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낸거야. 좀비 웨이브 처리하러."
수현이는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눈을 껌뻑거렸다. 아직 잠에 취해 사리분간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헤, 헬기?!"
리프팅 벨트를 찰 무렵에서야 수현이가 놀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밖에서도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난 수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곤, 밖으로 나섰다.
예은, 은서, 준혁, 태영, 훈이 아재 내외와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집 밖으로 나와 복도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두두두두-
헬기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 이게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 이거 헬기 소리 같은데요."
사람들이 내게 모여들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정부측에서 보낸겁니다."
"그, 그럼 이제 작전 하러 나가시는 겁니까?"
난 미소지었다.
"네."
방금 잠에서 깬, 헝클어진 머리와 팅팅부은 눈을 한 사람들이 서로 돌아본다.
걱정과 기대가 얼굴들에 다양하게 묻어있다.
난 피식 웃고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온다.
새벽 다섯시.
이제 겨우 해가 떠올라 하늘에 푸르름이 피어나는 무렵이었다.
공기를 때리며 날아오는 헬기가 멀리 보인다.
난 옥상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도 내 주위에 몰려 헬기를 쳐다본다.
"호, 혹시 이 건물에 다들 달라붙으면..."
"걱정 마. 어련히 알아서 하려구."
서로 걱정하며 달래주는 와중에, 은서가 말했다.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하자구요. 일 생기면 남자들은 아랫층으로, 옥상은 저랑 수현이가 맡는거예요."
"알았어."
"음."
남자들이 우르르 내려간다.
아마 활 가지러 가는 것 같은데.
서로 미리 얘기가 됐었나보다.
알아서 잘 하네.
난 미소짓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두두두-
헬기가 온다.
점점 가까워져 온다.
크르르륵- 크르르르륵-!
아래쪽에서.
건물 아래쪽에서,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 기름이 끓는 것같은 소리가 들끓어 올랐다.
좀비 웨이브가 헬기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직 먼데도.
난 옥상 난간으로 천천히 걸어가봤다.
놈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력은 좋지 않다.
이 높이에서 나를, 우리를 볼 확률은 없다.
놈들은 그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을 뿐이다.
옥상 벽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분나쁘게 피어있는 곰팡이 같던 좀비 웨이브의 시커먼 대가리들이 좌우사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집단 발작하는 것같다.
크롸르륵- 크롸라라락-!
헬기소리와 놈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뒤섞여 귀를 고문하는 불협화음이 된다.
이 높이에서도 선명히 들릴 정도의 괴성.
두두두두-
크롸라라락! 크롸라라라락!
헬기가 가까워진다.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프로펠러 소리가 가까워질 수록, 놈들도 더욱 거세게 발광했다.
와장창, 콰장창!
사방 가게들에 들이닥쳐 이곳저곳의 유리가 박살난다.
크아아아악!
두두두두-
헬기가 가까워진다!
가깝다!
대략 백여미터쯤 떨어진 곳까지 헬기가 날아왔다.
그것은 유선형이었다.
구조헬기라고 했었던가.
프로펠러 소리가 엄청나다.
초대형 드럼을 힘껏 두드려도 저런 소리는 안 나겠다.
귀가 뚫릴 것같은 소음이 공기를 진동시키고, 이내 먼지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헬기가 보낸 바람인지, 자연스러운 바람인지 모르겠다.
건물들의 옥상을 스칠 것같이, 꽤나 낮게 날고있는 헬기.
우리가 모여있는걸 봤다, 라는 표시라도 내듯이 서서히 멈추고는 프로펠러를 좌우로 살짝 흔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모여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넓게 원형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돈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좀비 웨이브가 사방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던 좀비 웨이브가 헬기를 따라, 우리를 향해 뛰어들고 짓밟고 움켜쥐며 뭉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귀가 따가울 정도다.
소은이는 아예 예은이한테 안겨 발발 떨고있다.
여기서 무슨 대화라도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될 지경이다.
헬기만이면 모르겠는데, 좀비 웨이브의 괴성까지 뒤섞여 연속적으로 천둥이 치는 것같다.
두두두두-
헬기는 우리 건물을 두바퀴 돌고는 서서히 직진해갔다.
빠르지 않다.
느릿하다.
속이 답답할 정도의 속도로, 헬기는 서서히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모여들었던 좀비 웨이브가 헬기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을 메우며, 자기들끼리 짓밟고 뭉개고 타고넘으며, 도로 위에 육체의 파도를 일으키며 놈들은 헬기를 향해 뛰었다.
헬기가 완전히 멀어진 것은 그로부터 두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그리고, 좀비 웨이브는 없어졌다.
한가롭고 한산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도로와 거리는 고요해졌다.
먼 하늘에서 전해져 오는 헬기소리와 은은한 포효소리를 제외하면, 이 거리는 예전과 다름이 없어졌다.
"...하."
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거 재밌는 경험인걸.
내 뒤에 서있는 사람들도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소은이와 예은이는 훌쩍거리며 울고있다.
수현이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제법 무서웠나보다.
난 사람들을 돌아보곤 미소지었다.
"이제 됐어. 밥먹자."
사람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내려간다.
"후, 진짜 무슨 일 날까봐 쫄았네."
"진짜요. 완전 쫄았어요."
태영과 한태가 주고받자 다른 사람들도 무서웠다며 한마디씩 하고 나섰다.
그러는 과정에서 웃음이 피어났다.
난 사람들이 내려가는걸 바라보다 다시 먼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헬기 조종사라...
꽤 고급인력인걸.
피리부는 사나이 마냥 좀비 웨이브를 이끌고 어디론가 가버릴 수 있는 능력은 지금 상황에선 보물과 다름없다.
난 콩알처럼 작아져버린 헬기를 잠시 구경하다, 계단을 내려갔다.
* * *
"잃어버리지 말구?"
"알았어."
난 수현이가 그려 준 약도를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녀가 그려준 것은 여기서 한강중학교까지 가는 길.
접선지는 용산이다.
헬기를 타고 날아갈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무리다. 도로에 차들이 군데군데 서있어 경비행기가 이착륙할 데도 없고.
걸어가야지.
한적해진 거리 덕분에 제법 마음에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모두 1층에 모여있다.
나를 배웅하기 위해서다.
"오빠, 조심해요. 네? 다치지 말아요."
예은이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
"무사히 돌아와요. 기다릴게요."
은서.
난 그녀의 손도 잡아주곤 끄덕였다.
수현이도 내게 다가와 팔을 잡는다.
소은이, 훈이 아재, 태영, 준혁, 한태,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내게 모여들었다.
다들 한마디씩 하는데 다 기억 못 하겠다.
와중에, 내 눈에 누군가 띄었다.
아직도 나한테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여자.
그녀는 저 뒤에 서서 두 손을 꼭 잡고 나를 보고 있었다.
다녀오면 왜 이름 안 알려주는지 물어봐야겠네.
난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리곤, 몸을 돌렸다.
"연락해. 응? 자주 자주 연락 해. 알았지?"
수현이는 하여간 걱정이 태산이다.
난 피식 웃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뒤돌아보니 사람들이 문 앞에 우르르 모여 나를 보고있다.
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녀올게."
내 여자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내게 손을 흔들어 준다.
난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거의 뭐 가족같네.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가자.
용산으로.
검 두자루.
활 그리고 화살 30발들이 화살통.
화살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나 없는동안 사람들이 자기 집은 지키고 살아야 되니까.
수현이도 은서도 또 남자들도 그동안 활 연습 제법 해왔고, 별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아니, 없었으면 좋겠다.
건물은 튼튼하겠지.
셔터랑 창문은 제대로 보강해 뒀겠지.
괜히 차오르는 노파심에 뒤돌아보게 된다.
난 피식 웃고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종말 발생 1개월하고도 1주.
곧 2주차에 접어든다.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퍽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벌써 수현이가 보고싶으니.
예은이도, 은서도, 이름없는 여자도.
...내 여자들.
나 돌아올 때까지 무사하게 있어라.
"후우."
연기를 길게 뿜어내곤, 다시 길을 걸었다.
용산.
한강중학교가 이제 곧이다.
나무 가득한 도로엔 갓길에 주차된 차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서로 들이받아 전복된 차들도.
종말이 터지고 어디 무사한 도로가 없다.
약도를 보고 따라 걸어가니 멀리 학교가 보인다.
그리고 학교 앞 길가에 몇사람이 서 있었다.
꽤 한가로워 보이는 사복 차림의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냥 남자들은 아니다.
일단 체격부터가 다르다.
기본 180 안팎은 되어보이는 훤칠한 남자들은 모두가 어깨가 딱 벌어져 있고, 가슴과 어깨가 두툼한 것이 확실히 몸을 좀 써봤다는 티가 난다.
행동거지가 자연스러운 것이, 이런 거리는 한산해서 돌아다녀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다는걸 아는 태도다.
저 자들이다.
그들이 나를 발견했다.
하나 둘씩 나를 돌아본다.
한 사람이 한 걸음 나서며 손을 들어올린다.
인사를 보내 오는데?
나도 손을 올려 마주 인사해줬다.
그들은 모두 네 명이었다.
외모만 봐선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나는 그들 앞에 도착해, 말했다.
"특임대입니까?"
앞으로 나서 손을 들었던 남자.
약간 짧은, 그러나 단정하게 올린 머리의, 눈썹이 짙은 쾌남형 얼굴.
그 자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성훈씨죠. 영상으로 본 것과 똑같이 생기셨군요. 특임대 2팀장 성규혁입니다."
오오.
나하고 통화했던 특임대장이잖아.
난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한성훈입니다."
"여긴 제 대원들입니다. 가면서 얘기하시죠."
특임대장 성규혁이 길을 안내하며 말했다.
"저희 2팀 임무는 한성훈씨를 작전지까지 안내하는 역할입니다. 그리고 작전상황을 관찰 후, 귀환합니다."
그러곤 나를 힐끗 돌아본다.
"한성훈씨가 함께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난 미소지었다.
구조작전 같은건 하지 않을거라는건 이미 수차례 들었다.
1팀 구조작전도 하지 않는 마당에, 유튜브 동영상으로 본 남자를 구조할 리가 없다.
무기도 변변하게 없고 말이지.
특임대원들을 보니 톤파와 삼단봉을 무장하고 있다.
어디 비어있는 파출소가 있었나보지?
난 고개를 끄덕이곤 미소지었다.
"작전지는 어딥니까?"
"미군기집니다."
...미군기지.
난 갸웃하곤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