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은 없는 것 같은데?
가속이 끝났다.
파닥파닥.
물고기는...
그냥 물고기가 할만한 짓을 하고 있다.
숨 못쉬겠다고 오도방정이다.
아무리 봐도 물고기는 뭐가 변한 것 같지 않다.
난 죽은 새와 물고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무슨 차이가 있는거지?
생물이라는 점에선 크기 말고는 차이가 없는...
...크기인가.
악체가 될 만한 크기가 있는건가.
파닥파닥.
물고기는 여전히 내 손 위에서 삼바를 추고있다.
손을 깨물려 하지도 않는다.
역시, 변하지 않았다.
난 물고기를 개울에 휙 던지곤 일어섰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어디에도 새가 없다.
...그러고 보니 종말이 터진 이후로...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듣지 못했어.
정확히 어떤 생물이 악체가 되었는지, 어떤 생물이 괜찮은건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하늘엔 더이상 새가 날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새 비가 그쳐 노을지는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한때는, 낮동안 수고했다며 이제 쉴 시간이라며 위로해주는 듯한 빛깔에 나른해지는 기분이 드는 풍경이었다.
그 기분좋은 풍경이, 이젠 피에 물든 것같이 보인다.
야생동물이 위험하다는건 상식적이다.
들개무리와 멧돼지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맹수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어쩌다 마주치는 고라니, 도심 속에 그렇게 흔했던 까치, 까마귀, 비둘기.
그런 동물들이 악체가 되었다면.
그래서 강남의 좀비웨이브처럼 어딘가에서 웨이브를 일으키고 있다면.
실로 보통 일이 아니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더이상 지저귀지 않게 되었거나, 혹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위험하다.
이걸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악체가 되어버린 좀비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와중에 겨우 평온을 되찾아 사람답게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이걸?
하숙집 할매.
자해흔이 있는 소은이.
훈이 아재네 마누라.
그리고 건물에 살고 있었던, 겁에 질려있던 여자.
심약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못 견딜텐데.
겨우 텃밭 꾸리며 생기를 되찾은 할매는, 텃밭을 가꾸는게 위험하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지도 모른다.
난 잠시 생각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건들을 집어들고 인공폭포쪽으로 걸어갔다.
믿고 말할만한 사람.
다른 사람들을 챙길 수 있는 사람.
훈이 아재... 겁쟁이이긴 하지만, 지켜야 할 가족이 있지.
수현이. 그리고 정은서.
둘 다 마음이 강인해.
이정도 한테만 살짝 귀뜸해 주는게 좋겠다.
모아놓고 폭탄선언을 하기보단, 은연중에 알리도록 하는게 충격이 덜할거다. 가능하면 아무 일 없는게 좋고.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건물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바깥공기를 쐬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메세지를 주는게 도움이 되나.
우리 사람들 사이에 비관적인 공기가 생겨 누가 자살이라도 한다면, 장담하는데, 연쇄자살로 이어질거다.
확신한다.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겨우 살아남았다 쳐도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건물에 갇힌 채 일생을 살아야 된다고 하면 그걸 누가 견딜 수 있을까.
아기는?
유치원도, 학교도, 친구들도 없다.
이 아기는 자라 철이 들 무렵부턴 주위에 있는 인간들이 인간이 아니며, 자기를 물어뜯어 죽이려 드는 놈들이라는 것 부터 배우게 될거다.
한글 대신, 칼을 쥐는 법과 도망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될테지.
그걸 엄마가 견딜 수 있을까?
다들 웃으며 지내곤 있어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생활이다.
아, 스트레스 쌓이네.
짜증이 살살 올라올려고 할 무렵, 멀리 우리 대형마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사람들이라고?
난 눈을 가늘게 뜨고 도로를 바라봤다.
비어있는 도로 끝 늘어선 차들.
그리고, 차와 차 사이에 가득한 사람들.
...대부분 남자들인 것 같은데?
뭔가 희미하게.
바람에 실려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치고 있는 것같다.
놈들은 마트를 향해 뭔가를 겨누고,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내는 중이었다.
마트의 2층, 3층 창문에서 우리쪽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셔터는 완전히 내려가 있다.
나도 모르게 내 걸음이 빨라진다.
걸어갈수록 놈들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온다.
놈들도 날 발견했다.
치켜들고 휘두르던 무언가를.
아마도 공구와 야구방망이가 아니었을까 싶은 물건들을 점차 거둔다.
그리고 우르르 모이며 자세를 잡는다.
...바퀴벌레들이다.
갑자기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입술 한쪽이 비틀리며 이빨이 드러난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이것저것 신경쓰여서 스트레스 받던 차에, 이 바퀴벌레 떼가 뜬금없이 나타나서 사람 속을 뒤집어놓냐.
"상태."
가속은 12회 쓸 수 있다.
해 떨어질 때까지 활질을 해놨더니 그새 어느정도 회복된 모양이다.
체력 100.
나쁘지 않아.
나는 그리 조급하지도, 그리 느긋하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었다.
두 눈으로 놈들을 노려보며, 도로 한 가운데를 걸어갔다.
외치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뭐라고 서로 소리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멀어서 웅엉대는 소리밖에 못 들었다.
하지만, 뭔가 좆같은 개소릴 저 바퀴벌레 새끼들이 씨부렸고, 우리쪽 여자들이 거기에 대응했던 것일거다.
아닐 리가 없지.
바퀴벌레 놈들이 뭔가 부산해졌다.
놈들 가운데서 누가 걸어나온다.
덩치가 꽤 좋은데.
내가 가슴을 슬쩍 찔렀던 그 바퀴벌레.
두목 바퀴벌레다.
놈이 손짓한다.
두 놈이 두터운 나무판을 들고 나온다.
둥그런 발이 네 개 달렸는데.
바둑판?
아마도 바둑판 같다.
다른 놈들이 어디 낚시터에서나 쓸 만한 간이 의자를 하나씩 들고 나온다.
그걸 사거리 한복판에 내려놓아, 간단한 테이블을 만들어 놓는다.
도로 한가운데서 한가롭게 바둑 한 판 두자는 걸로 보일 지경이다.
두목 바퀴벌레가 간이 의자에 앉는다.
의도는 알겠다.
와서 앉아라, 이거지.
나는 놈들을 향해 걸었다.
대형 마트가 가까워진다.
2층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다.
인라인 여자였다.
저 여자, 이름이 뭐였지?
"성훈씨! 성훈씨!"
이제 말소리가 들린다.
난 위를 올려다봤다.
여자가 소리쳤다.
"저 새끼들이 제 남친을! 제 남친이, 태영이가 저기 잡혀있어요!"
...잡혔다고?
바퀴벌레들을 바라봤다.
제기랄, 놈팽이들이 너무 많아서 못 알아보겠다.
어디 있다는거지?
"성훈씨, 제발 태영이 좀 구해주세요! 제발요!"
울먹이며 외친다.
절규에 가깝다.
"성훈씨! 준혁씨도 저기 잡혀있어요!"
준혁이는 또 누구야.
...아.
인라인 부동산 업자.
분명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위를 살짝 올려다보니, 부동산 업자와 창가에 둘이 서서 분위기 좋았던 여자, 마트 10층에 살고 있었던 여자가 창가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성훈씨! 준혁, 준혁씨가!"
나는 여자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나는 계속 걸었다.
눈으로는 태영이와 준혁이라는 남자들을 찾으며.
...찾았다.
두목 바퀴벌레 뒤쪽.
어디 깡패처럼 생긴, 덩치 큰 바퀴벌레들한테 팔이 붙잡혀 있다.
뒤로 결박당한건가.
...또 처맞았네.
코에서,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다.
부동산 업자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네.
머리에서도 피를 흘리는걸 보면, 꽤나 저항했던 모양이다.
왜?
어쩌다가 바퀴벌레들에게 붙잡혔지?
나는 걸어가며 놈들 주위를 둘러봤다.
...차를 뜯어내고 있었구나.
알루미늄 판을 구하려다가 갑자기 몰려든 놈들을 피하지 못한거다.
난 신형 소나타 보닛 중간쯤에 박혀있는 절단기와, 주위에 널려있는 공구들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이 다 든다.
속도 끓어 오른다.
표정관리가 안 된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놈들 앞에 도착했다.
발치에 간이 의자를 두고, 나는 두목 바퀴벌레를 내려다봤다.
두목 바퀴벌레도 나를 보고있다.
표정 참 의기양양하네.
주위를 보니 대충 백여명쯤이다.
그동안 잠잠했던게 이것 때문이었나.
멀리서 병력을 모아왔다, 이거지.
별의 별 놈들이 다 있다.
덩치 큰 놈, 작은 놈, 마른 놈에 돼지도 있고, 안경잡이 애송이에 흰머리 성성한 장년층 할저씨에.
하나같이 표정은 사납다.
화난 얼굴은 아니다.
저건, 결핍된 얼굴이다.
풍족하게 가진 사람들을 향한 증오심이다.
"어이, 앉아라 씨발놈아. 어린놈의 새끼가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서갖고 뭐 하자는거야? 내가 너같은 씨발새끼를 올려다 봐야 되겠냐?"
두목 바퀴벌레가 씨부린다.
난 들고있던 활과 화살통을 내려놨다.
두목 바퀴벌레가 웃으며 말했다.
"어, 나 줄려고 갖고왔냐? 씨발놈아? 근데 어쩌냐? 그거 갖고는 안 되겠는데?"
손가락을 까딱 내린다.
"허리에 검도 벗어, 좆밥새끼야."
난 피식 웃었다.
두목 바퀴벌레가 입술을 일그러뜨린다.
"웃어? 개좆밥새끼가 뒤지고싶냐? 웃어?"
난 허리의 리프팅벨트를 풀었다.
달칵.
"성훈씨! 하지 마! 벗지 마!"
덩치가 주먹을 휘두른다.
준혁이라는 남자의 안면에 제대로 꽂혔다.
퍼억!
"닥쳐라, 이 씹새끼야!"
"컥!"
나는 몸을 멈췄다.
천천히 눈을 들어 준혁을 때린 놈을 바라봤다.
...팔에 좆같은 문신있네.
...이래서 씨발 문신충 극혐이라고.
하아...
난 숨을 들이키곤 천천히 말했다.
"또 손대면, 너 죽는다."
"어? 뭐? 씨발놈아 쳐울지말고 말해라. 안 들린다."
퍼억!
준혁의 머리가 홱 돌아간다.
문신충 돼지새끼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과장되게 갸웃했다.
"뭐라고? 어? 뭐라고 했냐? 어?"
퍽, 퍼억!
"커흑! 컥!"
리프팅 벨트를 쥔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간다.
콧잔등이 슬슬 일그러진다.
두목 바퀴벌레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문신돼지가 손을 멈췄다.
두목 바퀴벌레가 말했다.
"앉아, 좆밥새끼야."
난 간이의자에 앉았다.
두목 바퀴벌레가 말했다.
"검."
난 바둑판 위에 리프팅 벨트를 얹었다.
처르륵.
두목 바퀴벌레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