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187)

성규혁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냥 미친놈이네요. 그런데 그렇다고 뭐 어떻게 할 수도 없겠고."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네. 직원들이 좀 생존해 있기를 바랬는데 이래갖곤 기대할 수 없겠군요. 안 되면 여길 포기하고 다른 원전으로 가보는 것도 방법이긴 합니다."

맞는 말이야.

시설이 있어도 관리할 사람이 없으면 어차피 무쓸모다.

그러나 지금은 종말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다른 원전이라고 상태가 좋을건가?

만약 다른데도 다 전멸했으면?

난 고개를 갸웃하곤 말했다.

"일단 어떻게 되나 봅시다. 안 되면 가는건데, 하는데까진 해봐야죠."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자 흰 가운의 남자가 네모난 건물의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저게 신호인가본데.

성규혁이 풀을 다시 뜯어 철조망에 던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송중사가 투덜거렸다.

"어차피 기어갈거면 밑에 좀 잘라내면 안됩니까?"

성규혁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 산이 바로 앞이다. 작은 짐승이나 쥐 같은거라도 들어오면 난감해져. 기어간다."

송중사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아, 진짜. 저 미친놈 믿고 이걸 기어서 지나가야 되는겁니까."

성규혁도 그 말에 건물 창가의 흰 가운의 남자를 다시한번 돌아봤다.

내키지 않는 얼굴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 도로가에 방치된 트럭과 트레일러, 승용차 따위가 보였다.

난 차를 턱짓하며 말했다.

"저거 쓰죠."

그러며 차를 향해 걸어갔다.

건물을 보니 흰 가운의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우리를 보고있다.

왜 안 들어오나 싶은거겠지.

당신이 미친소리만 안 했으면 기어서 들어갔겠지만 말이야.

공간발톱과 돌개바람을 활용해 사람들을 싣고 여길 뛰어넘는 방법도 있긴한데, 현재 쓸 수 있는 공간발톱은 7회다.

미친인간도 있고 산에서 으르렁도 들은 마당에 공간발톱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공간발톱은 무효다.

난 트레일러 앞에 섰다.

승용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큼직한 타이어.

도로에 닿아있는 여섯개의 타이어와, 그 위에 얹히듯 달려있는 보조타이어.

...이걸 쓰면 되겠어.

"타이어 빼내겠습니다."

송중사가 달려들어 공구로 보조타이어를 빼내기 시작했다.

특임대원들도 몇몇 달라붙어 빼내는걸 도왔다.

잠시 후 타이어를 완전히 빼내고는, 두 사람이 바닥에 대고 굴려가며 철조망에 갖다댔다.

그리고는, 힘껏 밀어붙였다.

우드드득!

철조망이 부대끼며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소리 뿐, 끊어지진 않았다.

겨우 나있는 틈새로 특임대원들이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들어갈 때까지 나는 산과 주위를 살피며 경계했다.

아무래도 산이 신경쓰인다.

아까 들은 으르렁.

전기가 끊어진 지금 나타나면 고압전류고 뭐고 무쓸모다.

싸울 수밖에.

그러나 다행히도 모든 대원들이 건널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훈씨."

성가연이 건너편에서 내게 손짓했다.

젠장.

공간발톱으로 뛰어넘어가고 싶네.

...두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 젠장. 갈등돼.

몸을 슬쩍 굽혀봤더니 내 그림자가 보인다.

허벅지에 잉그램들.

허리에 두 개의 검.

그리고 등에 활집과 화살집.

소총 하나에 탄창 여럿, 더러 수류탄 따위를 들고있는 특임대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장이다.

...저 좁은 틈으론 부대껴서 못 지나가겠는데.

젠장.

...쓰자 그냥.

두 번 정도야 뭐, 괜찮겠지.

난 한숨을 내쉬고는 대원들에게 손을 저었다.

물러나.

대원들이 천천히 물러선다.

나는 하늘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땅이 번쩍 멀어진다.

거의 30미터를 치솟아 올라, 철조망도 사람들도 순간적으로 조그맣게 보인다.

아래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서서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난 특임대원들이 물러선 빈 공간에 손을 내밀고는, 움켜쥐었다.

쿠쾅!

발에, 무릎에, 주먹에.

닿았다는 느낌 뿐.

흙먼지가 내 주위로 자욱하게 일어난다.

나는 손을 털며 천천히 일어섰다.

특임대원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시, 실제로 본건 처음인데, 이... 이런 거는."

말을 더듬는 송중사. 그리고 특임대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갑시다."

송규태 중사가 특임대원들 몇몇과 함께 철조망 아래의 타이어를 끌어당겨 빼내는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걸어갔다.

미친 남자가 있는 건물로.

미친 남자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우리가 하는 모양새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손을 들어 OK사인을 만든다.

뒤를 힐끗 보니 송중사와 특임대원들이 타이어 작업을 끝내고 걸어오는 중이었다.

미친 남자는 이후 우리를 향해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고는 창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내, 지지징! 하는 소리와 함께 철조망에 고압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건물 인근에 도달하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성가연에게 말했다.

"여긴 성훈씨와 나, 송중사가 들어간다. 가연아. 네가 맡아서 대원들하고 같이 건물 경계해라."

그는 휑해져버린 원전단지를 멀리 내다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방금 철조망에서 전기를 끊으면서 혹시라도 뭐가 들어왔을지 모르니 마음 느슨하게 갖지 마라. 다들 폰 보조배터리는 갖고왔지?"

"네. 갖고 왔습니다."

대원들이 대답했고, 성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성가연에게 말했다.

"일단 너, 블루투스 귀에 꽂고 나한테 톡으로 전화해. 무슨 일 생기면 즉시 말해라."

성가연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전화를 걸며 나직이 투덜거렸다.

"미군한테서 무전기나 좀 두둑하게 얻어올걸 그랬네. 작전 나와서도 톡으로 해야되고 참 나."

성규혁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일단 국가 유틸리티 확보하고 나면 그 다음 목표는 우리 군부대들이다. 무전기는 질리도록 얻을 수 있을거야. 아아. 내 목소리 들리나?"

성가연이 블루투스 이어폰 꽂은 귀를 만지며 특임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장님 목소리 두번 들리네요. 제 목소리도 들리십니까?"

"어, 들린다. 경계 잘 하고있어."

특임대장 성규혁이 성가연의 어깨를 툭, 치고는 나를 돌아봤다.

"가시죠, 성훈씨."

그러고는 송중사와 함께 건물로 들어간다.

나도 그들을 따라 들어가며 성가연을 돌아봤다.

대장님이라.

작전 나와서는 오빠보단 직책으로 대우하는 모양이지.

그녀는 대원들을 통솔해 건물의 좌우사방으로 배치시키고 있었다.

능숙하고 자신감 있어보이는 태도다.

따로 특임대 하나 맡아서 작전 나가도 괜찮겠는데?

하지만 지금 상황에 소수로 다니는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지.

건물로 들어가니 곧장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우- 아아우우-

특임대장과 송중사가 발을 멈췄다.

"...뭐지 이 소리는?"

"모르겠습니다. 기분 나쁜 소린데요."

특임대장과 송중사가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소리는 어디선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개가 하울링하는 듯한 소리같기도 하고, 고양이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

난 선 채 소리의 근원을 찾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사방이 벽이고 계단이라 어디선가에서 부딪혔음이 틀림없는 메아리의 근원을 찾는건 건물 입구에서는 무리다.

"...괴물고양이 같은게 여기 어디 있는거면 안좋은데."

내 말에 특임대장과 송중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해왔다.

그때 멀리 계단에서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탁탁거리며 내려왔다.

"오셨군요. 오십쇼. 올라와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자는 겁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되물었다.

"원전 관리법 배우셔야죠? 그것 때문에 오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 설마 원전 다룰줄 아는 분들이십니까?"

나와 성규혁, 송중사는 서로 돌아보며 서로의 눈 속에 든 의문을 확인했다.

특임대장이 미친 남자에게 물었다.

"원전 다루는 법은 물론 배워야 합니다만, 먼저 묻고싶은게 여러가지 있습니다. 여긴 선생님 한사람 뿐입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멈칫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다가왔다.

"원전 다루는 법 배우러 오신거면 딱 알맞게 찾아오셨습니다. 마침 갖고있던 식량도 거의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도 모르던 참이었거든요."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허리에 손을 얹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필요하신건 아마도 원전기술자겠지요. 예. 저 한사람 남았습니다."

성규혁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습니까? 아니면..."

뒷 말은 할 필요 없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탄식하고는 말했다.

"예. 몇몇 변해버렸죠. 그리고 몇몇은 가족을 찾아야 된다며, 데려오겠다며 나간 뒤로 소식이 없습니다. 또 몇명은..."

"...몇명은 어떻게 됐다는 겁니까?"

성규혁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난리가 났었죠. 며칠 지나고 나니 거리가 조용해지더군요. 가족 찾는다며 떠날 사람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철조망 두르고 전기를 연결하고 그런 일들을 했죠. 이후로 우리는 사태가 나아지길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정부가 뭔가 해줄거라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렇겠지.

아마 이 흰 가운의 미친 남자 뿐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겠나 싶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뉴스도 더이상 나오지 않고, TV도 안 나오고, 유튜브에는 세계 곳곳에 미친것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동영상밖에 안 나오고... 우리가 갖고있던 희망도 점점 사라졌죠."

그는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살아남은건 모두 여덟이었습니다. 두 명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인내심이 바닥나버렸어요. 그래서 뒤늦게 떠났고,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사람이 자살했어요. 욕실 문에 넥타이를 메고 목을 매달았더군요. 다른 사람은 뒤이어서 자살했고..."

...음.

흔히, 라고 말하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종말이 도래한 상황에선 드문 결말은 아니다.

흰 가운의 미친 사람이 말했다.

"죽은 시체들은 아무래도 놔두면 그... 미친 것들로 혹시 변할까 싶어 제깍제깍 날라다 태워버렸죠. 그래서... 그렇습니다. 예, 저 하나 남았어요."

특임대장도 송중사도 서로 돌아보며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서래마을에서 구조작전하다 자살한 사람들, 죽은 사람들, 또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자들을 너무 많이 본지라 여기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그리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다만 살아서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 입장에선 씁쓸할 뿐이다.

두 사람은 그런 표정들이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고개를 들곤 미소지었다.

"가시죠. 아직 커피가 좀 남아있습니다. 한 잔 하면서 원전에 대해 알려드리죠. 다들 시간은 많으시죠?"

그러며 계단으로 걸어간다.

성규혁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가보는게 좋겠지요?"

다른 수가 있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보죠."

우리 셋은 흰 가운의 미친 남자를 따라 걸어,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송중사가 말했다.

"나머지 세명은 어떻게 됐습니까?"

계단을 오르던 흰 가운의 남자가 멈칫했다.

"...예?"

"아까 그러셨잖습니까. 여덟명 남았다고. 떠나고 자살한 사람들은 모두 네명인데요. 아저씨 빼고 나머지 세명은 어떻게 됐습니까?"

송중사가 물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주름살이 두 배로 늘었다.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같다.

아니, 거친 나무조각을 대충 깎아낸 얼굴이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그런 얼굴로, 눈을 말 그대로 동그랗게 치켜뜨고는 송중사를 내려다봤다.

얼굴이 시커멓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도, 태도도 아니다.

송중사가 천천히 한걸음 물러선다.

성규혁은 반대로 한걸음 나섰다.

그러며 돌격소총에 얹고있던 손의 검지손가락을 천천히 방아쇠에 걸었다.

나도 검자루에 천천히 손을 얹었다.

저 눈빛.

본적이 있다.

좀비들의 눈이 꼭 저런 모양이었다.

늙었든 젊었든 어리든 상관없이, 모든 좀비들은 저런 눈을 하고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송중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틱.

성규혁의 돌격소총이 희미한 쇳소리를 낸다.

말을 걸며 동시에 안전장치를 해제한거다.

나도 검자루를 천천히 움켜쥐고는 흰 가운의 미친 남자를 바라봤다.

"...아."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소리를 냈다.

그러며 눈을 깜빡인다.

그가 씁쓸하게 웃고는 말했다.

"미안합니다. 잠깐 딴 생각을 좀 했어요. 아까 뭐라고 질문하셨죠?"

송중사가 꿀꺽 침을 삼킨다.

"...나머지 세명이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쓰게 미소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도 예상하시다시피, 다들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곤, 계단을 올랐다.

그러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안타깝죠, 정말. 정말로..."

우리 셋은 선 채 서로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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