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87)

"거기 미군들 철수하지 않았어요? 무슨 공원인가 만든다고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뉴스 사회면이나 경제면 같은건 내겐 관심밖이었단 말이지.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단계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했었죠. 그것도 지금은 흐지부지 되었지만요. 아직 남아있는 시설이 있어요. 그걸 지키는 미군들도 있었고."

"그럼 무기고도 남아있겠군요."

"네. 많지는 않겠지만, 당장 쓸 만큼은 확보할 수 있을겁니다."

다섯 남자가 길을 걷는다.

아무도 없는 길을.

난 그렇게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택이라고 했습니까? 이전하는 곳이?"

"네."

쯥.

난 살짝 혀를 찼다.

"좀 아쉽네요. 이전을 안 했으면 얻을 것도 많았을텐데."

대통령을 비롯한 특임대원들의 거처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길 목표로 잡은 걸 보면 우리에게서, 또 이 사람들에게서 가장 가까운 군부대는 역시 용산기지겠지.

특임대장이 나를 힐끗 본다.

별 의미는 없는 것같다.

그가 말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혼자서?"

난 피식 웃었다.

"몇 놈이나 있느냐에 달렸겠죠. 안에 얼마나 있는 것 같습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글쎄요. 세어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수백명은 있을겁니다. 문제는 남은 미군기지 시설이 아니라 공원입니다. 넓은 장소에 바글바글 몰려있는데 가깝기까지 하니 위험하죠."

공원이라...

난 특임대장을 바라봤다.

"1팀도 그러면 공원에 있는 놈들한테 당한겁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바글바글하다라...

"괜찮으신 거겠죠?"

특임대장이 나를 본다.

그의 눈빛이 묘하게 바뀐다.

나는 미소짓고 있었던 것이다.

...많다라.

좀비 웨이브 상대로 렙업해왔는데, 또 바글바글하다면 그것도 나름 기쁘지.

렙업할 생각에 어딘가 설레어 온다.

그의 시선을 마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공원이 조성되고 있는 곳.

한 때 미군기지였던 곳.

용산 미군기지 터에 도착했다.

"저희는 여기서 대기합니다."

그들은 낮은 담벽에 올라 각자 걸터앉았다.

자세 잘 잡았네.

좀비의 눈에 띌 만큼 가깝지도 않으면서, 미군기지를 관측하기 좋은 높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무기고는 기지 안쪽, 병원 옆에 있을겁니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테니 조심하십시오."

"네. 조심하죠."

그렇게 대답해주곤 걸었다.

"성훈씨."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특임대장이 고개를 끄덕하며 말했다.

"무운을 빕니다."

난 끄덕여주곤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활을 뽑아들었다.

투숫-

활집에 물려있던 활이 뽑혀나온다.

이미 여기서도 보인다.

조성되고 있는 공원.

그 곳에 바글바글한 놈들이.

난 기지 쪽을 힐끔 돌아봤다.

기지는 미국의 여느 시골거리처럼 생겼다.

넓은 도로를 타고 크고 넓은 집과 키작은 건물들이 네모난 칸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거리.

팻말이나 군데군데 있는 조그만 간판도 영어다.

그리고, 그 쪽으론 아무것도 없다.

시설과 집 안에는 제법 있을 것 같은데.

...실내에선 활을 쓰기 좀 그렇지.

난 화살을 뽑아들곤, 공원 쪽을 겨누며 활을 매겨 당겼다.

빠아아아-

투명한 원형.

백여미터는 떨어져 있는, 좀비의 무리들.

그 중 하나가 붉게 빛나기 시작한다.

나는 시위를 놓았다.

핏.

한 놈이 전기에 감전된 듯 펄쩍 뛰고는 엎어졌다.

나는 그대로 계속 화살을 뽑아, 놈들을 저격했다.

걸어오는 동안 계속 복제되어 어느덧 40발이 넘게 쌓여있는 화살들.

당기자 마자 놓고, 매기자 마자 쏜다.

지체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거의 초당 한 발에 가까울 정도로 나는 활을 속사로 쐈다.

쏠 때마다 헤드샷.

잠시 후, 단 한발이 남았음을 확인하곤 활을 내렸다.

"후우."

일단 내 쪽으로 가까운 놈들은 죄다 죽여놨다.

혹시나 저 쪽으로 몇 걸음 가더라도 어느정도는 괜찮을거다.

활을 활집에 꽂으며 일어서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특임대원들이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거의 백여미터 밖에서 백발백중으로 머리를 맞췄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는 눈빛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활 솜씨가 아주 뛰어나군요. 원래 뭐 하던 분이셨습니까?"

으음.

상태창을 설명하긴 좀 그렇지?

난 피식 웃고는 검자루에 손을 얹으며 걸었다.

"이따 봅시다."

미군기지.

집과 건물들의 모양과 형태가 꽤나 낮고 넓다는 점을 제외하곤, 별로 특별할 것은 없었다.

문제는 창문이다.

카페를 포함한 큰 식당건물과, 주택처럼 보이는 집들 너머에 병원이 있다.

적어도 여섯집은 거쳐가야 된다.

멀리서 볼 땐 그리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곳저곳 창문이 깨져있다.

유리가 건물 안으로 깨져 들어간 집도 있고, 바깥으로 파편을 뿌리며 박살난 집도 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핏자국.

살짝 검지만, 아직 붉은 기가 돈다.

얼마 되지 않은 피다.

1팀 대원이 저기서 당했나보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검 하나를 뽑아들었다.

스르릉-

먼저 보이는건 카페.

...제법 있는데.

테리아를 둘러놓은 나무담장과 도로가의 화단.

아마 저것 덕분에 1팀 대원들이 안쪽까지 들키지 않고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난 멈춰서선 폰을 꺼냈다.

그리고,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성훈씨."

"시간 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죠?"

"시간이 걸린다 하심은?"

나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저 카페부터 한 집 한 집 전부 죽이면서 건너갈 겁니다."

저 쪽에선 대답이 없었다.

놀란 모양이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스텟 풀충전을 염두에 두는게 좋다.

최소 다섯시간.

잠시 기다리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가능하겠습니까?"

난 옆을 돌아봤다.

그리 멀지 않은 돌담.

특임대원들이 앉아있다.

얼굴이 잘 보이진 않으나, 꽤 신경쓰인다는, 걱정이 된다는 표정들인 것같다.

나는 대답했다.

"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카페로 들어갔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크롸롸락?!

창문 너머로 나를 발견한 놈들.

고개가 홰래랙 돌아간다.

난 어깨로 문을 들이받으며 세차게 열었다.

"크아아아악!"

놈들이 쇄도해온다.

그리고, 나는 휘몰아쳤다.

푸화확!

피가 사방으로 분출한다.

절단된 두개골과 뇌수가 피와 함께 분수처럼 솟구친다.

놈들이 일제히 우당탕 없어졌다.

"후우..."

뺨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손등으로 쓸어내며, 나는 카페의 문을 열고 나왔다.

끼이익-

좀 세게 들이받았나본데.

문짝 경첩이 상했나보다.

검을 내리쳐 피를 빼낸다.

그리고, 검집에 집어넣었다.

슈르릉-착.

카페 입구 계단을 내려가며 옆을 돌아봤다.

특임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커졌다.

표정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특수부대원들이라도, 태어나서 이런건 듣도보도 못했을 것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손을 내민다.

엄지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난 피식 웃었다.

여기서 놀라면 곤란하지.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나는 몸을 돌려 걸어가며, 그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엇.

카페에 모여있던 열마리 남짓.

덕분에 렙업했네.

힘에 1 넣어 56을 만들어 놓고, 다음 집으로 건너갔다.

좀비들은 특유의 숨소리가 있다.

으르렁대는 듯이, 성대를 긁는 듯이 내는 소리.

집에 귀를 기울여 봐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주의깊게 창문까지 살펴봐도 고요하다.

그런 집이 두 집 이어졌다.

다음으로 나타난 집.

정원 딸린 미국식 주택.

담장도 없이 오픈된 주택엔 주차장까지 딸려있었다. 아마 뒷마당엔 수영장도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살 수 있으면 꽤 나쁘지 않지.

그런데 집이 생긴게 아무리 봐도 사병이 사는 집 같지는 않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혹은 장교?

그런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이 아니겠나 추측해본다.

있을거다.

하지만, 많지는 않겠지.

난 검자루에 손을 얹고 주택의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이 쳐 있어 안을 볼 수가 없다.

...애기 업은 엄마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그렇다 쳐도, 애기는 아직 꽤 거부감이 든단 말이야.

나직이 한숨을 내쉬곤, 몸을 굽혀 창 밑을 천천히 걸어갔다.

이이이이이이-

크르르르- 크르르르-

들린다.

이상한 소리가 섞여있는데?

정문으로 다가가자 천장 전등이 깜빡이며 켜진다.

움직임 감지센서가 있나본데.

밤에 왔으면 대놓고 눈에 띌 뻔 했네.

문 손잡이를 돌려봤다.

...잠겨있다.

그렇겠지.

난 주위를 둘러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곤, 문 손잡이를 꽈악 움켜쥐었다.

그리고, 돌렸다.

뿌드드득-크드득!

손잡이가 박살나며 와르륵 돌아간다.

당겨보니 슬쩍 열린다.

한국처럼 도어락이나 이중잠금 같은건 해놓지 않은 모양이네.

치안에선 자신 있다는 건가?

아니면...

"크아아악!"

문이 벌컥 열린다.

[자동 시전 : 가속]

눈알 하나가 떨어져나간 여자.

금발벽안의 미녀.

요리중이었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즉시 검을 뽑아 이마를 찔렀다.

파각!

"--아-륽!"

콰당탕!

문을 세차게 열어젖히며 널브러진 백인 여자의 시체.

난 시체를 잠시 내려다보다 숨을 들이켰다.

그리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삐이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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