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87)

"...칼로 찔러볼까."

...아서라.

이거 철문이다.

나무 문 같으면 찔러서 어떻게 해보겠는데, 철문은 무리다.

안쪽은 냉장기능 같은게 있는건가.

"아, 사무실에 열쇠가 있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리자 창고 안에서 뭔가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

...뭐지?

...갑자기 등줄기에서 불길한 예감이 솟았다.

설마...

씨발, 설마.

난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안에 사람 있어?"

대답이 없다.

난 문을 두드렸다.

"어이. 내 말 들려? 안에 누가 있냐고."

뭔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들린다.

쥐?

아니면, 무슨 고양이?

...아니면 사람이겠지.

난 한숨을 내쉬었다.

"밖은 안전해. 나와."

기다려도 답이 없길래 다시 말했다.

"사무실에 열쇠 있지? 어차피 이거 내가 열 수 있어. 나와. 밖에 나밖에 없으니까."

잠시 기다리자 뭔가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찰칵 한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난 한 걸음을 물러서고 말았다.

냄새!

냉기와 함께 똥냄새가 훅 튀어 나오는데 숨이 턱 막힌다.

사람이 나온다.

안에 있던건 남자였다.

난 팔로 코를 틀어막곤 몇걸음 물러섰다.

아 씨발 진짜.

완전히 허옇게 떠있는, 머리가 완전히 떡진, 조리복을 입고있는 남자.

아마 갓 스무살?

맞나? 얼굴이 엄청 앳되다.

키는 작고 통통하다.

절대 조리복을 입어선 안될 모양새로 저러고 있으니 참...

"아... 아무도 없나요...?"

"어어. 없어."

놈은 나를 힐끗 보더니 흠칫하곤 물러섰다.

가지가지하네 씨발.

피 뒤집어 쓰고 있어서 그런 모양인데.

"저, 저기, 피, 피가..."

"내 피 아니야."

"저, 정말인가요...?"

"어. 아니라고."

난 기침을 한 번 하곤 한걸음 더 물러섰다.

"씨발, 나오던가 도로 기어 들어가던가 문 좀 닫아. 냄새 씨발."

이 멍청한 새끼, 종말 터지고 여기 숨었나본데.

거의 2주간 안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똥싸고 지낸거네.

먹을거야 재료창고니 뭐든지 있었겠지만...

제발 좀.

조리복 애송이가 슬금슬금 나오더니 문을 닫았다.

엉망진창이다.

문을 닫았는데도 똥내가 올라오는게, 이미 이새끼가 입고있는 옷에 완전히 밴 모양이다.

난 다시 기침했다.

"쿨럭, 씨발. 피 뒤집어 쓰고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진짜 오진다. 용케도 살았다, 너."

조리복 애송이는 대답도 없이 나를 힐끔거리고 살폈다. 진짜 상처가 없나 보는 것같다.

그리곤 입구부터 즐비한 시체를 보곤 흠칫 떨었다.

"즈, 허으, 시, 시체, 죽, 죽은, 죽었? 허으."

...놀고자빠졌네.

"죽었어. 다. 내가 깔끔하게 머리를 찔러놨지. 못 일어나니까 걱정 마라."

"허억, 흐으, 하으..."

풀석, 주저앉는다.

...쯥.

혀를 차곤 말했다.

"뭘 시체 같은거 보고 그러냐. 너 몇살이야?"

"...여, 여, 열일곱이요. 여, 열일곱."

...앳되보이는게 아니라 진짜 애송이였네.

난 검을 털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슈르릉- 착.

"히익!"

검 꽂는 소리에도 겁에 질린다.

"...하아..."

어쩌면 좋냐.

그냥 놔두고 가?

그때 애송이가 말했다.

"저, 저, 저좀, 흐윽, 도, 도와주세요. 흐윽, 지, 집에, 집에 가고싶어요. 흐으윽...!"

"............"

돌겠네.

머리를 긁다가 말했다.

"너희 집, 이제 없어. 세상이 망했다."

애송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이내 주륵주륵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며 나를 올려다 본다.

졸지에 집도 절도 없는 놈이 되어버렸다.

얼굴을 보니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세상이 미쳐돌아가는데 아포칼립스가 뭔지조차 모르는 어린애를 제외하곤 알 수밖에 없지.

애송이는 닭똥같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나를 바라봤다.

얼굴에 땟국물 가득한 통통한놈이 울고있으니 참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다.

게다가 수염도 제대로 안 나는지 턱주가리에 애송이같은 털 몇가닥만 대롱 나와있다.

참...

애송이가 말했다.

"저, 저는, 흐윽, 이제, 흐으윽... 어떻게 해야... 흐윽, 흐으윽...!"

"그걸 내가 아냐."

어쨋든 뭐, 꺼내줬으니 됐지.

저 똥통에 틀어박혀 자기 똥냄새 맡다 죽을 팔자였는데, 이만하면 된거 아니냐.

에라이, 씨발.

돌아가자.

몸을 돌려 걸어가려는데 애송이가 애처롭게 날 불렀다.

"저, 저기, 아, 아저씨. 형님. 저, 저 좀, 저 좀 도와주세요. 예? 제발, 좀 도와주세요오... 흐윽..."

"............"

...밋치겠네, 씨발.

뒤돌아 봤다.

통통한 애송이가 똥내 풍기며 질질 울고있다.

절찬리에 돌아버리겠다.

"...하아..."

천장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놈은 그걸 허락으로 받아들였나보다.

"흐윽, 허으윽, 흐윽, 혀, 형니임."

엉거주춤 일어나서 쭈뼛쭈볏 다가온다.

...아...

또 쓸데 없는거 주웠다.

씨발...

난 한심한 기분으로 조리복 애송이를 내려다봤다.

키도 좆만하네.

한 160 되나.

아...

이새끼, 나한테 욕 한번 박아주지 않을래나.

그럼 기쁜 마음으로 머리를 찔러줄텐데.

...귀찮단 말이야.

내가 씨발 무슨 유니세프도 아니고 줍는 사람마다 다 구해줘야 되냐고.

아...씨발.

존나 한심한 기분이 치솟아 올라와 감당이 안 된다.

난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말했다.

"오지 마라. 똥내 난다."

"흐윽, 흐으윽, 허어엉... 흐윽."

똥내가 한걸음 물러섰다.

말은 잘 듣네.

씨발!

왜 말 잘듣냐고!

왜!

욕 박으라고 씨발!

머리통 쑤시게!

"...아..."

허리를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똥내를 일단...

데려가...기 싫은데...

얌전하고 말 잘 듣는데 대가리 찌를수도 없고...

난 이마를 짚었다.

이새끼를 데려가면...

맞은편 그 집으로 일단...

그럴려면...

...잠깐만.

1층은 가속 박고 지나가야 된다.

똥내는 거길 못 지나가.

...내가 커버 해줘야 되나.

...밋치겠네 진짜...

"하아..."

난 길게 한숨 쉬고는 생각해봤다.

가속은 5회.

커버로는 충분하지만, 힘이 부족해.

8 남았다.

힘이 부족해서 말리는 경우가 있어선 안돼.

지금은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아침에 나가야 되겠는데.

난 고개를 끄덕이곤 똥내를 바라봤다.

똥내가 깜짝 놀라며 흠칫한다.

그냥 본거다 씨발아.

아... 화내지 말자.

난 숨을 들이키곤, 똥내 때문에 기침 한번 하고, 말했다.

"밤 늦었어. 아침에 나간다."

"흐으윽, 흐응, 허어엉... 예, 예, 형. 흐으응...!"

...누가 니 형이냐.

한심한 기분을 누르고, 난 사무실을 가리켰다.

"저기서 쉬어. 난 건너편 서예학원에서 쉰다. 아침에 보자."

이새끼랑 같이 있기 싫어.

똥내가 말했다.

"흐윽, 흐윽... 혀, 형. 저, 저도 형이랑 같이..."

너랑 같이 있기 싫다고.

똥내 난다고 씨발.

욕 나올려고 하는걸 참고 사무실을 가리켰다.

"저기서 쉬라고 했다."

"흐윽, 흐으응... 허엉..."

울지 말란 말도 하기싫다.

난 그냥 요리학원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큰 건물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법도 해.

그런데...

어째서 난 이 놈을 구하고 말았을까.

...창고를 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난 왜 창고를 열었을까.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이 나로 하여금 저 창고를 열도록 강제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저 놈은 내 책임이 아니지 않을까.

으음...

고찰해 볼 만한 주제인걸...

그런 생각을 하며 도로 서예학원으로 돌아가 원장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내 팔자야, 씨발."

어휴.

그리고 아침.

9시가 갓 넘은 시각.

비상식량은 다 먹었고, 스텟도 완전히 충전되었다.

돌겠다.

이 스텟이면 윗층 올라갈 수 있는데.

똥내... 씨발, 데려다 줘야지.

"하아..."

...가자.

일어나서 요리학원으로 들어갔다.

"드르르러러러렁- 크허어으어으어-"

...가지가지 한다.

똥내 코골이는 사무실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난 사무실을 뒤흔드는 똥내 코골이의 옆구리를 툭툭 찼다.

아, 똥내.

사무실 문은 왜 닫고 지랄이야.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곤 툭툭 차자, 똥내가 흠칫하며 일어났다.

눈을 꿈뻑꿈뻑하며 날 쳐다본다.

난 말했다.

"아침이다. 가자."

"어..."

흔들흔들하며 현실부정하던 얼굴이 점차 돌아온다. 그리고, 찌든때 가득한 얼굴에 긴장이 피어올랐다.

"아, 예. 형."

...세수도 안 했네.

나도 안했으니 뭐, 할 말은 없다만.

난 이새끼 탈출시키려면 어차피 또 피 뒤집어 쓸거라 안한거고.

이 똥내는 좀 씻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