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이가 말했다.
"어차피 이사갈거면 이 집을 유지보수 하는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뜯어낸 알루미늄 판을 모았다가 나중에 이사할때 저 마트 유리벽이랑 입구쪽을 틀어막는데 쓰고싶거든요. 어떻게 보세요?"
훈이 아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수현씨 말이 일리있네요. 셔터를 내릴 수 있겠지만 그것 만으로는 아마도 밖에서 누가 쳐들어올려고 하면 못 막을지도 모릅니다."
수현이가 끄덕이곤 말했다.
"네, 그래서 알루미늄을 대서 용접하고 실리콘도 같이 써서 셔터쪽을 보강하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요."
그러며 나를 돌아본다.
사람들도 나를 본다.
...나를 보면 어쩌라고.
내가 그런걸 아는 것도 아니고.
난 입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해. 난 그냥 저 건물 비워놓을 테니까 나머진 맡길게."
"알았어."
수현이가 웃으며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정은서가 말했다.
"시체 거두는거 저희도 도울게요."
그러자 훈이 아재가 웃으며 말했다.
"아이, 고맙죠. 선생님. 그러면 시체하고 차 뜯어내는 거 저희가 할테니까 선생님은 푹 쉬십쇼. 어제 밤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하셨는데."
내 몸을 슬쩍 가리키는걸 보니 피칠갑돼서 피 뚝뚝 흘리며 나타난걸 말하고 싶었나보다.
난 웃었다.
"일손이 모자란데 그게 됩니까. 같이 합시다. 시체 저거 빨리 처리해야지, 안그래도 잘때 창문에서 냄새 들어오잖아요."
훈이 아재는 멋적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식사후 좀 쉬었다가 시체를 거두러 나갔다.
주유소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사무실쪽 문이 활짝 열려있는걸로 봐서 일 터지자 마자 어디로 튀었나보다.
집에서 좀 떨어진, 전에 내가 싹 쓸어놨던 커피숍 앞 도로에 시체를 무더기로 쌓아놓고 태웠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른다.
집에서 제법 떨어져있긴 한데, 바람 잘못 불면 집 안에 먼지 제법 쌓이겠는데.
그래도 시체냄새 맡아가며 밥 먹는것 보다야 훨씬 낫지.
지하주차장을 빼놓곤 근처를 싹 쓸어놨다.
100구가 넘게 틀어박힌 지하주차장은 차근차근 하기로 하고 해 떨어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8시가 채 모자란 시각.
저녁식사 후 집을 나서 다시 대형마트로 향했다.
6층 PC방까지 쓸어놨었지.
이제 7,8층 남았다.
대형마트 옆문에서 가속 박고 튀어올라갔다.
이 짓도 반복하니 익숙해지는데.
"후우..."
5층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루종일 시체 실어 나르고 또 계단을 오를려니 빡세네.
좀 쉬었다 가자.
숨 돌리며 계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칙.
"푸우..."
담배연기가 하늘하늘 날아오른다.
맛 좋네.
폰을 꺼내 메세지를 열었다.
[오늘 좀 늦을지도 몰라. 먼저 자.]
메세지를 보내니 수현이가 답장해왔다.
[조심해요. 알았지? 다치지 마.]
[알았어. 있다 또 연락할게.]
옥탑방 냉장고에 여자들이 가득 채워놨던 간식거리들. 에너지바와 핫바, 500밀리 물 따위가 가방에 들어있다.
빈 몸으로 검만 차고 다니는게 편한데, 어제 그걸 겪어보니 아무래도 비상식량 정도는 갖고 다니는게 맞겠다 싶어 챙겨왔다.
그나저나, 괜찮으려나.
바퀴벌레놈들 나 없는 사이에 하숙집에 또 나타나 해꼬지하는건 아니겠지.
한 번 경고 했는데 또 그짓거리 하면, 그때는 나도 더 봐줄 이유가 없다.
손가락 하나라도 대는 순간에 너희들은 몰살이다.
렙업에 써야 되는 가속을 바퀴벌레들을 죽이는데 쓰려니 솔직히 아깝긴 하다만, 사람 빡치게 만들거면 댓가는 치뤄야지.
"후우."
한 5분 쉰 것 같은데.
충분해.
꽁초가 된 담배를 틱, 튕겨내곤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7층.
철문에 기대어 귀를 기울였다.
ㄹㄹㄹㄹ- ㄹㄹㄹㄹ-
...있다.
몇 놈이나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7층이 뭐 하는 층이었더라?
몰라, 기억 안 나.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철문을 살짝 열어봤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뭐가 제법 있는데.
왼쪽에서 좀 크게 들려온다.
높은 소리.
...여자 좀비들이다.
뭐하는데지?
...아아, 요리학원.
오른쪽은...
서예학원.
서예학원은 별로 인기가 없나보네. 저 쪽에선 거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불투명한 유리와 나무벽.
둘 다 내부를 볼 수가 없다.
...일단 인원수 적은데를 쓸어놓고, 요리학원을 정리하자.
발소리를 조심하며 안으로 걸어갔다.
검 하나를 다시 빼들었다.
스르릉-
양 손에 검을 쥐고, 서예학원 출입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서예학원.
안에 몇 놈 있긴 있다.
많지는 않아.
주로 여자들인 것 같은데.
"...후우... 스으읍."
숨을 들이키고, 유리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갔다.
"캬르륽?!"
난 몸을 멈췄다.
머리에서 생각이 사라졌다.
좀비들이 일제히 나를 올려다본다.
...초등학생들이다.
"캬아아악! 캬아아아악!"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서예학원...
초등학생...
이제 겨우 8살, 9살 되었지 싶은 아이들 예닐곱명이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눈이 뜯겨나간 아이, 팔뚝살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아이, 목을 물린 아이.
...으드득.
이를 악물고, 검을 찔러넣었다.
파가각!
가속을 사용하며 서예학원의 모든 좀비을 정리했다.
어른은 하나 뿐이었다.
꽤나 나이든, 노년의 여자.
아직도 서투르다.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걸 알면서, 애들을 마주치면 몸이 굳는다.
일단 한번 발을 멈추게 된다.
젠장.
좀 더 익숙해져야 돼.
왜 평일 대낮에 아이들이 여기에...
학교는 어쩌고 학원에 다들...
...아아...
방학이었지 참.
모두 10마리.
겨우 10마리 처리하는데 가속을 4번이나 썼다.
애들이라 처음에 멈칫한게 컸다.
"후우..."
씨발, 좀 쉬자.
기분 더럽다.
사람 없는 사무실로 들어가 원장의자에 푹 기대어 앉았다.
슈르릉- 착.
검을 집어넣는 소리는 참 상쾌하게 들리네.
...가속은 8번 남았다.
요리학원엔 제법 많은 수강생이 있다.
...오늘도 돌아가긴 글렀네.
[수현아. 오늘도 못 돌아가겠다. 아침에 갈게.]
[ㅜㅜ...]
[집은 괜찮아? 사람들은 좀 어때?]
[괜찮아요.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요. 걱정 좀 그만 시키고.]
[^^]
폰을 내려놓고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핏방울이 튀어 온 몸이 얼룩덜룩하다.
눈을 감고 기분을 진정시켰다.
"...흐음..."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죽여야 돼.
신경쓰지 말자.
저건 애들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새벽 한시.
가속이 모두 충전되었다.
사무실을 나서자 아이들의 시체들이 보였다.
...됐어.
서예학원을 나서 요리학원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발소리를 조심하며 걸어가는 동안에도 낮은 으르렁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몇마리나 안에 있는지 모르겠네.
문은 나무문인데.
특이하네. 보통 유리문 아닌가?
학원이라 그런가.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검을 하나 뽑았다.
스릉-
조심스레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 봤다.
멀리 조리대가 보이고, 출입문 옆엔 유리문과 유리벽으로 된 칸막이 사무실이 있다.
사무실 유리벽 안.
훤히 보인다.
사무실은 비었다.
하지만 조리대 쪽은 아니었다.
젊은 남녀들이 각자 조리복과 조리모를 쓰고있다. 하얀 모자와 옷이 피에 물들어 섬칫한 광경이다.
서있는 놈들, 엎어진 놈들.
대충 봐도 스무마리 이상이다.
조리대 옆엔 문이 하나 더 있는데 아마도 재료창고가 아닐까 싶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활짝 열 때까지도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자세 좋은걸.
난 일어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스으읍."
문 안으로 성큼 들어가 외쳤다.
"김치볶음밥!"
...몰라 씨발.
뇌도 없고 생각도 없다.
"캬르륽?!"
요리 수강생들의 대가리가 홰래랙 돌아간다.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진다.
"크아아악! 캬아아아악!"
흰 조리복의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온다, 온다!
난 미소지었다.
"계란국... 추가!"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흡!"
파가각!
* * *
가속 7회.
죽인 좀비, 22마리.
[레벨이 3 올랐습니다.]
오. 3업 했다고?
8이나 9로 끝나는 숫자만큼 죽였었나보네.
그래도...
"...좀 아쉽네."
30마리면 좋았을텐데.
힘도 찍었는데 젠장.
이걸로, 서예학원에서 죽인 10마리와 합쳐 4업이 되었다.
살짝 아쉬워 입맛을 다시는데, 재료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안에 더 있을지도 몰라.
재료창고로 걸어가 문을 잡았다.
가속은 5회 남았어.
몇마리가 있든 이 좁은 창고에 무슨 20마리씩 있을리는 없다.
"후우... 스으읍."
숨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철컥.
...?
잠겼네?
"...뭐야."
문에 귀를 대어봤다.
뭔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문을 열어봐도 안 열린다.
철컥,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