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기다리자 아재가 문을 열었다.
"아이고, 선생님. 이게 다 무슨 난리랍니까. 다들 저 수현씨 방 안에 들어갔어요."
"예, 들었습니다. 잠깐 이야기좀 할까요?"
"예, 선생님."
훈이 아재가 집 안으로 안심하라는 듯이 손짓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
"하실 말씀이 뭔가요 선생님?"
난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집이 지금 비좁아요. 요 맞은편 단독주택 있지요. 거길 쓸어놓을겁니다."
훈이 아재가 눈이 동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쿠,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좀 쉬었다 가서 처리해둘건데, 있다 시체나 같이 좀 들어내시죠. 어디 가지 말고 계십쇼."
"아이고, 예. 선생님. 당연히 가아죠."
"예. 있다 봅시다. 아, 그리고 죄송한데."
"예, 선생님."
난 헛기침을 하곤 나직이 말했다.
"저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 먹을게 아마 없을겁니다. 와이프 되시는 분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훈이 아재는 그보다 당연할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건 전혀 염려 마십쇼. 아이고, 선생님. 우리 식구가 신세진게 있는데 그정도 못 하겠습니까. 염려 마시고, 필요하면 불러주십쇼."
난 미소지었다.
흐음.
이 아재, 데려오길 잘했는데.
짐꾼 노릇 성실하게 하고, 와이프도 성격 괜찮고.
웃으며 아재의 어깨를 툭, 쳐주곤 계단을 올라갔다.
아직 가속이 회복되려면 멀었다.
옥상에서 담배나 피면서 있어보자.
옥상에 올라가니 햇살이 제법 포근하다.
아랫층에선 인라인 여자들이 남자들 얼굴이며 몸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어쩌고 하고 있을거고, 내 옥탑방에는 할줌마가 삶의 의욕을 잃고 넋을 놔버렸다.
햇빛 보면서 즐거운 기분 느끼기 좋은 타이밍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어.
햇살 포근하니 좋은걸.
담배를 한 대 피워물고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풍경을 바라봤다.
아, 좋네.
방구석에 드러누워서 가속 회복시킨다고 이제나 저제나 시간만 보낸게 아까울 정도다.
내가 옥상에서 이러고 있는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유튜브로 봤던 좀비의 떼거지. 좀비떼들이 어디선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그리고 둘째로, 식량이 없는 생존자 집단이 우르르 몰려오지 않는가를 보기 위해서.
옥상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햇살을 쪼이며, 느근한 기분으로 담배를 피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따금 들려오는 으아아악- 하는 비명을 제외한다면, 거리는 평소와 다를게 전혀 없어 보인다.
먹을거 찾는다고 사람을 줘 패버리는 그 생존자 집단들, 지금쯤 어쩌고 있을려나 모르겠네.
만약 그 사람들이 함부로 다른 가게 같은데 쳐들어가면, 그 안에 있던 좀비들에 의해 연쇄적으로 감염되어 버릴거다.
그러면 아비규환이 일어날거고, 콘서트가 열린 듯한 비명이 터지겠지.
그런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뿐이다.
어째서지?
그 사람들에게 총 같은게 있을리 만무하다.
만약 총이 있었다면 어떻든 스스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그 자들은 인라인 동호회에서 식량을 주고서야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무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식칼 같은걸로 무장이라도 한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라인 동호회가 머물던 우유 대리점에 별거 없다는걸 깨달은 시점에서 다른 돌파구를 찾으려 할게 뻔하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노릴 곳은, 작은 점포.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론,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두셋의 좀비들은 포진해 있었다.
좀비는 사납다.
그들은 빠르다.
팔다리가 떨어지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아랑곳 없다.
겨우 식칼 하나 들고 있다고 막무가내로 물어뜯으려 하는 그 놈들을 저지할 수는 없다.
와라락 달려들어 자기가 찔리든 말든 깨물고 보는 놈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냐고.
이건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무협지도 아니다. 기묘한 움직임을 발휘해 공중제비를 돌았다가 급소를 가격하는 그런 짓을 현실에서 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이성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상대로 일반인이 식칼 따위를 들고 얼쩡거린다는건 명백히 자살행위다.
그게 가능했다면 전 세계의 군대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리가 없다.
즉, 인라인 동호회로부터 도움 받아 밖으로 나온 생존자 그룹은 낯선 가게를 현재 털고있지 않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는 말은...
...그들은 아는거다.
나라는 존재를.
인라인 동호회가 쌓아놓은, 불타버린 시체더미를 봤을 것이고, 그 시체가 누구로부터 나왔으며, 어떻게 해서 마트가 안전해 졌는지를 그들은 안다는거다.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었겠지.
그리고, 어떤 집이 음식을 줘도 되는 안전한 집이며, 어떤 집이 감염된 집인지도 그들은 안다.
근처에 지나가기만 해도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릴테니까.
...까다로운데.
저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거냐.
어디서 깨물려 좀비 되든지 말든지 내가 알 바 아닌데, 아니, 오히려 좀비 되어버리면 나로서는 고맙지.
죽여서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죽여봤자 레벨도 안오르는 저 인간들을 상대로 가속을 낭비하는것도 껄끄럽고, 여러모로 불편한 존재들이다.
난 말이지.
구원자가 아니라고.
저 인간들을 모조리 먹일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어쩌다보니 내가 챙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긴 했는데, 씨발, 여기서 더 늘리고 싶지가 않아.
게다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던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을 패버리기까지 한 놈들이다.
더더욱 도울 이유가 없다.
그러면, 가속을 낭비하기도 싫고 돕고싶지도 않으니 내가 취할 수 있는 스탠스는, 무시 뿐이다.
제기랄, 불편해.
집 안에서 굶어 뒤지든가 말든가 그냥 둘것이지, 인라인 동호회 놈들 쓸데없이 착해 빠져갖고 일을 이렇게 만드냐.
...인라인 동호회 사람들 잘못은 아니긴 하다만.
거 참.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잖아.
어? 저기서 굶어 뒤지고 있어?
그럼 이렇게, 나처럼.
입꼬리를 쓱 내리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뭐 어쩌라고, 라는 의미다.
내 나름의 제스쳐다.
이렇게 하라고.
어? 굶어 뒤져?
어머, 어떡하니.
내가 알 바 아닌걸.
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으-쓱.
사람들이 굶는다구?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구, 라는 헛소문의 대상이었던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으-쓱.
"오빠, 뭐 해?"
으-쓰...윽...
으음.
쿨럭.
"어, 어깨가 좀 결려서."
괜히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돌아섰다.
수현이가 눈썹을 찡그리고 날 보고있다가 피식 웃는다.
"나 내려가서 예은이랑 음식 준비하는거 좀 도울게. 아줌마는 오빠가 좀 보고있어."
"음. 아줌마는 좀 어때?"
수현이는 좀 난처한 눈빛을 내게 보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모양이구만.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곤 옥탑방에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할줌마가 조신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 여자가 앉는 자세, 무릎을 모아서 옆으로 꼬아갖고 요상하면서 불편해 보이는데도 여자가 그러고 앉으면 꽤 보기 좋은 그런 자세다.
...할줌마라 별로 보기 좋진 않다만은.
냉장고에서 500밀리 사이다 페트를 하나 꺼내 따면서 이부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찰크락, 하며 검집끼리 부딪힌다.
"후우."
꿀꺽, 꿀꺽.
으으, 시원해.
옆을 보니 할줌마가 하염없는 얼굴로 벽을 쳐다보고 있다.
...거의 뭐.
종말이라는 상황을 아예 못 받아들이는 얼굴인데.
아줌마, 지금은 종말이라고.
아줌마가 알던 세상은 애저녁에 끝났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줌마는 뭐 하던 사람입니까? 그냥 주부였어요?"
아줌마가 느릿하게 눈을 껌뻑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이제 됐어요... 이제..."
골때리네.
보니까 우리 엄마랑 나이 비슷해 보이는데.
"자녀분들하곤 연락 돼요?"
대답이 없다.
난 사이다를 한모금 더 먹곤 말했다.
"나도 연락 안 됩니다. 우리 부모님, 여동생, 친구들. 하나도 연락 안돼요."
칙.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워물었다.
"그래도 찾아볼겁니다. 죽은걸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죽었다고 안 믿을거니까."
아줌마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다.
난 말했다.
"아줌마는 자식들이 죽었나 안 죽었나 안 궁금해요? 물려서 저렇게 됐든가 죽었으면 뭐, 죽은거고. 근데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
아줌마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수현이가 왜 그런 표정이었는지 알겠네.
벽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다.
난 혀를 찼다.
"그나저나 참 사람들 너무하네. 왜 저 좋은 친구들을 그렇게 패버렸지. 음식도 줬잖아. 참 나 짜증나게."
아줌마가 천천히 날 바라봤다.
"...그 분들은... 좀 어떤가요...?"
...오.
이제 대화가 좀 되려나.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요. 내가 뭐 의사도 아닌데 알겠습니까. 얼굴은 하여간 많이 상했더만."
할줌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앞뒤로 흔들거렸다.
몸짓에서 나오는건 죄책감이다.
할줌마의 눈썹과 입꼬리가 내려가 있다. 말도 못하게 마음이 안 좋은가본데.
아마도 이 할줌마도 먹을것 좀 달라고 보챘나보다.
심약한 사람 같은데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며 점점 과열되는 주변 분위기에 이 아줌마도 휩쓸리지 않았겠나 싶다.
...쩝.
말을 안 하는데 내가 뭐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유튜브나 좀 볼까.
세상 어떻게 변했나.
"...그 분들... 죽은건 아니...죠...?"
...돌겠네.
"미안해요? 그럼 내려가서 사과해요."
난 아줌마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띠꺼운 시선이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수동적인 인간을 보면 체한것 처럼 속이 답답해진단 말이지.
뭐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대가리 처박고 말도 안하고 흔들흔들 하고 있으면 상황이 다 좋게 풀릴거라고 보나.
그냥 자살하게 놔두는게 좋았나?
씨발.
이 아줌마 하는 모양새 때문에 기분 더러워져서 폰을 내려놨다.
"어쩌고 싶은겁니까? 죽을거요? 그럼 밖에 데려다 줄게. 여긴 살고싶은 사람들만 모여있는 데거든. 당장 저 밖에 사나운 것들이 사람을 물어 뜯을려고 드는데 죽고싶다는 사람까지 챙길 여유같은거 없어요. 알겠어?"
치익.
담배를 한 대 더 피워물었다.
"아줌마 데려온건 그나마 그 패거리들 중에 머리가 정상적인 인간이다 싶어서지 달래주고 상담해줄려고 데려온게 아니야."
답답해 뒤지네 진짜.
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죽을거면 나가요. 내 방에서 뒤지지 말고. 치우기 귀찮으니까."
탕.
문을 닫았다.
씨발 내 방에서 자살하기만 해봐라.
그냥 보고만 있어도 속이 답다압- 한게 그냥. 저 아줌마 남편도 없이 혼자 나와있던데, 아마 남편을 답답해 뒤지게 만들어서 홀몸이 된거 아닐까.
말을 붙여봐도 의사소통도 안되고 씨발.
아, 햇빛 좋네.
기분 풀린다.
"푸우-"
담배연기 좋고.
거리는 한산하고.
생존자 패거리들은 안보이고.
여유롭게 쉬다가 한 집 정리해놓고 거기로 인라인 사람들 옮겨놓자.
......잠깐.
고개를 들어 멀리 거리를 바라봤다.
키 낮은 단독주택 거리 너머.
8 차선 도로를 끼고 높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거리.
그 곳에, 건너편 건물을 가릴 정도로 높은 건물 하나.
대형 마트 건물이다.
1,2층은 마트. 3층은 사무실이었지 싶은데, 아마도 마트 창고도 겸하고 있을거다.
층 전체를 사무실로 쓸 이유는 없을테니.
그렇다면, 물자가 1,2,3층에 걸쳐서 가득 쌓여있다는 뜻이다.
식자재 뿐만 아니라, 저런 대형마트엔 각종 가전제품과 욕실제품, 옷과 침구류, 그리고 공구와 철물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생존물자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저거, 족히 10층은 된다.
...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흐음..."
생존물자 끝판왕.
게다가 키 높은 건물.
층마다 있는 자원들을 다 활용하면...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
저 생존물자 끝판왕 건물.
들어가서 가지기만 하면 되는, 주인 없는 건물을 차지할 수 있는 인간은 오로지 나 뿐이라는 거다.
그 누구도 저기에 접근할 수 없다.
한 발이라도 딛는 순간 엄청난 좀비의 떼에 의해 먹이로 전락해버린다.
혹은 좀비의 떼에 합류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