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187)

특임대장 성규혁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당신과 같은 능력을, 아니면 어떤 능력이든 가진 자가 또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

"글쎄요..."

난 턱을 만지며 잠시 생각해봤다.

내 능력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기 전까진 몰랐지.

난 갸웃하며 말했다.

"모르겠군요. 아마 알아볼 수 없을겁니다."

이런건 왜 갑자기 묻지?

...아.

혹시?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대통령께서 방송한 이후에 연락 온 사람 중에 누가 능력을 갖고있다든가? 그런 연락이 왔었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건 없었습니다."

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실은, 대통령께선 지금 이 모든 일들이 어째서 일어났는가를 알아내려 하고 계십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변해버렸는가. 어째서 짐승들이 서로를, 또 인간을 잡아먹는가. 왜 커지는가. 왜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는가를요."

어째서 우리는, 세상은 종말을 맞이해야만 했는가.

생각해본적 없다.

종말이 시작된 이후 수개월.

세상에 종말이 왜 찾아왔는가를 왜 여지껏 한 번도 생각해본 일 없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나는 종말이 왜 시작됐는지를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고 렙업하기 바빴지.

중요한 질문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뭐 알아낸건 있습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미소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대통령과 비서실장도 그냥 추측만 하고있을 뿐입니다."

"그 추측이란?"

앉아있던 특임대장 성규혁은 뭔가 생각하듯 하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들고있던 드론 컨트롤러를 특임대원에게 넘기고, 일어났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모든 일들과 당신이 어쩌면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나는 대답없이 그의 눈을 마주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당신도 알겠지요. 당신의 능력을. 검을 잘 쓰고 활을 잘 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검은색의... 그림자 전사? 허공에서 오토바이를 만들어내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는 손목시계를 잠깐 보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

그리곤 말했다.

"지금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당신은 아마 산채로 붙잡혀 연구소의 실험쥐로 전락했을 겁니다. 혹은 국가 차원에서도 통제 불가능한 이능력자로 취급되어 사살당했거나. 어떻든 당신에게 좋은 환경은 결코 아니었을거요."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내 능력, 위험하긴 하지.

종말이 아니었으면,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나를 잡거나 죽이려고 들었을거다.

확신한다.

전세계에서 무슨 비밀요원같은 애들이 나 잡자고 몰려들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겠는데?

난 생각을 멈추곤 피식 웃었다.

"그런가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바라봤다. 담배곽을 쥔 손이 나를 향해있다.

난 담배를 한까치 뽑아 입에 물었다.

그러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불을 붙여준다.

그러며 그가 말했다.

"물론이죠. 당장 나만 해도, 당신이 적이었다면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을까를 자주 생각하니까요. 아마 우리 대원들도, 심지어 가연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드론 컨트롤러를 쥐고있던 특임대원이 나를 힐끗 올려다 본다.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성규혁의 말이 틀리지 않다.

난 웃어버렸다.

특임대장 성규혁.

직설적이고 속마음 숨기지 않는 인물인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좀 너무 솔직한거 아닙니까? 나 여기 있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미소짓고는 말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쇼. 나는 싸우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지. 그걸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 훈련하는게 우리들, 싸우는 사람들이예요. 일종의 직업병 같은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특임대장 성규혁이 담배를 빨고는 연기를 내쉬었다.

"난 정치같은건 잘 모릅니다. 종말이 왜 찾아왔는지 그런건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알 필요가 있는건 세상이 망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는 담배를 빨아들이곤 멀리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은 당신이, 혹은 당신이 능력을 갖게 된 것과 무슨 관계가 있지 않겠나, 세상에 혹시 또 당신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추측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건 내 고려사항이 아니예요. 현실은 그냥 세상이 망했다는 겁니다. 빨리 받아들여야죠.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난 팔짱을 끼고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빨리 받아들인 거라는 뜻입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끄덕이곤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신에 대한 내 유일한 고려사항은, 당신이 아군인가 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 사람과 대화하는건 웬지 즐겁다.

꾸밈도 없고, 속마음 그대로 드러내는게, 대하기가 너무 편하다.

나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람한테 가질만한 생각은 아닌 것 같다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이런 사람이 꽤 맘에 든다.

난 미소띈 얼굴로 물었다.

"나는 아군이잖습니까."

성규혁이 끄덕이곤 말했다.

"지금은 그렇죠. 전기를 유지시켜야 된다. 무기를 구해야 된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이해가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행동도 함께 해왔어요. 하지만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 아닙니까."

난 웃고는 물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될 수도 있다, 뭐 그런겁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다시 손목시계를 본다. 그가 팔을 내리곤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적이라... 솔직히 당신과는 별로 싸우고 싶지 않군요. 아직 당신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지 답을 못 찾았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그런 상황이 만약 오면?"

난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오늘 참 여러모로 생각 안해본 이야기를 많이 듣네.

이 사람들을 적으로 만난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잠깐 올려다 보는데, 성가연이 다가왔다.

"무슨 얘길 그렇게 재밌게 해? 시간 거의 다 되지 않았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래."

성가연이 나를 바라보곤 자리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저 여자는 못 죽일 것같다.

특임대원들도, 특임대장도.

죽이기엔 좀 알게모르게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하...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 얼굴을 보곤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어떻습니까? 꽤 고민되고 재미있지요?"

난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별로 재미있진 않군요."

특임대장 성규혁도 마주 웃더니 말했다.

"작전 시작합니다. 우리 대원이 드론으로 정찰한걸 성훈씨에게 알려드릴겁니다."

그는 내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치곤 내 곁을 지나갔다.

"작전 성공시킵시다."

"그래요."

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꽤나 미묘한 기분에 빠졌다.

군사훈련을 받으면 군인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싸우는 사람에 대한 기준은 꽤 명확하다. 누가 됐든 적이 된다면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야만 그의 기준에 부합하는 모양이다.

인질범이나 요인암살 등을 전문으로 하는 훈련을 늘 해 온 사람이라 그런 모양이지.

구출한 인질도 상황에 따라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 여자든 어린애든 상관없다.

애가 당황해 총을 들면, 망설임 없이 쏴서 쓰러뜨리고 머리에 확인사살까지 해야 되는게 이 사람들이다.

여덟살이든 일곱살이든 얼마나 어리든 상관없이.

싸우는 사람이라...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온다.

"작전 시작 10초 전. 방어팀."

성가연이 대답했다.

"방어팀 준비 완료."

"폭파팀."

원격 폭파장치를 들고있는 대원들과 드론 컨트롤러를 든 대원들이 각자 대답해왔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송중사, 제어실 준비됐나?"

"제어실 준비됐습니다."

송중사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모두가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작전 개시 5초 전. 4, 3, 2, 1. 개시."

이어폰으로 철컥, 소리가 들렸다.

발전소의 전기를 내리는 소리가 틀림없다.

뭔가 이우우웅- 하며 김빠지는 소리가 들릴 만도 한데, 그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스위치 내리는 소리가 살짝 들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소리를 시작으로, 발전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안다.

고압 철조망은 기능을 상실했고, 이곳 지역 일대와 인근 대도시들, 그리고 그 너머 상당한 지역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을 것이다.

방어팀장 성가연이 말했다.

"아, 아. 들리나요?"

이어폰으로 분명히 들려온다.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들리네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살짝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통신은 아직 되는군요. 비서실장 말로는 어지간한 유틸리티 시설이나 통신 시설은 적어도 여섯시간 정도는 비상전력이 가동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제어실의 송중사가 대답해왔다.

"이번에 전기 내리는건 일반시설들, 컴퓨터나 에어컨 같은거 끄라고 하는 거니까요. 도시 규모로 꺼버리면 그정도만 해도 상당한 전력소모 감소율을 보일겁니다. 네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아요."

"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앞으로 네시간이다. 다들 자리 잘 지켜. 화장실 갈 생각도 하지 마라. 송중사는 주민들도 잘 보고."

"알겠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건물 옥상의 특임대원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점검하곤 내게 다가왔다.

"드론으론 아직 아무것도 발견 못했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보이는게 없네요. 자잘한 놈들이 좀 있긴 한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제일 좋죠."

난 고개를 젓고는, 꽁초가 된 담배를 튕겼다.

"아뇨. 안 좋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은 내 대답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산을 바라본다.

그 때, 드론 컨트롤러를 쥔 특임대원이 말했다.

"찾았습니다."

나, 성규혁, 그리고 주위에 서있는 특임대원들이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괴물짐승을 찾았다고? 어디야?"

"여기서 한참 멀리 있습니다. 지역명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축사... 같은데."

난 컨트롤러의 스크린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열추적 카메라가 하얗게 빛나는 무언가를 포착하고 있었다.

드론이 얼마나 높이 떠있는건지 모르겠는데,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놈이 다른 하얀 무언가들의 근처에서 꼬물거리고 있다.

"...소다. 소를 잡아먹고 있는거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신음하듯 말했다.

소라고?

난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바라봤다.

너무 작아서 개미로밖에 안 보인다.

확실히 잡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폰을 들어 구글맵을 켜더니 곧장 먼 산을 가리켰다.

"저 쪽이다. 큰 소농장이 산맥 중심에 있어."

특임대원이 말했다.

"그냥 놔두면 네시간은 충분하겠는데요. 어떻게 합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본다.

난 고개를 저었다.

"저거 못 죽이고 그냥 가면 언젠간 원전 다 털릴 수도 있어요. 처리해야 돼."

"...방법이 있습니까?"

난 산을 바라봤다.

돌겠네.

좀 있어도 근처에 있던가, 산 너머 산맥 중심에 처박혀서 소를 뜯어먹고 있냐.

난 한숨을 내쉬곤, 옥상 계단칸을 바라봤다.

여기 올라가도 저 산 너머는 안 보이겠지.

당연하다.

...스텟을 좀 써야되겠는데.

"...쯧."

난 혀를 차고는, 한 발로 벽을 딛고 계단칸 지붕으로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뭐 할 겁니까?"

"놈을 끌어내 볼 겁니다. 안 되면 할 수 없고."

특임대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하늘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공간발톱으로 단숨에 수십미터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한 번으론 부족하다.

산조차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가야 돼.

난 공간발톱을 단숨에 다섯 번 발동해 하늘로 계속 올라갔다.

풍경이 확확 바뀐다.

원전이 아득하게 발 아래로 멀어진다.

한 번 치솟아 오를 때마다 원전이 작아진다.

산 능선이 바뀐다.

공간발톱 한 번에 대략 30여 미터 이상.

정확히 재본적은 없다.

느낌상으론 200미터는 하늘로 솟아오른 것같다.

다섯번째 공간발톱을 발동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곤, 돌개바람을 소환해 올라탔다.

그리고 즉시 가속을 발동했다.

[자동 시전 : 가속]

추락하지 않는다.

공간이 멈춘다.

아니, 내가 빨라진거다.

공간발톱은 두 번 남았다.

이 이상 공간발톱을 쓸 순 없어.

여기서 보이면 보이는거고, 안 보이면 안 보이는거다.

능선 너머 능선.

산 너머 산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

아주 조그만.

소금 한 알같은,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평지가 있었다.

난 돌개바람에서 대물저격총을 꺼내 들었다.

저 쌀알같은게 축사이기를.

저기에 그 놈이 있기를.

나는 저격총을 견착하고, 조준경에 눈을 갖다댔다.

...있다.

보인다.

정확히 보이진 않는다.

이 고배율 조준경으로도 놈은 너무 작다.

그러나, 조준경 너머 투명한 원형에 정확히 포착된 붉은 빛.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