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87)

그럴 거라는걸 누가 알았겠냐고.

보트가 밀려 뒤집어지는 바람에 부상자가 여럿 발생했다.

특임대원들과 특작대원들이 부상자를 어깨에 들쳐메고 부축하며 일제히 기지를 향해 달려갔다.

부우우우웃!

부우우우웃!

기지에서 펼치는 지원사격의 화망을 머리 위로 보내며, 나는 두 손에 잉그램을 하나씩 쥐고 대원들을 따라 달렸다.

미니건 십여대를 비롯한 중화기와 개인화기들의 화망.

제법 강력한데.

박쥐는 이제 걱정 없...

우르르르릉!

우드득, 콰드득! 콰직!

오른쪽에서 섬칫한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강 속에 있는 거대한 괴물.

우두머리 멧돼지가 개들을 씹어먹고 있었다.

개떼를 이끌던 거대한 진돗개가 멧돼지의 등을 타고 올라 물어뜯고 있지만, 그러나 역부족이다.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으드득, 콰자작!

뼈 씹는 소리.

물 속이라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개들을 단숨에 씹어먹은 거대한 멧돼지가 고개를 쳐든다.

우르르르릉!

포효한다.

그리고, 물 속으로 대가리를 처박았다.

목덜미를 물고있던 거대 진돗개가 그대로 강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나는 달려가며 그 광경을 끝까지 봤다.

괴물들끼리의 싸움이라니.

미친!

잠시 후, 고래가 튀어나오듯이 물이 불룩하게 솟아오르며, 거대한 짐승이 대가리를 쳐들었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강을 통째로 퍼내려는 것같다.

반쯤 뜯껴진 좀비들의 사지가 물보라와 함께 공중을 날아다닌다.

콰드득!

뼈 씹는 소리.

팔로 물을 막아내곤 고개를 들었다.

괴물 멧돼지가 거대 진돗개를 입에 물고 씹고있었다.

으드득!

콰자작!

씹을 때마다 괴물 멧돼지의 몸이 불쑥거린다.

근육이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다.

놈의 덩치가 거기서도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미친새끼네 저거.

놈이 개를 씹으며 고개를 내렸다.

거대하고 시커먼 눈동자.

나를 바라본다.

나도 놈을 바라봤다.

등줄기가 섬칫하다.

그리고 동시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

나를 봤냐?

덤벼.

죽여줄테니까.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부우우우웃-

관사의 지붕에서 출발한 중화기의 화망이 공중에서의 접근을 원천차단하고 있다.

철벅거리며 뛰어가는 군인들, 특임대장, 성가연. 그들의 뒷모습을 앞에 두고, 나도 달리고 있다.

괴물 멧돼지를 노려보며.

부우우우웃-

괴물 멧돼지가 고개를 홱 돌린다.

제기랄, 대가리만 해도 1톤 트럭 크기다.

저렇게 큰 짐승이 있다니!

심장이 뛴다.

놈은 온 몸에 난 시커먼 털을 부르르 털었다.

그리고, 아가리를 쳐들며 포효했다.

누오오오오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눈을 돌린다.

미군 관사.

중화기 화망의 빛을 지붕에서 펼치고 있는 건물.

번뜩이는 빛과 발포음이 놈의 주의를 끌었다.

놈이 대가리를 숙인다.

촤아악!

물보라가 치솟는다.

달릴 작정이다.

난 잉그램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놈과 관사를 번갈아 쳐다봤다.

미군 관사.

괴물 멧돼지.

그리고 나.

이 삼각형은,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코 제 시간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다.

누오오오왉!

괴물 멧돼지가 대가리를 쳐들었다.

그리고, 강물을 우렁차게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미친!

저 괴물이 건물을 들이받으면, 저기 있는 놈들은 다 죽는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오늘 처음 발동한 가속.

앞서 뛰어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공기의 파장.

멀리서 불어오는 실바람.

괴물의 포효가 남긴 파동.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밀어놓은 젤리마냥 눈 앞에서 일렁거린다.

강물을 가르며, 강바닥에 깔려있던 좀비들의 파편을 물과 함께 날려보내며, 관사를 향해 느릿하게 달려가는 괴물 멧돼지.

나는 놈과 관사의 중심을 향해 뛰었다.

느릿해진 특임대원, 성가연, 미군 특작부대들이 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스치듯 뒤쳐지며 지나간다.

땅을 밟을 때마다 진흙이 짓밟히며 소리가 밀려난다.

촤아- 촤아-

시야를 가로막는 사람들을 빠져나왔다.

이제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농지.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며 나는 두 팔을 내밀었다.

잉그램의 앞쪽에 투명한 원형이 피어난다.

왼쪽 원형, 오른쪽 원형.

먼 거리에서도 양쪽 원형을 합쳐야 겨우 온전히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괴물 멧돼지.

놈이 붉게 타오른다.

수십, 아니, 수백개의 붉은 빛이 놈의 온 몸에서 파스텔톤으로 번져나간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으드득.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탄환이 공기를 나선으로 말아내며 총구에서 튀어나간다.

튀어나간 탄환이 옆으로 스쳐지나간다.

말리며 넓어지는 공기의 나선.

그것을 옆으로 휘날리며, 나는 탄창이 빌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철컥.

탄창!

땅을 힘껏 짓밟으며 멈추고는, 즉시 탄창을 빼냈다.

동시에 손을 놓고, 허벅지에서 탄창을 빼들어 교체했다.

허공에서 느릿하게 돌아가는 두 개의 탄창.

붙잡아 허벅지에 끼우곤, 제 멋대로 돌아가는 잉그램 두 정을 움켜쥐었다.

강에서 뛰쳐오른 괴물 멧돼지.

앞발이 뭍에 닿았다.

뒤이어 뒷발이 땅을 짚으려 한다.

난 즉시 앞으로 뛰어가며 팔을 내밀었다.

투명한 원형.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젖은 발소리와 잉그램이 발포되는 소리.

나선으로 말리며 퍼지는 공기의 밀림.

그리고, 중화기의 느릿한 소음.

당기며 뛰는 사이, 나는 깨달았다.

닿을 수 없다.

놈이 건물을 들이받는걸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타격을!

타격을!

드득, 철컥!

단숨에 두 개의 탄창을 비우고, 새로운 탄창으로 교체하곤 잉그램을 내민다.

놈은 이미 뒷발로 땅을 박차고 있었다.

가속을 지금 몇번째 쓰고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달리며 쏠 뿐이다.

이게 마지막 탄창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 탄환이 놈의 몸에 들이박히기 시작했다.

목에, 턱주가리에, 눈에, 앞발에, 뒷발에, 복부와 허벅지에.

빗발처럼 내 탄환이 들이박힌다.

난 끝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그러며 달렸다.

아직 멀다.

너무 멀다.

좀 더.

조금만 더 빨랐으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으면!

느우우우우어어어어-

괴물 멧돼지가 타격을 입고, 포효를 지른다.

그러며, 땅을 박차고 튀어나간다.

순간적으로.

가속 상태임에도 놈의 모습이 잔상처럼 밀려난다.

엄청나게 빠른거다.

드득, 드득, 드득, 철컥.

...탄창이 비었다.

...더이상 없다.

난 힘껏 뛰며, 동시에 잉그램을 허벅지에 꽂았다.

활이라도.

이거라도 쏴야...!

팔을 돌려 활을 집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돌격해 들어간 멧돼지의 대가리가 관사와 충돌했다.

그리고, 가속도 끝났다.

"흐윽!"

제기랄!

속으로 욕하는 사이, 멧돼지 대가리가 관사를 뭉개며 쑤욱 들어간다.

우르르, 콰르르릉!

단숨에 벽과 기둥이 무너지며, 놈이 엎어졌다.

엎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터진다.

왜애애애애액!

엎어지며 비명을 지른다.

박살난 벽돌과 기둥파편이 순간적으로 연기구름을 피워올린다.

투슛-

활을 뽑았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됐어, 메세지는!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냐!

뛰어가며 화살을 뽑는데, 마음 속으로 의문이 스쳐지나간다.

괴물 멧돼지.

짖으며 엎어지는 모양새가 이상했어.

방금 내가 쏟아부은 탄환.

180발.

모두가 약점에 제대로 명중했다.

놈의 왼쪽 면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

그래서인가.

난 이를 악물고, 뛰어가며 활에 화살을 매겼다.

화살.

총보다 느리긴 해도, 확실히 약점에 꽂아넣을 수 있다.

시위를 당기려던 찰나였다.

관사의 귀퉁이가 쩌억 갈라지며 무너져내렸다.

쿠르르릉!

옥상에 올라있던 미군들이 단숨에 휘말려 아래로 추락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멈췄다.

옥상이 펼치던 중화기의 화망이 멈췄다.

놀랐기 때문인가.

혹은 건물이 무너지는 충격 때문인건가.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에, 그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고 있지 않다.

모두가 무너진 면을 바라보고 있다.

"성훈씨이!"

여자 목소리.

누가 소리를 지르는거지?

아아, 성가연.

왜 소리질러?

나는 달려가며 뒤를 힐끗 돌아봤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이 시커매졌다.

등줄기가 섬칫하다.

고개를 들려는 순간, 무언가가 내 몸을 꽉 옥죄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컥!"

들고있던 활을 놓쳐버렸다.

퍼어얼럭!

태풍에 천막 휘날리는 소리.

땅이 번쩍 멀어진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작아진다.

건물의 지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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