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러면... 산에서 그 놈이 나타나면 어쩐답니까?"
"그 놈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갸웃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산에 있는 거대한 괴물짐승 말하는 겁니까?"
"예, 괴물짐승. 예, 맞지요."
대답하는 할배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갸웃하며 물었다.
"괴물짐승이 맞다...? 직접 보신겁니까?"
할배가 헛숨을 들이키고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직접... 봤다기 보다는요. 지렁이하고 벌레를 잡을려고 나갔는데, 비가 오는 날이었지요. 슬슬 어두워질려고 하는데, 저 산에서 뭐가 메아리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고개를 들어서 쳐다보니까, 산 능선에, 꼭대기쯤에 뭐가 바위같은게 이렇게 있어요."
할배가 침을 삼키곤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제가 여기서 산지 벌써 칠십년이 넘었습니다. 산이 어떻게 생겼는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거기에 바위가 있을리가 없는데. 그래서 이렇게 보니까... 그게 움직이더라고요."
할배는 말끝을 흐리며 눈을 껌뻑거렸다.
"그게... 움직였단 말이오..."
먼 산에서도 한 눈에 들어 올 만큼 커다란, 큰 바위같은 덩치.
그게 뭔지는 내가, 특임대장과 성가연이, 우리 대원들이 잘 안다.
우리는 이미 알고있던걸 새삼 확인했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런 내 눈에, 박소장이 들어왔다.
박소장.
송중사 외에 다른 사람과 무슨 교류가 있긴 한가?
사람들 구해 온 이후로 대화한다던가 하는건 한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방금 원전 튼튼하다고 대답했던 태도도 대답해야 되니까 하는거지 당신과 어떤 관계도 나는 맺지 않겠다 라는 느낌이고.
사람 대하는게 서투른건가?
송중사한테 하는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렇게 느끼는 사이, 특임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작전은 우리 특임대가 맡아서 진행합니다. 주민 여러분께선 건물 내에 계시길 바랍니다. 송중사. 자네가 박소장과 주민들을 맡아서 보호해."
"예? 제가요?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안돼."
송중사의 항의를 특임대장 성규혁은 간단히 거절했다.
"박소장님한테 며칠간 많이 배웠지?"
송중사는 더 항의하려는 표정이었지만, 그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원전을 관리할 인력은 박소장과 송중사가 전부다. 특히 송중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쳐선 안된다.
원전 뿐만 아니라, 치누크를 정비할 사람도 송중사 뿐이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팀은 셋으로 나눈다. 방어 팀. 가연아. 네가 방어팀장이다. 대원 네 명 데리고 옥상에서 미니건으로 방어해."
"알았어."
성가연이 팔짱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쪽 여자들이 살짝 놀라며 성가연을 바라봤다. 여자가 특수부대 팀장을 맡는다는게 놀라운 모양이다.
그러나 특임대원들은 생존자 여자들관 다르게 별로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같이 아수라장을 헤치며 함께 작전을 다닌 때문이겠지.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2팀은 폭파 팀이다. 내가 맡는다. 폭파 팀은 관측과 중화기 탄약관리도 맡아서 한다. 대전차로켓 다들 두개씩 챙기는거 잊지 말고, 드론으로 주변 관측 신경쓰고. 알았나?"
특임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봤다.
"3팀은 당신입니다. 성훈씨의 임무는 제가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나는 보스를 카운터친다.
지뢰도 크레모어도 뚫고 들어오는 놈이 있다면, 아마도 멧돼지 쯤이면 폭탄 한 두발쯤 몸으로 맞아가며 쳐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놈이 들어온다면.
놈은 내 거다.
그게 내 역할이다.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내 거 뺏아가기 없깁니다."
그 말에 특임대장과 성가연, 특임대원들의 얼굴이 웃음으로 살짝 일그러졌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헛기침하듯 웃음을 뱉고는 말했다.
"예. 가능하면 안 뺏아가게 신경쓰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이 분 몫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네, 예, 라고, 성가연과 특임대원들이 웃으며 대답했다.
생존자 여자들과 할배들은 우리가 웃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할배가 말했다.
"지, 지금 말씀하신게 그, 괴물짐승 말씀하시는 거 맞지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허... 그, 그 커다란 괴물짐승을... 다들 두렵지 않으시오...?"
할배는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진다는 듯 한 번 떨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미소짓고는 나를 가리켰다.
"걱정 마십쇼. 이 분 혼자서 괴물짐승을 세마리나 사냥했거든요. 뭐가 나와도 이 분한텐 안 됩니다."
할배가, 그리고 여자들과 아줌마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할배가 턱을 떨며 말했다.
"아아... 어쩐지, 처음 뵌 그 날도 길에 시체들이 즐비했지요. 번쩍 번쩍 뛰어다니시고, 보통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정말로 그 큰 짐승들을, 혼자서 사냥하십니까?"
특임대장이, 성가연이, 특임대원들이 나를 바라본다. 다들 묘한 미소를 짓고있다.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예."
특임대장 성규혁이 미소짓고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다들 자기 임무는 숙지했지? 각자 자리로.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 하나씩 끼는거 잊지 말고."
그는 그렇게 말하곤 폰을 들었다.
"지금 단톡방 그룹음성채팅 켰다."
대원들이 귀에 이어폰을 낀다.
미묘하다.
좀 그럴듯하게 무전기랑 연결된 이어폰을 끼면 폼도 날텐데, 그런게 지금 있을리가 없지.
서래마을 근처 전자상가와 휴대폰매장 따위를 털어서 얻은 블루투스 이어폰이 지금 이들의 무전기다.
무전기 대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는, 멋짐과 허접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성가연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당신도 껴야죠."
아, 그랬지.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으니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들립니까."
목소리가 두 번 들린다.
내가, 그리고 대원들과 성가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좋아. 위치로."
대원들이 대답하곤 건물로 돌아갔다.
성가연이 생존자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들어가시죠."
약국 아줌마가 성가연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어쩜 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저 군인 남자들이랑 같이... 저, 저희는 어디에 있으면 되나요?"
성가연이 웃고는 말했다.
"원래대로 휴게실에 계시면 돼요. 지하실이 제일 좋긴 한데..."
송중사와 함께 걷던 박소장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옆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안 됩니다. 위험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성가연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네, 들었어요. 보통은 지하실이 안전하다는 뜻이었죠. 기둥이 많고, 창문도 없고, 출입구는 보통 두터운 철문이니까요."
박소장은 대답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성가연이 그런 박소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위험한건가요? 작전이 진행되는 네시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박소장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진 않았다.
표정으로 욕하는 것같다.
그는 그렇게 허공을 노려보곤, 그대로 건물로 들어가버렸다.
성가연은 그런 박소장의 뒷모습을 허리에 손을 짚고 바라보고 있었다.
"...송중사님. 저 분 잘 보고있어요."
"네, 가연씨."
송중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박소장을 따라 들어간다.
성가연은 마음에 안 든다는 태도로 박소장이 걸어올라간 계단을 잠시 바라보다,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 가시죠. 여긴 저희 특임대에게 맡기시고."
"아, 네..."
할배와 여자들이 성가연의 눈치를 살피면서 건물로 들어갔다.
성가연이 내게 말했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어, 그럼 안되지."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진짜 아무 일 없으면 난 저 산에 들어갈겁니다. 덩어리 남겨놓고 돌아갈 수는 없어요. 놈을 놔뒀다가 원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다시 와서 놈을 죽여도 원전은 개박살 난 상태겠지. 사람들도 다치거나 죽을거고. 안돼요. 죽여놓고 가야돼."
난 허리에 손을 얹고 멀리 산을 바라봤다.
"저기 있는 덩어리 멧돼지 한마리만 딱 꾀어서 끌고 올 수는 없겠죠. 그런 방법이 있으면 딱 좋을텐데."
성가연이 웃더니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저 사람 말이에요."
그러며 턱으로 건물을 슬쩍 가리킨다.
아아, 박소장.
오늘 표정이나 모양새가 별로 안좋긴 했지.
하지만 솔직히 내 안에서 박소장에 대한 중요도는 꽤나 낮아졌다.
나한테 중요한건 원전이지 박소장이 아니다.
박소장이 원전에 무슨 해를 끼치진 않을거라는 건 박소장 스스로, 그리고 송중사가 수차례 확인시켜줬다.
며칠간 밤낮으로 붙어있던 송중사인데다, 처음 만난 날부터 박소장을 위험인물이라고 인식하기까지 했으니 그에 대한 평가는 꽤나 냉정하고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송중사가 박소장은 원전에 무슨 짓이든 하지 않을거라고 확신했다.
난 송중사의 판단을 믿는다.
박소장 개인이 무슨 어두운 내면을 갖고있든, 원전에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내가 박소장에게 관심을 가질 일은 없다.
예쁜 여자도 아닌데 뭐하러 저런 중늙은이 아재에 대해 생각하겠냐고.
원전만 멀쩡하면 난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역시, 그런 말은 성가연에게 할 수 없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나직이 말했다.
"송중사가 옆에 있잖아요. 별 일 없을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성가연이 팔짱을 끼곤 건물을 바라본다.
그러지 말아줬음 좋겠네.
풍만한 가슴이 더 돋보인다고.
애써 시선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려왔다.
"작전 개시 10분 전. 대원들은 자리로."
성가연이 웃더니 날 돌아봤다.
"우리보고 오래요. 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앞서 걸어갔다.
...뒷태 지린다.
난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깊게 숨을 들이키곤,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대원들이 각자 건물 벽 하나를 맡아 미니건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옥상 출입구 벽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2팀 대원 한명과 나란히 앉아 드론 컨트롤러의 스크린을 보고있다.
정찰드론은 이미 띄운 모양인데.
성가연이 미니건을 잡고있는 대원들을 보러 간 사이, 난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다가갔다.
"하늘에선 뭐 좀 보입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열추적카메라를 켜놓긴 했는데 산에 나무도 많고 바위에 언덕에 계곡에 뭐가 워낙 많네요. 제대로 정찰하려면 시간 좀 걸릴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벽에 기대섰다.
"아마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되지 싶은데, 전 자잘한 놈들하곤 안 싸웁니다."
내가 공격할 수 있는 횟수엔 한계가 있다.
덩어리를 죽이고 나서 공격횟수가 남아있다면 자잘한 놈을 죽이는 거야 횟수가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그러나 자잘한 놈들 잡다가 횟수가 모자라 덩어리를 못 죽이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예. 말씀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궁금한게, 성훈씨 그 능력은 횟수제한이 몇입니까?"
...어?
이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지?
내가 살짝 놀라며 내려다보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 얼굴을 보곤 말했다.
"서래마을에서 마트나 가게들 정리할 때 한 번에 못했잖습니까. 꽤 자주 쉬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게다가 만약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면, 저 같으면 산 속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대원들과 함께 요격할 기회를 노리는 대신에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미소지었다.
"저나 우리 대원들 다 소말리아나 우크라이나는 한두번씩 다녀 왔습니다. 몇 명은 용병으로 활동하다가 오기도 했고 말입니다. 금방 눈치채죠 그런건."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싸우러 다녀 본 사람들이라 그런가, 전투능력을 파악하는 눈썰미는 확실히 있다.
우리 마트건물 식구들은 아직도 내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건 짐작도 못하는데.
난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전투 한 번에 사백 번."
특임대장 성규혁과 특임대원이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표정이 살짝 변했다.
"...사백번이면, 괴물 사백 마리라는 뜻입니까?"
평소에 나와 성규혁 사이의 대화에 끼어드는 일 없는 특임대원이 내게 물었다.
그만큼 충격이란 뜻이겠지.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비 같은 경우에 한 번 전투할 때 최대 사백마리를 죽일 수 있습니다. 괴물짐승같은 경우엔 잘 모르겠네요. 놈들은 죽을 때까지 죽여야 돼. 얼마나 공격해야 죽는건지, 개체마다 제멋대로더라고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엄청나군요. 사백마리라니. 그러면, 사백마리. 그러고 나면 얼마나 쉬어야 되는겁니까?"
"다섯시간은 쉬어야 됩니다."
성규혁이 숨을 들이켰다.
"...수면시간을 고려하면 하루에 천이백마리는 죽일 수 있다는 뜻이군요. 후우."
그는 그렇게 말하곤 이마를 짚고 웃었다.
"엄청나네요. 소말리아에 당신이 있었다면 해적 같은건 그냥 아무 문제도 안 됐겠는데요?"
난 웃었다.
"예전엔 내게 이런 능력 같은건 없었어요."
그러자 특임대장이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면 그 능력은 언제부터...?"
난 팔짱을 꼈다.
"종말이 시작된 이후... 부터군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신음을 흘리더니 심각한 얼굴로 특임대원을 돌아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종말이 시작된 이후가 아니지. 태어나면서 부터라고 해야 옳다.
태어날 때부터 메세지가 보였으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선택된 자가 될 운명이었던거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죽는줄 알았다가 곧장 종말이 시작되고 이후로는 생존할려고, 렙업할려고 숨가쁘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진 못했는데, 확실히 내겐 그런 운명이 주어졌던거다.
나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종말이 시작되고, 능력을 얻었다.
이건 무슨 의미인거지...?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성훈씨. 그러면... 혹시 종말이 시작되고 성훈씨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음?
난 놀란 얼굴로 특임대장 성규혁을 내려다봤다.
...그런 식으로도 생각 안 해봤는데?
나는 선택받은 자다.
나 말고 또다른 선택받은 자가...?
...설마.
난 잠시 생각해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진 않을겁니다."
"하지만 확신하진 못하는군요."
특임대장 성규혁의 얼굴은 진지하다.
그럴만도 하다.
능력자가 나 이외에 더 있다는건 생존자들에겐 축복일 수도, 재앙일 수도 있으니까.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신 못 합니다. 하지만... 아마 없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