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87)

과자 포장지와 더러운 일회용기가 널려있는, 난잡한 집 안에서 얼굴 하나 달랑 나오는 동영상.

내가 보고싶은건 이런게 아니다.

밑으로 쭉 내리다 보니 드론 영상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오... 맨하탄?

날짜가...

어제.

눌러봤다.

그리고 5초 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미친."

매디슨 스퀘어 영상의 좀비 떼들.

인천 영상의 좀비 떼들.

인천과 매디슨 스퀘어의 좀비들은 걷고 있었다.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목적도 정처도 없이, 어디론가로 휩쓸려 남들이 가니 나도 간다는 식으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영상을 올린 유튜버가 다급하게 말했다.

"LOOK! LOOK WHAT HAPPEN. DID YOU GUYS SEE THAT?! THOES, HOW DO I CALL THAT... THING? I DON'T KNOW, BUT THAT... ANIMALS. GRAB EACH OTHER, STEP ON THEM SELVES, AND, AND..."

뭐라는거야 씨발.

하나도 못 알아 듣겠네.

하지만 유튜버가 전하려 하는 메세지는 대충 알겠다.

그가 날려보낸 드론.

드론이 촬영한 것은 거대한 좀비의 산이었다.

산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엄청난 기세로 사방에서 뛰어와, 서로를 붙잡고 짓밟고 건물을 타고 오르고 있다.

밑에 깔린 놈은 틀림없이 온 몸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마치 거대한 벌떼같다.

적어도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좀비들이 건물을 붙잡고, 서로를 붙잡고, 대가리를 잡아 뜯으며 기어 오르고 있었다.

놈들은 하나의 목표를 쫓고 있다.

건물 옥상에 착지해 있던 헬기였다.

헬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를 돌리고 있었다.

이끌린거다.

헬기가 내는 거대한 소리와 풍압이 놈들을 끌어들인거다.

그렇게밖에 안 보인다.

사람들이 헬기에 타고 있다.

생존자들.

살아남은 사람들.

탈출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좀비들은 건물을 기어 오르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서로를 짓밟고, 깔아 뭉개고, 납작해진 놈은 토대가 되어, 다시 다른 놈이 짓밟으며 올라간다.

건물 옆구리에 거대하게 늘어진 산처럼 놈들은 기어오르고 있다.

생존자들이 탔다.

모두 탔다.

그와 동시에, 옥상까지 기어오른 좀비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몰려온다.

헬기 안에 있던 누군가가 총을 쏜다.

몇몇 좀비들이 쓰러진다.

머리를 뚫리지 않은 놈은 다시 일어나 뛴다.

헬기가 서서히 떠오른다.

좀비들이 헬기의 다리를 붙잡았다.

다른 놈은 붙잡은 놈을 붙잡았다.

그리고, 좀비의 사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놈들은 좀비 사다리를 붙잡고도 끝없이 기어올랐다.

헬기가 휘청인다.

충분히 날아오르지 못했다.

옥상 위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비틀댄다.

옥상을 빠져나가려 애쓴다.

헬기 내부 인원이 어지럽게 총을 쏜다.

좀비들은 거의 액체괴물처럼 헬기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미친듯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헬기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눕고 말았다.

옥상에서 멀어지긴 했다.

단지, 더이상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헬기는 아래로 추락했다.

좀비들의 한 가운데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유튜버가 다급하게 떠들어댄다.

그리고, 영상은 끝났다.

"............"

폰을 천천히 내렸다.

방금 내가 본게 뭐지?

저 놈들... 저런것도 가능했나?

건물을...

타고 오른다고?

서로를 짓밟고 뭉개 가면서?

...문을 열 줄 모른다고 안심했던게 병신같다.

저러면 문을 열줄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다.

난 영상을 다시 켰다.

처음부터 다시 봤다.

소리...

소리에 이끌리는거겠지?

영상을 다시 보니 아까는 못 봤던게 보인다.

수십만의 좀비들이 떼로 모여 벌떼처럼 기어오르는 것에 놀라서 보이지 않았던 것.

주변 사방의 크고 작은 건물들.

먼 집들.

유리창이 박살나고 있었다.

그리고, 박살난 유리창으로, 박살난 문짝으로 좀비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놈들이 모여, 그렇지 않아도 거대했던 좀비의 떼가 점점 더 불어나고 있다.

소리가 놈들을 자극한다면, 단순히 거리를 배회하던 좀비의 떼 뿐만이 아니라, 건물과 그 어딘가에 들어있었던 놈들 모두를 자극해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하아......"

...겨우 몇십마리 죽일 수 있다고 여유부릴 때가 아니다.

저게 만약에 이 거리로 들이닥치면, 만약 저것과 같은 형태로 마트 건물을 덮친다면, 아무도 버티지 못한다.

건물 유리벽이 아무리 튼튼해본들 저걸 무슨 수로 버티냐.

압력이 임계점에 달하는 시점에서 유리벽은 박살날 것이고, 그 틈새로 놈들은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올거다.

...건물을 이용한다면, 건물 전체를 요새로 만들어야 돼.

차를 뜯어내고, 이용할 수 있는건 모두 이용해서 안전지구를 구축해놔야 된다.

...그럴려면 시간이 필요해.

지금 우리쪽 인원이 몇이지?

할매와 아기는 무쓸모다.

실제로 뭘 할 수 있는 인원.

인라인 여섯, 수현이, 예은이, 소은이, 훈이아재, 똥내, 간호사.

...열두명인가.

겨우 열두명으로 건물 전체의 요새화가...

가능하나?

...무기도 필요할 것 같은데.

제기랄...

할 일이 너무 많아.

가족도 찾아야 되는데, 이래갖곤 갈 수가 없다.

가족 찾는다고 길 떠나다 저 좀비의 떼와 마주치면 나는 죽는다.

용케 숨어도 굶어죽겠지.

...강해져야 돼.

무기도 더 필요해.

대비를 해야 된다.

...하지만 어떻게?

"...후우..."

도무지 모르겠다.

이마를 짚고 드러누웠다.

사람들은 지금쯤 시체를 치우고 차를 뜯어내고 있을거다.

...바퀴벌레들은 이걸 알고 있을까?

삼사십명은 되어 보이던데, 아마 알겠지.

나중에 수현이와 상의를 해야되겠어.

지금은 우선, 내가 할 수 있는걸 하자.

나는 눈을 감았다.

자정.

8층 만화방에 남은 놈들은 모두 여덟이었다.

가속 2회로 처리하고는 2층으로 내려왔다.

렙업은 못했다.

젠장.

꺾어지는 2층 계단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래를 바라봤다.

내가 던져놓은 원장의자가 널부러져 있다.

입구라...

...입구를 먼저 처리하는게 옳은가?

위를 올려다봤다.

2층까지는 마트.

3층은 창고와, 아마도 사무실.

...사무실을 먼저 정리하자.

3층으로 올라가 검을 뽑았다.

슈르릉-

문을 슬쩍 열어봤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제법 멀리서 들리는데?

안쪽을 바라보니 문 코앞에까지 박스가 쌓여있다.

커다란 철제 선반이 늘어서 있는게, 이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창고인 모양이다.

저 옆쪽이 엘리베이터라 그런 모양이지?

그러다면 정면으로 가면 사무실이 나온다는 뜻이다.

귀를 기울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머지 검을 뽑았다.

슈르릉-

박스가 쌓여있는 대형 선반들.

...흠.

"스으읍."

난 외쳤다.

"알리오 올리오!"

으음.

내 내면의 무의식이 갑자기 스파게티가 먹고싶었나보지.

"크아아아악!"

와장창!

유리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으르렁이 들려왔다.

난 미소지었다.

들어와, 씹새들아.

"흡!"

파각!

여자의 머리에서 검을 빼내자 핏방울들이 일렁거린다.

13마리.

가속 3번.

"후우."

[레벨이 3 올랐습니다.]

우르르, 와당탕!

사방에서 쓰러지는 소리.

튀어오르는 핏방울.

주위를 둘러봤다.

과자들, 음료수들, 생수들.

핏방울 좀 튀었어도 박스에 묻었으니 별로 상관 없겠지?

화장실까지 수색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3층을 나섰다.

몇마리 없었던건 좀 아쉽네.

욕심 탓인가, 층마다 한 200마리 있으면 좋겠단 말이지.

겨우 창고랑 사무실인데 뭘 바라겠냐만은.

이걸로 남은건 힘 9, 가속 7회.

아직도 여력이 충분해.

2층 계단으로 내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흐음.

의자가 좀 방해되겠는데.

아니야.

놔두자.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갔다.

코너를 돌았다.

빛이 눈을 덮친다.

사람들이 눈 앞에 나타난다.

"캵?!"

"스으읍."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곧장 안으로 들이닥쳐 검을 찔러넣었다.

눈이 닿는 곳에 즉시 검이 들이닥친다.

두개골 뚫리는 느낌이 손으로 전해져 온다.

파각, 파각, 파각, 파각!

가속이 끝날 타이밍에 맞춰 즉시 발동시켰다.

놈들 사이를 헤치며 계속 머리를 뚫었다.

가속 2회, 그리고 3회.

아홉개의 머리.

모두 뚫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의자를 뛰어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옆문을 지나, 박살난 유리를 짓밟았을 때.

"--카-읅!"

우르르, 와당탕!

아홉마리가 일거에 엎어지는 소리.

"크아아악!"

놈들이 온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난 그대로 앞으로 질주해 놈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편의점까지 달려와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확실히 따돌렸다.

숨을 가다듬으며 폰을 꺼냈다.

윽, 피가 묻었어.

새벽 한시쯤 됐나?

아직 안됐네. 49분이다.

검을 내리쳐 피를 흩뿌리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슈르릉- 착.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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