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187)

성규혁이 말했다.

"고양이였다고요. 어땠습니까?"

성규혁의 얼굴엔 호기심도, 걱정도 없다. 그저 투지 뿐이다.

맞닥뜨리면 싸워야 될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표정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좀비들, 괴물들 어떻게 죽이는지는 다들 알죠."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말했다.

"짐승은 몸 속에 대가리가 가득 차있어요. 짐승을 죽일려면 탄창 아낄 생각 말고 온 몸을 쏴버려야 될 겁니다. 그러면 죽일 수 있어요."

대원들의 표정이 변한다.

끔찍한 것을 상상한 모양이다.

대원들이 그러는 사이, 난 더플백을 내려놓고 리프팅벨트를 풀었다.

문득 생각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폭탄 같은것도 괜찮겠네요."

대원들이 서로 돌아본다.

와중에 나는 괴롭다.

좀 씻고싶어, 젠장.

욕실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떠올랐다.

"아까 그건 무슨소립니까?"

성가연이 날 돌아본다.

"네?"

"무슨, 노랫소리?"

"아아, 그거요."

성가연이 내게 다가와 폰을 이리저리 만져댔다.

그러고는 내게 내밀었다.

"후우, 하아. -지이이익! 흡! 탓."

으잉?

아아, 내 숨소리랑...

아, 알겠다.

고양이 등가죽 칼로 써는 소리다.

그리고 분명히 저 때...

검을 던져서 그림자 전사를...

...아차.

죽이라고 말했었지.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런데, 폰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 놈을 죽여.'

라고 말해야 할 타이밍.

뜬금없이 화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현악기의 화음처럼 들리기도 했고, 그녀의 말대로 합창 같기도 했다.

그것은 몹시 짧게 끝났다.

직후, 내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폰을 내려다보며 굳어버렸다.

...뭐야 이거?

성가연이 억지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혼선된...거겠죠?"

...그거 말고는 이걸 설명할 수가 없겠는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양이네요."

쏴아아.

샤워물을 머리로 맞으며 벽에 손을 짚었다.

차가운 물이 머리를 적시고, 핏물과 땀을 씻겨내며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발가락 끝에서 비오듯 통통거리며 튀어오르는 앙증맞은 물보라.

내려다보다, 눈을 감았다.

머리가 복잡해.

괴물 고양이.

그리고, 괴물 개떼들.

놈들의 몸 속에 들어있던, 들어있는 것이 틀림없는 수많은 인간의 머리들.

세상엔 크고 강한 짐승들이 얼마든지 있고, 놈들이 잡아먹을 인구는 거의 80억이다.

...80억.

모두가 변해버린건 아니라지만, 그러나 오늘 마주했던 광경에 비추어 야생짐승들의 세력이 좀비의 세력을 뛰어넘는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검을 하도 쥐고 휘둘러 어느새 굳은살이 배겨버린 손바닥.

그리고, 손등을 타고 어깨까지.

고리가 감싸고 있는 타오르는 문신.

내 능력의 증거.

하지만 이런 능력이 있다고 사람을 잡아먹고 커진 놈들을 모두 죽여 없앨 수 있을까.

힘과 감각 100 업적으로 얻은 특전.

근접공격 200회.

원거리 200회.

그게 끝이다.

나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맞닥뜨리면 싸워야 되지 않겠냐.

다만, 좀 더 힘이.

더 강한 힘이 있으면 좋겠다.

괴물 고양이와 싸우고, 괴물 개떼들과 마주친 직후라 그런 마음이 드는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거울을 보니, 몸이 제법 각이 잡혀있다.

복근은 이제 굳이 힘주지 않아도 선명한 식스팩이 그려져 있고, 가슴과 어깨도 제법 두툼해졌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몸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뛰어다니며 칼을 쓰고 다녀서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몸이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고 있는걸 보니 상태창과도 어느정도는 연관이 있는 것같다.

하지만 몸이 멋져지면 뭘 하냐고.

공격횟수 400회가 전부인데.

"...쯧."

됐어.

깊게 생각하지 말자.

나 혼자서 안 된다면, 군대 단위의 화력을 동원하면 돼.

로켓이든 휴대용 미사일이든 쏴서 전부 터뜨려버리면 돼.

...로켓도 감각스텟 영향을 받을려나?

궁금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씻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수십킬로그램짜리 커다란 미사일포를 무슨 수로 들고 다닐건데?

리프팅벨트?

당연히 무리다.

피식거리며 샤워실을 나오니 특임대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성훈씨. 이제 어떻게 하실겁니까?"

난 팬티바람에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미군부대에 다시 가봅시다."

"미군부대 말입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엔 우리 제안을 받아줄거라 보는겁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모르죠. 가능하면 미군과 손잡고 저 짐승들 해결보고 무기를 얻어내는게 목표이긴 한데, 어제 만났을때 자기들끼리 해결할 수 있다고 했던걸 보면 받아줄 것 같진 않네요."

"그러면 왜...?"

난 욕실 문앞 바닥에 놓인, 한 때 이 집 주인이 입었을 낡은 티셔츠를 주워입으며 말했다.

"방금 난 짐승과 맞닥뜨리고 싸웠어요. 문제는, 내가 본게 전부가 아닐거라는 점입니다. 규혁씨도, 다른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여긴 서울에서 불과 한시간 거립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서울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수가 시원하게 냉장되어 있다.

난 생수통을 꺼내 들이키며 특임대원들에게 다가가 앉았다.

"미군 지휘관은 자기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적어도 짐승들의 규모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전 그렇게 봅니다. 그러면 적어도 정보 정도는 얻어낼 수 있겠죠."

특임대원들이 서로 돌아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성가연은 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나를 바라보곤 말했다.

"이번엔 협상이 잘 됐으면 좋겠군요."

난 피식 웃었다.

"부딪혀 봐야죠."

이튿날 아침.

편의점에서 털어 온 컵라면으로 간단히 끼니를 마친 우리는 각자 준비를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해가 떠오를거라 예고라도 하듯, 먼 하늘에 푸름이 피어나고 있다.

새벽이라 그나마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여전히 한적한 시내를 걸어 활주로로 들어갔다.

활주로 반대쪽 끝.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우릴 발견한 것같다.

몇 사람이 건물 쪽으로 들어가고, 또 몇 사람이 활주로로 걸어나오는 등 뭔가 바빠보인다.

우리는 서로 돌아보며 활주로를 걸었다.

"미군들이겠죠? 뭐 하는거지? 보초를 서는건 아닌 것 같은데."

성가연이 중얼거리듯 묻는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걸어, 해가 떠올라 세상이 환해질 무렵.

우리는 미군기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오는걸 처음부터 계속 보고 있었던 미군 청년.

어제 그 청년이다.

미군 청년이 턱을 살짝 들며 말했다.

"HEY."

헤이...라.

어투가 꽤나 부드러운데?

성규혁이 갸웃하더니 희미하게 미소띄며 물었다.

"DID YOU GUYS EXPECTING US? CUZ YOU LOOK LIKE IT."

미군 청년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말했다.

"CAN'T SAY NO."

...뭐라는거야...

한국말로 좀 안할래?

미군 청년이 대답직후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곤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시선이라는게...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드네.

미군 청년이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I'M SERGEANT GARCIA. LUKE GARCIA."

악수 하자는건가?

난 미군 청년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표정이 뭔가 말을 기다리는 것같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 아이엠. 훈, 한성. ...훈?"

뭔데 씨발.

영어로 이름 어떻게 말하는데.

아, 성훈 한.

이 놈 이름은 가르시아?

아니, 루크?

미군 청년이 미소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I'M GLAD TO SEE YOU AGAIN, HOON. I ADMIRE YOU."

특임대원들, 성규혁과 성가연 모두 표정이 변했다.

성가연이 물었다.

"DO YOU JUST SAID YOU ADMIRE HIM? WHY?"

미군 청년이 성가연을 보곤 미소지었다.

"I THINK YOU ALREADY KNOW. AND NOW WE ALL KNOW WHAT HE'S CAPEBLE OF."

뭔데.

왜 니들끼리 말하는데.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까막귀가 되어, 난 그냥 서있었다.

"DO YOU...?"

성규혁이 뭔가 말하려는 찰나, 미군 하나가 관사쪽에서 걸어왔다.

미군 청년과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도로 들어간다.

미군 청년이 말했다.

성규혁이 날 돌아본다.

"지휘관께서 우릴 기다린답니다. 전부 들어가라는군요."

난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는, 어제와는 너무 다른 태도의 미군 청년을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관사로 걸어갔다.

중간에 마주친 미군들, 백인, 흑인, 라틴계 남녀들.

그들은 우리를 마주치곤 모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눈빛 참 부담스럽네.

미국애들 빤히 쳐다보는건 참, 우리 문화랑 안 맞단 말이야.

왜 저렇게 보는거야?

이미 한 번 와본 일이 있는 나랑 성가연이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 회의실쪽으로 걸어갔다.

회의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군이 우릴 발견하곤 미소짓는다.

그리고, 다시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내 손을 맞잡은 흑인이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지었다.

"IT'S AN HONOR, SIR. HE'S WAITING FOR YOU."

...뭐라는건데.

누가 통역좀?

성규혁도 성가연도 살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내게 통역해주질 않는다.

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케이?"

흑인 미군이 웃고는 회의실 문을 열어주었다.

넓은 회의실로 들어가자, 어제 만났던 미군 지휘관을 비롯한 몇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미군 지휘관이 날 보더니 환하게 미소지으며 뭐라고 나불나불거렸다.

그러며 손을 내민다.

성가연이 말했다.

"다시 만나길 기대했답니다. 앉으래요."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대원들이 모두 자리에 앉길 기다려 미군 지휘관이 말했다.

난 성가연을 돌아봤다.

그녀가 천천히 내게 시선을 돌린다.

"...전부 봤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는군요."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전부 봤다니? 무슨 뜻이야?"

성가연의 통역을 들은 미군 지휘관이 미소짓고는 옆에 있던 민간인인 듯한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틴계열 남자 민간인이 나를 보며 미소짓더니, 밑에서 프로젝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회의실 벽에서 하얀 스크린을 잡고 쭉 내렸다.

...저건 무슨 홈씨어터같은...

난 그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촬영한거야?"

라틴계 남자가 프로젝터를 재생시켰다.

공중에서 촬영한 화면이었다.

거기엔 나, 그리고 괴물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가 지붕을 박살내며 뛰어든다.

그 순간, 내가 활을 쏜다.

단숨에, 영점 몇 초만에 십여발의 화살이 내 활에서 쏟아져 나간다.

무슨 기관포같네.

대가리가 화살꽂이가 되어버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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