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은 써도 내가 쓰는거지, 내 그림자가 써선 안되지.
이 놈은 귀환 자체가 빠른거다.
"...하."
그래, 내 의도대로 움직인다 이거지.
난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내밀었다.
내 의도를 정확히 알아챈 그림자가 내 손에 검을 얹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마치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도트 픽셀이 무너지듯, 그림자는 빠르게 소멸했다.
나는 미소지었다.
"...이거 마음에 드네."
스텟창을 보니 힘을 소모하거나 다른 무슨 스텟을 소모하진 않았다.
불러내는 것엔 그 어떤 소모도 없는거다.
유지 장갑이 상시 발동중인 것처럼, 그림자 장갑의 기능도 상시 발동중인거다.
조건이 맞을 때, 그림자가 나온다.
내 그림자 전사가.
...그렇다면 그 조건이란?
내친김에 다른 것도 해보자.
난 활을 들었다.
이것도 되나?
활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깐 검을 놓았더니 그림자가 나왔었지.
그러면...
활을 놔버렸다.
툭, 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안되네."
이번엔 다시 검을 들어봤다.
그리고, 놓았다.
은은한 바람소리.
슈확!
눈 앞이 시커매지며 그림자가 나타났다.
놈은 내가 놔버린 검을 받아들고,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내게 지시할 것이 있는가?
라는 느낌이다.
난 웃었다.
"...하하."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어!
그림자 전사라니...
일단, 활은 안 된다.
활이 안 된다는건, 다른 원거리 무기도 아마 안 될거라는 뜻이다.
이 놈은 오직 근접무기에만 반응한다.
내 손을 떠난 근접무기에만.
...그러면, 또 시험해봐야지.
난 옥상을 대충 둘러봤다.
아까 이동하라고 지시한 후 그림자 전사가 이동한 거리.
정확히 알 순 없으나, 대략 30여 미터 안쪽.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애매한 거리다.
활처럼 수백미터 밖 초장거리에서 운용하긴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이 놈은 나를 중심으로, 중거리를 맡아 싸우는 전사라는 의미다.
내 추측이 맞는지는, 이제부터 시험해봐야 한다.
난 그림자 전사를 불러 검을 받아들었다.
파스스 하며 그림자가 사라진다.
"좋아."
난 리프팅 벨트를 들어 허리에 차고는, 옥상을 내려갔다.
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다시 계단을 타고 천천히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소리가 중요하다.
발소리를 가능하면 내지 않도록 신경쓰며 3층, 마트 창고로 들어가서는, 곧장 사무실로 갔다.
창고층엔 사무실과 화장실에만 창문이 있다.
창문엔 실리콘을 발라놓은 고리에 쇠파이프가 끼워져 있고, 유리 곳곳에 나무를 덧대 실리콘을 발라 보강을 해놨다.
눈에 보이는게 실리콘 뿐인거지, 실은 강력접착제부터 해서 붙일 수 있는건 죄다 활용해놨을거다.
난 천천히 쇠파이프를 빼냈다.
그리고, 창문을 잡고 살짝 밀었다.
열린다.
너무 활짝 열면 안 된다.
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난 창문 틈새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책상 위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봤다.
...좀비 웨이브.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십여미터 아래에 바글바글 모여있다.
...이 쯤이면, 그림자 전사의 범위와 성능을 시험해보긴 알맞은 높이다.
나는 상태창을 켜 눈 앞에 띄워놓고, 천천히 검을 창 밖으로 내밀었다.
...들키지 마라.
소리는 없다.
아니, 으르렁대는 소리는 있으나, 달라지지 않는다.
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내민 검과, 창문의 틈새를 바라봤다.
시험할 것은 두가지.
그림자 전사의 성능.
...그리고.
"후우."
나는 검을 놓았다.
슈확!
시커먼 바람이 창문틈새로 빨려가듯 빠져나갔다.
그림자 전사가 검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추락해간다.
좀비 웨이브가 몰려있는 땅으로!
나는 이를 악물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가속이 발동되었다.
이것이, 내가 시험해볼 두 번째 요소.
가속 발동중엔 모든 것이 느려진다.
내가 빨라지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그림자 전사는?
창 밖에서, 그림자 전사가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움직인다.
좀비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올리며, 나를 바라본다.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는, 평소와 다름없는 움직임.
움직인다!
정상적으로!
가속 발동중인데!
벅찬 심정이 올라온다.
내 그림자 전사는 가속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니, 나와 똑같이 가속의 영향을 받는거다!
"...하하."
소리내지 않게, 숨소리만으로 웃었다.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공격해라.
그림자 전사가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검날이 가로등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그리고 나의 그림자 전사는,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유려한 몸놀림으로, 자연스러운 몸동작으로 놈들의 머리를 베고 찌르며, 전후좌우로 좀비들을 도륙해 나아갔다.
내 눈앞엔 상태창이 떠있다.
힘이 빠르게 줄어든다!
46이었던 것이, 40, 33, 25...!
내 그림자 전사는 정확히 놈들의 머리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거다.
이게 힘 스킬이었던 거다.
반드시 약점을 공격한다는, 잔영!
나는 머리를 베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저 공격하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 그림자 전사는 놈들의 머리를, 머리만을 정확히 뚫고 베어 죽여 없애고 있다.
내 그림자 전사는 지금 잔영 스킬을 쓰고있는거다.
아니, 그림자 전사 자체가 잔영이었던 거다.
근접 스킬을 실체화 해주는 것.
그게 그림자 장갑.
그리고, 나의 달가림 장갑!
난 그림자 전사가 주위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좀비 웨이브를 뭉텅이로 쓸어버리는 것을 바라봤다.
피가 사방으로 느릿느릿 휘날린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하하."
기쁘다.
정말 기쁘다.
그림자 전사와 잔영.
활용 방법이 정말 무궁무진한걸.
적중과 잔영.
이 두 스킬과 그림자 전사의 조합은, 내 전투방식을 놀랍도록 다각화 해줄 것이다.
즐겁다.
정말 즐겁다!
나도 모르게 환한 웃음이 내 입술에 피어났다.
그러고 웃는 사이, 힘이 0이 되었다.
어느새 46마리를 사냥했다.
그림자 전사가 우뚝 멈췄다.
불러들일까.
난 그 순간, 멈칫했다.
...잠깐, 기다려.
가속이 끝났을 때는 어떻게 되지?
검 한 자루...
어쩌면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험해볼 가치는 있다.
소모한 가속은 모두 8회.
퇴각을 염두에 두지 않고 거침없이 도륙하기만 해서 오직 8회 만으로 46마리를 몰살시켰다.
나는 약간의 기대심을 품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다렸다.
...가속이 끝났다.
푸화확!
피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잘린 머리통이 졸업식이 열린 것 마냥 허공으로 널뛴다.
뇌수가 땅바닥에 철퍼덕 떨어진다.
우르르, 콰당탕!
좀비 46마리가 일거에 엎어지며 땅이 울렸다.
그림자 전사는 그 곳에 그저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후우."
다시 입술에 미소가 걸린다.
반응하지 않는다.
놈들은 내 그림자 전사에 반응하지 않아!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반응을 안 하는거다!
난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다시 웃었다.
소리내지 말자.
정말로 엄청난걸 얻었어.
그림자 전사!
이런 거였나!
난 잠시 웃고는 창 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명령했다.
돌아와.
그림자 전사가 나를 번쩍 올려다 본다.
몸을 굽힌다.
그리고, 벽을 타고 힘차게 뛰어 올라왔다.
벽을 타고!
볼 수록 놀라운걸.
거리는 그렇다 쳐도, 높이조차 그림자 전사에겐 상관이 없는거다.
난 창문 열린 틈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림자 전사가 팔을 힘껏 위로 쳐든다.
검자루가 정확히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림자 전사는 파스스 사라졌다.
"...후우..."
난 숨을 들이키곤, 창문을 살며시 닫았다.
쇠파이프를 끼워넣는다.
사무실을 나와, 계단을 향해 걸어간다.
스스-
검에서 희미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그림자 전사가 사용하느라 손상된 검날이 회복되고 있다.
나는 검을 떨쳐 피를 뿌렸다.
촤앗!
그리고, 검을 집어넣었다.
스르릉- 착.
나는 미소지었다.
"...좋았어."
10층 계단.
활과 화살들을 꽂아둔 나무통이 거기에 있었다.
난 화살을 한웅큼 집어들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알아볼 것이 한가지 더 남았다.
새 전문화를 얻고 나서 죽인 좀비.
모두 48마리.
아직도 렙업하지 않았어.
허리의 화살집에서 활을 꺼내들고는, 아래를 조준하고 쐈다.
그리고, 2마리째.
[레벨이 올랐습니다.]
...50마리.
50마리당 1업이냐.
...많다.
난 발치에 놔둔 화살들을 바라봤다.
복제로 생성되는건 하루 72발.
나무통에 남아있는건 얼추 100여발.
렙업하자고 화살을 전부 써버릴 순 없어.
정부측에서 연락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쓸건 남겨놔야 된다.
복제된걸로 모자라서 하루에 8발씩 10발씩 갖다 썼더니 제법 줄어버렸다.
사람들이 쓸건 남겨놔야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