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원형이 눈 앞에 나타난다.
검은 물결.
거대한 좀비 웨이브.
그 앞, 미친듯이 자전거를 달리고 있는 대가리 개 쳐돌은 아줌마년.
붉게 빛나지 않는다.
나는 활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원형도 따라 올라간다.
원형의 범위는 대략 접시 하나 크기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적중시킬 수 없다.
활을 점점 들어올렸다.
거의 45도 각도까지 들어올렸다.
...원형을 벗어나 버렸다.
"...씨발."
난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있다.
사람들이 보든지는 상관 없다.
진작 죽였어야 했어.
하찮은 자비심이 좀비 웨이브를 일으킨거다.
그때, 칼 들고 쳐들어왔을 때 죽였어야됐어.
으드득.
이가 갈린다.
미친년이 씨발.
저 썅년 대가리를 맞춰서 죽여야 돼.
당장!
텃밭 근처.
의자가 있었다.
서예학원에서 갖고왔나 싶은 나무의자.
밭 가꾸다 쉴려고 갖다놨나보지.
난 즉시 텃밭으로 걸어가 의자를 들었다.
태영과 예은, 소은이는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보고있다.
내가 뭘 하려는지를 볼 생각인거다.
난 내려가란 말도 없이 그들을 지나쳐 옥상 끄트머리로 갔다.
지금 내가 지상에 있었다면 당장 가속박고 달려가서 검으로 목을 따버렸을거다.
겨우 가속 14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심정적으로는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서 저 미친 암컷 바퀴벌레를 난도질을 해버렸을거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깝다.
터억.
의자를 놓고 올라섰다.
...제기랄, 자세가 안 나와.
난 한 발을 옥상 난간에 턱, 올려놨다.
이제 좀 낫네.
나는 화살 매긴 활을 들어올리며, 당겼다.
빠아아아-
눈 앞에 원형이 나타난다.
붉게 빛나지 않는다.
나는 활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원형이 함께 올라간다.
아직도 조준되지 않는다.
나는 활을 당긴 채, 암컷 바퀴벌레를 원형의 아랫쪽에 간신히 맞춰놓고는 기다렸다.
...아직.
아직이야.
확성기의 쩌렁쩌렁한 소리.
바람에 실려 은은하게 들려온다.
다 죽어-
죽어-
씨발놈아-
좀비 웨이브의 움직임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놈들은 뛰고 있었다.
이미 쉬어버린 목으로 질러대는 쇳소리.
확성기로 고래고래 질러대는 아줌마 바퀴벌레에게 어그로가 끌린 놈들이 미친듯이 뛰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랫쪽.
멀리, 내가 쓸어놨던 중형 마트.
그쪽 골목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집과 가게들, 차고 따위에서 우르르 나온 사람들.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하다.
한 사람이 움직인다.
골목을 꺾어, 주차장 쪽으로.
우리를 향해 오는거다.
"...쯧."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져 혀를 찼다.
내가 본걸 다른 사람들도 본 모양이다.
"저 사람들 어디로 가는거야? 우리한테 오는거야?"
"어딜 올려고, 저 씨발것들이!"
"아니, 저 중엔 잡혀있던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여기 새로 오신 분들처럼요."
새로 온 여자들은 두 손을 꼭 쥐고 바퀴벌레들 그룹을 바라보거나, 혹은 적개심을 담고 노려보거나, 혹은 외면해버리거나 하고 있었다.
지인이 있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고, 없이 그저 당해버린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건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시선을 돌려 멀리 아줌마를 바라봤다.
아직 조준되지 않는다.
제길, 계속 당기고 있었더니 어깨가 슬슬 뜨가워.
"성훈씨. 저 사람들 어떡합니까?"
준혁이 내게 묻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지시가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지시하면 저 사람들은 들어온다.
들어오면, 사는거다.
...그런데 말이야.
지금은 그런걸 결정할 때가 아니야.
나는 말없이 아줌마를 노려봤다.
온다.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암컷 바퀴벌레가 자전거를 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나는 암컷 바퀴벌레를,
암컷 바퀴벌레는 우리를.
서로를 향한 시선이 교차된다.
그리고, 마침내.
깨알같은, 쌀알같은.
암컷 바퀴벌레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스으읍!"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등을 당겼다.
내 자세를 본 사람들의 시선.
모두가 침묵했다.
나는 시위를 놓았다.
핏.
쒸우우우웃-
화살은 쏜살이 되어 먼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고개가 화살을 따라 움직인다.
"너무 멀어..."
옆에 선 정은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쌀알이다.
그정도로 작게 보인다.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화살을 이리저리 밀어댈 것이다.
목표물에 정확히 맞을 리가 없다.
사람들은 그런 눈으로, 조마조마한 듯 두 손을 꼭 쥐고, 멀어져가는 화살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봤다.
날아가던 화살의 장력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힘차게 하늘을 향해 날던 화살이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날아가던 속도에 맞추어 아래로, 또 아래로 활강하며 추락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암컷 바퀴벌레는 하늘에서 뭐가 내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같다.
페달을 밟으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이따금 비틀대듯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그렇게 암컷 바퀴벌레는 달려오고 있었다.
죽어어-
다 죽어어-
죽자아아-
사람들이 두 손을 꼭 쥐고 그런 암컷 바퀴벌레를 쳐다본다.
도로에서 너무 움직인다.
소리를 지를 때마다 핸들에서 한 손을 놓는다.
확성기를 입에 댈 때마다 좌로 휘청, 우로 휘청거린다.
저렇게 움직이는, 저렇게 멀리 있는 목표에, 겨우 화살 한 발이 명중할 리 없다.
"...후읏."
정은서가 내 옆에서 활을 들었다.
화살을 매기고 활을 내밀며 당긴다.
빠아아-
나는 정은서의 팔에 살짝 손을 얹었다.
정은서가 나를 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정은서의 눈가에 의혹이 스쳐지나갔다.
설명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암컷 바퀴벌레를 바라봤다.
정은서도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화살이 내리꽂혔다.
암컷 바퀴벌레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깃까지 파고들어가 끝으로 뚫고 나왔다.
보이진 않으나, 확신한다.
암컷 바퀴벌레는 마치 번개에 맞은 듯 펄쩍거렸다.
그리고, 핸들을 놓치고는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요란하게 엎어진다.
속도에 밀려 앞으로 데굴데굴 구른다.
...됐어.
나는 옥상 벽에 걸터놨던 다리를 그제야 내렸다.
의자에서도 내려와 턱, 하고 옥상 바닥을 밟았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있다.
환호도 없다.
기쁨도 없다.
사람들의 눈에 들어있는 것은, 경외심에 가까운 경악이었다.
맞출 수 없는 거리다.
비틀비틀 움직이는 목표였다.
정확히 머리를 꿰뚫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 어떻게...?"
정은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흑, 하더니 숨을 들이킨다.
심장이 울린 듯한 얼굴이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바라봤다.
그리고는 말했다.
"...걱정 말라고 했잖아."
떨어져 있던 준혁이 다소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신궁이네요. 여기서... 저기를."
시선들.
경외감을 담은 시선들.
남자들, 그리고 수많은 여자들.
있을 수 없는, 믿을 수 없는걸 봤다는 눈들이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군.
난 말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멀리 좀비웨이브를 바라봤다.
"...쯧."
혀를 차자 다른 사람들도 좀비 웨이브를 바라본다.
탄식과 한숨이 새어나온다.
좀비 웨이브는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자빠져 죽어버린 암컷 바퀴벌레를 짓밟고 으깨고 뭉개버리며, 놈들은 계속 달려오고 있었다.
달려오던 관성이 있어 앞에 놈들은 멈출 수도 없다. 멈추고 싶은 것 같지도 않다.
목표가 죽어 없어졌는데도 그저 달려왔으니 계속 달려온다는 식이다.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피할 수 없겠다, 이건.
나는 준혁과 한태에게 손짓했다.
두 사람은 제깍 내 앞으로 달려왔다.
"네, 형."
"예, 성훈씨."
난 말했다.
"지금 사람들 몇명 데리고 내려가서 창문하고 전부 걸어잠궈. 혹시 열린데 있는가 체크해보고."
준혁과 한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형!"
"지금 당장 하겠습니다."
준혁과 태영이 사람들을 부르자 수현이와 예은이, 훈이 아재, 그밖에 여럿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내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옥상계단을 내려간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멀리 바라봤다.
끝없이 몰려오는 좀비웨이브.
탈출은 불가능하다.
소수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인원이 너무 많다.
인간에겐 스테미너가 있다.
지치면 뛸 수 없다.
그러나 놈들은 다르다.
그렇다면.
"...자아..."
지금부터는 버티기에 들어간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티를 내지 않고, 죽은 듯이, 여기서 버틴다.
몰려오는 좀비 웨이브.
가능하면 달려온 그대로 달려가서 이 거리를 지나쳐가면 좋겠다.
그 경우엔 오래 버티지 않아도 괜찮을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나는 들고있는 활을 내려다봤다.
...믿을건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