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그 누구도 저 건물에 접근할 수 없다.
오직 나 뿐이다.
난 담배연기를 들이마셨다 길게 내쉬었다.
"...괜찮은데?"
있다 회의를 좀 열어야 되겠어.
집을 하나 털어서 두집으로 나눠놓으면, 저 패거리들이 들이닥쳤을 때 보호해주기가 난감하다.
게다가 좀비의 떼가 이 거리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분리된 시점에서 식량이 떨어지면 그대로 끝이다.
그렇다면, 단 며칠 정도만 사용할 임시거처로만 활용하는게 정답이다.
대형마트다.
대형마트가 답이다.
...좋아.
담배를 피우며 흡족하게 미소짓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할줌마였다.
할줌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뒤에 서있었다.
"나가려고요?"
할줌마가 말했다.
"...나가기 전에... 그 분들께 사과를... 드리고 싶어요."
...으음.
밖에 오래 나와있었나?
어, 그러고보니 슬슬 배가 고픈걸.
이런저런 생각 하다보니 점심때가 됐구만.
아줌마도 안에서 생각을 좀 한 모양이네.
"알겠어요. 내려갑시다."
아래로 내려가 수현이네 방 문을 노크했다.
정은서가 문을 열고 나왔다.
"네... 아, 성훈씨."
정은서는 내 옆에 고개 푹 숙인 아줌마를 힐끗 보곤 본체만체 했다.
속이 안 좋겠지.
방 안쪽을 들여다보니 누워있는 다리 여섯개가 보인다.
고통스러운지 신음소리도 들려온다.
"좀 어때?"
정은서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다쳤어요. 눈가가 찢어지고, 온 몸에 피멍도 들었고요. 혹시 성훈씨, 상처 꼬맬줄 아세요?"
...윽.
난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할줌마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어?
이 아줌마, 상처를 처리할 수 있다고?
정은서가 할줌마를 바라봤다.
눈빛이 곱지 않다.
"제가 아줌마를 어떻게 믿고 맡겨요? 저희가,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울컥하는지 정은서는 입을 닫아버렸다.
할줌마가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실건 없고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드릴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으음.
정은서는 화가 많이 났다.
할줌마는 자기가 때린것도 아닌데 미안하다.
그리고, 난 좆도 신경 안쓴다.
난 할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눈 째진거 봉합할 수 있습니까?"
할줌마는 여전히 우리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채 말했다.
"...네. 젊어서... 간호사 였어요."
오.
간호사?
할줌마, 제법인데?
난 정은서를 쓱 바라봤다.
어때? 하는 눈빛으로.
정은서는 날 노려본다.
좆까! 하는 눈빛으로.
난 고개를 저었다.
야, 좀 봐줘라.
정은서도 고개를 저었다.
꺼져 씨발놈아.
...서로 의미를 추측하며 하는 제스쳐이긴 한데, 아무래도 그냥 말로 하자.
"상처 저거 놔두면 곪을지도 모르는데. 눈알 나가면 어쩌려고? 이 아줌마, 간호사라잖아. 일단 사람부터 살리고 봅시다. 에에?"
그러자 내 말을 들었는지 안에서 여자 하나가 말했다.
"누가 간호사였어요?"
정은서의 얼굴이 푹 썩는다.
난 할줌마를 턱짓하며 말했다.
"이 아줌마가 때린것도 아닌데. 도와준다잖아. 어? 저기 사람들 아파 죽을려고 하는데."
정은서는 눈을 굴리며 고개를 들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난 웃으며 할줌마의 등을 슬쩍 밀었다.
"들어가쇼. 남자들 좀 잘 봐줘."
할줌마가 나한테 꾸벅 인사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은서는 나를 힘껏 노려보다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난 재밌다.
오우 예.
서로 존내 불편한 사람들끼리 한 방에 넣어버리기.
세상 재밌네.
큭큭거리며 계단을 오르다보니 문득 깨닫는게 있었다.
잠깐.
...우리 파티에 힐러 생긴거 아니야?
할줌마 간호사 힐러!
흐음...
괜찮은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오르다 보니 주인집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짜장 냄새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맛있는 냄새."
진짜 짜장냄새다.
부엌에서 요리하던 예은이와 수현이, 그리고 맛을 보려는지 숟가락을 내밀고 있는 소은이가 동시에 날 돌아봤다.
"어, 오빠."
보니까, 짜장을 완전히 한 솥을 끓이고 있는데?
하긴, 먹어야 될 입이 7명에서 14명으로 늘어버렸다.
할줌마도 굶길 순 없는 노릇이니까.
먹는데 다 같이 먹어야지.
14명이라...
한 끼에 들어가는 식량만 해도 엄청나겠는데.
난 웃었다.
"배고프다."
수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예스!
오늘 점심은 짜장이다!
* * *
점심 먹고 좀 지나서 회의 소집한다고 사람들을 죄다 옥상에 불러모았다.
1층 사람들은 시간 좀 걸린다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훈이 아재네 집은 아기 젖먹여야 되고, 수현이네 방엔 환자들까지 먹여야 되니 한참 걸리긴 하겠지.
주인집 할매, 예은이, 소은이, 그리고 내 섹파인지 여친인지 헷갈리는 애매한 스탠스의 수현이가 옥상에 둘러앉아 재잘대는걸 옆에 앉아서 들었다.
할매가 꽤나 기뻐하는 것 같은데.
햇빛 본지 오래됐겠지.
이젠 TV도 끝장나서 안 나오는데 방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했을거다.
한시간여쯤 기다리자 훈이 아재 내외와 인라인 여자들, 그리고 간호사 할줌마까지 옥상에 다들 올라왔다.
...와...
열한명.
밑에 뻗은 인라인 남자 셋 합치면 열네명.
아기까지 열다섯.
...존나 많네.
어쩌다 이 많은 사람의 그룹을 내가 이끌게 된건지 모르겠다.
그냥 존나 죽이고 다녔을 뿐인데.
아무튼.
난 피우던 담배를 거리로 튕겨 날리곤 웃었다.
"짜장 맛있었죠. 예은이가 음식이 아주. 수현이도."
그러며 수현이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런데 수현이는 자기 이름을 먼저 안 불러줘서인지 눈썹을 찡그리며 날 노려본다.
거의 뭐 여친이네.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좀 중요한 이야기를 할게 있어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뭔데."
수현이가 퉁명스레 말했다.
질투하냐. 귀엽네.
난 웃고는 말했다.
"마트에 이제 남은게 없어. 그거 때문이야."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식사중에도 마트 얘기는 한마디도 안했다.
그만큼 피하고 싶은 화제였단 뜻이다.
난 말을 이었다.
"집에 먹을걸 좀 쌓아두긴 했는데, 그걸론 택도 없어. 다들 알겠지만. 앞으로도 살려면 먹어야 되고, 휴지도 있어야 되고, 기저귀도 있어야 돼."
사람들의 눈빛.
내 말에 집중하고 있다.
생존에 관해 말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난 고개 돌려 키 큰 건물을 가리켰다.
"저 대형마트. 저기에 우리가 원하는게 다 있다. 풍족한 음식, 생활필수품, 공구에 재료까지. 모든게 저기에 있어."
사람들의 시선이 대형 마트에 쏠렸다.
난 시선들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려 말했다.
"저기로 이사가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놀란 소리도 들려온다.
할매는 특히 놀란 것같다.
"우째 집을 버리고 저기로 가라고 하나, 총각아."
난 미소지었다.
"가는게 좋습니다. 저기 보세요. 넓고 튼튼하고 모든게 다 있어요. 여기보다 훨씬 안전하고, 풍요롭죠."
고개를 들어 건물 옥상을 쳐다봤다.
"...옥상에서 농사도 지을 수 있겠네. 비 오면 바로 받아서 주면 되고."
사람들의 눈빛이 점차 바뀌어 간다.
할매도 농사라는 말에 눈이 흔들린다.
싫은 표정을 하고 있어도 흔들리는 눈빛은 어쩔 수가 없다.
소일거리로 농사짓는게 방구석에 앉아있는 것보단 훨씬 재미가 있을거야.
할매한테는 말이지.
간호사 할줌마도 꽤나 내 말을 집중해서 듣고있다.
아직 사람들이 낯설어 구석에 박혀있지만, 내게서 눈빛을 떼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얼굴에 약간씩.
아주 조금씩 희망이 번지기 시작했다.
...좋은걸.
...문득 궁금해진다.
내 눈 앞의 사람들은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눈빛에 가지고, 약간이나마 미소짓고 있다.
...다른 생존자 그룹은 분위기가 어떨까?
당연히 좋지 않겠지.
병신새끼들.
밤 열시.
정신력 60이 회복되었다.
제기랄, 길다.
길어!
15시간을 쉬어야 완전히 회복된다니.
회복 스킬 없었으면 20시간을 쉬어야 했다.
회복 덕에 그나마 5시간만큼 줄어들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길다.
제길, 빨리 체력을 올려서 회복력을 확보해야 되겠어.
일어나 팬티와 옷을 입으며 소리가 났는지 자고있던 수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우응... 오빠... 어디가?"
수현이는 나체다.
젖을 내놓고 부스스하게 일어서는게 꽤나...
귀엽네.
난 피식 웃고는 수현이를 도로 눕히며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수현이가 움찔하며 신음했다.
"...아앙."
혀를 좀 굴리며 빨다가 쫍, 하고 입술을 떼고는 말했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자고있어."
수현이가 졸린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베개에 머리를 폭, 파묻었다.
"우웅... 조심해... 알았지...?"
"알았어."
리프팅 벨트를 차고 집에서 나섰다.
그러면...
마트도 마트고 집도 집인데, 쓸던건 마저 쓸어야 되겠지?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도로엔 여전히 가로등이 노란 빛으로 거리를 환히 비추고 있다.
종말이 발생한지 2주차...인가?
참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여러 일이 있었네.
와중에도 가로등은 여전히 환하고.
...전기, 끊어지는 걸까?
언제쯤 끊어지는걸까.
...전기 없는 삶이라...
상상해본 일도 없다.
가로등을 바라보며 도로를 건넜다.
주상복합건물 지하주차장에선 더이상 으르렁은 들려오고 있지 않다.
놈들은 아랫쪽 깊숙한 곳에 모여있다.
널려있는 시체들 사이를 밟고 건너 지하로 걸어내려갔다.
ㄹㄹㄹ- ㄹㄹㄹ-
희미하게 으르렁이 들려온다.
메아리쳐서 더 크게 들리는 거겠지.
실제로는 더 안쪽에 있다.
검을 뽑았다.
슈르릉-
유지 장갑, 그립감 쩐단 말이야.
지하를 천천히 걸어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고, 전등이 내부를 환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