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5화 (155/187)

크아아악! 크아아악!

그러나 뒤로 후퇴하진 않는다.

놈들은 여전히 산 위에서 꾸역꾸역 내려오고 있었다.

로켓을 어디에 갖다 박아도 우르르 뒤져나가겠는데.

그 때 수류탄이 터졌다.

날뛰던 놈들이 파편과 폭발 폭풍을 얻어맞고 사방으로 휘날리며 내장을 흩뿌린다.

이미 쥐떼는 미니건에 의해 수천마리가 학살당하고 있고, 대형 짐승들도 로켓과 수류탄에 맥을 못추고 앞발 뒷발과 내장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각자 목표 잡아! 쏴!"

대전차로켓이 순차적으로 폭음을 터뜨렸다.

로켓이 파공음을 흩뿌리며 날아가 박힌다.

쿠콰콰쾅!

도로는 이제 도로였던 것이 되었다.

도로를 이루고 있던 아스팔트가 살점과 피와 내장과 뒤섞여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다.

폭발과 화염과 파편을 얻어맞은 아스팔트는 마치 숟가락으로 거칠게 퍼낸 아이스크림처럼 여기저기 구덩이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 거칠게 붓칠하는 화가처럼 또다시 폭탄이 들이박혔다.

콰콰쾅!

파편의 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친다.

대전차로켓에 직격당한 고목 하나가 앙상해진 허리를 견디지 못하고 뿌드득 소리내며 무너져 내렸다.

머리 위를 덮쳐오는 나무를 미처 피하지 못한 짐승들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깔려 피를 토했다.

크와르롸락!

특임대장 성규혁, 성가연, 그리고 열 명의 특임대원들은 끝없이 탄환과 폭약을 놈들에게 쏟아부었다.

쥐떼는 터진 케찹처럼 되어 도로를 물들였고, 트럭 크기의 거대한 괴물짐승들은 사방으로 내장과 사지를 흩뿌리며 터져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완전히 죽은건 아니다. 놈들은 죽을 때까지 죽여야 죽는 놈들이다.

내장이 흘러나와도 놈들은 여전히 턱주가리를 꺼떡대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움직일 수는 없다.

앞발 뒷발이 있어야 씹어먹을래도 씹을 수 있을텐데, 대전차 로켓과 수류탄에 사지가 터져나가선 무리다.

멀쩡한 놈들도 미니건에 긁혀 몸부림을 쳐대며 풀숲과 나무 따위로 숨기 바쁘다.

그러나 폭음과 굉음을 동반한 폭발과, 분당 약 4천발을 쏟아내는 미니건 앞에선 숨는다는게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놈들은 라인을 뒤로 물릴 수밖에 없었다.

도로 건너 풀숲 일대는 바위가 터지고 나무가 쓰러져 순식간에 초토화 되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탄약 아끼지 마! 탄약 많다! 계속 쏴! 숲 속으로 갈겨!"

불과 몇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죽어나간 짐승들은 쥐떼를 포함해 족히 만마리는 되어보인다.

그러나 그의 판단대로, 산에서는 계속적으로 풀과 나무들이 흔들리며 파도가 내려오고 있었다.

폭파팀은 수류탄을 던지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지시에 M72 대전차로켓 대신 PSRL-1을 대신 들어 장전했다.

일회용인 M72 대전차로켓은 모두 써버린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폭파시 화력은 PSRL-1이 생김새부터 월등해 보인다.

RPG-7 개량형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치누크에서 실어 온 탄약과 폭약 무더기.

특임대원들은 탄약과 폭약상자가 입구에 가득 쌓여있었고 그걸 옥상에 죄다 실어날랐다.

성규혁은 그 탄약을 다 써버리는 한이 있어도 괴물짐승들을 처단할 생각인 모양이다.

"재장전!"

미니건 사수 하나가 외치고는, 옆에 쌓아둔 탄약통에서 탄약더미를 꺼내 미니건에 연결했다.

뒤이어 다른 사수들도 연이어 탄약을 재장전했다.

폭파 팀은 그 사이에도 PSRL-1을 연이어 숲 속으로 쏴갈겼다.

쐐애애액!

쏠 때마다 사수를 중심으로 파동이 일어나 먼지가 둥글게 말려나간다.

들이박힌 대전차탄두가 폭발하며 흙무더기와 피와 살점을 공중으로 터뜨려 올린다. 뿌리마저 파헤쳐져 나무가 쓰러진다.

온갖 굉음이 난무하는 광경을, 나는 한 걸음 뒤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하게 인사하겠다더니 진짜 오질라게 하네. 인사 두 번 했다간 도시 하나라도 날려버리겠는걸.

확실히 무기 다룰 줄 아는 군인들이 모여있으니 괴물이 떼를 이루어 쳐들어와도 믿음직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웃는 사이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미니건이 기이잉 소리를 내며 회전을 멈추었다. 방어팀 사수들과 폭파팀이 들고있던 무기를 내려놓고 전방을 주시했다.

화약 냄새와 타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특임대원들이 마음껏 터뜨리고 탄약을 뿌려댄 탓인지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내지른다.

"인사는 다 했습니까?"

내가 웃는 얼굴로 묻자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만하면 인사는 됐죠. 그런데 놈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산을 바라봤다.

저 안에 있다.

산 너머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성훈씨. 치누크는 네시간 뒤에 옵니다. 작전이 끝나자 마자 우리는 귀환합니다. 수도관리국을 빨리 처리해야 돼요."

난 특임대장 성규혁을 바라봤다.

임무에 이어 임무.

하나를 처리하면 또 하나가 튀어나오는 상황.

박소장도 작전이 끝나면 떠난다고 했었지.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시간입니다. 그 안에 놈이 안 나타나면 그대로 철조망에 고압전류 뿌리고 우리는 귀환합니다. 물론, 성훈씨도요."

성가연이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성훈씨. 상수도원 작전, 같이 가실거죠?"

상수도원.

대통령 방송을 보고 협박한 놈들.

당연히 처리해야지.

물은 중요하다.

전기만큼.

머릿속에 부모님이 떠오른다.

여동생도.

내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전기와 물.

수현이, 예은이, 은서와 마트 건물 사람들이. 그리고 서래마을 사람들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가야죠. 갑시다."

내 표정을 읽은 특임대장 성규혁이 다가와 내 어깨를 짚었다.

"가족을 찾아야 된다고 말씀하신것,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수도원 작전 까지만 합시다. 물은 확보해야죠."

특임대장 성규혁. 그리고 성가연.

다른 특임대원들 모두 가족의 생사를 모른다.

혹은 변해버렸거나, 죽어 손을 쓸 수 없게 되었거나.

마트 건물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나 혼자 가족을 찾겠다고 특임대원들을 동원한다는게 미안하기도 하다.

난 미소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달리 더 할 말은 없다.

우드드득 소리를 내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무들이 쓰러졌다.

터지고 갈려나간 살점들이 나무에 깔린다.

몸을 이루던 대부분이 사라진 짐승들은 아직도 턱을 움직이며 몸부림을 쳐댔지만, 전투력 측면에선 무력화된 거나 다름없다.

문제는 놈이다.

난 허리에 손을 짚고는 옥상 벽으로 다가가 산을 바라봤다.

놈을 남겨두고 갈 순 없다.

원전의 안전을 위해서도, 내 렙업을 위해서도.

성가연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선 화약냄새가 진하게 났다.

"성훈씨가 저격한 그 놈, 지금 저기서 죽은 놈들 중에 없는거 맞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안 나타나면 어쩌죠?"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을 바라봤다.

나한테 두 번이나 머리통을 뚫려놓고 안 나타나겠다? 그러면 다른 의미로 원전의 안전은 보장되는 셈이다.

어지간해선 여길 건드리지 않는다는 뜻이니.

렙업적인 측면에선 약간 아쉽긴 해도...

그런 내 생각이 무색하게도 산 속에서 포효가 울렸다.

우오오오오오!

공기가 부들부들 떨린다.

성가연이 땀 한방울을 뺨으로 흘리며 미소지었다.

"나타나긴 할 것 같네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산 속에서 다시 파도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다들 무기 들어! 장전해! 폭약 팀, 기폭장치 잘 챙기고!"

특임대원들이 대답하곤 각자 장비를 다시 한 번 챙기며 확인한다.

성가연도 자리로 돌아가 미니건을 잡고 섰다.

난 산을 바라봤다.

이번엔 다르다.

아까와는 확실히 다르다.

특임대장 성규혁도 그걸 느낀 모양이다.

"기다려. 아직 쏘지마."

뿌드득, 와지직!

나무들이 사방으로 춤을 추며 비명을 질러댄다.

산 속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들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며 꺾이고 넘어진다.

바위라도 굴러오는 것처럼.

우오오오오오!

굵은 우퍼를 장착한 초대형 스피커가 울부짖는 것같다.

도대체 얼마나 큰 멧돼지이길래 이런 부엉이소리를...

그 때, 풀숲을 헤치고 그림자가 뻗어나왔다.

수만마리의 쥐떼.

터져죽은 시체가 즐비한 도로를, 놈들은 다시금 기어오고 있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눈치챘군요."

뭐라고?

난 특임대장에게서 철조망으로 시선을 옮겼다.

철조망에 사체들이 걸려있었다.

연기도 뿜지 않고, 지직거리지도 않는다.

그저 걸려있을 뿐이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쏴!"

쐐애애액!

그의 명령이 떨어진 즉시 대전차로켓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도로로 날아가 꽂혔다.

탄두가 폭발하는 사이 미니건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짐승의 떼가 무더기로 죽어나간다.

그러나 쥐떼들은 거침없이 철조망으로 달려들었다.

이이이익! 끼이이익!

특임대장 성규혁이 혀를 차고는 외쳤다.

"쯧. 폭파팀! 기폭장치 준비해! 놈들이 넘어온다!"

폭파팀이 기폭장치를 드는 사이, 귀에서 관리실에 있는 송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기 올리죠!"

쿠콰콰쾅!

철조망을 넘어 온 놈들이 지뢰를 밟고 사방에서 터져나간다.

시체와 피와 살점이 솟구치는 가운데,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송중사! 비상발전기는 이제 가동했어. 정전이 됐다고 지금 올리면 전력소모가 줄겠나!"

"하지만 놈들이 넘어오잖습니까!"

철조망이 갈리고 터져나간다.

그 사이로 쥐들이 들어온다.

그러나 놈들은 미니건의 화망을 제대로 뚫고 들어올 수 없었다.

다섯대의 미니건은 분당 도합 2만발을 쏟아내며 놈들의 접근을 원천차단했다.

비오듯 쏟아지는 탄환에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고꾸라지고 피를 뿌리며 엎어지는 쥐떼를 바라보며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올려야 될 때인지는 내가 판단한다. 지금은 문제 없다. 기다려!"

무슨 노르망디 상륙작전같네.

철조망을 넘어오는 쥐떼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예전에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탄환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폭탄이 연발로 터지며 흙무더기와 돌과 콘크리트 파편이 솟구치는게 몸이 떨릴 정도다.

그 때, 산이 뒤흔들렸다.

우오오오오!

허스키한, 목을 너무 써버린 부엉이가 우퍼스피커에 대고 괴성을 지르는 듯한 소리.

우지지직!

나무들이 쓰러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시커먼 것이 나타났다.

난 순간 숨을 멈췄다.

...저 놈이었나.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특임대장 성규혁도 그걸 봤다.

특임대원들도 순간적으로 조준이 흐트러진다.

성가연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멧돼지가 아니잖아."

검은 털.

가슴에 선명한 하얀 무늬.

터져버린 머리통에서 시뻘건 고깃덩이가 심장처럼 박동하고 있는, 집채만한 짐승.

산의 주인.

반달곰이었다.

압도적이다.

다른 모든, 그 어떤 짐승이라도 상대가 안 될 정도다.

심지어 미군기지에서 내 손에 죽었던 괴물 멧돼지도 저거에 비하면 애송이라고 불러야 될 정도다.

거대하고 검은 짐승은 그 곳에서 그렇게 압도감으로 주위를 짓누르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성가연이 크게 말했다.

"저거, 저거 쏴야 돼! 죽여야 돼! 다들 저 검은 괴물 조준해!"

"아니!"

특임대장 성규혁이 외쳤다.

"방어팀! 작은 놈들 쏴라! 폭파팀! 주위 경계해! 자기 임무를 잊지 마!"

성가연이 놀란 눈으로 특임대장을 돌아봤다.

"하지만 저건...!"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멈췄다.

난 미소짓고 있었다.

"...저 놈은 내 거야. 건드리지 마."

그리곤 곧장 뒤돌아 걸어갔다.

성가연이 내 뒤에서 외쳤다.

"성훈씨! 아무리 당신이라도 혼자선 무리예요!"

시끄러워, 성가연.

그거야 안 해보면 모르는거지.

"성훈씨."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

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내게 말했다.

"무운을 빕니다."

난 엄지손가락을 하나 올려보였다.

그리곤 계단을 내려갔다.

자아, 괴물새끼야.

이제야 나타났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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