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187)

"같잖은 검쪼가리 하나 들고 설치땐 좋았지? 막상 사람들 존나 모여있으니 개쫄았네? 생각 잘 했다. 어차피 이거 들어도 넌 맞아죽어. 몇명이나 모인줄 아냐? 너 하나때문에? 어?!"

손이 번쩍 올라온다.

그리곤, 멈춘다.

두목 바퀴벌레는 참는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곤 천천히 손을 내렸다.

"니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지금 당장 저 문 열라고 해. 건물은 우리가 접수한다. 여자들도 우리한테 넘겨. 그럼 목숨은 살려준다. 알겠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뒤에 잡혀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나는 손짓했다.

"이리 와요. 이거 갖고 올라가."

나는 활과 화살 담은 통을 가리켰다.

"많이 갖고 왔어. 사람들 나눠줘요."

붙잡혀 있는 태영과 준혁은 숨을 몰아쉴 뿐 대답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두 사람, 너무 많이 맞았다.

두목 바퀴벌레가 어이가 없는 얼굴을 짓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 새끼가..."

손짓을 한다.

남자들이 우르르 걸어, 두목 바퀴벌레와 나 사이를 둘러싸고 섰다.

언듯 보면, 대단한 대국이 벌어지고 있어서 구경꾼들이 몰려있는 것같다.

두목 바퀴벌레와 나를 중심에 두고 남자들이 둘러싸든 말든, 나는 말했다.

"그냥 오라고. 괜찮아."

태영과 준혁이 숨을 헉헉 몰아쉬며 나를 본다.

눈 속엔 불안감이 들어있다.

"하."

두목 바퀴벌레가 어이없이 웃었다.

"이 씨발놈이 지 처지도 모르고 멋부리네?"

주위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비웃음이다.

두목 바퀴벌레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어이. 나 봐. 나 보라고."

나는 두목 바퀴벌레를 바라봤다.

짧은, 그러나 제멋대로 자란 머리.

거뭇거뭇 올라 온 수염.

못본 새에 꽤 험해졌구만.

제법 길거리에서 굴렀다는 뜻이겠지.

동료들 패죽이면서.

두목 바퀴벌레가 말했다.

"사람 말이 좆으로 들리냐? 어?!"

손이 홱 올라온다.

[자동 시전 : 가속]

느릿하다.

손이 올라온다.

와중에도 나는 두목 바퀴벌레를 바라보고 있다.

눈에 띄면 죽여버릴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닥치니, 너무 같잖고 하찮아서 맥이 탁 풀려버렸다.

나는 일단 좀 화가 나야 되겠다.

가속이 풀렸다.

짜악!

내 고개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

내 눈은 여전히 두목 바퀴벌레를 보고있다.

하지만, 뺨에서 느낌은 올라온다.

그래...

이거야...

속이... 뒤집어진다.

두목 바퀴벌레가 말했다.

"좆같은 새-"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터억.

나는 두 손으로 검 두자루를 붙잡았다.

일어서며 팔을 옆으로 밀었다.

검이 빠졌다.

스르릉.

두목 바퀴벌레를 지나쳐 놈의 뒤로 걸어갔다.

놈들은 바짝 붙어있어 한 걸음만 걸어도 코앞이다.

나는 검을 찔렀다.

푸욱, 하고 모가지에 검날이 들어간다.

검의 왼쪽으론, 준혁을 때린 돼지.

문신돼지를 보니 이가 갈린다.

으드득.

나는 검을 오른쪽으로 힘껏 베었다.

살과 뼈가 썰리는 느낌이 손으로, 팔로 올라온다.

등에 힘주어, 몸을 비튼다.

단숨에 두놈의 목과 가슴을 썰었다.

가속 타이밍은 완전히 숙지했다.

언제 끝나는지는 이제 본능적으로 알 정도다.

나는 가속을 유지시키며, 계속 검을 휘둘렀다.

살과 뼈가 옷과 함께 예리하게 잘려나간다.

둥글게 선 놈들을 차례로 베어나간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폭죽이 터진 것마냥 핏방울이 날아오르고 있다.

써걱, 썩!

팔을, 목을, 가슴을, 배를, 그리고 머리를 끊임없이 썰었다.

그리고, 태영을 붙잡고 있는 놈까지 도달했다.

이 씹새끼도 문신돼지다.

미친씨발.

나는 검을 내밀어 놈의 목에 갖다댔다.

그리고, 팔을 오른쪽으로 펼쳤다.

목이, 뼈까지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이 놈은 죽었다.

아직 모를 뿐이다.

나는 바둑판으로 다시 걸어왔다.

그리고 두목 바퀴벌레를 내려다봤다.

내 뺨을 때렸던 손.

아직 허공에 올라와 있다.

나는 놈의 손등에 칼을 갖다댔다.

세로가 아닌, 가로로.

찔러넣자, 손등의 뼈가 검날에 갈리는 느낌이 올라온다.

가속이 끝났다.

나는 검을 바둑판에 힘껏 꽂아넣었다.

쾅!

동시에, 사방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목이 아직 남은 놈들이 단말마를 내지른다.

등줄기가 섬칫한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촤르륵, 촤악!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그리고 간과 창자가 바닥에 우르르 쏟아졌다.

절단된 신체부위가 바닥에 흐트러져 내린다.

두목 바퀴벌레가 온 몸에, 얼굴에 피를 뒤집어 썼다.

얼굴이 굳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이 놈은 모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이 파르르 떨린다.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끄아아아악!"

두목 바퀴벌레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주위를 둘러싼 놈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두목 바퀴벌레는 자기 손목을 붙잡고 절규했다. 바들바들 떨며 온 몸으로 비명을 지른다.

나는 검을 놓았다.

바둑판에 깊숙이 박혔다.

이 검은, 내가 아니면 못 뺀다.

나는 눈을 들었다.

피에 흠뻑 젖어, 머리칼에서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린다.

비명지르는 두목 바퀴벌레를 지나, 준혁을 붙잡고 있는 문신돼지에게로 걸어갔다.

문신돼지의 눈이 커져있다.

입이 반쯤 벌어져 있다.

턱살을 부들부들 떨고있다.

나는 말했다.

"...손."

문신돼지는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같다.

그러나 이내 깨닫고는 소스라치며 손을 놓는다.

준혁과 태영은 풀려났다.

나는 검을 들었다.

문신 돼지가 흠칫하며 물러선다.

이미 천마리가 넘는 머리를 뚫어왔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내가 찌르겠다고 노린걸 놓치는 일은 없다.

놈이 한 걸음 물러선다.

그만큼 한 걸음 다가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러나 신속하게.

놈의 목을 뚫었다.

"컥!"

검을 뺐다.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온다.

문신 돼지가 목을 붙잡고 무릎을 꿇는다.

바닥에 널려있던 창자가 으깨진다.

"컭! 퀡, 크륽!"

나는 말했다.

"...손 대면 죽는다고 했다."

목을 뚫기만 했다.

피가 쏟아져 나온다.

피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

숨쉬려 노력할수록 피가 폐로 들어간다.

이 놈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자기 피에 빠져 질식해 죽는다.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주위를 바라봤다.

한 차례 터졌던 비명소리는 사그라들었다.

오래된 바퀴벌레들.

새로 영입된 바퀴벌레들.

바퀴벌레들의 눈에 경악과 공포가 어려있다.

나는 놈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봤다.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나는 몸을 돌려 바둑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간이의자에 앉았다.

두목 바퀴벌레가 자기 손목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끄아아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닥쳐."

나는 검을 뒤집어 놈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빠악!

검등의 뭉툭한 부분.

덕분에 놈은 머리가 잘려나가지 않았다.

"컥!"

두목 바퀴벌레의 비명이 멎었다.

나는 말했다.

"도망치는 놈은 죽는다."

바퀴벌레들은 얼어붙은건지, 공황에 빠진건지, 아니면 내 말을 이해한건지 그 자리에 못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태영과 준혁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에 떠오른 것.

경악이다.

한 순간에 휘몰아쳐, 거의 스무명에 가까운 인원이 사지절단되어 뒹굴었다.

이 사람들도, 바퀴벌레들도 어디서 본 적도 없는 광경일 것이다.

나는 말했다.

"와서 이거 가져가요. 사람들 나눠줘."

그러며 활과 화살 담은 나무통을 가리켰다.

태영과 준혁의 얼굴에 깃들었던 경악이 빠르게 사라졌다.

"네, 예. 알겠습니다."

"네, 성훈씨."

많이 맞았는데.

괜찮은가.

또 뇌출혈인지 뇌진탕인지로 그런걸 겪는건 아니겠지.

두 사람이 걸어온다.

비틀대진 않는다.

얼굴은 상했어도, 머리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네.

두 사람이 나무상자를 같이 들어올렸다.

끙, 하는걸 보니 제법 무거운 모양이다.

바퀴벌레들이 주춤주춤 길을 터준다.

그러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두 사람의 등에서 시선을 돌려 바퀴벌레들을 하나 하나 노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두목 바퀴벌레.

손이 꿰뚫린 손목을 붙잡고 바들바들 떨고있다.

헉헉대며 식은땀을 흘린다.

아니, 눈물일지도 모른다.

핏물과 뒤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는 말했다.

"이래서 그 때도 피를 뒤집어 쓰고 있었던거다. 당신은 이제 알았겠지만."

두목 바퀴벌레가 헉헉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창자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다.

베인 창자에서 음식물과 대변 따위가 피와 뒤섞여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다.

두목 바퀴벌레는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동료를 패죽이긴 했어도, 이만큼 잔혹한 광경을 마주한 일은 없는거다.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도 않다.

상관없다.

나는 말했다.

"너희들이 우릴 염탐하는건 알고있었어. 내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느라 그냥 놔뒀지."

렙업하느라 바빴지.

두목 바퀴벌레가 천천히 눈을 든다.

아까의 기세는 오간데 없다.

나는 말했다.

"그렇게 놔뒀더니 그동안 사람들 좀 모은 모양인데. 뒤에 사람 좀 있다고 기세등등해졌네. 바퀴벌레가."

놈은 말없이 헉헉대고 있다.

내 눈을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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