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187)

시체 썩는 냄새 씨발.

아이고...

난 조심스레 땅을 비집고 밟아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계산대까지 가는데 한세월이다.

씨발, 이놈의 시체들.

좀 어디로 치워버렸으면 좋겠네.

나 혼자선 좀 무리지.

언듯 봐도 30구 이상이 여기 엎어져 있는데, 단순히 하나당 50KG로 계산해도 1톤이 훠얼씬 넘는다.

힘 빼기 싫다.

기왕 힘 쓸거면 수현이한테 써야지 이런거 주워다 나르는데 왜 쓰겠냐고.

우드득!

"에이 씨발."

...아저씨 손을 밟아버렸다.

손등 뼈가 그냥 아작나버렸는데.

계산대를 넘어가니 저 멀리서 언듯언듯 사람의 형체 같은 것들이 제대로 보인다.

이 근처에 있는 놈들이 먼저 내게 달려들었고, 먼저 뒤져버린거다.

뒤쪽에 있던 놈들은 안죽고 제자리로 돌아간거고.

난 숨을 들이켰다.

스으읍!

그리고, 외쳤다.

"요시! 그란도 시즌!"

...씨발, 멋진 도발 문구좀.

"캬르륵?!"

선반들 사이에서 대가리가 불쑥 불쑥 올라온다.

나를 돌아본다.

들이닥친다.

"크아아악! 캬아아악!"

와르르, 우르르! 진열 상품들이 넘어진다.

바닥이 어지러워진다.

난 미소지으며 두 손으로 검을 쥐었다.

미소지었다?

웃었다고?

내가?

하.

이젠 거의 즐기나본데.

"덤벼, 씹새들아."

진열대를 무너뜨리며 여러놈이 들이닥쳤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나를 에워싸며 들이닥친 놈들.

언듯 봐도 열마리 이상.

힘껏 뛰어들며 검을 찔러넣었다.

두---우---

파각! 파각! 파각!

한걸음 물러섰다.

핏방울이 울렁일렁거린다.

좀비들이 젤리통 속에서 빠져나온 듯이 허우적거렸다.

"--크-롸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머리가 관통되어 피를 앞뒤로 뿜으며 엎어지려는 셋.

바로 옆의 좀비들에게 한 발을 내딛었다.

검을 당긴다.

찌른다!

파각! 파각! 파각!

앞열은 다 해치웠다.

곧장 앞으로 이동하며 옆으로 쓱 빠졌다.

핏방울이 얼굴과 몸에 후두둑 묻어난다.

"--캬-르뢁!"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내가 있었던,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드는 좀비들.

죽어 엎어지는 시체들.

난 검을 들어 옆으로 이동하며 찔러나갔다.

파각!

저벅, 파각!

저벅, 파각!

"흡."

검을 뽑아냈다.

자기가 시체가 된 줄도 모르고 험상궃은 얼굴로 허공을 할퀴고 있는, 죽은 것을 지나쳤다.

세상이 움직인다.

"--크-뢁!"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선반에 진열된 면도기며 쉐이빙 폼 따위를 쓸어담을 것같은 자세로 팔을 펴고, 우르르 무너뜨리며, 내가 아닌 저 쪽을 노려보고 있는 좀비.

검을 들었다.

파각!

숙이고 지나가, 선반 너머에서 팔을 내밀고 있는 놈.

위쪽으로 찔렀다.

파각!

뺨에서 정수리까지 꿰뚫고, 검을 힘껏 내리며 뽑았다.

"흡."

핏방울들이 서로 붙어 늘어지며 방울이 되어 느릿하게 튀어나온다.

없다.

난 선반 모서리에 서서 시체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크-롸룱!"

열한마리.

열한구의 시체들이 달려가다, 뛰어 오른채, 마트 구석으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피가 사방으로 튄다.

얼굴에, 뒤통수에, 옷에 다 묻었다.

으, 씨발.

다 좋은데 피 좀 어떻게 안되나.

손등으로 뺨을 쓸어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더 없나본데.

[레벨이 11 올랐습니다.]

아니, 혹시 몰라.

확실히 해야된다.

어딘가에 숨어있다면, 모조리 끌어내서 없애야 돼.

난 숨을 들이마셨다.

...뭐라고 소리치지?

눈에 뭔가 들어왔다.

"수목은 폭탄세일!"

힘껏 내질러, 마트가 쩌렁 울린다.

어디에 숨었든 있다면 못 들었을리가 없다.

...조용하다.

좀 더  기다려 봤다.

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네.

혹시 모르니, 한바퀴 둘러보자.

난 왼쪽으로 늘어서있는 선반쪽 긴 공간과 오른쪽 야채코너, 그리고 정육점을 지나며 구석구석을 다 살폈다.

꽤나 넓다.

다 둘러보는데 5분쯤 걸린 것같다.

사람이 들어있을만한 곳은 죄다 들여다봤다.

만에 하나, 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여기는 99퍼센트 안전하다.

"...됐어."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지와 티슈 코너를 돌아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어."

화장지 코너를 지나니 바로 기저귀가 나온다.

...흠...

기저귀 갖다달라고 했었지.

큼직하게 포장되어 있는 기저귀 한묶음을 들고 선반들을 지나 계단대 쪽으로 걸어갔다.

저 앞에 열한구의 시체들이 우르르 겹쳐 엎어져있다.

"...흠..."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시체로 걸어가 허릿춤과 등짝에 검을 쓱쓱 문질러 닦아냈다.

검은 소중히 해야지.

단 두자루 뿐이다.

...앗.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걸.

내일부터는 쌍검을...?

...아니야.

난 오른손잡이라고 씨발, 왼손으로 머리를 제대로 겨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한손으로 머리뼈를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확실하게 가자.

그런 생각을 하며 기저귀 한봉지 들고 털래털래 마트 입구를 걸어나왔다.

시체들이 하도 쌓여 걷는게 영 불편하다 씨발.

"후우..."

가속을 몇번 썼지?

하나, 둘...

오, 네번?

아직 다섯번 더 쓸수 있잖아.

괜찮은걸.

"...아."

옆에서 들려왔다!

몸을 우뚝 세우고 옆을 돌아봤다.

내 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검을 부릅쥐어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괴상한 복장, 여섯마리!

"저, 저기."

가...! 소...옥?!

가속은 발동되지 않았다.

뭐야.

방금 들은거, 사람 말이야?

여자... 목소리 같은데?

좀비 말을...?

...아니다.

좀비가 아니다.

오전의 햇살을 받으며 마트 앞 가로등가에 서있는 여섯마리.

그 누구도 이를 드러내거나 할퀴려는 손을 하고있지 않다.

......뭐야.

"...사람이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냐.

그 말은, 말할땐 꽤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말하고 나니까 이상하다.

머리 팔 다리, 눈 코 입 다 있는 것들한테 사람이냐고 물어봐야 되다니.

여섯명 중에 포니테일한 여자가 한걸음을 굴러나왔다.

...굴러나왔다고?

움직이는게 이상한데.

다리를 보니, 뭔가를 신고있다.

...인라인 스케이트다.

뭐야 이것들은.

여자가 말했다.

"아, 저... 아까 안에서 하시는거 밖에서 봤어요. 어젯밤에도.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움직이시죠?"

...응?

뭘 묻고있는거야...

어떻게 그렇게 움직...

이냐...고...

...내가 가속을 쓰고 순간적으로 죽여버리는걸 이 사람들이 봤구나.

가속으로 사람들 앞에서 좀비을 죽인 일은 여러번 있었다.

예은이와 소은이 앞에서.

하지만 걔들은 거의 공포심에 질려서 뭔가를 보고 이상하다 판단할 정신상태가 아니었지.

...덩치 큰 아재.

늙은 양아치들 죽일때 내가 뭘 하는지 두 눈으로 봤지.

새하얗게 질려서 공포심에 덜덜 떨던 그 얼굴, 그 눈빛.

좀 과하게 무서워하는거 아닌가 약간 느꼈었는데, 그래서였나.

...가속을 쓰고 움직이면 사람들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이는거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걸.

그렇게 무서울 정도인가?

아.

지금 그런걸 궁금해 할 때가 아니지.

난 여자를, 또 뒤에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좀비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사람의 형체로만 인식했던 것들이 보인다.

인라인 스케이트, 무릎보호대, 팔꿈치 보호대, 장갑, 그리고 두명은 물방울모양 헬멧도 쓰고있다.

"...당신들은 누구지?"

여자가 말했다.

"...아, 저희는 스피드스터라고 하는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 회원들이예요."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

인라인......

여섯명이 신고있는 인라인.

꽤 멋진데.

인라인은 타본적 없다.

저거 속도 빠른가?

...그래서 살아남은 건가.

남자 셋, 여자 셋...

여자들은 놀란 얼굴로, 남자들은 경악하고 긴장된 눈으로 날 보고있다.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보이는데.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군.

"...그래서, 나한테 볼 일 있어?"

"아, 저 실은..."

여자가 뭐라고 말하려 하는데 뒤에 있던 키 큰 남자가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 동료는 어디 있어요? 설마 이걸 혼자 다 죽이진 않았겠죠. 설마요."

이걸 혼자 다?

...음...

몇마리나 죽였지?

대충 40마리 넘게 죽인것 같은데.

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다 죽였는데."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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