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릴 쏘려고 하는 놈들은 안 보인다.
일단은.
그런데, 이번엔 다른게 보였다.
논밭을 시커멓게 메우며, 지나치게 뿌려놓은 후추마냥 사방에서 몰려드는 놈들.
...좀비 웨이브다.
놈들은 미군기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 이젠 방향을 틀어 우리를 향하고 있다.
절반은 미군기지로, 절반은 우릴 향해 오고 있는 것같다.
"미친, 망했네."
진짜로.
아무도 듣지 못하는 푸념을 내뱉곤 이마를 짚었다.
씨발, 미군기지에 사람이 있을줄 누가 알았나. 게다가 민간인들도 있었고.
아니, 생존자들이 있기야 있었겠지.
근데 왜 밖에 나와있냐고 씨발!
바리케이트라도 우리처럼 쳐놓던가!
서로 총 겨누고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좀비 웨이브까지 헬기에 이끌렸으니 저 사람들은 다 뒤진거나 다름없다.
망했다, 씨발.
헬기가 다시 선회한다.
난 뒤쪽의 조종석을 고개돌려 쳐다봤다.
뭘 할려는거지?
보조석의 김대위가 뭐라고 외친다.
박대위도 뭐라고 외치며 손을 빙글빙글 휘젓는다.
뭐라고 하는건지 모르겠다.
콰콰콰콰!
풍경 돌아가는걸 보니 박대위가 뭘 하려는건지 알겠다.
헬기에 이끌린 좀비 웨이브를 싹 몰아다 강에다 빠뜨릴려는거다.
그거야 말로 박대위 전매특허지.
폰을 꺼내 구글맵을 켜보니 우린 지금 팽성대교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느릿하게, 천천히.
고도를 낮추면서.
가능하면 많은 놈들을 뭉치도록 해서 대교 아래쪽 강 속에 빠뜨릴 작정인거다.
그래서 난 좀비 웨이브가 실시간으로 물에 우르르 기어 들어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지진 발생하면 쥐떼들이 미쳐서 물 속으로 빠져들어간다지.
거의 그런 모양새다.
느릿하게 팽성대교를 건너 좀비웨이브를 대부분 물 속에 빠뜨린 박대위가 고도를 천천히 높이며 선회했다.
그리고는, 미군기지 활주로를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활주로에 착륙할 생각인건가?
난 주위를 빠르게 둘려봤다.
옆에 앉은 특임대원 한테는 좀 미안한데, 깔아뭉개 가면서 건너편 창 밖도 내다봤다.
...활주로밖에 없다.
사방이 뻥 뚫려 조그만 좀비 웨이브라도 달려들면 그대로 둘러싸인다.
하지만, 주위 근처 어디에도 헬기를 착륙시킬 만한 건물이 없다.
강과 이어지는 호수를 제외하면, 사방이 죄다 논밭이다.
미친.
이렇게 대놓고 뻥 뚫린 평평한 장소라니.
헬기가 활주로 가운데에 천천히 내렸다.
박대위가 고개를 홱 돌려 뭐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문을 힘껏 삿대질한다.
내 앞에 앉은 특임대장 성규혁이 즉시 문을 열고 헬기를 나갔다.
대원들이 좌우로 우르르 빠져나간다.
나도 헬기에서 내렸다.
머리칼이 힘껏 휘날린다.
"크!"
프로펠러 바람이 머리를 난타하는 것같다.
특임대원들이 상체를 숙이고 헬기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며 뒤돌아보니, 특임대장 성규혁이 보조석 쪽에 서서 김대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씨발, 이야기가 되나?
대화가 통해? 이 소음 속에서?
특임대장 성규혁이 손가락을 치켜들고 빙빙 돌린다.
그러자, 헬기가 서서히 이륙하기 시작했다.
...어?
이륙한다고?!
성가연을 포함한 특임대원 여덟이 모여있는 공터에 서서 헬기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는걸 바라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몸을 숙이고 뛰어온다.
타타타타타-
헬기가 멀어진다.
난 성규혁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헬기 어디가는건데!"
성규혁이 외쳤다.
"근처 좀비웨이브 이끌고 멀리 갈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귀환합니다!"
귀환한다고?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나?
성규혁이 다시 외쳤다.
"헬기는 좀비 웨이브에게 너무 노골적인 목표물입니다! 헬기를 잃을 순 없습니다! 작전 완수하고 퇴각시 호출합니다! 들으셨습니까!"
퇴각할때 호출한다라...
아직도 바람이 흙먼지를 실감나게 실어나르는 활주로에 서서 난 헬기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옆을 돌아봤다.
사람들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민간인들이다.
대부분이 남자다.
그리고, 총을 들고있다.
성규혁이 그들을 보더니 외쳤다.
"엄폐해! 격납고!"
격납고?
특임대원들이 우르르 뛰어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뛰었다.
위에서 내려다봤던, 크고 하얀 건물.
그게 격납고였다.
격납고 셔터는 굳게 닫혀있다.
아마도 전투기. 혹은 전투헬기가 들어있겠지.
우리가 뛰어가는 동안, 헬기소리는 빠르게 멀어졌다.
이젠 전자렌지 속 팝콘 터지는 소리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격납고 그늘 속에 엄폐한 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서로를 돌아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말했다.
"성훈씨. 위에서 보셨습니까? 두 세력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봤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성규혁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보기에 미군과 지역주민인 것 같았습니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이제 알아봐야죠."
성규혁이 벽으로 걸어가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그리고 외쳤다.
"우린 대통령 직속 정부군입니다!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무기를 들고 다가오지 마십시오!"
"하!"
저 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코웃음쳤다.
"정부군?! 지금 정부가 어디있고 군대가 어디있냐! 이야기 하고싶으면 밖으로 나와!"
성규혁이 외쳤다.
"적대적인 행위는 당장 멈추길 바랍니다! 총구를 내리십시오! 이건 경고입니다!"
"너희가 가진 무기를 내 놓으면 총구를 기꺼이 내려주지! 밖으로 나와!"
성규혁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가 드러나는게, 꽤나 심기 불편한 듯하다.
으음.
이건 좀, 무력행사를 해야 되겠는데.
난 성규혁의 어깨를 짚었다.
그가 나를 돌아본다.
"내가 해볼게. 잠깐 물러서 있어요."
성규혁이 의문 품은 눈으로 날 본다.
난 내 손을 내려다봤다.
달가림 장갑.
그리고, 손등부터 어깨까지 올라오는, 타오르는 문신.
난 검을 쥐고, 빼냈다.
그러며 성규혁을 지나 격납고에서 걸어나왔다.
스르릉-
저 쪽 사람들의 걸음이 멈췄다.
적어도 서른 명 이상이다.
화기를 든 자는 대략 십여명.
나머지는 도리깨와 곡괭이, 삽 따위를 쥐고있다.
...총 든 놈들 열명이라.
될지 안 될지 모르겠네.
흰머리가 나려고 하는 중년 남자.
체격이 건장한 남자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어이. 손에 든 거 내려놔. 죽고싶냐?"
난 검을 내밀어 남자를 겨누었다.
"손에 든 총 내려놔."
그러며 검 끝을 까딱까딱 거렸다.
남자가 뒤돌아보더니 얼굴이 비틀어진다. 그러곤 껄껄 웃기 시작했다.
삼십여명의 민간인들이 웃는다.
남자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 손에 든 칼 내려놔, 어린 놈아."
난 어깨를 으쓱하곤 미소지었다.
"기회 안 줘도 돼. 그냥 쏴보지 그러냐?"
남자는 소총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하, 하며 웃었다.
"정신 못 차리는 놈들 참 많다니까. 그래, 그러면."
그가 고개를 든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총구가 나를 향한다.
성규혁이, 성가연이 동시에 외쳤다.
"성훈씨!"
그 순간, 남자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자동 시전 : 가속]
가속이 발동했다.
총알이 보인다.
공기를 둥글게 말아놓으며 내게 다가오고 있다.
난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탄환에 갖다대고 밀었다.
탄환이 검을 긁으며 하얀 빛이 방울방울 올라온다.
뒤이어, 총알이 내 배를 향해 다가오는게 보인다.
난 두 팔을 교차하며 총알을 계속 옆으로 밀어제쳤다.
내 머리로, 내 옆구리로, 내 좌우로 다가오는 총알들을 검으로 밀어젖히는 사이.
멀리 서있는 남자의 배에서 하얀 구름이 피었다가 천천히 사그라든다.
그리고 또 다시 하얀 구름이 피어난다.
나는 내게 날아오는 모든 총알을 검으로 튕겨냈다.
가속이 끝났다.
밀려서 늘어졌던 소리가 뒤늦게 터져오른다.
쾌쾌쾌쾌쾡!
"후우..."
스스슷-
두 개의 검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총알을 튕겨내느라 날이 제법 상했나보다.
난 펼쳤던 두 팔을 천천히 내리며,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내게 총을 쏜 아재가 나를 보고있다.
있을 수 없는걸 봤다는 눈이다.
손을 보니 방아쇠에 걸어놓고 있다.
아니, 당기고 있다.
탄창이 빈거다.
총알 튕겨내는 묘기는 제기랄, 아무리 나라도 위험하단 말이지.
숱하게 날아오는 총알 중에 하나라도 깜빡 놓치면 그대로 몸이 뚫릴거다.
난 이를 드러내며 검을 들어올렸다.
스스스-
희미한 연기가 검날에서 올라오고 있다.
난 말했다.
"총 내려놔. 두 번 기회 안 준다."
그러며 검을 까딱까딱거렸다.
숱하게 모여있는 사람들은 내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려 경악하고 있다.
난 검을 내리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쏘라고 했다고 진짜 쏴? 사람 막 죽이네? 미친 새끼들 아니야 이거. 총 내려놓으라고 했다."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내게 총을 쏜 놈.
덩치 큰 놈이 고개를 홱홱 젓더니 이를 드러낸다.
나를 노려본다.
놈이 크게 말했다.
"내가 못 맞춘거다! 내가 잘 못 쐈다! 씨발, 총 쏴본지 오래돼서 그래! 이봐! 쏴!"
미친새끼네 이거.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서로 쳐다본다.
내가 총알을 검으로 모조리 튕겨내는 것, 불꽃이 튀긴걸 전부 봐놓고 못 맞췄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고.
"쏴! 씨발, 쏘라고!"
덩치 큰 아재가 외치며 좌우를 돌아본다.
"하, 하지만... 저, 저새끼 초, 총알 튕겨냈는데요?"
"이 씨발! 다 뒤질래! 어! 여기서 물러나면 다 죽어! 모르냐!"
덩치 큰 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외쳤다.
총 든 자들이 주춤거리며 손을 들어올리려 한다.
"...맙소사..."
특임대장이 신음하며 말하는게 들린다.
"성훈씨! 물러나는게 좋겠습니다! 성훈씨!"
가만 있어 봐, 성가연.
그러고보니 저 여자는 내가 총알을 튕겨내도 놀라지도 않네.
...아.
지가 쏜 총알을 내가 튕겨냈었지.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도 바로 코 앞에서 본 여자다.
난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덩치 큰 놈의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총을 들어올리고 있다.
나는 총을 들어올리려 하는 놈들을 노려보며 가속을 발동시켰다.
[자동 시전 : 가속]
놈들까진 대략 20여 미터.
난 무릎을 굽히고 곧장 앞으로 박찼다.
활주로 아스팔트가 발에 착 달라붙는다.
체력 업적 특전으로 얻은 스킬.
단 세걸음만에 덩치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