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8/187)

난 마을 한가운데서 돌개바람을 해제하곤 귀를 기울였다.

여기까지 놈들이 따라왔을까?

...들린다.

타칵, 타칵하는 소리가.

난 힘껏 외쳤다.

"계십니까!"

크아아아악!

와장창!

좀비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온다.

난 즉시 검을 뽑아 옆으로 집어던지곤, 잉그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팔을 뿌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륵!

"크아으어얽!"

그림자 전사에 썰린 놈들이, 잉그램의 탄환에 머리가 뚫린 놈들이 그대로 피를 뿌리며 앞으로 옆으로 엎어진다.

한순간에 수십마리를 죽였다.

스르릉- 철컥!

검을 꽂아넣고, 탄창을 교체하는 소리가 일순 퍼진다.

그리고, 세상은 고요해졌다.

느껴진다.

시선이.

타칵, 타칵하는 소리도 계속 들려온다.

어디서도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있다.

"...개씨발 진짜 존나 마음에 안 드네. 나와!"

소리가 사라졌다.

"...쯧."

그렇다 이거지.

난 혀를 차고는 곧장 유리가 박살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보고있는지는 몰라도,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나 찾아서 나타나지 않을까.

뭐라도 나와서 내 손에 죽어주면 좋겠는걸.

고양이든 개든 뭐든.

들어간 김에 편의점 진열대를 싹 쓸어다 더플백 두개에 우겨넣어 두둑하게 만들어놓곤 밖을 내다봤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엔 분명하게, 점점 커진다.

타칵, 타칵타칵! 타칵타칵!

난 더플백 두 개를 어깨에 짊어메고 태연하게 편의점을 걸어나갔다.

왼쪽 길이.

그리고 오른쪽 길이 시커멓다.

라면박스 크기의 쥐떼가 좌우를 메우고 있었다.

적어도 백마리는 넘어보인다.

타칵,타칵,타칵!

놈들이 위아래 이빨을 사납게 부딪히고 있다.

"...하."

이거였냐.

겨우 이거 하자고 그렇게 나를 쫓아다닌 거였어?

어이가 없어서 씨발.

"하하하."

난 웃고말았다.

이이익! 끼이이이익!

쥐 하나가 소리를 낸다.

그리고, 놈들이 내게 달려들어왔다.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난 이를 악물었다.

빡치네 진짜.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난 두 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림자전사와 함께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슈화카칵!

쥐의 피도 붉은 색이다.

후드드득!

가속이 끝나자 마자 온 몸에 핏방울이 날아든다.

오래간만에 피를 뒤집어썼다.

대가리와 함께 사지가 절단나 내장을 뿌리며 죽어 엎어진 쥐떼들.

그것들을 내려다보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빡친게 안 풀리는데.

고개를 좌로, 우로 꺾자 우득 소리가 난다.

"후우..."

펀의점이 들어있던 4층 건물.

나는 손을 내밀어 공간발톱으로 단숨에 옥상까지 뛰어올라갔다.

탓.

옥상에 서서 쥐떼들이 나타난 방향을 바라봤다.

멀리, 산.

돌개바람을 소환해, 뒷좌석 아래의 수납장을 열었다.

보랏빛 기운이 일렁이며 내 손에 휘감긴다.

나는 그걸 움켜쥐고, 당겼다.

작은 수납장에서, 보랏빛 기운에 휘감싸인, 긴 금속체가 형성되어 내 손에 들어왔다.

길고 묵직한 총.

고폭소이철갑탄을 사용하는 대물저격총, M107.

난 즉시 안전장치를 풀고 탄약을 장전했다.

철컥!

소리 좋네.

두 손으로 M107을 받쳐들고 견착 후 고배율 조준경에 눈을 갖다댄다.

영점조절같은건 상관없다.

내가 가진 무기중 가장 사거리가 긴 저격총이다. 일단 포착만 하면 적중이 알아서 목표의 대가리를 꿰뚫어 줄 것이다.

"...후우..."

자잘한 붉은 빛들이 스쳐지나가듯 언듯거린다.

저런 놈들은 내 목표가 아니야.

산허리를 지나, 능선.

봉우리 꼭대기, 나무와 바위 사이.

거대한 붉은 빛이 나타났다.

내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린다.

...자잘한 것들 나한테 보내서 간을 봤다 이거지.

그게 너희들 짐승식 인사냐?

그럼, 이건 내 인사라고 해 두지.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공이가 두드리고, 화약이 폭발했다.

힘을 받아 뛰쳐나간 탄환이 강선을 따라 맹렬하게 회전하며 총구를 탈출한다.

압축되었던 가스가 터져나가며 긴 금속덩어리를 세차게 밀어젖혔다.

어깨를 힘껏 얻어맞은 것같다.

귀를 때리는 폭음과 번쩍 들리는 총과 비틀리는 몸.

세차게 땅을 딛어 몸을 가누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폭소이철갑탄이 목표물에 적중했다.

총이 들려있다.

보이지 않는다.

적중했다는 것은, 놈이 알려주었다.

우오오오오!

산이 쩌렁! 하고 울렸다.

산을 메아리치는 묵직한 소리.

언듯 들으면 부엉이소리 같기도 하다.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인사 잘 받았냐. 반갑다, 씹새끼야."

머리에 적중했을 것이다.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탄환은 내장된 고폭이 폭발하여 벽돌조차 뚫어버리는 철갑파편을 힘껏 방출했을 것이다.

산탄총에 맞은 것처럼 주변을 갈아버렸겠지.

놈은 거대한 짐승이다.

머리를 뚫렸다고 쉽사리 죽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죽여야만 죽는 놈이다.

그러나 놈의 목숨이 몇이든, 이 한발로 머리통에 들어있던 목숨 대다수는 뒤져버렸을거다.

M107을 천천히 내려 조준경에 눈을 갖다댔다.

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능선 아래 산허리 그 어느곳에도 거대한 무언가는 포착되지 않았다.

난 즉시 M017을 돌개바람에 넣어두곤, 올라타 액셀을 당기며 공간발톱을 이용해 지상에 추락했다.

쿠쾅!

충돌면역.

뭔가 닿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돌개바람은 그 충격에도 전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는다.

이 애마, 정말 믿음직한걸.

난 미소짓고는 곧장 원전을 향해 질주해 달려나갔다.

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원전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원전이 위험하다.

사람들이, 특임대원들이 위험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살짝 설레고 있다.

나는 놈이 원전에 나타나주기를 바란다.

산에 들어가서 죽이자니 번거롭다.

내 앞에 나타나줘라.

그래서 내 손에 죽어주면 좋겠는걸.

그런 생각을 하자 시야가 선명해지고 색감이 밝아진다.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아마도 꽤나 사납게 웃는 얼굴이겠지.

"...하하. 하하하!"

나와라.

나와라!

내 앞에 나타나 줘라!

싸우자!

가아아아앙!

돌개바람을 달려 원전으로 질주해, 단숨에 공간발톱으로 철조망을 뛰어넘어 들어갔다.

카카카카!

타이어가 지면을 긁어댄다.

바이크를 돌리며 세우자,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특임대장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나를 보고있었다.

"누가 쫓아옵니까?"

"짐승들 안 왔어요?"

"예?"

되묻던 특임대장이 뭔가 깨달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산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습니다만, 성훈씨가 뭔가 했습니까?"

짐승들은 안 나타났나본데.

난 웃는 얼굴로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예. 했죠. 산 위에서 재수없게 있길래 한 발 대가리에 꽂아줬습니다. 아주 좋아 죽던데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성훈씨. 아직 작전이 전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놈들을 자극하면..."

"놈은 내 겁니다."

난 돌개바람에서 내리곤 소환을 해제했다.

어깨에 짊어멘 두 개의 더플백을 고쳐메고는 특임대장에게 다가갔다.

"놈은 나타납니다. 늦든 빠르든. 가능하면 전기 내렸을 때 들이닥쳐 주면 좋겠는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죠. 올지 안올지 어떻게 압니까? 작전 개시하고 놈이 나타나지 않았다 쳐도 다행이라고 말할 일은 아니죠. 저 안에 괴물이 있는데 여태껏 아무 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아무 일 없을거라는 보장 같은건 어디에도 없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놈을 어떻게든 치워버려야 된다는 점에선 나와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

난 말했다.

"작전 때 안 나타나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난 기약도 없고 하염도 없이 놈이 나타날 때까지 인디안식 기우제같은 거나 하고 있을 생각 없어요."

난 산을 가리켰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놈이 나를 도발했어. 나는 거기에 응답해준 겁니다. 간 보지말고 덤비라고."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미소지었다.

"놈이 나타나서 우리 포화를 두드려맞고 죽어주면 좋겠다는건 나도 바라던 바입니다. 놈이 도발했다는건... 아마도 지금 성훈씨가 피범벅이 된 거하고 상관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똘마니들 보내서 하루종일 사람 신경을 건드리더라고요. 박소장은 짐승들이 하루종일 노려보고 다니는걸 어떻게 감당하고 살았나 모르겠어요."

특임대장이 정문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무도 없는지 보려는 것같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곤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잘 버틴 것 같지 않군요. 아마 환각이나 환청 같은것도 그런 스트레스가 겹쳐서 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그도 나도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

어떤 과정으로 박소장이 그렇게 된 건지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특임대장이 옳을 수도 있겠지.

난 어깨를 으쓱하곤 계단을 올랐다.

"난 들어가서 좀 쉬겠습니다. 씻고싶네요. 먹을거 가득 챙겨왔는데 이정도면 당분간은 괜찮겠죠."

특임대장이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끄덕여주곤 계단을 올라가는데, 건물 멀리 특임대원들이 땅에 뭘 파묻고있는게 보였다.

그걸 잠시 바라보고 있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대인지뢰를 묻는겁니다. 무선기폭 크레모어도 길목마다 설치해뒀어요. 물론, 터뜨려도 괜찮은지 박소장에게 자문을 구했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얼마나 묻은겁니까?"

특임대장이 미소짓고는 말했다.

"김대위와 박대위가 갖다준거 전부 다요. 다 터지면 엄청난 불꽃놀이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철조망은 새로 해야 되겠지만, 지뢰가 터진 시점에서 철조망은 의미가 없겠죠."

그거... 나쁘지 않네.

하지만, 박소장.

난 그 인간이 웬지 불안하단 말이야.

그러나 원전에 대해서만큼은 자기 스스로도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으니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았을거라고 믿는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건물로 들어갔다.

그 때 계단에서 여자들과 할배가 우르르 내려왔다.

난 놀라서 걸음을 멈췄다.

뭐지? 이 딱 맞춘 듯한 타이밍은?

약국주인이라는 아줌마가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만나면 인사할려고 기다렸어요. 워낙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쁜 분이니까, 얼굴 보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창가에 서서 한참 기다렸다구요."

아아, 그랬나.

할배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다들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지요. 정말로, 와주지 않았다면 다 죽은 목숨이었으니까요. 정말 고마워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뒤에 서있는 여자들도 각자 아이의 손을 잡고, 등에 업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다들 표정이 한결같다.

난 미소짓고는 어깨에 메고있던 더플백 두 개를 내려놨다.

"먹을걸 좀 갖고왔어요. 면도기하고 티슈, 치약, 샴푸같은 것도 있는대로 다 담아갖고 왔습니다. 아마 이걸로 좀 모자랄수 있는데, 시간 나는대로 나가서 길거리 청소해둘 테니까요. 길만 확보되면 나중에는 직접 다녀오실 수도 있을겁니다."

여자들이 감사하다며 내게 인사를 꾸벅 해온다. 애들은 뭐가 들었는지 더플백을 열어볼려고 달려들었다.

난 피식 웃고는 약국 아줌마와 할배에게 말했다.

"더플백은 특임대원들이 써야되니까 나중에 돌려주세요. 그런데, 아저씨는요? 아직 누워있습니까?"

약국 아줌마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 분은 너무 쇠약해져 있어요. 그래도 좀 나아져서 화장실은 혼자 왔다갔다 하는데, 아무래도 아직 기운이 없나봐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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