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8/187)

성규혁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자들은 성규혁의 동료, 나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그룹이다.

원래라면 정보를 얻었으니 그냥 죽이는게 맞다.

아...

입맛이 쓰네.

난 담배를 꺼내 피워물곤 땅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가 길게 뿜어져 나온다.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성규혁과 특임대원들이 나를 보고있다.

...뭔지 알겠다.

총을 맞은 것도 나고, 제압한 것도 나다.

처분은 나에게 맡기겠다는 무언의 동의를 내게 보내고 있는거다.

난 담배를 빨며 성규혁을 바라봤다.

스읍.

후우-

...쯧.

난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말했다.

"앞으론 총 내리라면 그냥 내리쇼. 갈기랬다고 씨발 사람한테 총 함부로 갈기지 말고. 다음번엔 그대로 목을 잘라버릴테니 그리 알아요. 알겠어?"

난 그대로 몸을 돌려 특임대원을 지나 걸어갔다.

특임대장이 내게 고개를 끄덕여 온다.

그리곤 사람들을 통솔해 총을 돌려주도록 손짓했다.

철컥, 철컥.

힐끗 돌아보니 특임대원들이 탄창을 뽑고 약실에서 탄약을 꺼내어 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대원들은 생존자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탄창을 꽂거나 하는 짓을 한다면 바로 쏴버리겠다는 경고를 자세로 보이고 있다.

사람들이 총을 받아서 터덜터덜 돌아간다.

총 없는 자들은 그냥 터덜터덜 걸어간다.

성가연이 나를 따라오며 말했다.

"그냥 보내주는 겁니까? 위험분자들일 수도 있어요."

"보내줘요 그냥."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내가 워낙 자애와 사랑이 넘치는 자비심의 아이콘인걸."

그 말에 성가연의 얼굴이 절찬리에 괴상해진다.

난 으쓱하곤 말했다.

"경고는 해놨으니 아마 또 바보짓 하진 않겠지."

"혹시 또 오면요?"

"그러면 뭐..."

머릿속에 누가 떠오른다.

난 피식 웃었다.

"팔을 두개 다 잘라내고 눈알을 쑤셔놓으면 되려나."

성가연이 눈썹을 찡그리곤 말했다.

"...그럴거면 그냥 죽여요."

"그냥 죽이는게 나아요?"

"팔 잘라내고 눈을 찔러버리는 것보단, 네. 그냥 죽이는게 차라리 더 낫겠네요."

그래?

흠.

내 생각은 좀 다른데.

경고 무시하고 좃대로 구는 놈은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는게 맞다고 난 생각하거든.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좀 생각해보고."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멀리 생존자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경계하며, 특임대원들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 어디 가는거예요?"

"미군부대. 왜 사람들한테 총 안 주는지, 안에서 뭐 하고 있는건지 알아봐야 되갰어."

아무리 미군이고 여긴 타국이라지만, 생존자들 말 들어보니 상황이 꽤나 안 좋은데 무기는 적선하듯 쥐어주고.

미군들 뭐하는거지?

설마 존나 이기적이라서 이건 내 거야, 못 줘! 이지랄 떠느라 그렇게 버티고 있었으면, 그냥 죄다 몰살시키고 헬기 불러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활주로를 걷는데 성규혁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성훈씨. 그런데 영어는 좀 하십니까?"

...엇.

난 걸음을 멈췄다.

성가연이 내 표정을 읽었나보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제가 통역해줄게요. 가요."

오오.

난 걸음을 옮기며 성가연을 돌아봤다.

"영어 잘합니까?"

"어릴때 오빠랑 같이 캐나다에 살았었어요."

호오.

"기러기아빠?"

성가연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민. 아버지가 공군에 계셨거든요. 캐나다 항공사에 기장으로 스카웃되셔서 온 가족이 다 갔죠. 그래서 그냥 거기서 그렇게 사나보다 했었죠. 근데 오빠가 그냥 미쳐갖고 군인이 되겠다고 설치지 뭐예요. 하지만 캐나다에선 안 됐어요. 그래서 캐나다 국적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저렇게 됐죠."

"...가연씨는 그럼 왜?"

성가연은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도 그냥 갑자기 미쳐서요. 그냥 거기 있을걸."

듣고있던 성규혁이 웃고는 말했다.

"거기 있었으면 너도 소식 끊겼을걸."

성가연이 입을 다물었다.

난 조심스레 물었다.

"부모님 연락 끊겼어요?"

성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말했다.

"저희만 그런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나도 종말 이후 부모님 여동생과 연락이 끊겼고.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는데.

우린 그렇게 입을 다물고 활주로를 걸었다.

그렇게 걸어 활주로 끝자락.

미군부대가 드러났다.

"STOP RIGHT THERE!"

젊은 미군 병사가 외쳤다.

모두가 총구를 이 쪽으로 겨누고 있다.

특임대원들이 걸음을 멈췄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LOWER YOUR GUNS. WE'RE NOT THE ENEMY. WE'RE JUST HERE TO TALK."

성규혁이 천천히 손바닥을 내렸다.

"HEY GUYS. LISTEN TO ME. LOWER YOUR GUNS. AND LET'S TALK LIKE A GENTLEMAN. SHALL WE?"

...뭐라고 하는건지 전혀 모르겠다.

총 내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젠장, 영어랑은 아예 담 쌓고 살았던게 후회되네.

아니, 공부 자체를 거의 안 했지만.

미군들이 서로 돌아본다.

천천히 총을 내린다.

성규혁이 말한게 효과가 있었나본데.

미군 하나가 나서서 말했다.

성규혁이 나를 돌아본다.

"무슨 얘기를 하자는지 묻는군요."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일단, 사람들한테 무기를 왜 안 주는지부터 물어볼까요."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내 말을 전달했다.

미군의 얼굴이 험해지더니 뭐라고 말한다.

성규혁이 말했다.

"무기를 줬다가 폭도로 변한거 못 봤냡니다. 우리한테 무기 맡겨놨냐. 달라고 하면 우리가 다 줘야 되냐. 우리도 안에서 좀비들이 창궐해서 수습하는데 애먹었는데, 이젠 주민들까지 폭도로 변해서 우리가 준 총을 우리한테 겨누고 있는게 말이 되냐. 이게 강도랑 뭐가 다르냐."

난 허리를 짚고 말았다.

아...

이거, 진짜 깊게 꼬였네.

미군세력과 지역주민세력간에 서로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버린게 느껴진다.

난 말했다.

"자기들 스스로 지킬려고 저런다는데, 좀 더 줄 수도 있었잖아. 그러면 해결되는거 아니야?"

성규혁의 통역을 들은 미군이 이를 드러내며 흥분해 말했다.

성규혁이 그의 말을 통역했다.

"애초에 그건 우리 소관도 아니고, 지휘관이 결정할 문제다. 지휘관이 허락을 안 하는데 그냥 막 줄 수 있는건줄 아냐. 게다가, 무기를 주는건 둘 째 치고 그 다음엔? 처음엔 총을 달라고 하겠지. 그 다음엔 더 많은 총을 달라고 할 거고, 우리가 가진 모든걸 다 내놓으라고 들거다. 너희도 헬기에서 분명히 봤을텐데. 우리가 준 총을 들고 우리를 겨누고 있었던걸."

성규혁은 평온하게 말했지만, 미군 청년은 그렇지 않았다.

어조가 대비되어 꽤 위화감이 든다.

그리고, 말하는 내용도 대충 알겠다.

난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너희쪽은 얼마나 살아남았냐?"

성규혁이 통역했다.

"왜? 우리 수를 압도하면 우릴 공격해서 여기 있는 모든걸 다 강탈해갈려고? 그래서 물어보는거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희들 압도할거면 머릿수도 필요없고 나 혼자면 충분한데. ...이건 통역하지 말고요."

"아, 네."

난 한숨을 내쉬었다.

"지휘관이 결정한다고 말했지? 우린 대한민국 정부가 보내서 왔다. 너희들 지휘관을 만나고 싶다."

성규혁이 나를 힐끗 돌아본다.

난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이 사람들 몰살시키고 뺏는건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요? 게다가 이 놈들은 그냥 병사들이야. 얘기를 할려면 지휘관과 해야지, 이 놈들하고 하루종일 붙어 있어 봤자 시간낭비야. 일단 지휘관 만나서 이야기는 해 봅시다."

성규혁이 내 말을 통역해주곤, 미군의 말을 내게 들려줬다.

"우리 지휘관도 헬기소리는 진작에 들었다.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해 하더군. 이야기를 하겠다, 데려다 줄 순 있지만, 일단 무기를 전부 내 놔. 무기를 소지한 채 우리 지휘관을 만날 생각은 하지 마."

미친 소리는 하고있냐.

난 피식 웃었다.

"나만 가면 돼. 그리고 통역할 사람 하나. 이렇게 둘만 가지. 다른 대원들은 여기서 대기한다. 어때?"

통역을 들은 미군이 멈칫하더니 말을 멈췄다.

대꾸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머릿수는 당장 눈앞에 미군이 많다.

하지만 우리 특임대도 전투력에선 절대 꿇리지 않을거거든.

미군이 나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성규혁이 날 돌아본다.

"무장을 해제하랍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망설임 없이 양쪽 허벅지의 잉그램과 활집, 화살집을 리프팅벨트의 고리에서 빼냈다.

그러고 일어서자, 미군이 내 허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AND SWORD."

으음.

이건 알아듣겠네.

이 검들은 그런데 내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데.

...젠장.

난 어깨를 으쓱하고는 오른쪽 허리의 검집을 고리에서 빼냈다.

그리곤 말했다.

"검 하나는 괜찮잖아. 지금 좀비들이 사방에 날뛰는데 빈 손이면 좀 그렇지 않냐? 너희들은 총 들고 있어. 난 이거 하나 갖고 있을테니."

미군들이 서로 돌아본다.

미군 청년이 눈을 찌푸리더니 힘주어 말했다.

"NO. YOU SHOULD PUT DOWN THE SWORD."

소드 어쩌고 한 걸 보니 이것도 벗으라는거네.

성규혁이 통역하려 하길래 난 손을 내밀었다.

아, 씨발.

이야기 좀 하자는데 뭐가 이리 까다롭냐.

지역주민들이랑 분쟁이 있어서 날카로워진건 알겠는데, 씨발 우리가 뭘 한 것도 아니고.

난 한숨을 내쉬고는 검집에서 검만 뽑아들었다.

그리고, 성규혁에게 검을 넘겼다.

난 검집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건 괜찮지? 이건 무기가 아니야."

여차하면 이걸로 대가리를 찔러 뚫어버릴 작정이긴 한데, 얘들이 굳이 그걸 알 필요는 없지.

미군 청년은 나와 성규혁이 든 검을 번갈아 바라보며 갈등에 빠진 것 같았다.

난 눈을 굴리며 말했다.

"이것도 떼야 되는거면 그냥 옷도 벗으라고 하지 그러냐? 이건 그냥 검집이야. 무기가 아니라고. 나는 비무장이야. 보면 모르냐?"

성규혁이 통역해줬다.

미군이 나랑 성규혁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뭔가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 됐네.

난 성규혁에게 말했다.

"가연씨랑 둘이서 갔다올테니 여기서 분위기 보고 있어요."

"성훈씨. 정말 둘이서 괜찮겠습니까? 제 동생..."

그러곤 말을 못 잇는다.

적지일지도 모르는 곳에 동생을 비무장 상태로 보내는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난 성규혁의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말고, 여기 있어요."

성가연은 이미 들고있던 소총을 옆 대원에게 넘기고, 발목의 대검도 뽑아 건네고 있었다.

...발목에 대검 꽂고있는건 이제 알았네.

철두철미한걸.

성가연은 손을 들고 한바퀴를 돌아보였다.

"I'M UNARMED TOO."

그녀는 스키니진에 몸에 붙는 티셔츠를 입고있다.

뭘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다.

미군 청년은 나와 성가연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고갯짓을 했다.

따라오라는 제스쳐다.

우린 미군 청년을 따라 비행장 옆, 커다란 관사같은 건물을 향해 걸었다.

두 명의 미군이 우리 뒤에서 에스코트 하는데, 감시에 가깝다.

여차하면 뒤에서 쏴버리겠다는 거겠지.

성가연은 살짝 긴장한 얼굴이다.

난 말했다.

"괜찮아. 통역만 제대로 해 줘요."

"네, 성훈씨."

관사로 들어간 미군은 계단을 올라 3층의 넓은 회의실로 우릴 데려갔다.

큰 탁자와 여러 의자가 놓여있는 회의실엔 중년의 미군 두 사람이 창가에 서 있었다.

몸을 돌려 우릴 바라본다.

미군 청년과 중년 미군이 서로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

당연히,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휘관이라며?

꽤 젊은데.

잘 해봤자 40대 중반?

혹은 후반 정도.

미군부대 지휘를 맡기엔 좀 젊지 않나 싶다.

미군 청년이 우리 뒤로 걸어가, 셋이서 나란히 총구를 내리고 도열했다.

중년의 갈색머리 미군이 나와 성가연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더니, 탁자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가연이 날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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