테 꾸벅 인사하고는 집을 나선다.
이 아재도 요 며칠간 밖으로 다닌 덕분인지 꽤나 밝아졌다. 스스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긴 탓인지, 마누라가 점차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면도도 했네.
냄새도 안나고.
나도 나가려는데 아재네 문이 열리고 새댁 아줌마가 나왔다.
쓰레기 담은 봉투를 들고있다.
"...아... 안녕하세요."
오.
알고보니 저렇게 생겼구만.
꽤나 미인이다.
일어난지 얼마 안됐는지 살짝 부스스하다.
나이도 가늠할 수 없어보였던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30대 초반?
"예. 좀 어떠세요?"
"아... 이따금 밤에 비명이 들려와서... 애기가 깨고 울고 해서... 그게 좀 힘드네요..."
으음...
이젠 자기 힘들다 얘기도 할줄 알게됐네.
요전엔 남편이 말걸어도 꼼짝도 안하더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염려 마세요. 밖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도 이 집에는 아무 일도 안 생깁니다."
"...그럴...까요...?"
좀 씁쓸하게 웃는다.
아마 이 아줌마도 친구나 가족들 죄다 연락 끊겼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보세요. 수현이가 여기저기 죄다 막아놨죠, 남편분께서도 매일같이 밖에 나가면서도 아무 일 없이 돌아오잖습니까. 걱정 마세요."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난 대문을 열며 말했다.
"기저귀는 아마 오늘중에 갖다드릴 수 있을겁니다. 식사 잘 하고 계세요."
"...예...고맙...습니다..."
음.
됐어.
뭐, 대화라도 된다는게 어디야.
며칠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난 검을 붙잡고 대문을 나섰다.
지잉-탁.
문이 자동으로 잠긴다.
가자. 마트에.
마트 주차장 사무실에 들러 폰을 꽂아놨다.
어젯밤에 충전기 꽂는걸 깜빡하고 자버렸다.
그만큼 수현이를 안는 감촉이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폰은 뭐, 저러고 놔둬도 되겠지.
현재 레벨 74.
가속횟수 9회.
죽일 수 있는 놈, 16마리.
좋아.
난 사무실을 나와 곧장 정문으로 들어갔다.
시체들이 자동문 앞에서부터 계산대 너머 진열대 근처까지 우르르 엎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