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87)

"큭!"

배가 고통스러워.

배를 움켜쥔 것을 내려다봤다.

두터운 발톱들이 내 배를 파고들어가 있다.

뒤돌아보니, 가장 먼저 보인건 시커먼 털.

한가닥 한가닥이 밧줄같다.

그리고,

퍼어얼럭!

맹렬한 강풍이 내 머리칼을 휘날린다.

그리고, 몸이 휘청이며 굽혀졌다.

"크윽!"

하늘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날개짓 한 번에 수십미터씩 날아오르는 것같다.

고개를 들어, 바람에 밀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린다.

놈이 보였다.

나를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박쥐.

너무나 거대해, 하늘을 그대로 가려버릴 것만 같다.

퍼어얼럭!

"크악!"

몸이 휘어진다.

발톱이 배를 파고든다.

"이...!"

난 이를 악물고는, 내 몸을 움켜쥔 발을 붙잡고 힘껏 잡아뜯었다.

콰지짓!

비늘같은 피부가 한웅큼 뜯겨나간다.

뜯어지는구만!

나는 내 뱃가죽에서 흘러나온 핏방울들이 저 아래로 번쩍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놈의 발을 계속 잡아뜯었다.

푸지직!

그 순간, 하늘로 끝없이 날아오르던 놈이 몸을 비틀었다.

내 몸도 사방으로 휘날리며 이리저리 꺾였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난 놈의 발톱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버텨!

버텨야 돼!

그 때, 몸이 번쩍 위로 들렸다.

반사적으로 뒤돌아본다.

놈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놈이 포효한다.

끼에에에엑!

귀가 터질 것같다.

난 이를 악물고 놈의 포효를 견뎠다.

놈의 쩍 벌린 아가리가 급격히 확대된다.

입천장까지 돋아있는 무수한 이빨들.

난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이빨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발을 들어 놈의 아랫턱을 짓밟았다.

"씹!"

잡아먹힐 것같냐!

놈이 포효했다.

끼에에에에엑!

소리에 밀릴 것같다.

정신 나가겠네 진짜.

으드드득!

가슴에서 불쾌한 느낌이 올라온다.

"퍼헉!"

숨을 못 쉬겠다.

놈이 움켜쥐어 갈비뼈가 부러진거다.

"커헉!"

울컥.

입 안에서 쇠 맛이 단숨에 퍼진다.

붉은 피가 울컥, 하고 내 입을 탈출한다.

놈이 아가리를 다물려 한다.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으드득.

가슴이 터질 것같아.

발톱이 배를 파고든다.

고통스럽다.

난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이를 갈며 말했다.

"내가 죽을 것같냐...!"

한 손으로 놈의 이빨을 움켜쥐고,

한 발로 놈의 턱을 짓밟은 채,

나는 검을 뽑아 던졌다.

내 손끝에서, 눈가에서, 팔에서, 다리에서, 몸에서, 잔상이 모여들어 뛰쳐나간다.

슈확!

그림자 전사가 내 검을 움켜쥐었다.

나는 명령했다.

죽여.

움켜쥐며 떠올랐던 그림자 전사가 즉시 손을 내밀어 놈의 수염을 움켜쥔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회전하며 놈의 턱을 짓밟고 뛰어올라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찌르고, 베고, 찌른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휘날린다.

괴물 박쥐의 턱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전해져 온다.

내가 떠는게 아니다.

놈이 떠는거다.

끼에에에에엑!

놈이 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퍼덕였다.

공중으로 더욱 치솟는다.

몸이 휘청인다.

둔한 느낌이 올라온다.

전기에 감전된 것같다.

"크아윽!"

으드득!

갈비뼈가 다시 부러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잘라, 잘라내!

이 놈을 잘라!

더이상 공중으로 떠오르지 못하게!

박쥐의 머리를 찔러대던 그림자 전사가 멈칫했다.

그림자 전사가, 뇌수가 드러난 놈의 머리를 짓밟고 등으로 뛰어갔다.

보이지 않는다.

단지,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괴물 박쥐의 등을 베고 썰어대는 소리가.

베는 소리, 써는 소리, 찌르는 소리.

온갖 소리들이 귀를 파고든다.

움켜쥐고 있는 괴물 박쥐의 이빨.

짓밟고 있는 괴물 박쥐의 턱.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림자 전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피와 살점이 하늘로 튀어오를 때마다, 괴물 박쥐는 턱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놈이 괴성을 질렀다.

끼에에에엑!

고막이 뒤흔들린다.

귀에서 전기가 지징거리는 것같다.

울컥.

놈의 목구멍에서 피가 치솟아 역류한다.

철퍽, 하고 내 몸을 뒤덮는다.

놈이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에엑!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소리도, 턱의 떨림도, 날개짓조차.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나는 뜨끈한 피를 뒤집어 쓴 채, 미소지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숨조차 쉴 수 없는 압박과, 배를 찔러 들어오는 놈의 발톱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나는 미소지었다.

죽어라.

그대로 죽어 사라져라.

푸칵!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 박쥐의 몸이 크게 뒤흔들린다.

그리고 들려오는, 엄청난 속도로 베어내는 소리.

내 몸을 붙잡고 있는 놈의 발톱이 스르륵 풀어진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떨어진다.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모른다.

이대로 떨어지면, 나는 죽는다.

난 반사적으로 박쥐의 밧줄같은 털을 움켜쥐었다.

스르륵-

내 몸을 움켜쥔 놈의 뒷발.

풀려났다.

그리고, 놈의 뒷발이 멀어진다.

멀어지고 멀어져, 밑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렇군.

잘라내라고 명령했었어.

날개라도 잘라내려나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그림자 전사는, 놈의 허리를 수십차례 베어 끊어놓은거다.

괴물박쥐의 눈이 풀어진다.

끼에에에엑-

비명이 아니다.

이건, 신음이다.

난 본능적으로 놈의 털을 붙잡고 기어올랐다.

"크윽...!"

아프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배가 아프다.

하지만, 손을 놔버리면 이대로 추락해버릴거다.

안돼.

내가...

내가 죽을 것같냐...!

속절없이 휘적대는 날개에서도 서서히 힘이 풀리는 모양이다.

거대한 한 쌍의 날개가 제 멋대로 꿈틀대며 퍼덕인다.

몸이 좌우로 뒤흔들린다.

"큭, 흑!"

난 고통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불어오는 강풍을 견뎌가며 놈의 몸을 타고 올랐다.

그리고, 놈의 목덜미로 기어올라갔다.

커러럭, 케레레렉.

놈이 피를 울컥, 울컥 토해낸다.

허리부터 끊어져 뒷발이 없는 거대 박쥐.

푹, 파직!

뒷덜미로 올라가보니, 그림자 전사가 여전히 놈을 베고있다.

난 손을 내밀었다.

돌아와.

그림자 전사가 나를 홱 돌아본다.

그리고 내게 뛰어들며 손을 내뻗었다.

타악!

검이 내 손에 들어왔다.

동시에, 가슴에서 찌르는 통증이 욱씬, 올라왔다.

"흐극...!"

두개골이 썰리고 벗겨져, 뇌수가 거의 드러나, 허리 아래로 내장을 뿌리며, 박쥐는 서서히 아래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난 놈의 목덜미에 검을 찔러넣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다.

괴물 박쥐는 오르던 동력을 잃고, 서서히 아래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땅이 보인다.

...무슨 구글맵 보는 것같네.

미친, 얼마나 올라온거야?

공기가 차갑다.

이 여름에.

"흐윽, 흐윽!"

숨쉬기가 힘들어.

박쥐의 날개가 바람에 밀려 퍼덕이더니, 이내 뒤로 접혀버렸다.

추락하고있다.

땅으로, 그대로 자유낙하 하고있다!

"흑, 흐윽, 크흑."

미친.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되는거지?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접힌 날개와 펄럭이는 털이 있을 뿐.

...그래.

물 속에 떨어지면 어쩌면...!

난 털을 움켜쥐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강은 그저 선 하나를 그어놓은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

...저기에 정확히 착지하는건 무리다.

저 물에 떨어졌다 해도, 이 높이에서 무사할 수가 없다.

가속은 모두 써버렸다.

가속 횟수가 남아있다 해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진 못할거다.

이대로 땅에 도달하면, 도대체 시속 몇킬로로 추락하게 되는건지 가늠도 안 된다.

나라는 인간의 형체도 남지 않을거다.

미친듯이 바람이 불어온다.

아니, 내가 공기를 찢으며 내려가고 있는거다.

손톱만하던 논밭마지기들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씹..."

머리칼을 뽑아버릴 듯한 광풍.

온 몸을 휘날리며 나는 땅을 내려다봤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그때 내 눈에 뭔가가 보였다.

관사를 들이받았던 괴물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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