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검을 든 왼 손을 들어올려 덩치의 목을 감싸안았다.
덩치의 왼쪽 귀.
그리고 내 왼쪽 귀가 거의 닿을 지경이다.
가속이 끝났다.
"씨발! ...헉!"
덩치의 몸이 굳는게 내 팔로 느껴진다.
후욱!
등 뒤에서 불어 온 바람이 한 템포 늦게 사람들을 덮쳤다.
가속 박고 빠르게 달려 공기가 밀린거다.
먼지 실은 바람이 사람들의 머리를 날리며 눈가를 간지럽힌다.
"으엇!"
바람이 서서히 멎었다.
먼지도 서서히 걷혔다.
내게 목을 감싸인 덩치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만 돌려 나를 보고있다.
땀인지 식은땀인지가 놈의 뺨으로 흘러내린다.
난 나직이 말했다.
"...죽고싶냐 너희들?"
난 천천히 눈을 들어 내 앞의 할배를 쳐다봤다.
할배의 총을 든 손이 발발 떨린다.
눈을 돌려 사람들을 천천히 노려봤다.
다들 귀신 본 얼굴로 날 보고있다.
난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총 안 내려놓으면 손목 잘라버린다."
툭.
할배가 총을 내려놨다.
할배가 말했다.
"다... 다들 총을 내리게. 다들 진정해. 이... 이 분의 말을 들어."
서른명 가까이 되는 자들이 서로 쳐다보며 망설인다.
하지만 할배의 말이, 내려놓은 총이 확실히 전염되긴 한 것같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총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들고있던 삽과 곡괭이도.
난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렸다.
그리곤, 내가 목을 감싸고 있는 놈의 눈을 쳐다봤다.
가깝다.
그대로 머리를 들이받을 수 있는 거리다.
놈은 눈을 심하게 깜빡이며 땀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씨발, 땀냄새 오지네, 이 아재.
난 말없이 놈의 눈을 쳐다봤다.
놈도 내 눈을 쳐다본다.
이내, 놈이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툭.
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난 그제야 천천히 놈의 목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힐끗 뒤돌아봤다.
그걸 신호라고 여긴 모양이다.
특임대원들이 격납고에서 우르르 튀어나와, 이 쪽으로 총을 겨누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난 조용히 말했다.
"너흰 이미 나한테 선빵을 날렸어. 지금 안 죽이는건 기회를 주는거다. 움직이지 마라. 죽여버린다."
사람들은 내게서 눈도 떼지 못하고,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특임대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바닥에 놓인 총을 모두 수거해 뒤에 모으고는 사람들을 겨누어 섰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들어 우리에게 보이십시오."
사람들이 천천히 앉아서 손을 들어올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손을 내리지 마십시오. 내리는 자는 즉시 사살합니다. 이건 경고이며, 다시 경고하지 않습니다."
손 든 사람들은 조용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특임대원들의 뒤로 걸어갔다.
됐어.
전세는 뒤집어 놨고, 나머진 특임대한테 맡기자.
검을 내려다보니 더이상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스르릉- 착.
난 후열에 위치한 성가연의 옆으로 가서 나직이 물었다.
"손을 그냥 묶어버리지?"
"결박용 케이블타이를 아무도 안 가져왔습니다. 비품에도 없었고요."
"철물점 털었잖아."
"바리케이트 만드는데 다 썼어요. 없습니다."
...아아. 그랬나.
난 특임대원들의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놈들을 노려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단 묻겠는데,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내게 총을 쏜 덩치는 기가 꺾였다.
티가 땀에 푹 젖어있고, 얼굴에서도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리는게, 얼굴만 봐도 뭘 대답할 정신상태는 아니다.
그의 뒤에 있던 노인이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오. 술집 주인도 있고, 동네 슈퍼 주인도 있고."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눈건 무슨 이윱니까?"
"그건-"
땀 질질 흘리던 덩치가 고개를 들었다.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규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기? 무기라면 이미 충분히 갖고 계신것 같은데. 더 많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겨우 총 열 개로 누구 입에 풀칠하겠나. 여기 사람들 안 보여?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겨우겨우 뭉쳤다. 살려면 무기가 있어야 되는게 당연한거 아니야?"
성규혁은 따로 반박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생존자는 얼마나 됩니까?"
"이백명 가까이 된다."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힐끗 돌아봤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아마 놀란 표정을 감추려는 행동인 모양이다.
하긴, 200명.
많다.
서래마을 인원과 거의 비등한 정도다.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아까 하늘에서 미군과 대치하는걸 봤습니다. 여기엔 그러면 무기를 구하러 온 겁니까? 왜 대치하고 있었습니까?"
덩치 큰 차가 성규혁을 천천히 올려다봤다.
"그건 우리한테 묻지 말고 놈들에게 묻지 그래? 달랑 총 저만큼 던져주고는 알아서 하라고 구는 저 싸가지 없는 미국놈들한테 말이야. 씨발, 우리보고 다 죽으라는거지."
성규혁이 갸웃하며 다시 뒤를 돌아봤다.
나를 본 건 아니다.
쌓아놓은 총을 본거다.
성규혁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기를 더 달라고 찾아오신 거군요. 그렇습니까?"
"그렇다."
"인원이 몇백명 된다고 하셨습니다만, 왜 다 오지 않은겁니까?"
덩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성규혁을 노려봤다.
"애들, 애엄마들, 노인들까지 다 끌고 오란 말이냐? 우리도 목숨 걸고 온 거다. 여기서 죽을 때 죽더라도 무기는 받아내야 되겠다고 말이다. 이 사람들 전부가."
성규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물었다.
"미군부대는 어째서 여러분께 무기를 더 나누지 않는겁니까?"
"그걸 씨발 내가 알아?"
덩치 큰 자가 이를 갈았다.
"밤만 되면 사방에서 놈들이 짖어대는데 씨발 잠도 못 자. 살려면 밖에 나와야 되는데, 라면 하나 구할려고 하면 바글바글 들어차있어. 무기를 씨발 줘야 우리도 살 거 아니겠냐고. 탄약도 받아놓은거 거의 다 써먹어서 얼마 남지도 않았어. 뭐냐고 이게!"
...밤에 짖는다고?
뭔 소리야?
성규혁이 갸웃했다.
"...밤만 되면 놈들이 짖는다? 무슨 뜻입니까?"
덩치 큰 자가 성규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부군이라고 했나? 당신들? 서울에서 왔겠군."
"그렇습니다."
덩치가 날 쳐다본다.
"하긴, 서울 인구가 워낙 많으니 저런 사람도 있는거겠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지 모르겠는데, 보쇼. 당신 무슨 올림픽 선수 뭐 그런거야?"
으음.
말을 하다보니 꽤 두려움이 사라졌나본데.
아니, 그보다.
난 서울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학교때문에 어영부영 거기 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날 보던 덩치가 숨을 훅훅 내쉬더니 성규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서울에서 온 놈들이라. 그래, 서울에는 아직 밤에 짖는 놈들이 없는 모양이지?"
성규혁이 끄덕이곤 말했다.
"서울에도 가게 같은데 가득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밤에 짖는다거나 그런건 아직 들어본 바 없습니다."
덩치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씁쓸해 보이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편한데서 왔네. 여긴 짖는 놈들이 있어. 밤만 되면 저 강 건너 산에서, 저 아래 들에서, 숲에서 기어나와 사방을 돌아다니며 짖어대지."
"...누가 짖는다는 겁니까?"
덩치가 말했다.
"들개들. 새들. 박쥐들. 사방에 널린 짐승들이 짖는다고."
덩치는 기분나쁜 기억이 떠오른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놈들은 심지어 서로 잡아먹기까지 해. 짐승들이 저 좀비들한테 덤벼서 뜯어먹는걸 한 번이라도 보면 말이야. 손에 무기를 들지 않으면 잠도 못 자게 된다고."
난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짐승들이 좀비들을 잡아먹는다고?
성규혁도 나랑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짐승이... 그 괴물들을 잡아먹는다고요?"
덩치 큰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성규혁을 올려다봤다.
"당신들은 그 인간도 아닌 것들을 괴물이라고 하나보지. 우린 그냥 좀비라고 부른다."
난 좀비라고 부르는데.
호칭이 다양하구만.
덩치가 말했다.
"그리고, 그래. 짐승은 좀비를 먹어. 좀비 뿐만이 아니라, 자기들 끼리도 툭하면 잡아먹는 것 같더군."
성규혁이 나를 돌아본다.
특임대장도 나하고 비슷한 심정임이 틀림없다.
아니, 특임대원들 모두가 그렇겠지.
짐승.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는건 알고 있었다.
새도 쥐도 개도 고양이도 거리에서 실종됐다.
종말 이후 단 한번도 들은적도, 본 적도 없다.
역시 그 때 했던 예상이 맞았어.
짐승들은 모여 웨이브를 만들어내고 있었던거다.
서로 잡아먹으면서.
난 성규혁을 바라봤다.
더 알아낼게 있을텐데.
물어 봐.
성규혁은 내 눈빛을 읽은건지 고개를 돌려 덩치를 내려다봤다.
"몇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여기 짐승떼가 창궐한다면, 미군은 무엇을 하고 있는겁니까? 그들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죠?"
덩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까 답했다. 놈들이 뭘 하는지는 놈들이 알지 우리가 아나. 우린 무기 내놓으라고 온 것 뿐이다."
성규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마지막입니다. 왜 총입니까?"
덩치가 성규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농사꾼인건지 공사판 노가다인건지 모르겠는데, 피부가 새까만 중년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니 꽤 인상이 험악하다.
"왜 총이냐니, 무슨 말이지?"
성규혁은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총은 소리가 큽니다. 놈들을 도발해 불러모으게 될 겁니다. 짐승들은 다릅니까?"
"아니. 다르지 않다. 짐승들도 소리에 이끌리지."
"그러면, 왜 총입니까? 손에 삽도 들고 있고, 가능하면 조용히 대응하는게 옳은 방법이 아닙니까?"
덩치 큰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쓴 걸 맛본 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이다.
"...확실히 너희들은 그 짐승들을 본 일이 없는거군."
성규혁은 말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남자가 말했다.
"이봐, 정부군 형씨. 저녁때 박쥐 날아가는걸 본 일이 있나? 꽤 작고 앙증맞지.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말이야. 와중에 큰 놈이래봤자, 손바닥 두 개 붙인 것 정도야."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
"여기 박쥐는 그런 놈들이랑 차원이 틀리다. 몸통만 사람크기의 박쥐가 몇미터씩이나 되는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개는 그냥 갠줄 아나. 고양이는? 트럭만한 놈들이 개랍시고 돌아다닌다. 고양이도 더이상 고양이가 아니야. 호랑이도 그보단 작을거다. 그나마 자기 체급 유지하고 있는 놈들이래 봤자 새들, 쥐들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달라지고 있어."
그의 말을 듣는 내내 성규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특임대원들도, 성가연도, 또 내 표정도 변했다.
호랑이보다 큰 고양이라고?
자동차만한 개?
뭐야 그거.
성규혁이 물었다.
"점점 달라지다니, 무슨 뜻입니까?"
덩치가 한숨을 내쉬곤 대답했다.
"먹는 것 말이야. 놈들은 뭔갈 뜯어먹을 수록 커져. 가장 먼저 커진 게 네 발 달린 육식동물들. 그 다음으로 박쥐들이다. 새와 쥐들은 아직까지는 자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놈들도 점점 커지고 있거든."
무릎꿇고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눈썹 아래로 그림자가 생긴다.
성규혁이 말했다.
"...먹을수록 커진다... 도심 속 사람들... 아니, 괴물들을 짐승들이 뜯어먹고 커진다는 뜻입니까?"
"그래. 자기들끼리 잡아먹어서도 커지지. 먹으면 먹을 수록 점점 더, 자네 말대로 놈들은 괴물이 되어간다. 트럭만한 개가 거리를 돌아다니다 자네 집 창문에 대가리를 들이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덩치가 이를 드러내며 분개했다.
"창문에 쇠창살 따위는 수수깡만도 못해. 벽이 통째로 박살난다. 그러니 말해보게. 도대체 총과 폭탄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성규혁은 대답하지 못하고 중년 남자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트럭만한 개가 창문을 들이받는다라.
그건...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닌데.
듣고있던 성가연이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짐승들이 괴물들을 뜯어먹는다고 하셨는데, 생존자 분들은 괜찮은건가요? 누가 잡아먹혔습니까?"
덩치 큰 남자가 성가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니. 아직 산 사람이 잡아먹히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곧일거야. 시내에 점점 좀비들 수가 줄어들고 있거든."
뒤에 있던 할배가 입을 열었다.
"아닐세. 아까 헬기가 좀비들을 가득 몰고 왔었어. 아마도 시내에도 도발당한 놈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었을 거야. 어쩌면 건물마다 다시 가득 채워졌을 수도 있어."
덩치가 뒤를 힐끗 돌아보며 윽박질렀다.
"조용히 좀 하쇼. 그거야 말로 모르는거 아뇨. 그 헬기가 그나마 있던 좀비들을 죄다 끌어내는 바람에 빈 집이 되었을지 어떻게 아냐고."
할배는 입을 다물었다.
덩치 큰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게 끝이야. 먹을게 없어진 놈들은 산 사람들 집을 덮칠게 틀림없어."
남자는 성규혁을 올려다보며 이를 드러냈다.
"우린 무기가 필요해. 총이! 살려면 총이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아까 헬기를 겨눴던 거구만.
좀비 웨이브가 발생하면 시내가 텅 빌지도 모르게 되니까. 그러면 자기들은 다 죽는다고 여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