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해지고, 익숙해진다.
"...후우..."
[레벨이 올랐습니다.]
좋아.
본격적인 레이드를 위한 준비는 이걸로 끝났다.
난 화장실 복도에 제멋대로 엎어져버린 시체들을 잡고 여자 화장실 쪽 벽으로 옮겼다.
남자 화장실로 통하는 복도가 깨끗해졌다.
레이드 후, 이 길을 따라 남자화장실로 은신한다.
가속은 9회.
힘은 17.
이젠 가속보다 힘이 부족할 지경이다.
체력에 다시 1을 넣었다.
체력 59.
...좋아.
17마리 해치우고 나면 60이다.
난 곧장 칸막이 밖으로 걸어가 주위를 바라봤다.
화장실 근처에 있던 놈들은 다 끌어들여 죽였다.
제법 떨어져 있던 놈들이 날 발견했다.
저건 뭐지?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 몸을 흔들흔들거린다.
한 걸음씩 내게 다가온다.
난 미소짓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잇!
"크르륽?!"
떨어져 있던 놈들의 걸음이 빨라진다.
저기 뭐가 있다!
라는 느낌이다.
으르렁댄다.
다가올수록 으르렁이 험해진다.
그리고, 놈들은 포효했다.
"크아아악! 캬아아아악!"
좋아.
와라.
검을 허공에 내리쳤다.
스웅! 촤륵!
핏방울이 채찍같은 자국을 낸다.
"캬아아아악!"
놈들이 온다.
온다, 왔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흡!"
난 코 앞까지 쳐들어온 놈들의 머리를 뚫으며 사방으로 쇄도했다.
파각, 파각!
파각!
열 일곱!
즉시 검을 뽑아내곤 뒤돌아 뛰었다.
칸막이 사이로 들어가, 깨끗한 길을 따라 힘껏 달린다. 시체들이 옆으로 휘릭휘릭 지나간다.
"--크-아읅!"
[레벨이 2 올랐습니다.]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난 곧장 화장실로 뛰어들어 칸막이를 닫았다.
찰칵.
문을 잠근다.
"후우, 하아."
숨을 가다듬어야 돼.
가슴에 손을 얹고 깊게 심호흡했다.
심장은 산소를 더 내놓으라 요동치고, 송글송글 맺힌 땀은 피와 만나 흘러내린다.
"크아아윽! 캬라라락!"
밖에서 놈들이 으르렁댄다.
으르렁이 벽을 타고 메아리친다.
그러나 가까워지진 않는다.
더러 칸막이 안으로 들어온 놈도 있는 것 같지만, 즐비한 시체를 보고도 안에 뭐가 있다곤 생각치 않는다.
그저 으르렁 댈 뿐이다.
후우-하아-
깊게 심호흡하며 몸을 진정시켰다.
수주일간의 단련과 뜀박질, 그리고 칼질은 내 몸을 상당히 단련시켰던 모양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가슴이 금새 가라앉는다.
가속 4회, 힘은 0.
확실히 힘이 모자라.
더 빨리, 더 많이 죽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 만큼 스스로 성장이 더디다고 생각했었는데, 수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살짝 고민인걸.
힘을 더 주면 확실히 렙업에 도움이 돼.
하지만 체력을 확보해서 휴식시간을 단축하고 싶은 욕구도 크다.
체력 100이면 레이드 하루 3번은 거뜬하니까.
레이드 3번이면 지금 기준으로 하루 90마리다.
사실 엄청난거다.
바퀴벌레들은 겨우 한두마리 잡자고 몇십명이 떼로 몰려들어서 그 난리를 치는데, 게다가 잘못 물리기라도 하면 동료에게 맞고 뒤지는데.
난 혼자서 수십마리씩 삽시간에 휩쓸고 다니니.
힘.
올리고 싶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체력을 올리면서 힘에 대한건 차차 생각해보자.
체력에 2점을 넣었다.
이로서, 체력 61, 레벨 37.
제법 잘 오르는걸.
휴식시간은...
정신 40점, 8시간?
피식 웃었다.
확실히 빨라지는걸.
생존전문가 이전에 40점을 회복시키려 했으면 13시간 이상 쉬어야 했는데, 8시간으로 줄었다.
12시간이면 60점이 다 회복되는구나.
가속 박고 처치하는 수도 3마리에서 4마리, 또 점점 5마리씩으로 늘어나고 있고.
나쁘지 않아.
느리다.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착실하게 나는 강해지고 있다.
숫자가 그걸 증명해준다.
난 변기에 앉아 등을 기댔다.
그리고 새벽 다섯시.
모든 스텟이 회복되었다.
자정 쯤에 수현이가 걱정하는 메세지를 보내왔었는데, 내가 저 좀비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눈으로 봐서인지 괜찮다는 말에 금새 안심하는 것 같다.
귀여운 여자다.
수현이 생각을 하며 피식 웃고는 일어났다.
자아.
가자.
화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아직 피와 잡것들이 묻어있는 검을 휘둘렀다.
스웅! 촤악!
근처에 있는 놈들은 제법 정리해놨다.
얼마나 남았을까.
칸막이를 지나 마트로 들어갔다.
갑자기 사방이 환해진다.
바닥에 즐비한 시체들과 피웅덩이들.
시체들을 당겨 퇴로까지 적당한 공간을 만들언 낸 후, 숨을 들이켰다.
얼마나 남았든, 다 덤벼.
"스캣매애앤!"
스캅타뚜리답 딥디리둡둡바라바라밥.
암 어 스캣매앤~
"크아아아악! 캬아아아악!"
관객 호응도 아주 좋고.
난 미소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뛰는 좀비들. 좀비들.
놈들이 온다.
선반을 무너뜨리며, 진열된 상품을 후려쳐가며, 놈들이 내게 달려온다.
"캬아아악! 크롸라라라락!"
우당탕 콰당탕!
벽에 부딪히고 진열대에 부딪히고 지들끼리 부딪히고 난리가 났다.
난 기다렸다.
한가로운 기분으로 놈들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와라. 어서.
"크아아아악!"
오오.
왔냐.
좀비들의 아가리가 보인다.
들어올린 손이 허공을 할퀸다.
번쩍 뛰어오른 몸뚱이가 사납다.
난 미소지었다.
검을 들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사방에 몰려든, 들개떼같은 좀비들.
모조리 멈춰 박제된 것만 같다.
발을 내딛으며 검을 내질렀다.
"흡!"
파각, 파각, 파각, 파각!
놈들 사이를 빠르게 뛰고, 발로 땅을 밀며,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찔렀다.
가속을 박아 가며 찌르고, 또 찔렀다.
파각, 파각, 파각, 파각!
너무나 느릿해 눈 깜빡이는 것조차 지겨워 보인다.
파각!
핏방울이 허공으로 일렁일렁 날아오른다.
난 놈들 사이를 지나치며 빠르게 검을 놀렸다.
익숙하다.
능숙하다.
나 스스로 느껴질 만큼, 정확히 머리에 꽂아넣어 단숨에 숨통을 끊고 있다.
한 때 가졌던 연민, 두려움, 당혹감.
없다.
아니, 오히려.
나는 미소짓고 있었다.
파각, 파각, 파각, 파각!
"하하."
서른 마리.
단숨에 해치우곤, 곧장 몸을 돌려 마트 입구로 뛰어갔다.
얼마나 남았는진 모른다.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기분상 그래 보인건지 정말 많지 않은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레이드 한번 정도면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길. 화장실은 이제 지겨워.
따뜻한 밥 먹고 좀 씻고싶다.
돌아가자.
"---캬--르-"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이따금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슥 지나치며 입구까지 질주했다.
문을 붙잡고 당긴다.
들어가 손을 놓자, 유리문이 느릿하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가속을 박고 엘리베이터까지 내달렸다.
"-크롸락!"
우르르르, 콰당탕!
놈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멀리 들려온다.
그리고, 덜컹 하며 유리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뒤돌아봤다.
가속은 아직 남았어.
혹시 놈들이 오면 계단이다.
"후우."
크아악 하며 놈들이 짖고있다.
하지만, 오지 않는다.
소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난 미소짓고는, 검을 휘둘렀다.
스웅- 촤륵!
검에서 핏물이 빠져나간다.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탑승하며 검을 꽂아넣었다.
슈르릉- 착.
10층을 눌렀다.
돌아가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그리고, 나는 미소지었다.
신기한 감정이야.
실컷 죽이고 미소가 나오다니.
아드레날린 때문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웬지 즐거운걸.
레벨은 3 올랐다.
그대로 체력에 3을 넣어 64를 만들었다.
10층에서 내렸는데...
...몇호였지?
머리를 긁적이며 왼쪽의 문들을 보면서 걸었다.
1021..22..23..
...이 근처였던 것 같은데.
난 1024호를 슬쩍 열어봤다.
여긴가?
어둡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컴퓨터가 있었는데...
뭐 보여야 컴퓨터가 있는지 확인하든 말든 하지.
몰라, 맞겠지 뭐.
새벽 다섯시 겨우 넘었는데 괜히 깨우기도 싫고.
난 으쓱하곤 들어가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으, 피를 너무 뒤집어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