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의 앞발 위에 착지했다.
즉시 고양이 대가리를 향해 도약하며 검을 찔러넣었다.
파각, 파각!
좋아.
두개골이 얼마나 두껍든, 검은 들어간다.
짧은 순간.
이렇게 찔러 넣어도 이 놈은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어떻게 공략하지?
난 놈의 머리 위에 웅크리고 앉은 채, 옆을 돌아봤다.
...목.
...잘라내자.
복잡한 판단을 할 여유는 없다.
가속이 유지되는 동안, 이 괴물의 목을 잘라낸다.
"흡!"
검을 뽑아내곤, 곧장 놈의 대가리를 타고 달려 어깻죽지에 섰다.
그리곤, 두 검을 교차해 힘껏 베어들어갔다.
슈파파파팍!
핏방울이 사방으로 느릿느릿 일렁인다.
목덜미 가죽이 베어지고 찢어진다.
근육이 헤집어지는게 보인다.
이대로 이 놈의 목뼈를...!
나는 멈칫했다.
눈을 의심했다.
이 놈.
괴물짐승.
몸 속, 가죽과 근육 안쪽에 있는건 이 놈의 내장이 아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은 고통스러워하며, 괴로워하며, 울부짖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놈이 잡아먹은 좀비들.
인간괴물들. 좀비들.
고스란히 이 놈의 몸 속에 축적되고 있었던거다.
먹고 커지는게 아니다.
몸 안에 비축해둔거다.
찢어진 가죽과 근육 사이로,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나 있는 사람의 얼굴들을 내려다보며, 끔찍함과 기쁨을 나는 동시에 느꼈다.
검을 내리찍는다.
파각!
사람의 얼굴.
분명히, 두개골도 있다.
나는 검을 뽑아내곤, 뒤돌아서며 두 팔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검 두자루가 놈의 가죽을 뚫고 들어가는게 느껴진다.
검을 박아넣고, 나는 달렸다.
놈의 몸을 타고, 꼬리를 향해 힘껏 달렸다.
즈즈즈즈즈즉-
가죽이 검에 갈라지고 찢어진다.
기분나쁜 소리가 가속에 의해 밀려난다.
그리고, 나는 미소지었다.
"흡!"
놈의 엉덩이에 닿았을 때, 나는 힘껏 뛰었다.
그러며, 팔을 앞으로 교차하며 내밀었다.
검 두자루가 핏방울을 뿌리며 내 눈앞에 나타났다.
가속이 끝났다.
탓.
바닥에 내려섰다.
귀를 찢는 괴성.
괴물의 비명.
뒤에서 들려오는 단말마적 포효를 들으며,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콰르릉!
천둥같은 소리.
엎어지며 우물을 들이받은 고양이가 온 몸을 비틀며 괴로워한다.
박살난 우물의 돌파편이 사방으로 휘날린다.
난 괴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저 놈을 공략하는 방법은...
나는 검을 앞으로 던졌다.
검자루가 내 손가락에서 떨어지려는 찰나.
내 손끝에서.
발끝에서 그림자가 결합하듯 뛰쳐나와 검을 움켜쥐었다.
슈화확!
앞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튀어나온 나의 그림자 전사.
나는 명령했다.
"저 놈을 죽여."
그림자 전사가 꿇은 자세 그대로 앞으로 도약해 튀어나갔다.
그리고, 바들거리며 일어나려 하는 괴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푸직, 팍! 파직!
"캬아아악! 캬롸라라락!"
그림자 전사는 정확히 어디를 공격할지 알고있다.
반드시 약점을 공격하는 근접스킬, 잔영이 실체화된 형상이다.
그림자 전사는 지체없이, 망설임도 없이 놈의 배와 어깨, 가슴과 허벅지를 찌르고 베며 살가죽과 고깃조각을 피와 함께 사방으로 휘날렸다.
믹서기에 갈아버리듯이.
"크롸르라롸락! 캬르롸라락!"
고양이는 계속 찔리고 베이며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림자 전사를 공격할 생각은 못한다.
저 놈은 좀비과 동류다.
생체가 아닌 대상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는다.
좀비들이 영문도 모르고 한 칼에 죽었던 것처럼, 놈도 그렇게 온 몸이 베이면서 저항을 못한다.
나는 멀리 놔둔 더플백을 향해 걸었다.
"...상태."
내 예상이 맞다면.
나는 괴물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상태창을 바라봤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힘 - 91 / 100]
힘이 줄어들고 있다.
어느새 90, 89, 88...
난 더플백에 도착해, 놔뒀던 활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화살을 꺼내 매겼다.
그림자 전사가 검을 내리벤다.
써억, 하며 괴물의 앞발이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캬르롸아악!"
엎어진다.
나는 그런 괴물을 향해, 화살 매긴 활을 내밀어 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
원형이 나타난다.
...보인다.
놈의 상태가.
온 몸이 붉게 타오르듯 했던 괴물짐승.
수십개의 붉은 LED 전등빛이 파스텔처럼 번진듯 보였던 그 짐승.
빛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림자 전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하나씩.
붉은 빛. 다섯, 넷, 셋.
나는 시위를 풀고는, 손을 내밀었다.
돌아와.
그림자 전사가 몸을 멈춘다.
내게 고개를 홱 돌린다.
몸을 숙인다.
그리고, 한 순간에 내 앞으로 돌아오며 손을 힘껏 내뻗었다.
내 손에 정확히 검자루가 들어왔다.
스스슷-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나는 검을 휘둘러 피를 빼냈다.
촤륵!
한 손으로 빙글 돌려 거꾸로 쥐고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스르릉-착.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활 시위에 손가락을 걸었다.
검은 고양이의 형태.
더이상 고양이라고 볼 수도 없는 괴물짐승.
그것은 온 몸이 난자당해, 앞발과 뒷발이 절단되어 바들바들 떨며 몸부림치고 있다.
"캬르롸륵, 크르롸라락!"
나는 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
투명한 원형.
원형 속에 정확히 들어가 있는 괴물짐승.
온 몸의 불이 꺼졌다.
더이상 붉게 타오르지 않는다.
단지, 심장만이 빛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힘껏 당긴 활시위를 놓았다.
핏.
쒸우웃-
허공에서 뱀처럼 휘어지며 오른 쏜살이 정확히 놈의 심장에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괴물짐승은 전기에 감전된 듯 한 번 펄쩍 뛰더니 네 다리를 쭉 뻗고는 멈춰버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후우."
...이렇게 되는거였구만.
대가리를 쏴도 안 죽는게 아니었어.
온 몸에 대가리가 있는거였어.
그러면, 죽을 때까지 죽이면 되는거다.
"...하하."
악물린 이 사이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 몸에 튀어오른 피가 흘러 입가로 스며든다.
친숙한 쇠 맛이다.
크르르륽, 크롸르르륵!
익숙한 소리.
괴물에 집중하느라 들리지 않았던 소리.
좀비들이 마을을 향해 모여들고 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되는데?
"크르르륽! 크르르롸륽!"
제법 가까이 온 놈들도 있군.
난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활을 놔버렸다.
"크아아아앍!"
사방에서 달려든다.
툭, 활이 더플백 위로 떨어졌다.
난 웃었다.
"하하, 하하!"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두 팔을 내려, 허벅지에서 잉그램을 움켜쥐었다.
꺼낸 즉시 두 팔을 펼친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좀비들.
나는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탄환이 느릿하게 투사되어 날아간다.
"하, 하하하, 크하핫하하!"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드득, 드득, 틱.
즉시 두 손의 잉그램을 가로로 눕히고 탄창잠금을 연다.
그리고 두 팔을 힘껏 모아 교차했다.
스르륵-
가로로 누운 탄창이 허공에서 느릿하게 기울어진다.
잉그램을 세워 놔버리곤, 허벅지에서 탄창 두 개를 꺼내 쳐든다.
눈 앞에 떠있는 잉그램에 움켜쥔 탄창을 들어올려 장착한다.
철커럭.
느릿하게 내려가는 탄창을 붙잡고 허벅지에 끼운 후, 잉그램을 움켜쥔다.
두 팔을 벌린다.
손가락을 방아쇠에 건다.
그리고, 당긴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제기랄."
난 총을 세우곤 이를 갈았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놈들을 갈기는건 좋다.
하지만, 앞에서 대가리에 총맞고 시체가 된 놈들 때문에 뒤쪽에 있는 놈들이 붉게 빛나질 않는다.
투사체가 휘는게 무슨 회오리치듯 돌아가는것도 아니고, 휘어봤자 슬쩍 움직이는 정도니 어쩔 수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가속이 끝났다.
웨르뤠륽!
사방에서 일거에 터진 단말마가 우렁차게 퍼져오른다.
그리고, 머리 뚫린 수십마리가 동시에 엎어졌다.
피가 촤악 퍼진다.
"후우."
"-훈씨. 성훈씨? 들려요? 네? 성훈씨!"
어?
잊고 있었다.
귀에 이거 끼고있었지?
"아아, 들려요."
"괜찮은거예요?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리던데."
주위를 둘러본다.
좀비들.
강가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 오는 놈들도 있지만, 확실히 줄어들었다.
단독주택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몰려오는 놈들.
나는 두 팔을 내밀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륵.
...오오.
원래 이런 소리였구만?
약간, 부우우웃 하는 소리같기도 하고?
단숨에 십수마리가 머리가 뚫려 엎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