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187)

시체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발치에 화살을 우르르 떨궈놨다.

여기까지 온거, 연습이나 좀 해보자.

자, 당기고!

놔!

틱.

테엥~

"아잇 씨발."

화살은 공중에서 지루박을 추더니 땅바닥에 떨어졌고, 시위는 맛탱이 간 소리를 내며 탭댄스를 춘다.

"돌겠네, 미친."

진짜로.

적중 스킬이 있어서 무조건 헤드샷인건 알겠다 이거야.

그런데 일단 헤드샷을 할려면 투사체를 씨발 쏠 수 있기는 해야 될 거 아니겠냐고.

공중에서 트위스트 추다가 땅바닥에 틱 떨어지게 해놓고 헤드샷 안된다고 스킬 탓을 할 순 없지.

일단 연습하자.

아예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하고 방에 도로 들어가 화살을 우르르 갖고 나왔다.

그러며 알게 됐는데, 화살 담은 나무 바구니 안에 화살통도 제법 꽂혀있었다.

화살집은 주로 단단한 가죽재질이었다.

화살을 꽂아봤더니 안쪽이 살을 딱 잡아주면서 뭔가 고정되는 느낌이 든다.

화살집을 뒤집어 봐도 화살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오. 좋은걸, 이거.

"아, 그렇지."

투사체 복제띠.

깃띠!

검집에서 깃띠를 풀어냈다.

연습도 연습인데 일단 화살을 확보할 수 있어야지. 그게 안되면 애초에 얘기가 안 된다.

이거 어떻게 쓰는거지?

화살을 하나 들어 감아봤다.

스르륵 풀린다.

깃띠가 아무리 동그랗게 말리는 놈이라고 해도, 화살처럼 얇은 것까지 말아서 붙잡을 만큼 말리진 않는다.

대충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붙여서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은 정도로 말린다.

이걸로 화살 감는건 무리고.

...그냥 둬볼까?

난 동그랗게 말아놓은 깃띠 안에 화살을 대충 넣어놓곤, 각궁을 다시 들었다.

자, 연습해보자.

틱, 테엥~

틱, 툭.

티틱.

젠장, 잘 안된다.

좀 쐈나 싶으면 공중제비를 돌면서 날라가질 않나.

될 때까지 해봐야지 뭐.

일단 자세를 잘 잡고.

검지와 중지로 화살깃과 대를 함께 잡고.

활에 대고 매기고.

두 손에 힘을 주고.

손가락으로 화살을 잘 받쳐서.

당긴다.

"스으읍."

활이 휘어지며 디귿자가 되었다.

과녁에 촉을 겨누고, 시위를 놓았다.

쒸웃!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과녁에 적중했다.

빨간데는 당연히 맞지 않았다.

과녁 끄트머리에 겨우 박혔다.

하지만...

"오오...씨발..."

쾌감...!

화살이 쏵 하고 날라가서 과녁에 팍 꽂히는게 이렇게나 기분 좋을 줄이야.

나는 감동하고 있다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화살을 들었다.

겨우 한 발 제대로 쐈을 뿐이다.

백 발을 쏘면, 백 발이 제대로 나가게 해야돼.

연습이다, 연습.

그렇게 한시간쯤 계속 활을 쐈다.

체력 업적 스킬 덕인지, 팔과 등이 제법 뜨뜻해졌지만 피로감은 그닥 올라오지 않았다.

게다가, 점점 더 잘 쏠 수 있게 되었다.

재밌다.

신나서 그렇게 활을 팍팍 쏘다가, 갑자기 깃띠가 생각나서 옆을 돌아봤다.

내 깃띠.

어떻게 됐지?

"............"

그대로다.

동그란 깃띠 안에 화살 한 발.

복제띠라고 했으니 분명히 저걸 복제해야 맞는데.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겠고...

난 갸웃하다가 깃띠를 펴들었다.

"...돌겠네."

그걸로 팔뚝을 찰싹 때렸다.

촥 하고 팔에 휘감긴다.

찰싹, 촥.

찰싹, 촥.

"...음."

감긴다...라...

검집에도 감겼었지.

나는 화살집을 바라봤다.

...저기에도 감기겠는데?

보기보다 두툼하고 단단한 화살집을 들어서, 깃띠를 찰싹 때려봤다.

촥.

제대로 감겼다.

팔찌 찬 것 같네.

화살은 아까 꽂아놓은 한 발.

난 화살집을 옆에 놔두곤 다시 활쏘기 연습에 들어갔다.

쒸잇! 팍!

공기 가르는 소리...!

아주 희미한, 작은 파공음이지만 분명히 들린다.

화살 한발 한발이 쾌감이다.

재밌어서 또 정신없이 활쏘며 놀았, 아니, 연습했다.

어느새 한시간이 또 지났다.

깜짝놀라 화살집을 바라봤다.

거기엔 화살 네발이 꽂혀있었다.

"...대박."

네발.

한시간에 세발...이란 소린가.

그럼...

하루에 몇발이지?

72발?

공짜 화살 72발!

"대박."

기쁘다.

기쁨이 솟아오른다.

난 화살집을 들고 살짝 기쁜 마음에 툭툭 두드렸다.

그런데, 잠깐.

이거... 잘 해봤자 열발 쯤 들어갈 것 같은데.

최대로 우겨넣어도 아마 스무발?

난 주위를 둘러봤다.

이렇게 납작한 놈 말고, 좀 화살 많이 들어가는 그런 화살집 없나?

있다.

동그란, 원통형 화살집.

꽉꽉 채워넣으면 아마 서른 몇발쯤은 들어가지 않을까?

바닥에 널려있는 화살들을 그러모아 원통형 화살집에 넣어봤다.

35발이다.

35발...

난 고개를 끄덕이곤 미소지었다.

나쁘지 않아.

화살을 혹시나 쟁여놓을 일이 생길지 모르니, 화살집을 몇개쯤 챙겨놓는게 좋겠어.

원통형 화살집 두 개.

그리고 납작한 화살집 하나.

이렇게 세 개를 챙겨서 화살을 꽉꽉 우겨넣었다.

복제가 된다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또 널려있으면 있는대로 챙기고 싶은게 인지상정인지라.

이로서 80발.

제법 여유롭게 쓰겠는걸?

어차피 쏘다보면 이것도 모자라겠지만, 눈 앞에 수북하게 꽂혀있는 화살집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흐뭇해진다.

들어보니 또 제법 묵직하다.

체력 업적 스킬 없었으면 이거 다 어떻게 들고 갈 뻔했냐.

난 화살통 세개를 옆에 놔두고, 남은 화살들을 모두 연습용으로 사용했다.

과녁에 꽂히고 완충재에 꽂히고 어떤 놈은 재미로 천장에 쏴보고 바닥에 쏴보고 혼자 별짓을 다 했다.

재밌는건, 짚으로 엮어놓은 전통과녁.

옆에 있던 쇠 양동이.

대걸레가 꽂혀있던걸 봐선 청소용구였던 것 같다.

저기에도 화살 세 발이 꽂혀있다.

제대로 관통했다.

앞뒤로, 깃까지.

머리통 뚫는건 아무 문제 없다.

모든 화살을 다 쏴버리고, 좀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무렵.

나는 과녁과 사방에 박아놓은 화살을 모두 회수해 나무통에 우르르 넣어놓고 활과 화살들을 챙겼다.

챙긴 활은 모두 다섯개.

누가 쓸지는 모르겠는데, 식구들 호신용으로 줘 놔도 꽤 쏠쏠하지 않겠나 싶다.

내가 쓸 화살 말고, 모든 화살을 싹 다 챙긴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복제가 된다지만, 나 쓸 것도 없는데 복제된 것까지 남들 쏘라고 주긴 나로서도 좀 그렇지.

양궁활, 각궁 따위의 활들을 어깨에 들쳐메고, 화살통에 끈을 달아 등에 멨다.

그리고 화살통 담은 나무통을 품에 안고 전통활 센터를 나섰다.

"오늘 쇼핑 잘 했네."

돈 한푼 안 주고 일용할 무기를 잔뜩 얻었다.

흡족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을 나서는데, 벌써 노을이 지고있다.

어, 노을 예쁘네.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하늘에 뭐가 보인다.

...비행기다.

경비행기 같은데.

꽤나 낮게 날고있네.

난 숨을 들이켰다.

아직...

아직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가 후두둑...

꼭, 경비행기가 하늘에서 오줌을 싸는 것같은...

이상한 광경이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먼 하늘을 바라봤다.

뭘 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종이?

"뭐하는거야..."

한참동안 바라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뭘 분명히 뿌리고 있긴 하다.

그런데 종이인지 과자인지, 무슨 구호품 같은건지 뭔지 이 거리에선 도저히 모르겠다.

노을 때문에 시커멓게 보이기도 하고.

...확인해보려 해도 너무 멀다.

저기까지 다녀오려면 적어도 하루이틀은 걸릴 것같다.

돌아가자.

청계천으로 내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죽은 새가 보인다.

...더럽네.

새를 쓱 지나쳐 좀 더 걸어갔다.

청계천 물, 꽤 맑다.

조그만 물고기들.

"............"

조그만... 물고기들.

난 뒤를 돌아봤다.

죽은 새.

새가 악체로 변했다 라면, 다른 짐승들도 분명히 악체화 되었을거다.

그렇게 보는게 타당하겠지.

난 물고기들을 서서 잠시 내려다봤다.

저 놈들도 악체들인가?

송사리인지 뭔지, 물고기 이름따위 내가 알 바 아닌 그런 물고기들이 물 속에서 요리조리 다니고 있다.

만약 이 놈들이 악체라면, 나에게 반응할거다.

나무통을 내려놓고 물가에 쭈그려 앉아봤다.

기껏해야 손가락 한두마디 크기의 하찮은 물고기들은 내가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던대로 빈둥빈둥 돌아다니기만 한다.

난 물가에 손을 쓱 대봤다.

이 놈들이 악체라면 아마도 이빨이 돋았을 것이다. 저 새처럼.

그리고 이 놈들이 악체라면, 나에게 반응하지 않을리 없다.

나를 물려고 들 것이다.

좀비들 처럼.

물에서 뛰어올라 내 손을 물려고 할까?

혹시나 물려도 상관없다.

이런 하찮은 놈은 잡아서 짜부러뜨리면 되고, 나는 악에 면역이다.

물가에 손을 슬슬 움직여 봐도 물고기들은 태연했다.

물 속에 손가락을 퐁, 넣어봤다.

물고기들이 요리조리 도망친다.

...도망친다고?

난 갸웃했다.

악체가 생물을 보고 도망친다는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아예 손을 담가봤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고기들은 내 손에서 떨어진 곳에서 지들 맘대로 빈둥거릴 뿐이다.

"............"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물살의 흐름이 느릿해졌다.

여유롭게 일렁이는게 마치 바람에 밀린 젤리같다.

물고기를 한마리 잡아 손바닥으로 떠올렸다.

주둥이를 자세히 봤는데...

하도 작아서 뭐가뭔지 모르겠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