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임대 치고는 무장이 너무 빈약한것 같습니다만."
"동의합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저희의 제 일차 목표입니다. 아마도 비서실장님께서도 언질을 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우선은 무기의 확보가 저희로서도 시급한 사안입니다."
...맞다.
무기를 확보한다고 했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피식 웃었다.
진짜 개판이네.
"그러면 예상해보자면, 현재 특임대에서도 임무에 나갈 대원의 수가 그리 넉넉하지 못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넉넉했다면 성훈씨를 찾자고 인쇄기를 돌릴 필요도 없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다.
난 살짝 황당한 기분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그래.
이게 현재 정부의 수준, 그리고 국가무력의 수준인거다.
궤멸이라는 단어를 비서실장과 특임대장까지 여러번 사용했다.
말 그대로다.
없어져버렸다.
모든게 그 자리에 있는데, 쓸 사람이 없다.
모두 죽었다.
혹은, 좀비 되었거나.
난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예. 그렇군요. 그러면 이렇게 말씀드리죠. 무기를 얻는다면, 그중 절반은 제가 갖겠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잠시 말이 없었다.
"...절반이라고 하셨습니까?"
준혁과 훈이 아재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절반? 이라고 속닥거린다.
난 말했다.
"예. 절반이요."
"너무 과하다 생각 안하십니까? 절반이라니, 임무처가 어디인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니요. 절반입니다. 대신."
난 말했다.
"저 혼자 처리해 드리죠."
특임대장 성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 몹시 느릿하게 또박또박, 그가 대답했다.
"...혼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난 말했다.
"어차피 당신들은 손해볼거 없잖습니까. 특임대원이 다치는 것도 아니고, 헬기든 경비행기든 저를 데려다 주기만 하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 있는 무기의 절반을 저와, 우리 사람들이 갖는걸로 하죠."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말이 없다.
하, 참.
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그 소릴 들으며 미소지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이 자들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무기가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혼자 처리하는데 겨우 절반?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겐 나에게, 또 우리에게 없는 크나큰 강점이 있다.
헬기와, 헬기를 조종할 수 있는 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중 수송수단을 확보하고 있으니, 절반 정도면 꽤나 괜찮은 거래라고 칠 수 있겠지.
잠시 기다리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일단 말씀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만약 성훈씨가 다치거나 죽는 경우에는, 저희도 도울 수 없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성훈씨도 아까 말씀하셨다 시피, 현재 남은 대원이 몇 없습니다. 현재는 구조임무가 아니라 무장의 확보가 더 중요합니다. 성훈씨를 구하기 위해 우리 대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을 거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둡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이야.
난 민간인이다.
뭐, 예비군이긴 해도 특임대장 성규혁같은 전문 군인은 아니지.
애국심 같은것도 없다.
애국심은 국가가 있고 나서 얘기지, 지금 상황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국경이란 말이냐.
국경을 지키는 자도, 쳐들어 올 자도, 죄다 괴물이 되어버렸는데.
종말이다.
내가 사는게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군인이지만 목숨을 아끼겠다고 하는 성규혁의 말은 내게는 꽤 합리적으로 들렸다.
"혼자 들어갔다, 혼자 나오죠. 그밖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데려다놓기만 하세요."
"...알겠습니다. 비서실장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다른건 없으십니까?"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저는 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그밖에도 가족의 행방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쪽에 많아요. 임무를 끝내고 나면, 우리쪽 가족을 찾는걸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이거지.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가족을 찾기를 원하신다... 그 또한 보고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말씀하신 두 조건 모두 다소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일러드리고 싶군요."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당신들도 원하는게 있겠죠. 비서실장의 말을 들어보자면 무기를 확보하고 세력을 굳혀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하는 것 같던데,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당신들이 원하는 거죠. 우리가 원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살고싶습니다. 가족을 찾고 싶습니다.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겁니다. 국가도 뭣도 다 무너져 내린 마당에 무슨 국가의 보호나 지원을 바랄 수 있습니까? 스스로 살아남지 않으면 안되겠죠."
특임대장 성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한 폰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무기 절반입니다. 나 혼자 처리합니다. 그리고, 가족을 찾는걸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합류를 거절하겠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천천히 대답했다.
"...비서실장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또 연락합시다."
전화를 끊었다.
준혁과 훈이 아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훈이 아재가 중얼거렸다.
"무기 절반..."
준혁이 끄덕이더니 말했다.
"어느정도인지는 봐야 알겠지만, 절반이나 갖고올 수 있다면 확실히 화력은 확보될겁니다, 성훈씨."
난 고개를 끄덕였다.
훈이 아재가 나직이 말했다.
"선생님. 정부가 조건을 받아줄까요?"
난 고개를 저었다.
"모르죠."
길게 들이키곤, 내쉰다.
멀리 바라보니 어느덧 노을이 내리고 있다.
"정부 같은건 이제 없어요. 우리가 하나의 세력이듯이, 그들도 그냥 하나의 세력일 뿐입니다. 확실히 도움이 안 될거면 아예 손을 안 잡는게 나아요."
내 말에 준혁과 훈이 아재의 눈빛이 바뀐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나보다.
난 말했다.
"지금은 살아남는게 중요하죠. 자, 내려가서 일들 보세요. 무슨 소식이 있으면 알려드리죠."
"네, 성훈씨."
"예. 선생님."
준혁과 훈이 아재가 고개를 끄덕이곤 내려갔다.
옥상 벽으로 가 팔꿈치를 짚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래.
이젠 국경도, 국가도, 인종이나 종교 따위도 아무 상관 없다.
남은건 그저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뭉친 세력들이 있을 뿐.
그날 밤이 지나도, 이튿날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건을 옮기고 창문과 계단 따위를 보강하며 바쁘게 지냈고, 나도 매일 활을 쏘며 레벨을 올렸다.
그리고, 일주일여가 지났을 무렵.
야생 사냥꾼 레벨을 최고치로 올렸다.
이제, 새로운 전문화다.
새벽 두시.
나는 옥상에 서 있다.
저녁식사는 비빔면에 베이컨이었다.
요즘 제법 베이컨이 많이 나온다.
유통기한이 이제 아슬아슬하다고, 빨리 먹어치워야 된단다.
사람들끼리 뭘 먼저 먹을지 논의를 한건지, 아직 통조림은 아무도 손을 안 댔다.
보존만 잘 하면 꽤 오래 먹을 수 있으니, 통조림은 꽤나 일용할 양식이다.
수현이와 예은이, 은서. 이렇게 넷이서 비빔면에 구운 베이컨을 실컷 먹고, 같이 씻으며 한번씩 안아주고는 옥상에 올라와 다시 활질.
방금 야생 사냥꾼 최고레벨을 달성했다.
후우.
나는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상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야생사냥꾼] [레벨 - MAX.]
[호칭 - 성장중인]
스테이터스
[체력 - 100/100] [감각 - 63/99]
[힘 - 45/45] [민첩 - 4/4]
[정신 - 75/75]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2]
스킬
[패시브 - 혼의 문신 LV. 3]
[패시브 - 회복]
[패시브 - 한계도달]
[액티브 - 적중] (자동시전 중)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미련둘거 없지.
감각에 1을 넣어 100을 만들고는, 남은 1점은 힘에 넣었다.
다음 전문화를 무엇을 선택할지는 이미 정해두었다.
지난번에 폰을 던져 둘 중 하나를 골랐었지.
이번엔 다른 하나다.
...그림자 전사.
나는 깜빡이고 있는 야생 사냥꾼 탭을 눌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 시간조정자 (MAX.)
ㅡ. 생존전문가 (MAX.)
ㅡ. 야생사냥꾼 (MAX.)
1. 그림자전사.
2. 공간탐색자.
3. ??? (선택 불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공간 탐색자.
뭔지 솔직히 궁금하다.
...하지만.
나는 그림자 전사를 선택했다.
[새로운 전문화를 획득했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얻었습니다.]
...좋아.
"상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택받은 자
[전문화 - 그림자전사] [레벨 - 1]
[호칭 - 다재다능한]
스테이터스
[체력 - 100/100] [감각 - 63/100]
[힘 - 46/46] [민첩 - 4/4]
[정신 - 75/75] [지능 - N/A]
[분배 포인트 - 0]
스킬
[패시브 - 혼의 문신 LV. 3]
[패시브 - 회복]
[패시브 - 한계달성]
[액티브 - 잔영] (자동시전 중)
[액티브 - 적중] (자동시전 중)
[액티브 - 가속] (자동시전 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호칭이 깜빡거린다.
호칭 업그레이드 업적이 달성됐다.
업적이 이번엔 몇개나 열렸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스킬을 확인할 때다.
난 새로운 스킬, 잔영을 눌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액티브 - 잔영
근접무기 사용시, 잔영이 발생해 적의 약점을 반드시 공격합니다.
공격할 때마다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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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영이 발생한다고?
약점을...
약점이라면, 머리잖아.
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뭐지?
머리를 공격하는 거라면 스킬 없이도 지금까지 실컷 해왔어.
그런데 굳이?
잔영이라는 스킬이 있어야 할 필요가?
"...아."
약간 실망인걸.
난 메고있던 리프팅벨트를 바라봤다.
매달려 있는 검 두자루.
"...쯥."
슈르릉-
검을 뽑아 휘둘러 봤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적중 스킬처럼 무슨 원형이 나타나거나 하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직접 베어봐야 제대로 된 효과를 알 수 있겠는데.
잔영이라면 그림자잖아.
무조건 약점을 공격한다고 했으니, 내가 팔이나 몸통을 베어 들어가면 무슨 그림자 같은게 생겨서 머리도 같이 벤다는 건가?
...아, 쓸데없네 진짜.
내가 왜 몸통을 베겠냐고.
머리를 베어왔고, 찔러왔고, 앞으로도 그럴건데.
"어휴."
난 검을 도로 집어넣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새벽하늘 참 맑네.
공장이고 뭐고 죄다 가동을 안하고 있어서 그런가, 공기도 맑다.
은은하게 실려오는 시체냄새가 좀 거슬리긴 해도, 이만하면 꽤 별 보기 좋은 밤이다.
하지만 그런 예쁜 밤하늘을 보고있어도 기분이 꿀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