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나?
검을 꺼내 날을 살펴봤다.
거의 찌르고 다녔지 단단한걸 베고 다니진 않아서 이가 나가진 않았다.
아직 멀쩡하네.
"상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시간조정자] [레벨 - 93]
[호칭 - 일반인]
스테이터스
[체력 - 27/30] [감각 - 2/2]
[힘 - 1/16] [민첩 - 4/4]
[정신 - 17/45]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19]
스킬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으음, 93.
레벨 존나 올렸네.
포인트는 19나 되고.
오전중에 이렇게까지나 렙업할수 있었다니... 가면 갈수록 렙업속도가 빨라지는 희한한 상태창이다.
포인트 어디다 올리지?
...가속을 확실히 확보해두는게 좋긴 한데...
오늘 다녀보니 힘이 좀 후달린단 말이지...
...다음은 맥도날드.
아마도 20마리 이상이 거기 있을거다.
...20마리라...
...가속도, 힘도, 둘 다 확보해야 돼.
그 다음 목표인 대형마트와 주상복합건물엔 백마리 넘게 들어차 있을거고.
...둘 다 중요하다.
정신에 10을 넣어 55를 만들고, 나머지는 힘에 넣었다.
이로써 가속 11회.
힘 25.
맥도날드 정도는 레이드 한번에 끝낼 수 있겠어.
"후우..."
그나저나 정말 궁금해지네.
만렙이 몇인거지?
벌써 93인데.
...몰라 씨발.
올려보면 알겠지.
문제는 만렙이 아니라 딴거다.
가속을 11회나 확보한건 좋다 이거야.
이정도면 웬만한 규모는 한번에 싹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런데 회복이......
1시간에 3점씩 회복된다.
가속을 다 써버렸다고 했을때 55점을 회복하려면 거의 18~19시간 걸린다는 소리다.
...미치겠다.
한번 레이드 하고, 하루 쉬고, 또 한번 레이드 하고 하루를 또 통째로 쉬어야 된다는 소린가.
...만약에 가속을 다 써버리고 다음날 쉬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늙은 양아치들이라든가 그런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럼 또 무쓸모하게 가속을 낭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회복시간이 24시간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나는건 시간문제다.
......곤란한데......
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씨발.
어떻게 되겠지.
지금 이 수준으로도 웬만한 사람은 흉내도 못 낼 정도의 똥파워라고 볼 수 있다.
회복을 빨리 시키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정 안되면 그냥 푹 쉬면서 다니는 수밖에 없는거지 뭐.
일단 지금 가속 3회 확보된 상태이니, 대충 늦은 오후나 초저녁까지 푹 쉬고 일어나면 맥도날드 정리하러 갈 수 있을거다.
낮잠이나 자자.
...치킨카레라...
난 눈을 감았다.
이른 저녁.
멀리 노을을 바라보며 옥탑방 계단을 내려왔다.
아랫층 마당엔 여자들과 덩치 큰 아재가 있었는데, 주변이 뭐가 수북하다.
옷, 야채, 고기, 휴지와 티슈, 온갖 생필품과 과자 등 간식거리까지, 아예 언덕이 쌓여있을 정도였다.
수현이가 날 보더니 반갑게 말했다.
"오빠. 이것 봐!"
"워, 많네."
"잔뜩 갖고왔지? 헤헤."
꽤나 기쁜 모양인데.
나도 웃어줬다.
새댁 유부녀도 밝은 얼굴로 새로 갖고 온 후라이팬과 냄비들을 보고있다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남편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쪼그려 앉아서 오징어 진미채를 뜯고있는 소은이는 눈만 빼꼼 들어 날 빤히 보고있다.
예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 되게 위험한데 덕분에 이렇게 많이 갖고 올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성훈씨."
피식 웃으며 대답해줬다.
"별 말 다 한다."
계단 다 내려왔다.
덩치 큰 아재가 즐거운 얼굴로 웃고있다.
난 검 손잡이에 편하게 한 손 올려놓곤 물었다.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예, 선생님. 그 친구들 마트 안에 있던 카트에다가 라면이랑 뭐 이것저것 가득 싣고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지더라고요. 사람들 갖다준다고 하던데요."
...으음...
확실히 좋은 사람들이다.
나하곤 좀 다르네.
난 뭐 렙업할려고 하다보니 마트까지 정리해놓은 셈이 된거다만.
고개를 끄덕이곤 대문을 잡았다.
수현이가 말했다.
"오빠, 어디가? 저녁 먹어야지. 오늘 삼겹살 구워먹자. 응?"
...으음...
삼겹살...!
젠장, 손이 갑자기 멈추는데?
슬슬 출출하기도 하고.
...아, 잠깐.
철물점까지 안전하게 만들어 놓으면...
흐음...
난 덩치 큰 아재에게 말했다.
"저하고 잠깐 다녀오실까요?"
"예? 아, 예. 물론이죠 선생님."
어디가는지 묻지도 않네.
난 수현이를 보곤 턱을 까딱했다.
"금방 다녀올게. 얼마 안 걸릴거야. 갑시다."
여자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수현이가 말했다.
"다녀와 오빠. 삼겹살 준비해놓고 기다릴게."
집을 나오고 대문이 닫혔다.
지잉- 탁.
자동잠금장치가 잠긴다.
...잠깐만.
가만보니 대문에도 나무를 위아래로 대놨네.
아래쪽에 빈틈까지도 웬만큼 다 막아놨구나.
수현이 진짜 참...
...철물점 빨리 확보해줘야 되겠어.
수현이가 대문에 해놓은걸 좀 보다가 몸을 돌려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도 그렇고, 세상에,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있는 시체들 냄새가 너무 심각하다.
"후우..."
손을 휘저으며 숨을 내뱉자 따라오던 덩치 큰 아재가 말했다.
"선생님. 저 시체들 놔두면 전염병 같은거 혹시 생기지 않을까요?"
...전염병?
편의점을 지나치려 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확실히.
시체들이 길거리에 있는데 그냥 놔두는건 위생상 절대 좋지 않다.
유럽 어디서 전쟁이후에 시체를 제대로 처리 못해서 쥐들이 날뛰기 시작해서 그래서 생긴게 페스트? 뭐였지? 흑사병?
뭐 그런 거였다고 배웠던 기억이 있는데.
시체들 그냥 놔두면 여기도 쥐떼 같은거 창궐하는거 아니야?
...좋지 않아.
시체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돼.
주상복합건물을 낀 큰 사거리.
건물 맞은편에 주유소가 보였다.
...주유소...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모아서 태워버릴까요? 어떻게 봅니까?"
"태...태운...다고요?"
"예. 묻는 것보다 간편하고. 저기서 휘발유 갖고와서 들이부은 다음에 싸그리 태워버리면 될거같은데요."
덩치 큰 아재가 눈을 껌뻑껌뻑하며 말을 못했다.
그때 뭔가 퀘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먼 하늘에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마트가 있는 쪽이다.
...마트가 있는 쪽.
거의 50구에 달하는 시체들.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이다.
저 사람들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거다.
그게 아니면 저기서 연기가 날 리가 없다.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 생각이란건 결국 비슷하구만.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저 인라인 사람들 내일 좀 불러다가 같이 시체 모아서 태워버리죠. 오늘은 일단 우리끼리 저 도로 가운데에 적당히 옮겨놓고요."
"아, 예. 선생님."
그런데...
저기 말고 다른데선 연기가 안 난다.
...다른데선 여기만큼 좀비을 죽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아마 나 정도 뿐일거다.
좀비을 이렇게나 사냥해버릴 수 있는 인간은.
고개를 끄덕이곤 도로를 건너 차와 차 사이로 몸을 숙이고 걸어갔다.
주상복합건물을 지나자 바로 맥도날드가 나왔다.
...유리벽에 뭐 붙은것도 없이 뻥 뚫려있는데다 문은 또 유리벽 한가운데 있어서 숨어 들어갈 수도 없다.
으음...
안에 얼마나 있는진 몰라도 보기보단 난이도가 있는 점포야. 맥도날드는.
가속이 충분하지 못했다면 시도도 못 할 것같다.
엑센트 옆구리에 앉아 천천히 검을 꺼냈다.
슈릉-
"...여기서 기다려요."
덩치 큰 아재가 속닥거렸다.
"...예, 선생님."
굽힌 채 액센트의 헤드라이트를 짚고 맥도날드를 슬쩍 들여다 봤다.
여기서 입구까지의 거리, 약 10미터.
문제는...
맥도날드, 저놈의 문도 자동문이라는 거다.
젠장.
그냥 미는 문이면 가속박고 들이대버리면 되는데, 자동문이면 가속을 박아도 저 앞에서 가속 끝날 때까지 문이 안 열릴거란 말이지.
......젠장.
할 수 없지.
난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서 그대로 맥도날드를 향해 걸어갔다.
난 여기에 있다.
나를 봐라.
하염없는 표정으로 이 쪽을 향하고 있던 좀비 몇마리의 표정이 대번에 변한다.
뭔지? 뭔가 있다!
있다!
하는 느낌으로 얼굴이 실시간으로 일그러진다.
"크아아악!"
한 놈이 소리를 질렀다.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카아악!"
여러놈이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유리벽에 달라붙는다.
유리벽 쪽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단숨에 들이받고 뚫고 나오질 못한다.
"히익!"
뒤에서 아재가 질겁한다.
거슬리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저씨.
난 검을 쥔 채 자동문 쪽으로 걸었다.
저벅, 저벅.
"카아아악! 크아아아악!"
자동문쪽으로 놈들이 몰린다.
동시에 계단에서도 놈들이 우르르 내려오기 시작했다.
씨발, 몇놈인거냐.
열린다.
자동문이 열린다!
지잉-
"크롸라라라락!"
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내 뒤엔 픽업트럭!
"...스읍!"
"캬아아아악!"
온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놈들의 손아귀가 불과 1미터 앞에서 우뚝 멎었다.
손이 몇갠지 모르겠다.
난 검을 당겨, 힘껏 찔렀다.
파각, 파각, 파각!
놈들이 내민 손아귀의 범위.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 피했다.
"--아-롸랅!"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대가리 뚫린 놈들이 픽업 트럭을 향해 와라락 엎어지려다 그대로 멈췄다.
검을 들었다.
파각! 파각!
옆으로 한걸음 옮기고, 힘껏!
"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