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87)

나는 검 두 자루를 쥐고, 파도처럼 뭉개지며 달려오는 좀비의 떼를 바라봤다.

크롸라라라라!

소리가 벽을 때린다.

사방에서 울린다.

메아리가 너무나 심해, 뒤에서 들리는 것같다.

지축이 뒤흔들린다.

크롸라라라라!

온다.

놈들이 온다.

...왔다!

나는 미소지으며 무릎을 튕겨 뛰었다.

그리고, 나는 한 순간에 휘몰아쳤다.

지하도 입구까지 올라와, 난간을 붙잡고 숨을 가다듬는다.

"...후우."

"크롸러르륽!"

괴상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 난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넘어진 놈에 걸려 넘어지며, 속도를 못이긴 놈들이 뒤에 놈들과 부딪히며, 연쇄적으로 엎어져 좀비의 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난 아래쪽에서 놈들이 엉겨붙는걸 내려다보다 몸을 돌렸다.

턱에서, 머리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제 좀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자.

가속을 10회나 썼어.

계단이 이렇게 많지만 않았어도 가속 횟수를 좀 아낄 수 있었는데.

아쉽군.

여기서 가까운 곳은...

하숙집이지.

불과 며칠 전인데도 간만인 것같다.

꽤 반가운걸.

턱에서 질질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곤, 검을 휘둘러 피를 빼냈다.

스웅- 촤륵!

스르릉- 착.

검을 집어넣곤,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끼잉- 철컥.

자동 잠금장치 소리.

그리고, 계단.

빨랫줄.

모든게 그대로다.

난 계단을 올라가 익숙한 옥탑방으로 돌아갔다.

옷은...

쯧.

어차피 또 피에 젖을거, 굳이?

대충 벗어다 놔두곤 샤워실에 들어가 피를 깨끗이 씻어냈다.

세면도구를 놔두고 간건 신의 한수다.

방금 3렙업.

바로 체력에 집어넣었다.

하루에 레이드 3회.

꼭 해보고 싶다.

당장 힘을 올리는 것보다, 가속 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레이드 자체를 빠르게 앞당길 수 있는게 더 내게 매리트로 다가온다.

현재 체력, 75.

레벨은...

오오, 51?

제법 빠르네.

막막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반이나 올랐어.

지하도만 잘 공략해도, 다음 전문화까진 문제 없겠는걸.

기분좋게 샤워를 마치고 옥상에 돌아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이건 꽤나 괜찮은 전략이다.

이 옥상, 예전에 공략했던 중형 마트 골목까지가 보인다.

게다가 은근히 뷰도 좋아서 하늘 보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동네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와 바퀴벌레들이 어디에 우글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거다.

물론, 건물 옥상에서 보는게 제일 좋지.

하지만 여긴 더 가깝다.

놈들은 저 멀리에 있다.

근처에 다가오면, 즉시 대응한다.

가능하면 내가 안을 여자들...

...좀 짐승이 올라왔는데.

아무튼, 내가 신경쓰는 사람들은 다치게 하고싶지 않다.

그동안 봐왔고 나름대로 정도 들었는데, 바퀴벌레들 때문에 다치기라도 하면 기분 개좆같을 것 같거든.

그땐 앞 뒤 안가리고 바퀴벌레 놈들을 몰살시킬지도 모른다.

인간이고 좆이고 따윈 상관없다.

그러니, 이 쪽으론 오지 않는게 좋을거야.

난 담배를 두어대 피우곤 기지개를 켰다.

풍경 좋네.

건물을 돌아봤다.

저기 있는 사람들, 혹시 창문이나 옥상에서 날 보고있진 않을까?

안 보네.

난 피식 웃고는 거리를 다시 둘러봤다.

그래.

애초에 여기가 내 베이스캠프였지.

지금도 내 베이스캠프인거다.

앗.

충전기를 깜빡하고 왔네.

현재 배터리 44퍼센트.

스텟 충전될 때까지 유튜브나 보려고 했더니.

쯧.

배터리 아끼자.

폰을 도로 넣어놓곤,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에서 간식을 주워먹으며 몇시간 빈둥거리다 수현이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수현아. 나 지금 하숙집임.]

[잉? 거기서 뭐해?]

[누워있음.]

[ㅋㅋㅋㅋ]

[별 일 없어?]

[응. 이제 곧 저녁 먹을거야. 옥상에 다들 모여있어. 오빠 거기 있지 말구 이리 와.]

[이제 또 내려가야돼. 내 걱정 말고 맛있게 먹어.]

[밑에 좀비들 많아?]

난 좀 생각해보다 답장해줬다.

[엄청나게.]

[ㅜㅜ... 오빠 저녁 먹구 해. 응? 여기 식구들도 오빠 왔으면 좋겠대.]

아, 수현이...

귀엽네.

나 챙기는건 네가 최고다.

정실 삼을까보다 그냥.

난 피식거리며 웃고는 메세지를 보냈다.

[있다 밤에 갈게.]

[ㅜㅜ 오면 안돼?]

[^^]

그렇게 답장 보내곤 말았다.

고기... 좋지.

난 육식파라고.

그런데 저 자리에 안가는 이유는.

고기 실컷 먹고 좀 쉬면 불끈거릴 테니까.

...지금도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단 말이지.

눈 앞에 수현이, 예은이, 소은이, 정은서, 그리고 다른 여자들이 있으면 반드시 눈 돌아갈거같다.

안돼.

렙업이 우선이야.

밤 레이드까지 마치고 돌아가는거다.

그러고 나서는 뭐...

그때 가서 생각하고.

누운 채 턱을 내려 아래쪽을 보니, 역시 아랫도리가 불쑥 올라와 있다.

...쉬자 그냥.

밤 10시.

모든 스텟이 충전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피 젖은 옷을 입고 리프팅벨트를 찼다.

집 밖은 한밤중이다.

별이 떠있네.

난 별을 좀 바라보다 계단을 내려갔다.

대문을 나서 주위를 둘러본다.

이젠 거의 습관이다.

"............"

멀리 인기척이 보인다.

또 그 전봇대다.

내가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채자 후다닥 사라진다.

...쫓아가볼까.

아니야. 가속 아깝다.

그나저나 바퀴벌레 놈들, 확실히 우리 상황을 살펴왔군.

무서운건지, 적개심인건지, 혹은 무서워서 적개심을 갖게 된건지.

요전에 그 일 이후, 완전히 나를 경계하고 있는거다.

우리쪽 사람들을 신경쓰진 않을거다. 그걸 신경썼으면 그렇게 우르르 몰려와 난동부리진 않았겠지.

나다.

놈들이 껄끄러워 하는 것은.

그래. 계속 껄끄러워 해라.

난 피식 웃고는 지하도로 걸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시체들이 쌓여있다.

정확히, 30구다.

난 시체들을 넘어 걸어가며 숨을 들이켰다.

검을 뽑아낸다.

슈르릉-

그리고, 외쳤다.

"이리 와!"

크롸라라라라락!

공기가 진동한다.

나는 휘몰아쳤다.

직후, 지하도 입구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괴성이 울려퍼진다.

와르르, 우르르 무너진다.

뒤이어 연속적으로 널브러진다.

요란한 소리, 소란, 절규 담은 포효를 뒤로 하며, 나는 대형마트 건물로 걸어갔다.

"...후우."

검을 휘둘러 핏물을 제거하고 검집에 집어넣었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3레벨씩.

차곡차곡 쌓인다.

지하도엔 놈들이 엄청나게 몰려있다.

60마리를 죽였음에도 티도 안 날 정도다.

길과 계단 따위를 가득 메운 인간의 형체들을 보고있자면 아득해질 정도다.

그러나, 오히려 기쁘다.

놈들의 머리 하나 하나가 내 성장의 밑거름이다.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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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자

[전문화 - 생존전문가] [레벨 - 54]

[호칭 - 힘을 얻은]

스테이터스

[체력 - 71/77] [감각 - 2/2]

[힘 - 0/30] [민첩 - 4/4]

[정신 - 10/60]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3]

스킬

[패시브 - 혼의 문신 LV. 2]

[패시브 - 회복]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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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54.

체력에 3을 넣어 80을 만들었다.

지금 나는 레이드를 하고싶다.

내려가서 놈들의 머리를 썰고싶다.

한마리라도 더 죽이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레이드를 하고싶다.

생존전문가.

이름 꽤 좋지 않냐.

지금 시대에서 살아남는다는건 곧 누군갈 죽인다는 뜻이다.

좀비가 됐든 같잖은 인간이 됐든, 앞길 가로막으면 죽인다.

그게 종말이다.

그게 생존이다.

더 빨리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생존전문가의 회복 스킬은 그야말로 종말이므로 걸맞는 전문화다.

그러나 직접적인 공격에 관련된 전문화는 아니다.

오로지, 다른 전문화들을 보조해주는 역할.

그림자 전사.

야생 사냥꾼.

공간 탐색자.

...이 전문화들은 모르긴 해도 공격과 연관이 있을거다. 적어도 전사와 사냥꾼. 이 둘은 공격이 아닐 수가 없다.

생존전문가를 통해 회복이 확보된다면.

회복만 확보된다면, 다른 전문화를 활용하기도 좋아진다.

모든 전문화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전문화다.

얼토당토 않게 골랐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아.

언젠가 올려야 될 보조적인 전문화라면, 차라리 지금이 낫다.

고렙이 돼서 전투력도 오르지 않고 지겨운 렙업구간을 맞이하느니, 저렙때 빨리 해치우고 고렙이 되면서 전투력을 빠르게 확보하는게 내 성미에도 맞다.

그런 면에서 지하도와 생존전문가.

꽤 잘 어울리는 페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10층이다.

난 피에 푹 젖은 채 복도를 저벅저벅 걸어갔다.

가슴이 뛴다.

기분이 진정되질 않는다.

더 죽이고 싶다.

...좀 차분해 져야돼.

아침.

아침까지만 기다리면 돼.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집들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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