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187)

벽을 박살내며 엎어졌다.

직후, 내 손에서 그림자 전사가 튀어나왔다.

...그림자 전사마저 녹화되었다.

검이 내 손으로 되돌아오고, 활로 마무리하기까지.

모두 녹화되었다.

그리고, 개떼들이 마을에 나타났다.

거대 괴물개, 알파독과 눈싸움을 하고있는 내가 보인다.

...이렇게 보니, 기세에서 딱히 내가 밀리지 않는데?

그리고 녹화분은 끝났다.

회의실은 정적에 빠졌다.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를 성가연을 제외한 다른 특임대원들은 처음 본다.

그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꺼져있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난 천천히 미군 지휘관을 바라봤다.

"...어떻게 녹화한겁니까?"

미군 지휘관이 미소지으며 말했고,

성가연이 통역했다.

"우리에겐 군용 정찰드론이 있습니다."

라틴계열 민간인이 아래에서 하얗고 볼품없는 플라스틱 쪼가리, 아니, 비행기가 되다 만 어설픈걸 올려놨다.

...저게 군용 정찰드론.

미군 지휘관의 말을 성가연이 통역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동향을 알고싶었습니다.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으니 궁금해 하는게 잘못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정찰기를 여러번 날려보내었고, 당신들이 어디에서 묵고 있는지, 또 당신이 저 괴물짐승과 어떻게 싸우는지를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정찰드론으로 우릴 계속 보고있었구나.

밤이라서 전혀 눈치 못챘다.

꽤나 조용히 날라다니는 모양이네 저거.

무슨 작대기에 플라스틱 쪼가리 붙여놓은 것처럼 생겨갖고 성능은 겁나 좋나본데.

...특임대원들을 못 돌아보겠다.

분명히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게 많을거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겠지.

살짝 얼어버린 분위기.

말문을 연 것은 미군 지휘관이었다.

"들려주실 수 없습니까? 어떻게 저렇게 싸우는 것이 가능한 겁니까? 화면을 분석해보니 화살을 한 순간에 9발을 날리더군요. 게다가 혼자 움직이는 검이라고요? 검은색 사람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와서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된 거죠?"

프로젝터를 만지던 라틴계 남자가 몇마디를 덧붙였다.

성규혁이 통역했다.

"화면을 분석해보니 정확히 한 발에 하나씩 좀비를 죽이더군요. 그것도 명중률 낮기로 소문난 잉그램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말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겁니까?"

...씨발.

진짜 전부 다 봤네.

이건 어떻게 얼버무릴 수 없다.

더이상 숨길 수 없다.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건 미군 뿐만이 아니다.

특임대원들도 모두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난 이걸 도저히 설명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눈 앞에 네모난 상태창이 나타난다고?

그것도, 내 눈에만 보이는?

그걸 어떻게 누르고 스텟을 올렸더니 스킬이 생기고 씨발 그걸 어떻게 설명하냐고.

난 성가연을 돌아봤다.

성규혁도 돌아봤다.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보고있다.

...젠장.

그래.

그냥, 심플하게 가자.

난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이 엠 슈퍼히어로."

...뭐 어쩌라고 씨발.

그래, 내가 슈퍼히어로다!

뭐! 씨발 뭐!

성가연과 성규혁. 그리고 특임대원들.

미군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해있다.

눈빛들이 참으로 실감난다.

지 스스로 난 슈퍼히어로라고 지껄이는 놈이 있다니. 만약 그런 놈이 내 앞에 있었으면 일단 한 번 비웃은 다음에 죽빵을 갈겼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게 일어나는 일을 전부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도 없고, 있는 그대로 얘기해서 이 사람들을 이해시킬 자신도 없다.

난 그냥 슈퍼히어로다.

그걸로 퉁쳐보자.

믿든가 말든가는 니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미군 지휘관이 미소짓고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이 한 일은 비현실적입니다. 처음 제가, 우리가 이걸 봤을땐 카메라가 고장난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회의실 문이 열리고, 체격 좋은 미군이 쟁반에 커피잔을 들고 들어왔다.

미군 지휘관이 잔을 받고 한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저기에 시체가 있고, 괴물 짐승이 죽었으며, 괴물 개들이 나타났던것. 그 모두가 당신이 했던 일들을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미군 지휘관은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두 손에 검을 들고 서 있는 나.

거기서 화면은 멈춰있었다.

미군 지휘관이 말했다.

"당신의 능력은 비현실적입니다. 있을 수 없어요.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꽤 잘 조작된 화면이라며 비웃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걸 아십니까?"

미군 지휘관이 나를 돌아본다.

"당신이 비현실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인 만큼, 지금 상황도 비현실적이라는 것을요."

나는 커피를 마셨다.

딱히 마시고 싶었다기 보다는, 대답할 말이 없다.

미군 지휘관이 말했다.

"우리는 가족을 잃었습니다. 정부도 잃었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그리고 밖엔 한 때 우리의 이웃이었고 친구였고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우릴 물어뜯으려 들고 있지요."

그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내게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앞.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서 말했다.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변해버렸으니,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있던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꽤나 잘 받아들였군요. 저는 아직도 이 분의 능력을 볼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드는데 말입니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그의 말투에 왜 진작 이런게 가능하다는걸 알려주지 않았냐는 약간의 책망이 들어있다.

말해서 아, 그렇군요. 라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으면 진작 보여주고 얘기해줬겠지.

그게 불가능하니까 그냥 대충 얼버무리면서 여기까지 온거 아니겠냐고.

미군 지휘관이 희미하게 웃고는, 웃옷 주머니에서 시가를 두 개 꺼내어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시가.

...받지 뭐.

미군 지휘관이 내가 받은 시가를 커터로 잘라주며 말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건 나도 마찬가지니까요. 밤새도록 우리끼리 화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꽤 괜찮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죠."

성규혁이 갸웃하며 물었다.

"...그 결론이란 무엇입니까?"

미군 지휘관이 불 붙여준 시가.

...맛 좋네.

난 성가연이 통역해주는걸 들으며 쿠바산 시가의 깊은 맛을 즐겼다.

성가연이 미군 지휘관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그의 능력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그게 우리의 결론입니다."

미군 지휘관은 성규혁에게 그렇게 말하곤 나를 돌아봤다.

"...당신의 능력은 진짜입니까?"

...대놓고 보여달라는거네.

특임대원들도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진짜 더 숨길 수가 없겠는데.

얼버무릴 수도 없고 적당히 넘길 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좀비들이나 괴물짐승들하고 싸울때는 전혀 들지않던 긴장감이 막 올라올려고 해.

트름 나올 것같다 젠장.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으며 우렁차게 트름을 해버릴 순 없다.

난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허리의 검자루에 손을 얹고 일어났다.

천천히 뽑았다.

스르릉-

미군 지휘관이 테이블에서 내려와 창가에 선다.

내가 뭘 하려는지 옆에서 잘 볼 생각이다.

후우.

그래 뭐.

내 능력, 사람들이 알게 되는것도 시간문제이긴 했어.

난 검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

검자루가 내 손가락을 타고 앞으로 날아간다.

손잡이 끝이 내 손가락을 떠나는 그 순간.

내 뺨에서.

손 끝에서.

내민 팔 아래로 진 그림자에서.

빗금을 긋듯 순식간에 형성된 그림자가 튀어나와 검을 붙잡았다.

슈확!

검을 움켜쥔 그림자 전사.

테이블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그림자 전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를 마주본다.

얼굴이 없다.

"흑!"

성가연이 소스라치며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이 소리를 내며 우르르 일어난다.

그래.

무섭겠지.

나도 이 얼굴도 없는 시커먼걸 처음 봤을땐 제법 놀랐었거든.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경악.

놀라움.

공포.

경이로움.

각자의 얼굴에 각자의 심정을 담은 표정을 보이며, 사람들은 나를 둘러싸고 서 있다.

...돌아와.

그림자 전사가 몸을 웅크린다.

그리고, 나를 향해 힘껏 도약한다.

코 앞에서 닥쳐들어온 그림자 전사는, 내 손에 검을 쥐어주고는 큐빅처럼 분해되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이 놀란 소리를 낸다.

나는 천천히 팔을 내려, 검집에 검을 꽂아넣었다.

스르릉-착.

"...됐습니까?"

미군 지휘관은 미소짓고 있었다.

그러나 뺨으로 땀이 한방울 흘러내리고 있다.

그가 말했다.

"THAT... IS FASCINATING."

...뭐라는건데.

누가 통역좀.

성가연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있을 뿐, 반응이 없다.

이 여자.

내가 그림자 전사를 발동시켰을 때 바로 옆에 있었지만, 가속 상태였지.

순식간에 번쩍번쩍하며 갈려나갔다는 인상밖에 없었을거다.

그림자 전사를 직접 코 앞에서 본건 처음인거다.

얼굴 보니 많이 놀랐네.

다른 특임대원들도 그녀와 그리 다르지 않다.

미군 지휘관이 말을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던 성규혁이 지휘관과 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상황을 받아들인건 성규혁이 가장 빨랐다.

그가 말했다.

"지휘관이 묻기를, 방금 그 건 당신이 원하는 때에 아무때나 불러낼 수 있냐는군요."

힘을 다 쓰면 무쓸모가 되긴 한데, 불러내는거야 내 마음대로 가능하지.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군 지휘관이 말했다.

성규혁이 듣고있다가 내게 통역해주었다.

"...우리를 도와줄, 아니, 우리의 작전에 함께 참여해주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그렇지.

이걸 기다렸다.

난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말했다.

"어떤 작전인지 한 번 들어보고. 그리고, 댓가에 대해서도 당연히 이야기를 해야 되겠지."

미군 지휘관이 미소짓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NOW WE'ER TALKING."

...나우 위어 토킹?

우리는 지금 얘기하다?

지금까지 얘기 실컷 잘 해놓고 뭔 소린지.

하여간 영어는, 쯧.

난 미군 지휘관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그때 성규혁이 통역해주었다.

"이제 얘기가 되는군요, 라는군요."

...그런 뜻이었냐.

통역 좀 바로바로 해라, 좀.

미군 사령관과 나는 그렇게 악수를 나누었다.

...처음 본다.

이렇게 큰 헬기는.

군에 있을 때도 이런건 못 봤는데.

미군 지휘관이 말했다.

"CH-47 치누크. 이게 우리 험프리스 기지에서 링컨 핵항모까지 무기를 수송할 운송수단입니다. 전장 51피트... 아, 15미터 정도에 전후 프로펠러 길이가... 30미터 정도? 되는, 10톤의 화물이나 사람을 공중으로 수송할 수 있죠."

난 성가연을 돌아봤다.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피트를 미터로 옮기는거 어렵단 말이예요. 대충 곱하기 3 했어요. 왜요."

...피트라는 단위가 있는것도 처음 알았다.

난 입꼬리를 내리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입술을 삐죽 내미는 성가연에게서 시선을 돌려, 치누크를 다시 올려다봤다.

프로펠러가 두 개.

끝에서 끝까지, 30미터짜리라고.

공중수송, 10톤.

...어마어마한걸.

햇살이 네모낳게 땅을 비추는 격납고 안에는 치누크 네 대가 나란히 들어있었다.

어쩐지, 하늘에서 봐도 하얀 건물, 크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괴물을 네 대나 집어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다.

옆에 있는 하얀 건물엔 전투기도 들어있는건가?

미군 지휘관이 말했다.

"우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치누크 조종사는 제법 살아남았으니까요. 한 번에 두 대 운용 가능합니다."

난 헬기를 올려다보며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거...다행이군요."

이런거 우리도 하나 갖고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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