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한마리라도 더.
죽여 없애고 성장하고 싶다.
체력.
지금까지는 5점당 45초씩 줄어들었어.
체력 100을 찍는 시점에서 15분이 줄어든다.
계속 올리면 어떻게 되는걸까.
이론적으론 135까지 올리면, 회복틱은 0초가 된다.
0초!
소모한 즉시 최고치로 회복하는거 아닐까?
그렇다면, 가속을 몇 번을 쓰든, 힘을 얼마나 소모하든, 무한대로 놈들을 죽일 수 있게 되는건 아닐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 예상이 맞는다면...
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좀비를 모조리, 한 순간에라도 죽여 없앨 수 있게 된다.
만약 틀리더라도 회복속도는 확보되는거다.
손해볼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체력을 올리고 있다.
힘을 찍어 더 많이 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체력을.
더 빠른 회복을.
더 많이 죽이기 위해.
난 상태창을 다시 들여다 봤다.
정신력은 현재 10이 남았다.
그렇다면 5시간.
약 5시간 뒤에는 모든 스텟이 회복된다.
"...다섯시간..."
그래...
다섯시간만 기다리면...
놈들을 다시 죽일 수 있어...
집으로, 내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서 얼굴이라도 보긴 해야 될텐데.
가끔 외박은 했지만, 매일 보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신경이 쓰인다.
한 편으론, 여기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
나는 더 많이 죽이고 싶고, 더 빨리 레벨을 올리고 싶다.
난 가방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씹으며 생각했다.
...그래.
겨우 하루야.
하루만에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겠어?
뭔가 있다면 수현이가 메세지를 보내 올거다.
...아.
난 폰을 꺼내 수현이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외박이야.]
[ㅡㅡ...]
[왜? 화났어?]
[나 보러 온다고 해놓고.]
난 피식 웃었다.
[지금도 보고싶다.]
[몰라요 ㅡㅡ 흥]
귀엽네.
수현이...
난 미소짓고는 메세지를 보냈다.
[내일 아침이나 오전쯤에 돌아갈게.]
[메롱.]
"...하하."
낮게, 소리내지 않게 웃었다.
수현이.
얘랑 대화하면 항상 즐거운 기분이 된다.
난 폰을 넣어놓곤 숨을 가다듬었다.
다섯시간만... 자고 일어나자.
검을 움켜쥐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핏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 * *
아침 9시가 좀 넘어, 나는 지하도에서 나왔다.
온 몸이 시뻘겋다.
이정도로 피를 뒤집어 써본적이 없다.
거의 하루 반나절을 피를 뒤집어 쓰고 다녀봤는데, 피라는건 꽤나 신기한 놈이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범행현장이라고 나온데를 보면 피가 금새 까맣게 굳어버리는 것 처럼 자주 나오는데, 사실은 아니다.
피는 꽤 오랫동안, 거의 말라붙을 때까지도 빨갛다.
피가 까맣게 되려면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나야 되는거다.
그리고 또.
사람에 따라 피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건강한 사람은 선홍색인, 정말 진해 보이는 붉은 빛깔을 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약간 더 탁한 색이 나온다.
거의 검붉은 색에 가까운 피도 봤다.
정맥과 동맥의 차이일 수는 있는데, 사람마다 확연히 뿜어져 나오는 피 색깔이 달랐던걸 보면 역시 차이가 있긴 있는거다.
그게 무슨 차이인지는 모른다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금 온 몸이 빨간색이다. 살 색이 거의 안 보일 정도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올 듯 말 듯 하면서 흐리다.
올거면 빨리 오든가.
지금 타이밍에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은데.
하숙집 골목을 힐끗 들여다보며 걸었다.
슈퍼 옆 전봇대.
저기에 누가 있다.
염탐은 계속 하고있군.
정신력은 10점이 남았다.
...한 번 잡아서 물어볼까.
뭐하러 거기 있었냐고.
걸음을 멈추자, 전봇대에 숨었던 놈이 후다닥 사라진다.
"...쯧."
혀를 차곤 대형 마트 건물로 걸어갔다.
화장실에서 선잠잤더니 피곤해.
눈도 퀭하고.
돌아가자.
건물로 들어서니 수현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각자 작업중이었다.
나를 보곤 깜짝 놀란다.
"서, 성훈씨! 괜찮으세요?"
"오빠! 세상에, 어디 다쳤어?"
"서, 선생님!"
으음.
내 몰골이 그정돈가?
피 묻히고 다니는걸 그동안 봐왔으면서도 이렇게 놀랄 정도라니.
난 피식 웃었다.
"내 피 아니야."
수현이, 훈이 아재, 인라인 사람들, 그리고 똥내, 아니, 한태.
얼굴에 걱정과 놀라움이 담겨있다.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피곤해. 나 좀 쉰다."
걸어가는데 수현이가 날 따라왔다.
"오빠. 진짜 괜찮아?"
"응. 괜찮아. 좀 피곤할 뿐이야."
"밑에 그렇게나 많았어?"
난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지.
나의... 경험치들이.
"이제 다 해치운거야?"
난 고개를 저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곤 말했다.
"밑에는... 이제 시작했어."
수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정도로 많았을 거라곤 생각 못 한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 내려오느라 좀 걸린다.
난 수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 지금 상태 많이 안좋냐?"
수현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지금 눈에 흰자만 하얀색이야."
...으음.
무섭게 생겼겠네.
"나 없는동안 별 일 없었고?"
수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짝 갸웃했다.
"응. 다른건 없는데... 그, 인라인 동호회 남자 한 명이 머리 아프다고 오늘 좀 쉬겠대. 어지러운게 잘 안 낫나봐."
"...그래? 많이 안좋은가?"
수현이는 살짝 안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좋나보네.
띵-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난 수현이에게 말했다.
"네 방에 있을거야. 점심때 올라오지?"
수현이가 날 흘겨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어제는 나 보러 오지도 않아놓구선."
그러며 걸어간다.
하지만 난 봤다.
고개 돌릴 때 살짝 미소짓는거.
난 웃고는 10층을 누르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것도 아마 다른 사람들이 닦아야 할테지.
괜히 좀 미안하네.
숨을 들이키며 심호흡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레이드 두 번.
6레벨 올려서, 레벨 69.
체력은 95.
회복속도가 또다시 빨라졌다.
곧... 체력 100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돼.
135를 찍어보는거다.
샤워는 좋은거다.
시원한 물이 머리를 타고 몸으로 흘러내려 간다는 느낌만큼 개운한건 없다.
지금은 샤워라기 보단 그냥 몸을 빤다는 것에 가깝지만.
군데군데 눌러붙어 말라버린 피를 씻어내느라 거의 한시간이 걸렸다.
세네시간 정도면 다시 레이드를 나갈 수 있어.
점심 먹고 다시 갔다오자.
침대에 편히 누워서 잠깐 눈 붙이는 동안 수현이가 올라왔다.
"오빠!"
수현이가 이불 안으로 들어와 내 품에 안긴다.
내 가슴에 이마를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그 바람에 슬쩍 잠들었다 깨버렸다.
난 품 안의 수현이 머리를 쓰다듬다, 젖을 어루만지며 미소지었다.
"왔어?"
"응."
수현이가 내 품 안에서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빠, 배고프지? 우리 부대찌개 먹을까?"
틱.
난 수현이의 브라 후크를 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대찌개 좋지."
그러고는, 수현이가 입고있던 옷을 벗겼다. 바지와 팬티도 잡고 내렸다.
수현이가 당황하며 자기 가랑이를 두 손으로 가렸다.
"오, 오빠. 나 씻어야 돼."
씻는거 좋지.
그런데 멈추고 싶지 않은걸.
난 그대로 수현이의 위에 엎드려, 있는대로 화가 나버린 아랫도리를 잡고 곧장 밀어넣었다.
"아읏!"
수현이가 날 껴안아 온다.
* * *
오후 네시.
난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검을 무장하고 다시 내려갔다.
으, 눈따거.
지금 대형마트는 셔터작업이 한창이다.
역시 용접이랑 실리콘질은 하루이틀만에 되는게 아니었어. 이거 다 할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걸리겠다.
멀리서 작업하던 수현이가 날 보곤 손을 흔들어 온다. 옆엔 예은이도 같이 있었다.
예은이도 고개를 돌려 날 보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기한 광경이다.
아마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수현이 성격 때문이겠지.
...좋은걸.
언젠가 저 둘을 같이 침대에...
그런 생각을 하니 다시 뭉게뭉게 올라온다.
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곤, 옆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 여기서 열려있는 곳은 오직 마트 옆문 뿐이다.
옆문의 계단 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발을 멈추고 돌아보니 정은서다.
그녀는 계단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이마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이 안 보인다.
왜 저러고 있지?
"은서씨. 무슨 일 있어요?"
정은서가 고개를 들어 날 보더니 희미하게 목례해왔다.
나도 답례해주었다.
정은서가 말했다.
"실은 제 동생 때문에..."
"동생?"
정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동호회에 키 좀 작고 걔가 제 동생이에요."
...아.
남자들 중에 하나가 이 여자 남동생이었군.
전혀 몰랐다.
이름 들었을 때 누가 정 뭐시기라고 했던것 같기도 하다. 듣자마자 열렬히 까먹어버려서 그저 흐릿할 뿐이지만.
"동생분이 왜요?"
정은서의 표정이 안좋았다.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머리가... 아프대요.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고...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아.
머리...
그 녀석이 이 여자 동생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