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187)

이 두개가 향상됐네.

가벼운 질병은 뭐, 콧물감기 그런거 말하나?

평범한 질병은 뭘 말하는거지?

혹시 뭐 말라리아 그런건가?

모르겠네.

그래도 뭐, 없는 것 보다야 낫지.

고개를 끄덕이곤, 업적창을 열어 다음 업적을 눌렀다.

8번, 새로운 전문화 업적이다.

[투사체 복제띠를 얻었습니다.]

...어.

아이템이다.

투사체 복제띠?

"인벤토리."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혼석 - 1,119] [투사체 복제띠]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혼석은 뭐, 손 대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투사체 복제띠를 즉시 건드려봤다.

다음 순간, 내 손 위에 파스스 하고 연기가 일어나더니 긴 띠가 생겨났다.

띠는 끝이 살짝 뭉툭한듯 뾰족하고, 아래쪽으로 점점 두터워지다가 끝에 다시 뭉툭뾰족해지는 형태였다.

굳이 비슷한걸 찾자면, 깃털?

그것과 꽤 비슷하게 생겼다.

색깔이 탁한 은빛나는 금속색이라 깃털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지만.

길이는 약 30센티 가량.

두께는 꽤나 얇다.

그런데, 단단하다.

마치 30센티 플라스틱 자 같은 느낌이다.

띠라며?

이게 무슨 띠야.

난 이 30센티 자를 들고 손바닥을 탁, 쳤다.

딱 손바닥 때리기 좋게 생겼다.

찰싹.

손바닥에 닿는 순간, 띠가 휘어지며 내 손을 휘감쌌다.

"...오."

이렇게 되는거구만.

띠를 당겨 풀어내자 다시 단단하고 길쭉한 형태로 돌아왔다.

그런데...

투사체 복제 띠라며?

투사체면 무슨 화살 뭐 그런걸 말하는 것일텐데.

어떻게 복제하는건데?

그냥 띠인데, 이건.

난 띠를 내 팔뚝에 찰싹 때려봤다.

팔뚝을 휘감싼다.

당기자 다시 펴지며 단단해진다.

재밌네.

찰싹, 찰싹.

팔뚝에 찰지게 감겨오는 깃띠를 좀 갖고 놀면서 생각해봤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이게 뭘 복제한다는거지?

투사체라고 할 만한 물건이 있으면 그걸로 좀 알아보겠는데, 지금 갖고 있는건 폰, 가방, 검 뿐이다.

...검을 던지면 그것도 일종의 투사체 아닌가?

찰싹, 찰싹.

팔뚝에 감고 놀다가 벗겨내곤, 검집을 때려봤다.

팍, 하고 검집에 휘감긴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유지 장갑도 그렇고, 참 불편하네 진짜.

좀 설명좀 해주지.

난 어깨를 으쓱하곤, 깃띠는 그냥 검집에 감아놓고 화장실을 나섰다.

몰라.

때가 되면 알겠지 뭐.

업적도 다 열었고, 전문화도 얻었다.

돌아가자.

화장실 근처는 깨끗하다.

아니, 깨끗하진 않다. 시체들이 널려있으니.

화장실에서 분수가, 그리고 그 근처 일대는 모조리 죽여놨다.

이제 할 일은, 원거리 무기를 구하는 것.

그리고, 투사체 복제 띠라는 이 깃띠의 사용법을 알아내는 거다.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칼질도 충분히 강력한데 원거리 무기를 굳이, 2점밖에 되지 않는 감각을 올려야 되는건가.

그냥 힘 100 찍을까.

"...어휴."

대형마트건물로 돌아오는, 편의점 앞 골목길.

거기 서서 슈퍼쪽을 바라봤다.

전봇대 근처엔...

없네.

염탐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는건가.

모를 놈들이다.

쏴아아.

비는 제법 내리고 있다.

비가 와서 쉬는건가?

편리한 놈들이군.

난 피식 웃고는, 비에 핏물을 씻어내려가며 느긋하게 건물로 돌아갔다.

10층.

이곳의 10층 풍경은 꽤나...

묘하다.

평소같아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왜냐하면, 문들이 죄다 활짝 열려있다.

사람 없는 방만 닫혀있을 뿐이다.

열려있는 문들 사이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려오고, 뭘 먹는 소리도 들려온다.

종말에 보기 힘든, 아니, 종말이라서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할까.

밖에는 사람 물어 뜯는 것들이 가득한데, 이곳 10층은 진정한 이웃사촌관계가 맺어지고 있다.

복도 끝 창가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날 보고 무서워했던 여자.

그리고, 부동산 일을 한다는 인라인 남자였다.

분위기가 꽤 나쁘지 않다.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피폐해 보였던 여자의 얼굴이 제법 밝아져 있다.

부동산 인라인도 웃는 얼굴이다.

약간 유혹하려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시기에 저런 광경이라니.

난 피식 웃고는 걸어갔다.

두 사람이 날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 온다.

"성훈씨, 오셨어요?"

"밖에 비 많이 오죠?"

나도 손을 들어주며 대답해줬다.

"네. 많이 오네요. 좀 씻겠습니다."

"저, 하숙집 할머니께서 된장찌개 정말 맛있게 끓여놓으셨거든요. 있다 좀 갖다드릴까요?"

된장찌개 좋지.

고맙다고 하려는데, 정은서네 방에서 수현이가 호다닥 걸어나왔다.

예은이도 같이 나온다.

"오빠다. 오빠 왔어?"

"다녀오셨어요, 성훈이 오빠."

소은이도 고개를 빼꼼 내민다.

난 웃고는 말했다.

"된장찌개 맛있다며? 씻고 나도 한그릇 줘라."

그렇게 말하곤 수현이네 집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수현이가 대답했다.

"알았어. 금방 갖다줄게."

슬리퍼를 끌고 찌익거리며 옆집으로 간다.

옆집도, 문이 활짝 열려있다.

굳이 노크 할 필요도,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다. 그냥 들어간다.

앞집에서 훈이 아재와 유부녀가 아기를 안고 나왔다. 그리곤 나를 향해 인사 해온다.

"오셨어요? 많이 힘드시죠."

"오셨습니까, 선생님. 식사 하셔야죠."

나도 목례하고는 대답해줬다.

"예. 좀 씻고 쉬겠습니다."

으음...

다들 문 활짝 열어놓고, 누가 오든 가든 신경도 안 쓴다.

철문을 달아놓은 단독 주택들임에도, 꼭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군다.

꽤나...

묘한 풍경이 됐네.

정은서는 괜찮은건가.

괜찮지 않겠지.

그래도, 주위에 이렇게 많은 이웃들이 있어서 멘탈이 지하를 뚫고 내려가진 않을 것같다.

좋은 사람들이야.

이튿날 아침, 마트에서 비상식량과 물을 챙기곤 마트를 나섰다.

활을 구하러 가기 위해서다.

구글맵에 따르면 여기서 대충 서너시간만 걸어가면 전통활 전문점이 나온다.

어떻게 되어 있을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구해봐야지.

수현이는 오늘도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밤마다 거의 뭐 술파티를 하는 모양이다.

이따금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려온걸 보면, 정은서는 빠르게 기운을 회복하고 있는 것같다.

와중에 수현아, 나 원거리 무기 하나 만들어줘라. 라는 말은 좀 하기 껄끄럽다.

수현이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신경쓰고 있을텐데, 안그래도 건물 보강 작업까지 해야되는 애한테 그런 부탁까지 할 순 없어.

잘 갔다오면 한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을거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어딘가에 숨어야만 한다면, 렙업하느라 자주 외박해왔으니 좀 늦어도 그리 신경쓰진 않겠지.

활. 그리고 화살.

또, 깃띠.

이놈의 깃띠.

도대체 어떻게 쓰는거냐고.

일단 검은 무효다.

밤새도록 검집에 감아놓고 있었는데 복제는 커녕, 정말 잘 세공된 장신구처럼 보일 지경이다.

제대로 된 투사체여야 되는 모양인데.

지하도쪽을 등지고 잠시 걷다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봤다.

바퀴벌레들이 신경쓰이는데.

셔터도 닫아놨고 꽤 튼튼하게 여기저기 보강해놨으니 당장 몰려온다고 무슨 일이 나진 않을거다.

얼른 갔다오자.

비는 아직 내린다.

간밤에 소나기라도 쏟아졌는지 군데군데 웅덩이가 피어있다.

거리는 한산했다.

그리고, 나도 한가하다.

빗소리가 내게서 비롯되는 소리들을 상당히 막아주고, 나 자신도 습관처럼 소리나지 않게 걷고 있어 주변 상가의 좀비들은 쉽사리 도발되지 않는다.

두어시간쯤 걷자 청계천이 나왔다.

벽을 따라 내려와 있는 수풀과 덩굴들.

곱게 자란 나무들과 널찍한 계단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 설치된 조명들.

높은 건물의 마천루 한가운데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이질적인, 하지만 풍경미가 느껴지는 개천이다.

묘하게 생긴 조형물 아래, 아직도 예쁘게 조명빛을 내고있는 인공폭포쪽 계단을 바라봤다.

청계천.

내려가서 걷는게 나을까, 도로를 걷는게 나을까.

옆으론 건물들, 시장골목과 온갖 편의점과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시장골목 쪽으로는 잘못 들어가면 좀비떼가 나올 것 같고. 청계천 안에도 뭐가 있긴 할 것 같고.

흠...

일단 내려가보자.

여차하면 가속 박고 썰어버린 다음 튀면 돼.

계단을 타고 내려가 청계천을 걸었다.

물줄기는 아직도 참 맑다.

개천을 거니는 이름모를 민물고기들도 아직 한가로워 보인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살짝 휘어지는 듯 하면서도 직선인 길. 그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계단과 공터가 있으니 혹시 모를 일이긴 하지만, 일단 눈으로 보이는 인기척은 없다.

"...흠."

약간 안심되는걸.

난 청계천을 걸으며, 위쪽으로 드러난 도로가 길과 작은 다리 따위들에 혹여 뭔가 나타나진 않을지 주시했다.

한참 걸어 다리밑.

새가 한마리 앉아 있었다.

목이 길고 시커멓다.

꽤나 크다.

품에 안으면 두툼하게 안길 듯한 크기다.

두루미?

새 같은건 잘 모르니 이름도 모르겠네.

새는 길고 날씬한 다리를 개천 한가운데에 넣어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새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도망 안 가네.

계속 걸었다.

새를 보면서.

새도 날 보고있다.

새의 고개가 슬쩍 내려간다.

음.

도망갈려고 저러나?

제법 가까워졌다.

다음 순간, 새가 날개를 폈다.

"끼이이이익!"

[자동 시전 : 가속]

"이--이----이------"

어?!

난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다.

새 뿐이다.

새!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주둥이에...

저건... 무슨 쌀알 같기도 하고...?

...송곳니?!

새는 물을 박차며 날아오르려는 모양새였다.

활짝 편 날개가 인상깊다.

날개를 펴니 더 커보이는데.

그런데 왜...

왜 송곳니가?

난 생각을 멈추고, 즉시 검을 뽑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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