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87)

성규혁이 송중사에게 말했다.

"너 총 쏜지 얼마나 됐냐? 쏠 줄은 알지?"

"예, 대장님."

"그래. 긴장하고 있어. 아니, 안전장치는 걸어놔라. 여차하면 나랑 성훈씨가 나설테니, 너는 뒤에서 우릴 지원하면 돼."

"아... 알겠습니다."

성규혁이 나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럴 일이 안 생기는게 좋겠지만 말이죠. 조심하는게 좋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윗층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닥치라고! 넌 어차피 실제로 있지도 않잖아! 누가 내 애냐! 닥쳐! 닥치고 꺼져!"

계단을 타고 쩌렁쩌렁 메아리가 울린다.

...무언가에 잡아먹혀버린 사람같다.

물리적인게 아니라, 마음 어딘가가 산산히 부서진 것같다.

얼굴을 봐도, 태도를 봐도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조심합시다."

여차하면 가속이 발동하므로 나는 굳이 조심할 필요가 없다.

조심해야할건 이 사람들이지.

지금 상황에서 잃기엔 아까운 인재들이다.

별 일이야 없겠지만, 가능한 한 내 손으로 지켜보자.

성규혁이 내게 눈짓하곤 계단을 오른다.

송중사가 뒤를 따른다.

나는 가장 뒤에서 주위를 살피며 그들을 따라 올라갔다.

우우아아- 아아아아-

어디선가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우린 계단을 올라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들어간 방으로 들어갔다.

넓고 큰 방 안엔 온갖 계기패널들이 불빛들을 점멸하고 있었고, 모니터 몇 대엔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그래프와 수치 따위가 퍽 평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원전 관리실이 틀림없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방 한켠에 놓인 책상에 걸터앉아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누추하지만은 일단 저는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 보이는 계기패널들 아래로 더러운 양말과 속옷, 과자봉투 따위가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바닥엔 담요 몇 장이 놓여있었는데 잠자리인듯 보인다.

누리끼리하게 물들어 있는것이 세탁은 하고 쓰는건지 의심스럽다.

아재냄새 풀풀 나는 방 안.

성규혁이 흰 가운의 미친 남자에게 물었다.

"직원이 선생님 한 사람 뿐이라면 이 넓은 원전을 다 관리하기가 벅차겠군요."

"왜요. 도와주시게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그렇게 말하곤 낄낄 웃었다.

웃지마, 씨발. 섬칫하다고.

그가 말했다.

"당연히 빡세지요. 안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전력 관리하고 폐기물 나오면 빼다가 들이붓고 담수 정화는 잘 되고 있는지도 매일 체크해야 되니 잘 시간도 쉴 시간도 없네요."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염려마십시오. 이제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전기보다 중요한건 현재 없습니다."

"...도와준다라... 좋지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그렇게 말하곤 허공을 멍하니 쳐다본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것이, 꼭 누가 중요한 말을 하고 있는걸 귀담아 듣고있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곧 방귀냄새를 맡은 듯 찡그리고는 말했다.

"시끄럽다,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 분들은 우릴 도우러 오신 분들이란 말이다."

...진짜 상태 안 좋다.

이 미친 인간 믿고 원전을 관리해야 된다고?

마음같아선 그냥 칼로 푹찍하고 싶은데, 그럴려면 이 원전을 완전히 포기해야 된다.

한울 원전이 어느정도의 전력을 서울에, 또 전국에 공급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원전 가동이 멈추면 통신국이 정지해 폰은 무쓸모가 되고, 수질정화시설도 결국 작동을 멈춰 수도도 끊긴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원활한 작전수행을 하기 위해서라도 전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전기가 없으면 그대로 석기시대니까.

눈 앞의 미친 인간이 미친 소릴 한다고 모가지를 썰어버릴 수 없는 이유다.

"...저,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성규혁이 조심스레, 돌격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물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성규혁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보였다.

고개는 돌리지 않는다.

방해하지 말라는 제스쳐다.

그는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허공의 한 지점에 고정하고서.

"...미친소리 하지마라."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그렇게 말하곤 성규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분명히 표정은 아까와는 다르다.

사람을 만나 그나마 반가워했던 기색 따위는 이젠 오간데 없다.

그가 말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성규혁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정말로 쏴버릴 기세다.

성규혁이 되물었다.

"그거라니 어떤거 말씀이십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원전 관리하는거 도와주신다고 하셨는데, 중요한건 이젠 우라늄이 들어오지 않는다는거 말입니다. 지금 있는걸 가지고 최대한 오랫동안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 때까지 이 망할 상황이 좀 나아지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성규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있군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책상에서 일어서더니 패널로 걸어갔다.

그는 모니터 하나를 가리켰다.

"자, 이거 보십쇼. 현재 전력 사용량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 놀라운 속도로 전력 사용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양을 쓰고있습니다."

그는 우릴 바라보며 말했다.

"전력 사용량을 좀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한 번 가동하면 일정 수준의 전력은 무조건 생산되니 이 한울기지만 가동해도 모든 구역에 전력이 전달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 때 듣고있던 송중사가 갸웃하며 물었다.

"그 말씀은 우리나라에 있는 원전을 다 꺼버리고 여기 하나만 가동하라는 뜻입니까?"

"그게 제일 이상적이죠. 여차하면 다른 원전이 보유중인 핵연료를 여기로 갖고오는 것도 방법이겠고요."

"하지만 어떻게요?"

송중사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전력 사용량을 무슨 수로 줄인단 말입니까? 줄여야 된다는건 물론 그럴 수 있으면 제일 좋겠습니다만, 지금 무슨 방송을 해서 전등 에어컨 다 끄라고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죄다 괴물이 되어버렸어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괴물이라... 당신들은 그들을 그렇게 부르나보군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씁쓸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적절한 이름입니다. 확실히 괴물이죠. 하지만 말입니다. 괴물이 되기 전에도 이미 괴물인 사람들도 있어요. 인면수심이라고 해야하나. 인간도 아닌 것들이 우리 사이에 있었단 말입니다. TV에도 인터넷에도 하루가 멀다고 참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나오는데 어디서 그런 괴물들이 태어나고 자라왔는지 신기할 지경이예요. 더 신기한건, 그런 쓰레기 괴물들이 우글우글한데도 어떻게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우릴 바라봤다.

"그렇게 생각 안하십니까? 쓰레기같은 인간들 가득한 세상이 그래도 그나마 굴러간게 신기하다고?"

성규혁도 송중사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할 말이 없다.

이 미친놈은 도대체 뜬금없이 왜 화제를 바꿔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거지?

흰 가운의 남자는 대답 따윈 상관 없다는 듯 말했다.

"그건 말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맡은 일 하고, 성실하게 이 세상을 유지시키고 있었던 바로 나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세상이 쓰레기로 가득 차버려도 앞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건 바로 나같은, 자기 일 성실하게 잘 하는 사람들 덕분이라고요."

그는 말하며 점점 분개하고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내가 언제는 쓰레기들 쓰라고 전기를 만든줄 아십니까? 인간같지도 않은 것들 멋대로 전등 켜고 폰 쓰고 컴퓨터에 앉아 악플질이나 하라고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건줄 알아요? 그런데도 나는 여기서 일했단 말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열심히! 심지어 지금도! 나는 여기에 있어요! 모두가 다 괴물 새끼가 되어버린 마당에, 혼자 여기 남아서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고!"

주먹까지 부릅쥐고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른다.

듣고있던 특임대장 성규혁이 천천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좀 진정하시죠."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숨을 헉헉 몰아쉬더니 성규혁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미소짓는다.

"내 덕분에 여러분도 살아남은거 아닙니까? 전기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거 같아요? 아마 우리나라에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 사람들도 말입니다. 내가 살리고 있는겁니다. 지금까지도,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그는 혼자 버럭버럭 해대곤 기운이 빠져버린 듯 책상으로 도로 걸어가 걸터앉았다.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그가 말했다.

"괴물들도, 쓰레기같은 인간들도 내가 내 손으로 살리고 있는거요. 태양이 모두에게 빛을 주듯이, 나도 모두에게 전기를 주고 있는 셈이지."

그는 그렇게 웃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 내가 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말이죠. 감히 제가 신과 어떻게 비견될 수 있겠습니까?"

괴상한 울분을 토해낸게 아주 옛날인 것처럼 태도가 싹 바뀐다.

이 인간, 너무 불안정하다.

그걸 나 혼자서 느낀건 아닌 모양이다.

성규혁은 인상을 좀 쓰는 정도였지만, 송중사는 이마로 땀까지 한방울 흘리고 있었다.

송중사가 어설프게 미소짓고는 말했다.

"어, 우리는 뭐, 괴물이라고 합니다만 다른 사람은 좀비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요. 여기 이 칼 든 분은 좀비라고 합니다. 부르는거야 뭐 다양하더라고요."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나를 돌아봤다.

"좀비라고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난 그렇게 부릅니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웃었다.

너무나 웃긴 소릴 들었다는 듯이, 꺽꺽대며 대폭소를 해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웃기지 않다.

이 아재가 왜 웃는건지, 뭐가 그렇게 억울해서 울분을 토한건지, 혼자 허공에 대고 얘기해대는 미친 인간이니 아마 만 년이 지나도 이해 못할거다.

한참을 웃어제끼던 흰 가운의 남자가 숨을 가다듬으며 나를 돌아봤다.

"그거 정말 적절한, 크흡! 호칭이군요. 실례지만 제가 좀 써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그러든가 말든가 내가 알 바 아니고, 미친 짓 좀 그만했으면 싶은데.

점점 칼로 쑤시고 싶어진다고.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좀비라... 크크카하하학! 왜, 왜 진작 나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생전에도 그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이 아니라 좀 다르게, 크흐흑, 다르게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흐흐하하학!"

...아연해진다.

웃는 소리조차 기분 드럽다.

목을 긁어대면서 쇳소리로 켁켁대는 것같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웃고있는 미친 남자에게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하신건요?"

"예? 예?"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웃다가 눈물을 훔치곤 성규혁을 바라봤다.

성규혁이 말했다.

"전력 사용량 말입니다."

"아아, 사용량! 물론이죠. 해결을, 크크흐흑! 해야죠! 크큭!"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끅끅대고 웃더니 이마를 짚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전력 사용량을 줄이는건 중요합니다. 사태가 해결될지 안 될지 모르고, 전기는 사람들이 살아남을려면 필요하니까 말입니다. 일단 방법은 말입니다. 두가지가 있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두가지나 되는군요. 어떤 방법입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그를 바라봤다.

"두가지이긴 하지만 어느것도 쉽지 않을거요."

성규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느 부분에서 쉽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두 방법 모두 전력을 일단 차단하는겁니다. 그 후 다시 연결하는거죠."

우리들의 안색이 변했다.

전기가 끊긴다.

우리 대형마트건물은 수현이를 중심으로 인력이 동원되어 셔터와 창문을 보강했고, 서래마을은 바리케이트를 쳐두었다.

두 세력 모두 중화기로 중무장하고 있어 전기가 설령 끊기더라도 방어에 문제는 없다.

그러나, 혹시라도 살아남았거나 세력을 이룬 사람들의 경우에는?

전기가 끊겼을 때 그들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바라본다.

송규태 중사도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내 판단을 묻는 눈치다.

...전기를 끊는다라.

나는 흰 가운의 미친 남자를 바라봤다.

"전기를 끊었다 연결하면 발전소의 수명이 확실히 늘어납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미소지었다.

"발전소 수명이야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똑같습니다. 연료만 공급되면 거의 반영구적이죠. 중요한건 연료요. 지금 어디서 핵연료를 구할 수 있답니까? 어딘가에 있다 해도 그걸 어떻게 갖고 올거죠? 연료관리는요? 피폭되면, 아시겠지만, 끝납니다. 어차피 세상 다 끝났지만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러며 말했다.

"크큭, 큭. 어쨋든 가동률 말입니다만. 낮출 수만 있다면 낮추는게 좋죠. 왜 안 좋겠습니까? 1년 쓸거 2년 3년으로 늘어나는 셈인데."

내가 물은게 그건데.

발전소 수명이라고 했다고 무슨 이 발전소가 노후화되는걸 물은줄 아나.

난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전기를 끊고 나면 사용량이 얼마나 더 줄어들거라고 보십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글쎄요. 정확한 수치야 저도 모릅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가동하는건 아마 그대로 유지되겠죠. 예를들어 집 안 전등이라든가. 스위치 올려서 불 켜놓으면 두꺼비집 내려가지 않는 이상 전기만 들어오면 불 다시 켜지잖습니까."

그야 그렇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운용되는 모든 기기나 설비는 전원이 꺼질겁니다. 예를들어 컴퓨터라든가, 아니면 한창 더워지느라 가동률이 올라가고 있었던 에어컨 같은 것들요. 이 난리통 터지기 전에 그거 있잖습니까. 코인 채굴? 그거 하느라 컴퓨터를 미친듯이 돌리던 업체들이 있었어요."

끄억.

코인.

난 해본적 없다만, 내 친구 중에도 그거하다 몇년을 알바해서 모아놓은거 다 날린 놈이 있다.

송중사의 눈이 번쩍 커진다.

그러며 안색이 안좋아진다.

...송중사도 코인하다 물렸나보다.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비웃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돈도 아닌거 그거 한다고 도대체 전기를 얼마나 쓰는건지. 그 업체들 아마 지금까지도 돌아가고 있지 싶은데, 에어컨이랑 피시방, 채굴 같은거 포함해서 대부분 디지털 기기만 꺼져도 사용량은 대폭 줄어들겁니다. 가동중이던 공장 같은데도 설비들은 작동을 멈출거고 말이죠."

이 사람, 확실히 미치긴 했지만 말하는건 꽤나 이성적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일단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러면 방법이 두가지라고 하셨는데, 무슨 방법들입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는 미소지었다.

"과부하를 걸어 송전탑을 터뜨려버리는 겁니다."

듣고있던 특임대장 성규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송전탑을 터뜨린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럼 그 뒤에 전기를 어떻게 다시 연결합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웃고는 말했다.

"걱정 말아요. 말이 터뜨린다는거지, 두꺼비집 내리라는거죠. 여기서 연결된 송전탑 전력을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겁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갸웃하곤 물었다.

"그게 어디 있는겁니까?"

"어디겠습니까?"

그는 창 밖을 가리켰다.

...산이다.

산 능선의 첨단에 연결된 고압전선과 그를 지탱하는 고압송전탑.

창 밖을 내다 본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문제로군요."

"그렇지요?"

흰 가운의 남자가 씁쓸하게 웃더니 말했다.

"송전탑에서 스위치 내리는거야 별 거 아닙니다. 그냥 패널 뚜껑 따고 손잡이 잡고 내리면 돼요. 그런데, 저기까지 어떻게 갈 겁니까? 저 산 속에 뭐가 있는지 아십니까?"

송중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산 속에 뭐가 있습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눈을 천천히 껌뻑거렸다.

기억을 되짚는 듯하다.

그가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쥐나 고양이, 무슨 고라니 같은 것들이 원래 저 산에 살고 있었다는건 알아요. 그런데 그건... 멀리서 봐서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모르겠네요."

...이건 중요한 정보다.

이 아재 하는 말 들어보니, 구체적으로 자세히 본 건 아니다. 무슨 실루엣 같은걸 본 모양인데, 그거라도 내겐 필요하다.

나는 물었다.

"보신게 정확히 뭡니까?"

흰 가운의 미친 남자가 입을 반쯤 벌리고 창 밖을 내다봤다.

"...그 언제였더라. 아마 지난달 언제쯤이었을 겁니다. 비가 왔던가 그랬어요. 날씨가 안좋았죠. 담수정화장치 계기 체크하고 나오는데 산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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