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87)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천천히 반회전하여 유턴해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

그리고는, 멀리 도시가 보이는 쪽 기슭에 천천히 보트를 몰아 갖다댔다.

"도착한 모양이지?"

중얼거리자, 뒤에 앉아있던 성가연이 내 등을 톡톡 두드리더니 먼 산을 가리킨다.

봉우리와 봉우리가 만나는, 꺾어지는 계곡과 절벽.

그곳에, 누가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놓은 듯한 검은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

누가 일부러 저렇게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겠다.

저걸 박쥐가 파서 만들었다고?

안 무너지나?

미군 특작대원들이 각자 손에 화기를 두개씩 들고 보트를 내렸다. 그리고, 앞의 작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위 바위와 돌 등, 가능한 높은 곳에 자리잡은 후, 손에 든 무기를 어깨에 올린다.

...대전차 로켓이다.

성규혁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AT-4. 괜찮네요."

대전차 로켓을 든 미군들 중 하나가 말했다.

"FIRE."

그 순간, 여덟개의 대전차 로켓이 일제히 화염을 방출하며 튀어나갔다.

대지를 짓누르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강물이 파장에 밀려 물보라를 일으킨다.

동시에, 주위에 서있던 나뭇잎이 크게 흔들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무슨 잔상 같은게 스쳐지나간 것 같다.

여덟발이 한 순간에 내뿜은 폭음은 훈련된 군인들조차 순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쐐애애애액!

난 고개를 돌려 동굴을 바라봤다.

족히 2킬로미터는 떨어진, 먼 목표.

그곳에, 로켓이 작렬했다.

동굴 안에, 위에, 옆에.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이 서로 부딪히며 파편과 바위를 맹렬히 휘날린다.

후드득.

뭐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바위를 돌아보니, 미군들이 방금 쐈던 발사대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대전차 로켓을 들어 어깨에 얹는다.

미군이 말했다.

"FIRE."

쿠화화화확!

고막을 찢어버릴 것같은 강렬한 파공음이 화염과 함께 공기를 찢어발겼다.

직선인듯, 직선이 아닌 듯 뻗어나간 여덟발의 대전차 로켓.

아직도 희뿌연 연기를 뿌리며 괴로워하는 동굴에 작렬했다.

그리고,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바위가 떨어지고, 동굴이 무너지며 폭탄 터지듯한 소리가 연이어 퍼진다.

언덕과 바위 위의 미군들이 손에 든 발사대를 옆으로 집어던지곤, 빈 손으로 내려와 능숙하게 리버린 보트에 올랐다.

"GO, GO, GO!"

모든 미군이 탑승한걸 확인한 특작대원이 소리쳤다.

우르르르릉!

두 대의 리버린 보트의 엔진이 으르렁거리며 깨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괴성이 뻗쳐나왔다.

그것은 느닷없이 들려오는 삐- 하는 이명 같기도 했고, 높게 울부짖는 아기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섬뜩한 소리는 산과 산, 돌과 바위에 부딪혀 멈추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우리를 덮쳤다.

리버린 보트에 설치된 중화기를 잡은 승무원들이 소리가 난 방향, 동굴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동시에, 리버린 보트가 출발했다.

으르르르르릉!

희뿌연 연기를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리고 있는 동굴.

무너지고 박살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동굴.

그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구름을 가리웠다.

그리고, 찢어지는 포효가 다시금 공기를 밀어냈다.

너무나 거슬리는 소리라 귀를 틀어막고 싶어진다.

"크윽."

좌우의 미군과 특임대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희뿌연 연기구름을 가리운 그림자.

그 속에서 시커먼 형체들이 메뚜기떼처럼 하늘로 우르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타났다.

펼친 날개.

찢어지고 구멍나고 헤집어진, 거친 가죽날개.

무너진 동굴을 압도하는, 연기구름마저 날개짓에 둥글게 휘말리는, 거대한 짐승.

놈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인 박쥐떼가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박쥐를 합쳐놓은 것같은 거대한 짐승이 활공하듯 날개를 펼친 채 공중을 날아온다.

고막이 뒤흔들린다.

놈의 포효가 산과 숲 전체를 밀어젖혔다.

소리에 밀려 넘어질 것만 같다.

그리고, 산이 포효했다.

짐승의 소리가 산 전체에서 화답하듯, 저항하듯, 경고하듯 쩌렁 쩌렁 울려퍼졌다.

좀비들이 내게 달려들 때 짖어대듯이, 산 속 짐승들도 그렇게 짖어올렸다.

리버린 보트는 물살을 맹렬하게 가르며 강을 질러 달렸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박쥐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빠르다.

엄청나게 빠르다.

리버린 보트에 장착된 중화기 사수들이 미니건과 M2, M240을 돌려 우릴 쫓아오는 검은 하늘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그 때, 수풀이 움직였다.

숲과 수풀이 일제히 파도쳤다.

크르렁, 으르르르렁!

짖어대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로 그늘진 파도가 햇살을 밀어젖히며 산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FIRE!"

미니건 사수가 힘껏 소리치자, 리버린 두 대의 모든 사수들이 화답하며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탑승해있던 특임대원들과 특작대원들도 각자 개인화기를 들어올려 하늘을 향해 탄환을 갈겼다.

10여미터 길이의 리버린 보트 위에 화염의 꽃밭이 일시에 피어올랐다.

수많은 탄환의 비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단발적인 총소리가 아니다.

벌떼가 날아다니듯한 소리가 난다.

부우우우우웃-

부우우우우웃-

고막이 뒤흔들린다.

난 이를 악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아오던 박쥐들이 무수한 탄환에 꿰뚫리고 찢어져 파편이 되어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리버린 보트의 운전자가 힘껏 소리쳤다.

"THREE O' CLOCK! THREE O' CLOCK!"

리버린 보트 좌측의 중화기 사수들이 일제히 총구를 숲쪽으로 돌렸다.

수풀이 파도친다.

파도가 다가온다.

강가에 다다랐다!

부우우우우웃!

미니건과 M2가 일제히 화염의 꽃을 피워올리며 탄환의 소나기를 쏟아냈다.

때르르르륵!

탄피가 우수수 쏟아지는게 무슨 동전 쏟아지듯 하다.

캥! 캐애액! 크뤠륽!

숲 속에서 괴성과 포효가 동시에 울렸다.

풀과 나뭇가지와 피와 살점이 동시에 허공으로 번쩍번쩍 치솟아 오른다.

총알을 얻어맞은 나무가 파편을 사방으로 휘날린다.

물보라와 나무파편과 풀과 굉음이 뒤섞인 칵테일이 내 얼굴을 덮쳤다.

온 몸이 따끔따끔하다.

난 침을 탁 뱉고는 뒤를 돌아봤다.

온전히 화력이 집중되고 있을 때 접근조차 하지 못하던 박쥐떼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숲 속의 파도도 맹렬하게 들이쳐 리버린 보트를 앞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숲 속에서 짐승들이 튀어나왔다.

크르르뢁!

단숨에 뛰어든 거대한 짐승들이 강변으로 뛰쳐들어왔다.

육중한 덩어리들이 물을 짓밟자 폭탄 터진 듯 물보라가 치솟는다.

"SHIT!"

보트 운전수가 욕을 지껄이더니 핸들을 확 꺾었다.

강 가운데를 달리던 리버린 보트가 드라마틱하게 물살을 가르더니, 드리프트하듯 방향을 틀어 반대쪽 강변에 붙어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 사수들이 휘청거렸다.

더러 넘어지기도 했다.

"꽉 잡아! 빠지지 마!"

성규혁이 소리친다.

난 성가연의 손을 잡고, 보트 바닥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누가 비명을 지르는지 아닌건지 모르겠다.

너무 여러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보트가 간신히 균형을 잡았음을 인지하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뒤에서는 박쥐들이 쫓아오고 있다.

앞에서는 짐승들이.

...개떼들이다.

마을에서 마주쳤던 그 놈들이다.

적어도 스무마리는 되어보인다!

난 성가연의 손을 놓고는, 허벅지에서 잉그램을 하나 꺼내들었다.

바닥 손잡이를 놓을 수가 없다.

이걸 놓으면 좌우로 계속 꺾여대는 보트에서 튕겨나갈거다.

뒤쪽에서 쫓아오는 박쥐들은 아직 여유가 있다.

하지만 저 앞.

멀리서 강 속으로 풍덩풍덩 들어가는 개떼들과는 순식간에 맞닥뜨리게 된다.

놈들은 우릴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다.

나는 사수들 사이로 잉그램을 내밀며 놈들을 조준했다.

투명한 원형이 눈 앞에 나타난다.

제기랄, 보트가 너무 흔들려.

자칫하다간 선수측 미니건 사수의 허벅지를 맞출 것같다.

쯧.

혀를 차고는, 뒤돌아 잉그램을 내밀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박쥐 정도는 충분히 이걸로 견제가...

그 순간, 지진이 터졌다.

지진?!

아니다.

소리다!

산 전체가 뒤흔들리는 소리.

누오어에에에엑!

귀를 찢을 것같은 소리가 사방으로 쩌렁! 퍼져나갔다.

벌떼가 날아다니듯한 소리를 터뜨리는 우리의 중화기조차 압도하는 소리다.

그리고, 나무가 쩌저적 무너지며 거대한 형체가 드러났다.

언덕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는 것같다.

그것은 거대한 그림자를 남기며, 먼 앞의 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캐애애액! 캐애애액!

괴물 개떼들이 강 속에서 포효한다.

아니, 절규에 가깝다.

물보라를 거세게 튀기며, 놈은 개떼를 덮쳤다.

거대한 짐승이 쩌억 벌어진다.

아가리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마치 악어처럼, 목까지 찢어지며 벌어진다.

생긴건 시커먼 돼지같으나, 그러나 저렇게까지 흉포하게 생긴 돼지는 살면서 본 적이 없다.

산의 주인.

괴물 멧돼지다.

놈이 뛰어든 강물은 거대한 파동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파동은 해일이 되어 우리를 덮쳤다.

"FUCK!"

강변에 가까스로 붙어 달리던 리버린 보트가 해일과 충돌했다.

"크악!"

두 척의 리버린 보트가 모두 해일에 떠밀려 뭍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미군들과 특임대원들 모두가 우르르 넘어지며 진흙탕을 굴렀다.

"풋!"

난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 쓴 채 고개를 쳐들었다.

대원들이 강변 사방에 흐트러져 있다.

눈가를 가리는 흙탕물을 손으로 밀어낸다.

고개를 내려보니, 리버린 보트는 이미 강을 달릴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와 있다.

난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씨발!"

미니건 사수 하나가 리버린 보트에 깔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구해야 돼!

난 미군을 향해 철벅철벅 달려가며 먼 하늘을 바라봤다.

박쥐떼가 몰려온다.

제기랄, 온다!

난 잉그램을 치켜들었다.

이걸로 다 못 죽여!

다른 손으로 잉그램을 잡으려는 찰나.

뒤통수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우우우읏!

동시에, 빛의 창같은 화망이 하늘에서 덮쳐오는 박쥐떼를 덮쳤다.

끼에에엑! 끼에에에엑!

사람만한 박쥐들이 날개가 찢기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며, 말 그대로 공중분해되어 땅으로 우르르 떨어져 내린다.

난 숨을 들이키며 뒤돌아봤다.

미군기지!

코 앞까지 도착했었어!

미군기지의 관사 지붕에서 십여대의 미니건이, M2가, 개인화기가 하늘을 향해 초당 만 발에 달하는 화망을 소나기처럼 뿌려대며 박쥐떼의 접근을 원천차단했다.

"후!"

난 숨을 내쉬곤 곧장 리버린 보트의 바닥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온 몸을 일으키며 들어올렸다.

"크으으으읍!"

으드득.

이가 갈린다.

들리긴 들리나, 이거!

미친, 존나 무겁네!

내가 애쓰고 있자, 미군과 특임대원 하나가 내 양 옆으로 달려와 리버린 보트를 함께 들어올렸다.

성가연이 달려와 깔려있던 미군을 붙잡고 빼낸다.

다리가 깔려있던 미군이 몸부림치며 바닥을 밀어댄다.

그리고, 마침내 빠져나왔다.

"달려! 기지로 달려!"

끌어낸 후 타격한다.

애초에 그게 작전내용이었다.

작전상 돌발상황이야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 번에 세 개체의 우두머리가 모두 튀어나오다니.

이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가 도발당하면, 다른 놈들도 같이 도발되는 거였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