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187)

무조건 헤드샷.

어떻게 되는건가, 한 번 볼까.

난 사선으로 서서 활을 올려들었다.

그리고 화살 매긴 시위를 당겼다.

다음 순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흠칫 놀라 팔을 내렸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잠깐.

다시.

활을 들어 전방을 노리고,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내 눈 앞에, 활 든 손 너머에.

둥근 원이 생겨났다.

작은 접시 크기다.

투명하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둥근 원 안에 좀비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다.

그 중 한 놈이 은은한 붉은 빛을 내고있었다.

그 놈은, 정확히 내 화살촉이 가리킨 방향에 위치해 있다.

"허후..."

팔을 다시 내렸다.

투명한 원이 사라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좀비들 중 그 어떤 놈도 붉은 빛을 띄지 않는다.

"...이렇게 되는거구만..."

붉은 빛을 띄는 놈이 내 타겟인거다.

화살이 향한 방향에 있는 놈.

내가 투사체로 노리는 놈.

그 놈을 정확히 포착하는거다.

난 숨을 들이키고 앞을 바라봤다.

상태창을 얻고 나서 여러가지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지만, 겪으면 겪을수록 놀라게 되는 것 또한 상태창이다.

이것도 적응하자.

나는 활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시위를 당겼다.

원형이 나타났다.

화살촉이 노리는 방향.

좀비 붉은 빛을 낸다.

난 숨을 들이켰다.

"스으읍."

손을 놓았다.

핏.

활이 급격히 펼쳐지며 시위가 화살을 밀어냈다.

희미한 파공음.

화살은 쏜살이 되어 날아갔다.

아니다.

힘이 부족하다.

더 위로 올려 쐈어야...

나는 눈을 의심했다.

장력이 부족해 내려가던 화살이 방향을 바꾸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제비처럼 호선을 그리며 위로 솟아오른 화살은, 그대로 좀비의 머리를 관통했다.

좀비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흐느적거리며 엎어졌다.

"...미친."

이게 가능한 일인가?

화살이 도중에 방향을 바꾸다니.

난 손에 든 활을 바라봤다.

반드시 명중한다.

...이런 거였구나.

웃음이 올라온다.

잠시 웃다가 등에서 화살을 꺼냈다.

...재밌는데, 이거?

활에 걸어 매기고는 시위를 당긴다.

활이 디귿자로 꺾였다.

투명한 원형.

그 안에서 붉은 빛을 띄는 좀비.

나는 시위를 놓았다.

쒸우웃-

그 순간, 좀비 걸음을 옮겼다.

그러며 머리를 돌린다.

맙소사.

원래 있던 자리에서 한참 벗어났어.

화살은 그러나 목표가 움직이길 예측이라도 한 듯, 수면을 가르며 항해하는 모터보트처럼 기묘하게 움직이며 인간좀비를 따라갔다.

뒤에 서서 보면 마치 둥글게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같다.

화살이 머리를 관통했다.

"...하하."

미치겠다.

난 무릎을 잡고 웃었다.

뭐 이런게 다 있냐.

도저히 맞을 수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고.

저렇게 막 움직여도 되는건가?

화살이?

언젠가 했던 게임이 생각났다.

아마 타이탄폴이었던가? 2탄이었나?

스마트피스톨이라는 무기가 있어서 탄환이 지 멋대로 휘어대며 목표물에 적중했었지.

백발백중으로.

이게 그거랑 다를게 뭐냐.

쏘면 무조건 적중이라니.

야생 사냥꾼이라고?

미친 전문화가 다 있냐.

난 잠시 웃다가 몸을 일으켰다.

자아, 화살 하나 남았다.

마저 쏘자.

남은 활을 쏴서 한 놈을 쓰러뜨리곤, 상태창을 켰다.

...어?

힘이 소모되지 않았어.

악체를 처치하면 항상 소모되었던 힘이...

...근접공격으로만 소모되는 거였나.

...잠깐.

그렇다면.

감각이 다 떨어지면, 원거리 무기로는 악체를 죽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힘은 근접공격 킬카운트.

감각은 원거리 킬카운트.

...그런 거였나.

"...하."

그럼 그렇지.

혹시나 했다.

젠장.

상태창이 어떤 놈인데, 제약이 없을 수 없지.

갑자기 궁금증이 올라온다.

...힘.

스텟을 올려 킬카운트는 확보해왔다.

그러면, 힘과 관련된 스킬은 뭐지?

감각도 스텟 그 자체는 킬카운트다.

하지만 스킬을 입혀놨어.

힘도 반드시 킬카운트에 입혀놓은 스킬이 있을거다.

남은 전문화.

공간 탐색자와 그림자 전사.

...그림자 전사.

밋치겠네.

궁금해!

다음번엔 그림자 전사를 고르자.

궁금해서 못 참겠다.

난 고개를 들었다.

어쨋든, 원거리 테스트는 성공적이다.

야생 사냥꾼 스킬, 적중.

마음에 든다.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

앞으론 화살을 좀 제법 갖고 다녀도 괜찮을 것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슈르릉-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띄고 걸었다.

웃는 얼굴로, 나는 놈들을 향해 외쳤다.

"호크아이!"

크롸라러럭!

좀비들의 대가리가 홰래랙 돌아간다.

카아아아악!

놈들이 달려온다.

서로 붙잡고, 엉기며, 짓밟고, 뛰어넘어 인간의 파도를 만들어 낸다.

나는 수백마리의 인간 파도를 향해 걸어가며 미소지었다.

단숨에 휘몰아쳐 지하도 입구에 섰다.

[레벨이 2 올랐습니다.]

"하아, 후우, 하아."

숨차다, 젠장.

가속 하나 남았네.

우르르릉-

지진 난 것 같다.

시체가 된 놈들과, 거기에 부딪혀 엎어지는 놈들이 동시에 무너지며 지하도가 진동했다.

난 턱에 흐르는 피와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곤 검을 떨쳤다.

촤악!

피 뿌리는 소리, 꽤 기분 좋단 말이야.

슈르릉- 착.

검을 집어넣고 돌아가는데, 멀리서 뭔가 부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다. 몹시.

뭐지?

고개를 들어보니 밤하늘 너머에 뭔가가 날고 있었다.

경비행기다.

어제도 봤던 것 같은데?

난 잠시 서서 새끼손톱만큼 작은 경비행기가 느긋하게 날아가는걸 바라봤다.

멀리 가로등 빛 사이로 먼지같은게 언듯거리며 보이는걸 보니 또 뭔가 뿌리고 있나보다.

...묘한 느낌이 든다.

우리 이외에 살아있는 사람은 있을거다.

당장 바퀴벌레도 있는 마당에 없을 리가 없다.

저게 하늘을 날고 있다는건, 어딘가에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누구지?

똥내, 아니, 한태에겐 꽤나 용한 재주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 그룹 인원중 유일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제빵능력이었다.

마트에 진열된 빵은 이미 곰팡이가 가득해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트에 널려있는게 밀가루, 버터, 설탕, 소금, 소포장된 이스트 따위였고, 만들 줄만 알면 재료는 넘쳐났다.

만들줄 아는 사람이 없다 뿐이지.

"마트에 잼 많은데 빵은 왜 안 만들어요...?"

한태가 꺼낸 말 몇마디가 시작이었다.

서로 빵을 만들줄 아냐 모르냐로 살짝 주고받고는, 한태가 팔을 걷어부치고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녀석이 자기가 만든 식빵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한덩이 두덩이씩 나눠주는 바람에 갑자기 빵 풍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 아침식사는 햄에그 토스트와 딸기잼이다.

예은이와 수현이가 부엌에 나란히 서서 뭔가 재잘대며 토스트를 만드는 광경은 꽤나 흡족스러웠다.

또 덮치게 만드는 풍경도 좋고, 햄에그 토스트도 맛있었지만, 대화는 그렇지 못했다.

"혹시."

토스트를 삼키곤 말했다.

수현이와 예은이가 나를 바라본다.

"요즘 새 본적 없지."

"새?"

수현이가 갸웃하더니 두 손을 파닥거렸다.

끄덕여 줬더니 둘이 서로 쳐다본다.

난 수현이와 예은이가 고개를 젓는걸 보고는 말했다.

"혹시 보이면 조심해."

두 여자의 표정이 변했다.

"...왜?"

어떻게 설명할지 잠시 생각해보곤 나는 말을 꺼냈다. 청계천에서 보고 겪은 것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또 단순하게.

예은이가 긴장하며 말했다.

"그...그럼 우리 텃밭은 어떻게 해요...?"

"내 생각인데, 아마 텃밭은 괜찮을거야."

난 토스트를 베어물고는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는 날아다니는 새를 난 본적이 없거든. 너희도 본적 없지?"

수현이와 예은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얼굴엔 걱정이 담겨있다.

난 말했다.

"새가 다 어디로 간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하늘에는 없어. 적어도 요 몇주간 내가 밖에 다니면서 본 걸로는 말야. 문제는 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저렇게 됐을 수 있다는거지."

"그럼 걔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모르지. 아마 어디 숲이나 그런데 있지 않을까?"

난 여자들 얼굴을 보곤 피식 웃었다.

"실은 말할지 말지 고민했었거든. 지금처럼 걱정할까봐. 내 생각엔 좀비들이 저렇게 모여서 좀비 웨이브를 만들고 있으니, 진짜 짐승들도 어디서 짐승 웨이브 같은걸 만들고 있지 않겠나 싶다."

"...아..."

여자들이 소리를 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했다.

"그러면, 만약 놈들이 어디서 나타나면 우리가 모를 수가 없어. 그렇지? 동물들이 가득 나타나는데 어떻게 못 볼 수 있겠냐. 그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난 물티슈로 입술을 닦곤 일어섰다.

"이 건물 열심히 보강해서 튼튼하게 만들어 두는거지. 나도 건물 주위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뭐가 오든 대비할 수 있게."

수현이와 예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네, 오빠."

난 미소짓고는 무기를 무장했다.

"남자들 닥달해서 일 시켜. 빡세게. 난 또 갔다올게."

수현이와 예은이가 같이 일어났다.

"조심해요."

"다치지 말구요."

난 웃고는 수현이와 예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다녀올게."

그 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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