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즉시 한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찔렀다.
"흡!"
파각, 파각, 파각!
왼손이 아직 어색해.
하지만 좀 나아진 것 같은데.
확실히 연습을 더 해야 되겠어.
뒤로 물러서, 귀를 기울였다.
"--캬-르륽!"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이번엔 왼손만으로 놈들의 대가리를 뚫었다.
단숨에 세 놈!
욕심 부리지 말고!
왼손만으로 대가리를 힘껏 찔러넣었다.
파각, 파각, 파각!
다시, 가속!
내가 지나간 자리에 핏방울들이 일렁일렁거린다.
파각, 파각, 파각!
됐어.
앞에서 달려들던 놈들은 끝났다.
난 뒤로 빠르게 두걸음 물러섰다.
"--크-르륽!"
타탓.
내 발소리가 뒤늦게 울려퍼진다.
앞에서 몰려오던 놈들이 이마와 뒤통수에서 피를 내뿜으며 우르르, 와당탕 엎어졌다.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온다.
자아.
왼손. 다시 가자.
난 미소지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캬-아--아----"
으드득.
이를 악물고, 찔렀다.
"흡!"
주상복합 지하주차장.
총 27마리.
가속, 9회 소모.
추가로 가속을 사용해 빠르게 도로를 가로질러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능숙해진다.
익숙해진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망설임도 없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오.
3렙업.
앞에서 27마리 사냥해서 그런거군.
옥탑방 계단을 올라가면서 체력에 3점을 전부 넣었다. 이로써 35점.
가능하면 가속이랑 힘을 좀 더 투자해 한번에 사냥할 수 있는 숫자도 늘리고 싶은데, 10마리당 1업이라 여유가 없다.
체력을 최소한 50까진 올려놓고, 그 다음에 생각하자.
힘 50을 찍으면,
체력 회복 틱 45분.
스텟 회복 틱 12분 30초.
하룻밤만 푹 쉬어도 온전히 충전된다.
주상복합 지하주차장엔 아직 많은 놈들이 남아있다. 아마도 두번은 더 레이드 해야 완전히 청소할 수 있을거라고 본다.
즉, 5렙.
...그런데, 이걸로 괜찮은걸까.
머릿속에서 좀비의 떼거리가 떠나질 않는다.
그 놈들이 이 동네에 들이닥치면, 단숨에 모든 것이 차단된다. 외출도, 햇빛도, 렙업도.
문을 열고 나갔다간 다시 문을 닫을 수 있을지 장담이 안된다.
아무리 나라도.
...검.
쓸모가 많아.
지금까지는 나의 주무기로 훌륭하게 역할을 해 왔고, 당분간은 검을 손에서 놓을 일은 없을거다.
하지만, 검 하나만 갖고 되는건가.
수만, 수십만의 좀비의 떼거리들이 있는데.
옥탑방에 돌아와 샤워하는 동안 계속 생각해봤다.
뭔가 있어야 돼.
더 있어야 돼.
쏴아아.
미지근, 시원한 물이 핏물과 함께 머리칼과 몸을 타고 흘러내려 타일 바닥으로 떨어진다.
"...활."
그래.
활.
전부터 갖고싶다고 생각했었지.
가속을 박으면, 빠르게 쏘면 가속 한번에 두 발 정도는 아마 쏠 수 있을거다.
마찬가지로, 가속을 박으면 쐈던 화살을 회수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거야.
화살을 어떻게 할건가.
어떻게 회수할건가.
활을 쓴다면, 그게 관건이다.
문제는, 활을 쏘고 화살을 온전히 회수해오기 위해선 가속 횟수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해.
...잠깐.
화살을 회수하기 위해 가속을 쓴다면, 굳이 활이어야 하는건가?
검이면 충분하지 않아?
어차피 화살을 뽑으려면 가까이 가야되잖아.
"...하아..."
고민되는걸.
원거리 무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수현이랑 의논해보면 어떨까. 기계공학 지식으로 뭔가 내게 해답을 주지 않을까?
...활이 아니면서, 굳이 뭘 회수할 필요는 없는 그 무언가. 내겐 그런게 필요하다.
샤워를 마치고 수현이한테 메세지를 보냈다.
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우웅...오빠 졸려... 내일 얘기하쟈?]
...으음.
수현이도 오늘 하루종일 애썼지.
철물점에서 무거운거 나르고, 마트도 다녀오고, 아까 보니까 차에서 뜯어 온 것들도 정리해놨던데.
그래.
수현이도 좀 쉬게 하자.
이제 겨우 밤 8시가 살짝 넘었다.
이른 밤이긴 해도, 하루종일 바쁘게 지냈으니 여자들이나 훈이 아재도 꽤나 피곤할거다.
나도 자자.
이튿날, 아침 7시.
엄청나게 자버렸다.
차 뜯어내고 철물점 나르고 레이드 두번 다녀왔더니 나도 꽤나 피곤했었나 보다.
아침식사는 아직 준비중인가 본데.
얼른 다녀오지 뭐.
리프팅 벨트에 검 두자루 차고, 유지장갑 챙겨 끼고 집을 나섰다.
주인집에선 식칼 통통거리는 소리가, 아랫집에선 쏴아아 하며 씻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슬슬 일어날 시간이구만.
편의점을 지나 도로.
그리고 주상복합 건물로 곧장 진입했다.
총 54구의 시체가 도로가까지 우르르 쓰러져 있다.
흐음...
입구에 있는 놈들은 대충 다 정리한 것 같은데.
주차장 안쪽에도 제법 있을거란 말이지.
시체 사이를 걸어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희한하다.
별로 긴장되지가 않는다.
검도 안 뽑았고, 그냥 손잡이에 한 손 올려놓은 채로 느긋하게 시체들 사이를 걷고 있다.
지금까지 몇마리나 죽였지?
이번 레이드 끝내면 한 200마리쯤?
...익숙해질 만 하네.
갑자기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 혼자 200마리를 죽인 놈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어쩌면 군인?
뭐, 특수부대 같은.
그런 전문 훈련을 받은 자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좀비 수십마리가 일거에 달려오는걸 단숨에 처리할만한 실력이 있다면 말이지만.
...총을 쓰면 가능할지도?
...으음, 총이라...
총은 시끄럽단 말이지...
좀비들이 아무리 사람 목소리 같은거에나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해도, 총소리까지 무시하진 못할걸.
한 방에 우르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차장을 굽이돌아 내려가자 으르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놈들의 으르렁이 벽과 벽에 부딪혀 우퍼 스피커처럼 진동을 싣고 메아리 친다.
여기선 아직 안 보이는데.
난 뒤를 힐끗 돌아봤다.
제법 내려왔어.
한 15미터? 20미터?
여기서부터 죽이면서 슬슬 물러서면...
대충 뭐 괜찮겠는데.
난 주차장 안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 딜도! 망가!"
"캬르르륽?!"
...예아, 섹스.
"크아아악! 캬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괴물같은 그림자들이 벽을 기어오르며 물결친다.
무수한 발소리들이 드럼치듯 공간을 때린다.
검을 뽑았다.
슈르릉-
"크아아아악!"
코너에서 놈들의 대가리가 불쑥 나타났다.
난 미소지었다.
가속.
* * *
왼손으로만 찔렀다.
왼손, 갈수록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어제오늘 왼손으로만 한 50마리는 죽인 것같다.
양손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꽤나...
괜찮겠어.
"흐음."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옥탑방으로 돌아와 샤워하며 핏물을 씻어냈다.
방금 레이드로 3렙업.
당연히, 체력.
체력, 38.
으음, 그나저나 슬슬 이제 옷이 없는데.
한 사흘쯤?
그정도 지나면 없겠다.
새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니 구수한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주인집에 들어가며 말했다.
"어, 맛있는 냄새."
"어, 오빠! 아까 집에 없던데?"
수현이가 가장 먼저 날 반긴다.
식탁에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앉아 있다.
내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알아서 의자를 요리조리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줬다.
복작복작하네.
난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어, 좀 먼저 갔다왔어. 일찍 일어났거든."
예은이가 국과 밥을 내 앞에 갖다줬다. 소은이는 수저를 갖다준다.
오, 아침밥은 북엇국이네.
파향 가득한 구수한 국물.
좋지.
두부를 떠서 후후 불어 입에 넣으니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 가득 찬다.
"어, 맛있네."
가벼운 감탄사에도 여자들이 소리내어 웃어준다.
흐음.
식사분위기 꽤 좋은데.
훈이 아재가 꿀꺽 삼키곤 말했다.
"저, 선생님. 오늘은 뭐 하실 예정이십니까?"
"인라인 사람들 불러다 저거, 하기로 한거 오늘 해볼까 싶네요."
훈이 아재가 아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수현이와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
"오늘도 마트에 갈거야?"
"가야지. 당연히."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댁 아줌마도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다 없어지기 전에 가서 또 챙겨 와야죠. 아마 밤 사이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을 거예요."
...으음.
그도 그렇겠네.
일단 요 길은 안전해. 라는게 인식이 되고, 저기에 가면 먹을 것들이 쌓여있다. 라는 정보가 머리에 박히면, 그 다음부턴 거칠 것이 없어지겠지.
난 오늘 차 껍데기나 좀 뜯어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여자들이 마트에 뭐 남았는지, 뭐 갖고올지 상의하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그때 딩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은이 고개를 들었다.
"어? 대문 벨소린데. 누가 올 사람 없을텐데."
여자들 얼굴에 긴장감이 돈다.
택배도 아니고, 배달도 아니다.
그딴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그런게 있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내, 내가 보고 올게."
훈이 아재가 일어서서 집을 나섰다.
밥을 한숟갈 떠먹고 있는데 훈이 아재가 돌아왔다.
표정이 영 안좋다.
"어, 저, 선생님. 그, 인라인 동호회 사람입니다. 정은서라고 했나, 그 분이 오셨어요."
난 뒤돌아봤다.
정은서?
아, 그 포니테일.
뭐지?
훈이 아재가 자기 뺨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그 여자, 얼굴에 상처가 났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