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 건물로 다가가자 2층에서 보초서던 태영이 셔터를 열어 나를 맞아주었다.
"오셨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성훈씨."
...으음.
전보다 더 극존칭이 된 것 같은데.
"네. 식사는 하셨어요?"
"아, 네. 김치찌개 먹었습니다. 성훈씨도 식사 하셔야죠."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먹어야죠."
건물로 들어서니 뭐가 패래랙, 쒸잇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멈춰서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마트 안이다.
몇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
활을 들고있다.
연습하고 있구나.
드르르륵-
셔터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난 마트 쪽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피 발자국이 생기니 먼저 좀 씻는게 좋긴 하겠는데, 그래도 가서 보고싶단 말이지.
마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이 나를 돌아봤다.
수현이, 예은이, 정은서, 소은이, 훈이 아재, 준혁, 그리고 한태.
일곱명이다.
"어, 오빠. 왔어?"
수현이와 예은이가 쪼르르 다가온다.
난 웃어주곤 마트 너머를 바라봤다.
3층 창고에서 갖고 온건지, 라면박스를 두툼하게 테이프로 발라다가 앞에 베개를 대놨다.
베개 같은거야 마트 침구류 섹션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이 기회에 과녁으로 활용한 모양이다.
난 웃고는 말했다.
"연습하고 있었네?"
"응. 재밌더라! 근데 난 아직 한 발도 못 맞췄어."
"저도 해봤는데 과녁 근처에도 못 가더라구요. 진짜 힘들어요."
수현이는 제법 활을 당길 수 있었나보다.
예은이는 으음, 활을 당기기엔 힘이...
"괜찮아. 연습하면 돼."
준혁과 한태가 각자 자리를 잡고 활을 들고있다.
두명씩 쏘면서 연습했나보다.
정은서와 훈이 아재도 활을 들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난 사람들한테 한번씩 목례해주곤 말했다.
"잠깐 보러 온 겁니다. 연습 계속 하세요."
"에, 선생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답례로 목례해온다.
훈이 아재.
저 아재, 겁에 질려 벌벌 떨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 쪽에서 생활하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것같다.
그렇지.
자기 가족은 자기 손으로 지켜야지.
난 수현이와 예은이도 한번씩 돌아보며 말했다.
"연습 계속 해. 난 올라가서 좀 씻을게."
"오빠, 오빠."
돌아서 걸어가는데 예은이 날 불렀다.
"음?"
"오빠, 한태가 아까 오후에 바게트 구웠거든요. 오늘 바게트에 크림치즈 파스타 해드릴까요?"
"좋지. 너희는 저녁 먹었어?"
수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 오면 같이 먹을려구 아직 안 먹었어."
난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수현이 활을 훈이 아재에게 건네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둘이서 헤헤거리며 날 따라온다.
크림치즈 파스타라.
파스타 오랜만에 먹겠네.
* * *
"크윽...!"
허리를 힘껏 밀어넣으며 예은의 안에 가득 쌌다.
예은이는 나를 꽉 껴안고 신음을 흘렸다.
절정이 왔었는지 몸이 파르르 떨려온다.
난 즉시 허리를 빼고는, 옆에 누운 수현의 무릎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단단한 물건을 대고, 허리를 밀어넣었다.
따뜻한 감촉이 미끈하게 올라온다.
"앙읏."
수현이 나를 껴안았다.
풍만한 젖이 내 품을 기쁘게 해준다.
샤워하며 수현의 안에, 그리고 방금 예은에게 쌌다.
기분 좋았어.
난 수현이를 껴안고 천천히 허리를 왕복하며 사정의 여운을 즐겼다.
수현이도 한참이나 애무당한지라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예은이가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걸어갔다. 살짝 비틀대는걸 보니 어딘가 즐거운 기분이 든다.
"파스타 안 불었을라나..."
꺼내서 올리브오일 뿌려놓은 것도 아니고 면수 가득한 냄비에 그대로 둔 채 거의 한시간을 서로 물고빨고 했으니 안 불었을 리가 없다.
난 웃고는 말했다.
"좀 불었어도 괜찮아."
예은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나를 돌아봤다.
"우동이 돼버렸어요. 어떡하죠?"
으음.
"크림치즈 우동, 맛있을 것 같은데?"
내 아래에 깔려있던 수현이.
허리를 밀어넣을 때마다 희미하게 신음을 흘리며 나를 즐기던 수현이가 그 말에 풋 하고 웃었다.
예은이도 킥 하고 웃는다.
별 재미도 없는 말에 웃음이 나온다.
우리 셋은 그러고 잠시 실없이 웃었다.
그래, 뭐.
저녁식사는 크림치즈 우동이다.
그리고, 그날 밤.
예은이의 방.
넉넉한 크기의 킹사이즈 침대에 셋이서 누워 잠이 들려는 차였다.
누가 문을 두드렸다.
조심스러운 노크였다.
"저, 선생님. 주무십니까? 선생님."
우리 셋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우응... 누구야..."
수현이가 볼멘소리를 냈다.
난 여자들을 도로 눕히곤 침대에서 내려와 팬티를 입었다.
선생님이라니.
날 그렇게 부르는건 훈이 아재 뿐이잖아.
난 손바닥으로 눈가를 쓸어내곤 문을 열었다.
과연 훈이 아재가 서 있었다.
"예. 무슨 일이죠?"
"성훈씨. 밖에 누가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자들이 누워있다 일어난거다.
난 갸웃했다.
"나를요?"
훈이 아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성훈씨라고 해야하나, 성훈씨가 판단하셔야 될 것 같아서요."
...판단?
뭔 소린지.
난 머리를 긁적으며 하품을 하고는, 티셔츠와 반바지를 집어들어 대충 입었다.
수현이와 예은이가 나를 보고있다.
"오빠. 혹시 그 사람들 또 온거 아니야?"
"우리도 내려갈까요?"
난 고개를 저었다.
"별 일 아닐거야. 어서 자."
집을 나서니 훈이 아재 뒤에 준혁과 태영이 서 있었다.
활을 들고.
으음.
뭔가 좀 대비를 해야 되겠다고 여긴 모양인데.
나도 검 들고 나가야 되나?
...아니야.
활 든 사람들 있으니 뭐, 여차하면 받아다 죄다 쏴버리면 되지.
난 슬리퍼를 지익 지익 끌며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따라온다.
젠장, 하품 나오네.
난 하품을 한 번 하곤 물었다.
"뭔데 그래요? 누가 왔다는 겁니까? 바퀴벌레들이 또 왔어요?"
남자들은 서로 돌아보곤 약간 애매하게 갸웃거렸다.
"그것이... 저 쪽 사람들은 맞는데요."
표정을 보니 딱히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는 얼굴이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가봅시다, 일단."
"네."
"예, 선생님."
1층으로 가보니 정은서가 보초를 서고있었다.
"성훈씨."
"무슨 일이죠?"
정은서가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쪽 그룹 사람들인데요, 아무래도 이탈자 같아요."
내 눈이 가늘어진다.
난 걸어가며, 갸웃하며 물었다.
"이탈자?"
"네. 도망나왔다는데, 여자 열명에 남자 세명이예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다른 목적이 있는건지 모르니까, 일단 문은 못 열어주고 있었어요. 성훈씨한테 알리는게 먼저인것 같아서요."
...도망나왔다라?
"무기는?"
"없어요. 전부 빈 손이예요."
셔터 앞에 도착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한 번 보죠. 뭐하러 온건지."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곤 셔터 양쪽에 꽂혀있는 쇠파이프를 빼냈다.
그리고, 셔터를 올렸다.
드르르륵-
셔터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나타났다.
여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남자들.
초췌하다.
옷은 갈아입을게 없었는지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머리도 못 감았는지 다들 머리가 떡져있다.
남자들은 그저 추레해 보일 뿐이었지만, 여자들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거의 반쯤 찢어져 옷인지 걸레인지가 되어버린걸 몸에 걸치고, 드러난 쇄골이며 얼굴 곳곳에 피멍이 들어있는 여자들도 있었다.
브라도, 입은 여자가 있고 안 입은 여자가 있다.
어설프게 가슴께를 가리고 있지만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초라하다.
초췌하다.
난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 여자들, 바퀴벌레들에게 강간당한거다.
며칠, 혹은 그 이상을.
우리보고 여자를 내놓으라고 할 때부터 그럴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잠깐 돌아보더니, 곧 내게 시선을 맞추었다.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이니 책임자일 것이다. 라고 여긴 것같다.
여자들은 살짝 비틀대며, 또 살짝 떨고 있었다.
어지러워 보인다.
초췌한 몰골로 봐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한게 틀림없다.
나는 남자들을 바라봤다.
남자는 세사람이다.
다들 젊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
서있는 자리를 보아하니 서로 모르는, 혹은 그리 친하지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같다.
남자 하나가 나한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손톱이 새까맣다.
못 씻은거다.
얼굴도 많이 상했다.
콧가가 시커먼게, 저건 콧물이 아니다.
처맞고 나온 피가 굳어버린거다.
남자가 말했다.
"저... 저희 좀 도와주세요."
나는 남자를, 또 여자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이런 몰골이지?
아직 수도는 나오는데.
난 계단 하나를 내려갔다.
여자들이, 또 남자들이 한 걸음씩 물러선다.
감히 내 길을 막을 수 없다는 듯한 태도다.
자존심도, 자존감도 완전히 개박살난 태도.
난 한계단 내려와 멀리 바라봤다.
도로 쪽으로, 또 마트 옆문쪽 골목으로.
사람의 인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여자들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며 시선을 내린다.
남자들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는다.
난 말했다.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도망쳤어?"
남자 하나가 대답했다.
"차...창고를 지키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때가 아니면, 거기서 다 죽을 것 같아서 도망쳤어요."
다른 남자가 말했다.
"마트, 마트에 사, 사람들이 있다는걸 그 놈들끼리 얘기하는걸 듣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음...
우리가 누군줄도 모르면서 왔다?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남자.
콧가가 새카만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둘 다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
여자친구인가?
난 물었다.
"창고에 갇혀있었단 말이지? 왜? 너희를 왜 창고에 가둬?"
콧가가 새카만 남자가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그 놈들 중에, 나쁜 놈들이... 나쁜 놈들이, 여대생들, 젊은 여자들을 따로 모아서 데려가더라고요. 제 여자친구도 데려갈려고 하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