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187)

메세지가 왔나본데.

좀 있다 보자.

난 문을 계속 찔러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로 힘껏 걷어찼다.

"흡!"

와장창!

유리가 박살나며 사람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미국식 만화같이 문이 뻥뚫렸다.

문 안으로 들어가보니 노래방 냄새가 훅 난다.

약간 씁쓸한 듯 하면서 끈적하게 착 감겨오는 냄새.

음료 냉장고가 빛을 내고있어 내부가 보이긴 하는데, 안쪽은 아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어디 불 켜는데는 없나?

폰 조명을 들이대며 카운더 뒤쪽을 찾아보니 전등 스위치가 있었다.

네개나 되네.

죄다 드르륵 켜버렸다.

지잉- 틱틱.

전기 연결되는 탁한 소리와 함께 불이 깜빡이며 켜졌다.

오오.

환한데.

붉은색 가죽소파랑 최신곡 포스터가 붙어있는 노래방이다.

오랜만인걸.

"...오늘은 여기서 지내보자."

냉장고에서 콜라 하나 꺼내서 안쪽으로 들어가봤다.

방은 총 여섯개였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혹시나 싶어 열어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냥 텅 빈 노래방이다.

방 하나 열고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후우... 피곤하다."

수십번씩 찔러넣는 것도 은근히 체력을 쓴단 말이지.

폰을 보니 수현이한테 메세지가 와있다.

[무슨 일이에요? 왜 못와요?]

걱정 많이 되나보네.

피식 웃고는 답장을 보냈다.

[걱정 마. 난 무사해. 아침에 돌아갈테니까 밥 맛있게 해줘.]

[정말 괜찮은거죠? 다친덴 없어요?]

[진짜로 괜찮음. 지금 노래방이야.]

방 안을 찍어다 전송해줬다.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같이 찍어 보냈는데, 손에 피가 좀 묻어있긴 해도 크게 신경 안 쓰겠지.

피칠갑 된거 한두번 본것도 아니고.

[조심해요. 네? 다치지 말고.]

[알았어. 걱정 마. 아침에 봐.]

답장을 보내주곤 드러누웠다.

아, 그렇지.

방금 렙업한거.

체력에 3포인트를 넣어 43을 만들었다.

후우, 이제 한숨 자자.

이튿날 오전 9시.

제기랄, 60 충전되는데 시간 졸라 잡아먹었어.

14시간이나 걸리다니!

체력을 빨리 올려야지 이래갖곤 안되겠다.

완전히 충전된걸 확인한 순간 벌떡 일어나서 노래방을 나섰다.

철문 밖을 잘 살핀 후, 다시 올라갔다.

...피시방.

30마리나 죽였는데 뭐가 우르르 몰려들었었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네.

문은 내가 열어젖힌 그대로다.

시체들이 엎어져 있다.

계단 아랫쪽에선 피시방 안쪽이 잘 안보이는데...

일어나 올라가보니 열어젖힌 유리문 너머로 넓은 피시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몇 놈들이 서있다.

...근처에 있던 놈들은 죄다 죽여놨었구만.

이러면 좀 할만하지.

"...후우..."

시체들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피시방 안으로 들어가며 숨을 들이켰다.

"앗! 기모찌!"

...방금 뭐라고 씨부린거냐, 나.

"크아아악!"

좀비들이 홰래랙 돌아본다.

...이건 제법 할만하겠는데.

어제와는 다르다.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짐승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좌석을 짓밟고, 의자에 밀려 넘어지며, 놈들이 내게 몰려온다.

난 미소지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검을 뽑았다.

슈르릉-

"흡!"

파각, 파각!

* * *

가속 9번.

한 서른마리 죽인 것 같은데.

[레벨이 2 올랐습니다.]

...아니네.

몇마리나 죽였는지 모르겠다.

되는대로 찔러댔으니.

가속 9회 썼으니 아마 27,8?

그쯤 되는 모양이지.

"...후우..."

제기랄.

배고파.

노래방에 있던 과자 따위론 도무지 배가 안 찬다.

뭐 없나.

...오오.

피시방, 제법 먹을거 많은데.

일단 냉장고에 핫바.

맘에 들었어.

세개 꺼내다 전자렌지에 돌렸다.

"상태."

체력에 2 넣고.

45!

좋았어.

회복틱 빨라졌다!

의자에 주저앉아 핫바를 먹으며 잠시 몸을 쉬었다.

으, 젠장.

온 몸엔 피칠갑이 되어있고, 얼굴도 무슨 귀신영화에 나올 것처럼 피를 뒤집어 썼다.

세수라도 할까.

아, 씨발.

어차피 세수를 하든 뭘 하든 핏물 줄줄 흐르는 옷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티셔츠를 잡고 꾹 누르면 피가 주르륵 흐른다.

이래갖고 세수는 씨발.

머리에서 핏물 뚝뚝 떨어지는데.

그냥 집에 가서 샤워하자.

...흠...

피시방이라...

아직 작동중인, 2주 가까이 끄질 않아 요금이 수십만원씩 찍혀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무슨 소식 없나.

일단...

커뮤니티 대부분은 죽었다.

아예 없는 사이트라고 뜬다.

서버가 맛탱이가 갔나본데.

그나마 살아있는 커뮤니티는 엉망진창이다.

...골때리네.

글 하나 하나가 절망적이다.

대통령을 찾는 글, 군대를 찾는 글, 엄마가 안 돌아온다는 글, 무섭다는 글...

...자살한 사람들도 있네.

자기 죽는다고 글 올리고 인증사진 찍고 그대로 뛰어내리거나...

...그래.

이게... 종말이다.

"후우..."

...글을 하나 써볼까...

아니야.

뭐라고 쓸거냐.

내가 가속으로 마구 죽이고 다닐수 있으니까 니들 다 안심하라고? 아니면, 난 학살하는데 너희는 나가면 바로 죽을거니까 그냥 그러고 살라고?

할 말 없다.

난 저 모니터 너머의 인간들을 모두 구해주지 못해.

그러고 싶지도 않고.

커뮤니티를 들여다 보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시간 가는줄도 몰랐네.

남은 가속이 3회였는데 4회가 되어버렸어.

아 배고파 씨발.

돌아가서 씻고 밥먹자.

계단을 내려와 가속박고 존내 튀었다.

-크르륽?!

멀리서 놈들의 으르렁이 들려온다.

하도 빨리 뛰어 저 놈들은 뭐가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뭐가 다다닥 하는 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피식 웃으며 편의점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문 좀 씨발 열어보라고. 어? 니들만 그렇게 다 갖고 말이야. 사람들 다 죽으라는거야? 어?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문 열어 문!"

하숙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골목길을 향해 걸어간다.

"문 좀 씨발 열어보라고. 어? 니들만 그렇게 다 갖고 말이야. 사람들 다 죽으라는거야? 어?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아재 목소리.

"문 열어 문!"

아줌마 목소리.

편의점 골목을 돌아 들어갔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골목을 빼곡히 메우고 있다.

족히 마흔명은 될 듯하다.

...생존자 그룹이구나.

그런데...

...뭐야 이 씨발것들은.

남의 집 앞에서.

저벅, 저벅.

골목에서 빠져나와 하숙집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나를 보더니 흠칫한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피에 젖어있다.

얼굴엔 살색이 거의 없을 정도다.

머리엔 핏물을 뚝뚝 떨구고 있다.

나는 그렇게 걸어갔다.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이 삽시간이 입을 닥쳤다.

그저 나를 보고있을 뿐이다.

피칠갑된 남자가 허리에 검을 차고 걸어오고 있는건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는 광경이긴 하겠지.

가장 앞장서서 떠들던 아재.

덩치 좀 있는데.

살집 두툼한, 노가다 체형 훈이 아재가 아니라, 젊어서 운동 좀 해본 몸이다.

유도?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리고, 그 아재 뒤에서 목에 핏대 세우며 문열라고 호통치던 아줌마.

...이 둘이 리더로구만.

딱 보니까 알겠다.

나는 느긋하게 걸어갔다.

피를 질질 흘리면서.

저벅, 저벅.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과 공포가 어려있다.

좀비을 마주한 듯한 눈이다.

덩치 아재는 긴장된 얼굴이긴 했으나, 물러서진 않았다.

아줌마도.

둘이 부부인가?

대문을 가로막고 서있는 아재 앞에 섰다.

그리고 아재를 바라봤다.

제법 키도 크네.

나랑 비슷한데.

아재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본다.

...이새끼가 남의 집 문을 가로막고...

점점 내 얼굴이 관리가 안되는데.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켜."

덩치 큰 아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니가 뭔데 비키라 마라야. 어린놈의 새끼가."

목소리가, 말투가 아까와는 다르다.

피칠갑된 놈한테 하는 말투랑, 만만한 사람들한테 하는 말투랑 제법 다른가보네.

난 피식 웃고는 검을 꺼냈다.

슈릉-

어어!

사람들이 긴장을 실어 탄성을 질렀다.

난 태연하게 아재의 가슴팍에 검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밀었다.

이 검으로 수백마리의 좀비들을 꿰뚫어 왔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밤낮으로 사용해온 검이다. 유지장갑의 그립력까지 더해져,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검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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