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187)

그 빛은, 놈이 정확히 저 곳에 있음을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와라.

와서 내 손에 죽어라.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화염이 느릿하게 퍼져나간다.

압축된 가스가 고폭소이철갑탄을 밀어낸다.

탄환이 날아가고, 한 발 늦게 총구가 밀려 올라간다.

난 돌개바람을 짓밟아 균형을 잡고는, 즉시 대물저격총을 집어넣었다.

가속이 해제되었다.

뒤늦게 폭음이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화염이 눈 앞에서 번뜩이며 사라진다.

"후우."

난 돌개바람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까워진다.

원전이.

점점 확대된다.

나는 건물 옆 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이다.

주먹을 쥐려는 찰나.

고폭소이철갑탄이 놈의 머리에 명중했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놈이 알려주었다.

우오오오오!

산이, 산맥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의 소리가 공기를 뒤흔들며 터져나왔다.

정말로 부엉이소리 같은걸.

난 미소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땅이 번개처럼 확대된다.

한쪽 무릎이, 주먹이 땅에 닿았다.

쿠쾅!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그러나 닿았다 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난 일어서서 건물을 올려다봤다.

특임대장 성규혁, 성가연, 특임대원들이 옥상에서 나를 보고있었고, 아랫층에선 송중사와 박소장, 그리고 생존자들이 창문을 열고 나를 보고있다.

다들 눈이 휘둥그래져서 딱히 표현하기가 힘든 얼굴들이다.

난 특임대장을 바라보며 크게 말했다.

"그 놈 지금 어딨습니까? 오고 있어요?"

우오오오오!

내 질문에 화답하듯 산이 쩌렁 울렸다.

낮게 깔아놓은 우퍼스피커 수천개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

몸이 덜덜 떨릴 정도다.

느낌만 그런게 아니라, 창문도 바들바들 떨린다.

생존자 여자들과 아줌마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로 들어가는걸 바라보다, 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통 괴물이 아닌 모양인데.

직접 마주한 적은 없다.

멀리서 붉게 빛나는걸 봤을 뿐이라,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마나 큰지도 가늠이 안 된다.

산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래봤자 멧돼지지."

놈이 나타나면 검으로 썰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검자루에 손을 얹는데,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성훈씨. 지금 산에서 놈들이 내려옵니다."

"놈들? 쥐떼입니까? 얼마나 오는거죠?"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많아요!"

난 고개를 들어 옥상을 바라봤다.

다급한 목소리?

왜지?

얼마나 많길래...?

그 때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

원자력발전소를 에워싸다시피 하고있는 산 전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짖어대는 소리와 땅을 밟는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산을 두드리고 있다.

풀이, 나무가, 산이 춤을 춘다.

산이 파도치는 것같다.

"...미친."

원전을 감싸고 있는 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한반도의 척추쯤이라고 볼 수 있는 산맥이다.

산맥을 이루고 있던 산과 봉우리들에서 모조리 몰려들고 있는 모양이다.

우오오오오오!

또다시, 쩌렁! 산이 울렸다.

난 이어폰에 손가락을 대곤 말했다..

"성훈입니다. 들립니까?"

"네, 성훈씨. 말씀하세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해왔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들뜬 것 같기도 했다.

난 건물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작전 좀 바꾸죠. 나서야 된다 싶으면 나도 싸웁니다."

두두두두!

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파도가 되어 산허리를 타고 내려온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신음을 흘리곤 말했다.

"성훈씨에게 뭘 하라고 지시하진 않겠습니다.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우리도 옥상에서 최대한 응전하겠습니다."

"그래요."

난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이건 아무래도 작전 변경이다.

산 속에 괴물 멧돼지가 있고, 자잘한 놈들을 거느리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맥 단위로 이렇게나 장악하고 있을 거라곤 예측 못했다.

적어도 경북 일대에 있는 놈들은 죄다 몰려드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저 산을 뒤흔들며 내려 올 정도면 도대체 몇마리나 되는거지?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냥 나 혼자 들어가서 덩어리 한 놈만 저격하고 나올걸 그랬나.

아니.

저 놈이 포효 한 번에 이 일대 짐승들을 모조리 끌어모을 수 있는 놈이라면, 이 일대 산맥을 그 정도로 장악하고 있었던 놈이라면 어떻든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사방에 폭탄 설치해 두고 요격하는게 나아.

건물 입구엔 크레모어 두 개가 바깥을 향해 터지도록 설치되어 있다.

건드리지 않도록 걸음을 옮겨 옥상으로 올라갔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원들이 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니건을 쥐고있지 않네?

아니다.

가만 보니 옥상 벽에 설치해 둔 미니건을 앞에 두고, 손에 수류탄을 다들 쥐고 있었다.

폭파팀은 기폭장치를 허리에 매달아놓고 대전차로켓을 하나씩 어깨에 메고 있다.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겨버리겠다는 듯이.

뒷모습만 봐도 싸울 준비는 다 되어있다는게 느껴진다.

문 여는 소리를 들은건지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본다.

"왔습니까. 미니건 열 개 설치해놨는데, 성훈씨도 하나 잡겠습니까?"

난 미니건을 바라봤다.

잉그램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탄환을 소나기처럼 뿌려대는 놈.

내가 잡으면 방아쇠 당긴지 1,2초만에 적중 200회가 날라갈거다.

난 고개를 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전 괜찮습니다."

"그래요. 언제든 필요하다 싶으면 하나 쥐고 긁어버려요."

"그러죠."

난 특임대장과 함께 대원들 사이로 들어가 벽에 섰다.

나무가, 숲이 파도치며 내려오고 있다.

특임대원 하나가 수류탄을 꾸욱 눌러쥔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기다려."

대원은 대답대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두 불타오르는 눈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내려오고 있는거지?

쥐떼가 저러고 내려오는거면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 같은데.

산허리를 타고 내려오던 파도가 풀숲에 닿았다.

넓게 펼쳐져 있는 풀숲.

도로 너머 무성한 풀들이 스산하게 흔들린다.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도로 앞 풀숲을 바라봤다.

다른 대원들도 나와 같을 것이다.

나와라.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거냐.

으르르르르-

공기가 살며시 흔들린다.

뭔가 있다.

저 안에.

그 때, 풀숲에서 그림자가 새어나왔다.

난 순간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건 그림자가 아니야.

숲을 타고 흘러나오는, 진득한 진액같은 검은 것.

바글바글한 쥐떼다.

내 옆에 서있던 성가연이 신음을 흘렸다.

"...맙소사. 수만마리는 되겠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길게 이어져 있는 풀숲에서 비져나온 검은 쥐떼는 그대로 도로를 메우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풀숲 사이에서 5톤트럭 크기의 짐승들이 걸어나왔다.

아가리가 벌어지고 찢어져 송곳니를 번득이는 거대한 짐승들.

개, 고양이, 너구리였던 것같은 괴물짐승들이 쥐떼 사이를 채우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적어도 수백마리는 되어보인다.

그 때 내 눈에 들어오는게 있었다.

짐승들 사이에 몇몇 끼어있는, 유난히 덩치 큰 놈들.

...멧돼지다.

괴물 멧돼지 하나가 있는게 아니었어?

난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뭐야 이거."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근처에 있던 놈들은 죄다 몰려온 것 같군요. 성훈씨. 당신이 저격한 놈이 저기에 있습니까?"

여기서 도로까진 30미터 쯤 떨어져 있다. 하지만 놈들 덩치가 워낙 커서 잘 보인다.

놈은 내게 두 번이나 저격당했다.

머리가 두 번이나 터졌다.

상처가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딜 둘러봐도 머리가 터진 놈은 없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놈은 없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떤 놈일지 궁금하군요. 저 괴물짐승들은 놈이 장악한 걸텐데."

나도 궁금하다.

여지껏 덩치 큰 멧돼지 하나가 있을거라 짐작했었는데, 도로 너머에 드문드문 보이는걸 보니 내 예상이 틀렸다.

저것들보다 더, 훨씬 큰 멧돼지가 있는건가?

성가연이 말했다.

"도로 너머로 오지는 않는군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놈들, 철조망을 경계하고 있는거다. 아무리 괴물이라곤 해도 고압전류는 견딜 수 없는 거겠지."

성가연이 특임대장을 힐끗 바라봤다.

"지금 전기 꺼졌잖아요."

난 미소지었다.

"놈들은 그걸 몰라."

특임대장 성규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와 성가연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그냥 저러고 서 있는데, 인사나 한 번 해 볼까."

특임대원들이 다들 한번씩 특임대장 성규혁을 바라본다.

내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화려하게 인사 한 번 하죠."

내 말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끄덕이고는 미소지었다.

"폭파팀. 대전차로켓 준비해."

대전차로켓을 어깨에 메고있던 특임대원 네 명이 두 손으로 다시 움켜쥔다.

특임대장 성규혁도 옥상 벽에 기대어 세워놨던 대전차로켓 하나를 들어 어깨에 멨다.

"목표는 대형 짐승이다. 각자 목표 잡고, 내 신호에 맞춰 쏜다."

폭파팀이 각자 목표물을 잡고 대전차로켓을 조준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기왕 인사하는거 방어팀도 같이 해줘야지. 로켓 발사하면 수류탄 던져버리고 그대로 미니건으로 저 놈들 긁어버려."

방어팀과 성가연이 각자 수류탄을 두 손으로 쥐고 전방을 주시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준비. 발사."

말이 끝나자 마자 좌우에서 폭음이 터졌다.

쐐애애애액!

로켓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 박혔다.

굉음이 풀잎과 흙무더기를 동시에 터뜨리며 퍼진다.

그리고, 로켓에 직격당한 짐승들이 피와 살점과 몸 속의 머리들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터져나갔다.

직후, 성가연이 외쳤다.

"핀! 던져!"

성가연과 방어팀이 일제히 핀을 뽑고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곧장 미니건을 붙잡는다.

다음 순간, 다섯대의 미니건이 일제히 화염을 내뿜었다.

벌떼가 일거에 날아오르는 듯한 진동이 등줄기를 짜릿하게 간지럽힌다.

소나기가 떨어지듯 도로가 파편을 튀기며 파헤쳐진다. 쥐떼가 피를 튀기며 사방으로 살점을 휘날린다.

쿠콰콰쾅!

풀숲 안쪽에서 수류탄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흙과 풀과 피와 내장을 동시에 공중으로 뿜어올렸다.

짐승들이 일제히 괴성을 외치며 사방으로 날뛴다.

끼이이익! 이이이익!

특임대장 성규혁이 소리쳤다.

"폭파팀! 수류탄!"

대전차로켓을 쐈던 특임대원들이 곧장 포를 내려놓곤 수류탄을 들었다.

"핀! 던져!"

동시에 다섯사람이 맞댔던 두 주먹을 당긴다.

그리고, 힘껏 던졌다.

온갖 훈련을 다 받은 특임대원들인지라, 수십미터쯤은 가볍게 날아간다.

폭음이 터진 직후, 미니건이 사방으로 탄환의 소나기를 뿌리고 있는 와중.

채 수류탄이 터지기도 전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다시 외쳤다.

"로켓 들어!"

폭파팀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전차로켓을 다시 들어 어깨에 둘러멨다.

난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폭음을 들으며 눈을 살짝 찡그렸다.

굉장한걸.

짐승떼들은 대전차로켓을 맞고 터져나가고, 미니건에 헤집어지며 사방으로 날뛰고 있었다.

짐승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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