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한심한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맨 손이 아니다.
원장실에서 갖고 온 의자를 나는 들고있다.
아무리 봐도 이 똥내를 탈출시키려면 보통 방법으론 안 되겠고, 이거라도 집어던져야 답이 나올 것 같다.
무겁긴 존나 무겁네 씨발.
"후우..."
똥내는 밍기적거리며 내려오고 있다.
난 말했다.
"야. 바퀴 잡아. 뭐 하는거야."
"아, 예. 형."
어설프게 바퀴를 잡고 올린다.
좀 낫네.
후우...
"가자."
우린 중간중간 쉬어가며 내려갔다.
숨소리를 거칠게 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주의사항도 알려줬다.
"내가 뛰라고 하면 무조건 뛰는거다. 만약에 넘어지거나 쫄아서 웅크리는 짓거리 하면, 그대로 버리고 간다. 넌 그자리에서 놈들에게 잡혀 죽을거다."
난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힘주어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안 구해준다. 뛰라고 하면 죽을 힘을 다해서 뛰어. 알겠어?"
똥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
대답은 잘 하네.
그리고 2층의 꺾어지는 계단.
똥내는 내 옆에 서있다.
긴장된 얼굴로.
난 똥내를 끌어당겨 깨진 유리벽을 가리켰다.
똥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난 말했다.
"뛰어."
"흐으읍!"
와다다닥!
똥내가 뛰어 내려간다.
"캬라랅?!"
으르렁 소리.
난 힘껏 의자를 던졌다.
뒤집어지며 날아간 의자.
그리고 돌진하던 좀비들.
부딪혔다.
콰당탕!
뭐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앞엣 놈들이 와르르 넘어졌고, 뒤따르던 놈들도 속도를 주체못해 우르르 넘어졌다.
난 즉시 계단을 뛰어내려 마트를 탈출했다.
똥내가 열심히 뛰고 있다.
씨발, 느려!
운동 좀 해!
"캬아아악! 크아아아악!"
"으아아, 허억, 허억, 으아아아!"
뒤에서 놈들이 발버둥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미 거의 20미터는 떨어졌다.
뒤에서 와다닥 소리가 들려온다.
난 힘주어 말했다.
"계속 뛰어. 뒤돌아보지 마. 저 앞에 편의점 보여? 저기까지 달려!"
"허억, 허억! 예, 형! 허억!"
"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왔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난 발을 멈췄다.
타--아---
즉시 검을 꺼내들었다.
슈르릉-
뒤돌아봤다.
1미터 전방!
"흡!"
파각, 파각!
대가리 둘을 찌르곤 뒤돌아 뛰었다.
"--아-르륽!"
털푸덕, 털썩!
타아악!
뒤늦은 발소리와 시체 엎어지는 소리.
똥내는 채 한 걸음도 못 걸은 시각.
가속의 영향.
가속이 끝남과 동시에 우린 앞으로 뛰었다.
뒤에서 엎어지는 소리 때문에 똥내가 뒤돌아 보려 한다.
난 말했다.
"앞을 봐! 뛰어!"
"예, 형!"
뒤에서 뭐가 털푸덕 걸리며 넘어지는 소리가 난다. 방금 찔러놓은 시체와 부딪히며 쓰러진거다.
놈들은 두 번이나 진로를 방해받았다.
거리는 꽤 멀어졌다.
편의점.
우리는 즉시 꺾어돌아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털컹!
문을 닫고 우린 숨을 몰아쉬었다.
제기랄.
귀찮은데다, 숨은 헐떡여야 되겠고, 옆에선 똥내가 올라오고 있고.
돌겠네 진짜.
멀리서 으르렁이 들려온다.
어떻게 따돌린 모양이다.
"하아, 후우... 여기서 기다려."
"허억, 후억, 흐으억, 예, 혀엉. 허억."
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저기서 으르렁이 들려온다.
놈들은 헤메고 있다.
미용실 때도 그랬었지.
저 놈들은 너무 멀면 못 본다.
"...후우..."
난 편의점 골목가로 걸어가봤다.
대형마트 도로가와 인도쪽에 대여섯 마리가 사납게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에 있다는건 모른다.
...흠.
겪으면 겪을수록 이런저런걸 알게돼서 상대하기 편해진단 말이야.
고개를 건너편으로 돌려봤다.
...저 멀리서 뭔가 조그만 것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사람이다.
슬쩍 걸음을 옮겨보니...
...바퀴벌레들이다.
뭐 하는거지?
차 위로 올라가 멀리 바라봤다.
...놈들은 편의점을 털고 있었다.
...어이쿠. 잡혔네.
오오. 물어 뜯기는데?
여러놈이 달려들어 몽둥이 같은걸로 문 놈을 마구 후려팬다.
문 놈은 곧 뻗어버렸다.
사람들이 물린 놈을 쳐다본다.
물린 놈이 피를 질질 흘리며 뒷걸음질 친다.
고개를 홱홱 젖는다.
뭐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아.
놈들이 물린 놈을 패기 시작했다.
...존나 패네.
죽었겠는데...
...저 놈들도 필사적이구만...
난 놈들을 바라보다 코웃음 치고는 차에서 내려왔다.
바퀴벌레들이 뭘 어쩌든, 내가 알 바 아니다.
돌아가자.
하숙집 대문 열고 들어갔더니 가관이다.
수현이와 훈이 아재가 코를 막고 똥내를 보고 있었고, 똥내는 난처한 얼굴로 우물쭈물하며 그냥 서있다.
두 사람은 날 보곤 반갑게 말했다.
코먹은 소리로.
"오빠. 문또리가 듣디길래 나왓듣데... 오빧둘 알았듣데... 두구야?"
"더...던뎅딤. 이, 이다담 데...뎀데가..."
으음...
말투가 저런걸 탓할수는 없지...
수주일간 안 감은 머리는 레고처럼 떡져있고 씻지도 못해 온 몸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데 똥내까지 풍기고 있으면...
서울역 노숙자도 도망갈 만한 몰골이긴 하다.
난 계단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설명은 있다 하자. 일단 좀 씻기고. 어이, 따라 와."
"...네, 형."
그놈의 형은 씨발.
너같은 동생 둔 적 없다고.
한숨쉬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수현이가 말했다.
"옵...옵바."
뒤돌아보니 수현이가 똥내를 가리켰다.
"이다담 옷...옷 버뎌. 응. 세탁 노노."
나는 끄덕끄덕하고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준 후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똥내가 들어오길 기다려 곧장 욕실을 가리켰다.
"옷 벗고 들어가 씻어. 봉투 줄테니까 벗은거 넣어놓고. 갖다 버리게."
똥내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저...옷...옷이 이것밖에..."
"아, 입을거 줄 테니까 얼른 벗으라고. 방 안에 똥내 밴다 씨발."
"네, 네, 형."
쓰레기통에 씌워놨던 비닐봉지를 훅 꺼내서 놈이 옷 벗는대로 곧장 쑤셔넣었다.
크아악, 냄새.
숨이 막히네 씨발.
"쿨럭. 씨박... 얼른 들어가."
"네, 형."
똥내가 욕실에 들어갔고, 난 봉투를 싸매고 옥탑방을 나왔다.
제길, 환기 좀 시키자.
문을 열어 둔 채 옥상 아무데나 봉투를 휙 집어던졌다.
어차피 곧 이사갈건데 상관없지 씨발.
"후우, 하아."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시고 방에 돌아갔다.
으, 찝찝해.
쓸데없는걸 주워버렸어. 젠장.
난 욕실 앞에 옷과 수건을 툭 던져놓곤 말했다.
"야. 옷하고 수건 놔뒀다."
몸에 맞든지 말든지는 내가 알 바 아니고.
그렇게 말하곤 수현이네 방으로 내려가 노크했다.
"나 좀 씻자."
수현이가 피식 웃고는 나를 들여보내 줬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 * *
"넌 이름이 뭐냐?"
라면을 열심히 퍼먹던 똥내가 대답했다.
"박한태입니다. 형."
박한태라...
말끔하게 씻고 나니 좀 사람같네.
허여멀건하고 포동포동한게 아기돼지 같다만은.
아침 식사도 한참 지난 10시라 예은이가 끓여준 라면 정도가 나랑 한태가 받을 수 있는 식사였다.
하지만 한태는 라면이라도 감지덕지라는 듯이 후루룹거리며 잘도 먹는다.
옷도 제법 몸에 잘 맞는데.
통통한 뱃살은 감출 수 없지만, 보기에 통통할 뿐 체격 자체는 별로 크지 않나보다.
하긴, 키도 160쯤 밖에 안되니.
난 라면 한젓가락 먹고 예은이한테 물었다.
"저 집에 방 남나?"
예은이는 갸웃하더니 말했다.
"저쪽은 남자방이랑 여자방 따로 쓰는 것 같더라구요. 그 간호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또 따로 방 쓰시구요. 남자방에 같이 지내셔도 될 것 같은데..."
...남자방이라...
다들 얻어맞은건 좀 괜찮나?
"남자들은 좀 어때?"
예은이는 미소지었다.
"많이 나아졌어요. 한 분은 아직 좀 어지러우시대요. 다른 두 분은 오늘부터 시체 수거하는 작업 같이 하실거 같아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 한태 너도 당분간 거기 형들이랑 같이 있어라."
한태가 긴장된 얼굴로 나랑 예은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 지, 집은..."
"너희 집 없어 이제."
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너도 폰은 있을거 아니냐. 부모님한테 연락 안 해봤어?"
한태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안 받는 거겠지.
...젠장.
우리 부모님도...씨발년도...
...쯧...
난 한숨을 쉬고는 젓가락을 놨다.
"함부로 돌아다니다 그 좀비들 눈에 띄면 삽시간에 잡혀 죽는다. 갈려면 가도 돼. 여기 가둔것도 아니고, 강제로 붙잡는 사람도 없어. 근데 살려면 사람들하고 같이 있어라. 혼자 다니면 죽는다."
한태는 라면그릇을 붙잡고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참나...
어휴...
난 고개를 젓고는 일어났다.
"예은아. 잘 먹었어. 난 좀 쉬었다가 다시 나갔다 올게."
"또 가세요?"
난 주인집을 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가려면 빨리 건물 치워놔야지. 아, 쟤 좀 저 앞집에 데려다 줘라."
예은이가 날 따라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