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187)

곰이든 뭐든 상관없어.

내 손에 죽어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미소지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넓은 콘크리트 도로.

난 건물을 나와 도로 한가운데에 섰다.

철조망과 이어져있는 도로는 지뢰와 크레모어가 설치되어 눈으로 봐도 위험해보인다.

그 도로 너머, 철조망.

놈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전차로켓과 미니건에 쓸려나가는, 숱한 짐승들을 거느린 괴물.

산의 주인이 저 곳에 있었다.

고폭소이철갑탄에 의해 터져나간 머리 일부에 검붉은 무언가가 심장처럼 박동하는 흉물.

놈은 나무들 사이에, 키 큰 수풀들과 바위 뒤에 서서 우리를, 원자력 발전소를 노려보고 있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를 찾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미소짓고는, 돌개바람을 소환했다.

그리고, 대물저격총을 꺼내 어깨에 견착했다.

...보인다.

적중에 의해 붉게 빛나는 괴물짐승이.

저 산의 주인이.

"난 여기 있다, 괴물새끼야. 덤벼."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공이가 탄환을 두드린다.

장약이 폭발하며 가스가 터져나간다.

탄피를 벗어난 탄약이 강선을 따라 맹렬히 회전하며 총구를 탈출해, 단숨에 놈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귀를 때리는 폭음과, 어깨를 힘껏 때리는 반동에 몸이 휘청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곰이 포효했다.

우오오오오오!

느우어엉처럼 들리지만 짐승의 소리라 제대로 표현이 안 된다.

반동 때문에 휘청이느라 제대로 보질 못했다. 저렇게 괴성을 지르는걸 보면 고폭소이철갑탄이 머리에 제대로 들이박힌거겠지.

박히자 마자 고폭이 터지고 소이가 불태우며 철갑파편이 산탄이 되어 주변 두개골을 개박살냈을 것이다.

대물저격총.

한 발의 화력을 끌어올리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난 사납게 미소지으며 철조망 너머를 바라봤다.

놈이 대가리를 홱홱 저으며 포효하고 있다.

우오오어얽! 누오어어얽!

쿠콰쾅! 콰쾅!

대전차로켓이 끝없이 터지고, 지뢰와 크레모어가 폭발하며, 미니건 탄환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며 피와 살점을 뿜어올리는 광경이란, 폭력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현대미술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놈은 그 속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놈이 나를 바라봤다.

정확히 어디에서 탄이 날아왔는지를 놈은 안다.

그리고 그 곳에, 내가 서 있다.

그래.

바로 나다.

난 사납게 미소지으며 놈을 노려봤다.

"사람도 짐승처럼 되고, 짐승은 더 짐승처럼 되고, 어차피 종말이잖냐. 죽고 죽여야지? 재밌게 가자고."

중얼거리곤 대물저격총을 다시 견착했다.

놈이 나를 본다.

나를 봤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놈은 눈치챘다.

놈의 아가리가 쩌억 벌어진다.

맙소사.

가슴의 흰 무늬 까지 쩌억 벌어진다.

단검같은 이빨 수백, 아니, 수천개가 그 곳에 들이박혀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붉은 피를 질질 흘려대고 있다.

상체 전체가 아가리인 것마냥 쩌억 벌어지다니.

저건 더이상 내가 알던 곰이 아니다.

이 세상의 생물이 아닌 그 무엇이다.

아가리를 벌린 놈이 포효했다.

우오오오오오!

공기가 부들부들 떨린다.

소리에 밀려 넘어질 것만 같다.

좌우 건물의 창문이 바들바들 떨리다 거미줄처럼 쩌억 갈라진다.

"크윽."

조준을 할 수가 없다.

귀가 터질 것같다.

난 소리에 밀려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귀를 막았다.

포화도 순간적으로 멎어버렸다.

건물 지붕의 특임대원들도 괴로워 웅크린 거겠지.

뭐냐 이건.

음파공격인가?

원자력발전소가 웬만한 충격은 견딜 수 있다지만, 이런 음파진동까지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건가?

놈의 포효는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의 위력을 담아 원전을 뒤흔들었다.

난 이를 악물곤 대물저격총을 두 손으로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이 포효하며 뛰었다.

누오오오오!

쩌렁!

놈의 포효에 금갔던 건물 유리창이 박살나며 파편을 흩날렸다.

"쯧."

늦었다.

음파공격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다.

지금 쏴도 저지 못한다.

난 혀를 차곤, 돌개바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물저격총을 집어넣고는, 그대로 올라탔다.

놈이 철조망에 달려든다.

누오오와앍!

우지끈! 콰지직!

철조망을 지탱하던 철기둥이 단숨에 뽑혀나가, 또다시 좌우로 연이여 뽑히며 그물이 되었다.

놈은 그물따윈 아랑곳않는 기세로 나를 향해 질주해왔다.

난 입술을 비틀며 돌개바람의 액셀과 앞바퀴 브레이크를 동시에 당겨 제자리에서 180도로 회전했다.

카카카카!

놈은 거대한 괴물짐승이다.

정공법으로 맞서 싸우는건 자살행위다.

두 다리로 물러서며 싸울 수도 없다.

못 도망간다.

돌개바람을 믿는 수밖에.

앞으로 달려나가려 액셀을 당기려는 찰나.

골목과 도로 옆에 위치해 있던 크레모어들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쿠콰콰쾅!

전방을 향해 산탄하도록 되어있는 폭발물이 화약을 터뜨리며 인마살상용 파편을 무수하게 퍼뜨려 반달곰의 몸통과 사지에 적중했다.

피가, 살점이, 가죽이 찢기고 헤집어진다.

누와아아앍!

크레모어를 처맞은 괴물 반달곰이 괴성을 지르며 엎어진다.

얼마나 덩치가 큰지, 얼마나 무거운건지 엎어지며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아니, 실제로 폭탄이다.

놈은 지뢰를 깔아뭉개며 엎어진거다.

순간적으로 들썩이며, 피와 살점이 다시금 사방으로 휘날린다.

"...하."

난 그걸 보곤 미소지었다.

시커먼 대검같은 무언가가 허공을 날아다닌다.

놈의 밭톱이다.

저거에 박히면 몸 같은건 간단히 두동강 나겠는데.

...곰은 사람을 찢는다지.

난 옥상을 올려다봤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폭파팀.

일 제대로 하는데.

난 미소짓고는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였다.

그리곤, 허벅지에서 잉그램을 꺼내 곰을 겨누었다.

투명한 원형 속에 들어찬 거대한 놈이 타오르듯 붉게 빛난다.

난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륵!

그러며 외쳤다.

"어이! 벌써 죽으면 안 되지! 일어나!"

단숨에 서른발을 쏟아붓고는, 새로이 탄창을 갈아끼웠다.

내 탄환 한 발 한 발.

무조건 약점에 박히도록 되어있는 적중.

인간이었다면 머리에 박혔겠지만,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탄환이 제 멋대로, 놈의 몸 곳곳에 뿌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온 몸에 있는거다.

죽을 때까지 죽여야만 죽는 놈이다.

탄환이 박힐 때마다 꿈틀대던 괴물곰이, 탄창을 갈아끼우는 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놈이 나를 노려본다.

흐르르륵, 크르르륵 하며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와의 거리는 약 50여미터.

난 미소지었다.

"뭘 벌써 다치고 그러냐. 이제 시작인데."

철컥.

잉그램이 탄환을 약실에 밀어넣는 쇳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

난 미소띈 얼굴로 놈을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놈이 포효했다.

우오오오오!

온다.

뛰어온다!

난 즉시 액셀을 당겼다.

돌개바람의 바퀴가 지면을 힘껏 긁으며 앞으로 튀어나간다.

가아아아앙!

놈이 땅을 딛을 때마다 콘크리트가 박살난다.

쿠쾅, 쿠쾅! 하며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휘날린다.

우오오오오!

놈이 포효하며 나를, 내가 탄 돌개바람을 쫓아, 땅을 박살내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한울 원자력 발전소는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는 시설이다.

웬만한 축구경기장을 몇개나 집어넣어도 한참 남을 정도의 대규모 시설.

나는 그 안에서, 돌개바람을 타고 힘껏 질주했다.

바람이 머리칼을 누르며 쓸어넘긴다.

쿠쾅, 쿠쾅! 쿠쾅, 쿠쾅!

뒤에서 쫓아오는, 콘크리트 박살나는 소리와 진동을 느끼며, 한 손으로 검을 뽑아들었다.

"자아, 놀아보자. 괴물새끼야."

나는 검을 놓았다.

슈확!

손 끝에서, 발 끝에서, 내 온 몸에서 희미한 기운이 뻗어나가 그림자가 되어 검을 움켜쥔다.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빠르게 내 뒤로 멀어지고, 괴물곰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명령했다.

놈을 죽여.

뒤를 힐끗 돌아보자, 나의 그림자 전사가 괴물 곰을 향해 뛰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괴물 곰의 포효가 다시금 들려온다.

우오오오옭!

고통에 젖은 소리같다.

괴물짐승도 고통을 느끼나?

난 돌개바람을 달리던 속도 그대로 비틀어, 전방을 향해 드리프트하며, 고개를 돌려 올려다 봤다.

놈이 보인다.

그림자 전사가 달라붙어 온 몸을 무자비하게 썰어대는 모습이 보인다.

난 미소지으며,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론 잉그램을 뽑아 내밀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모든 것이 느려졌다.

그저 내 손에 잡혀있는 잉그램의 감촉과, 손가락에 느껴지는 방아쇠의 느낌과, 내 입가에 걸려있는 미소만이 이 곳에 있을 뿐이다.

느려져, 허공에 기대어 있는 것같은 거대한 괴물.

가슴까지 쩌억 벌어진 아가리와 칼날같은 무수한 이빨. 그리고 온 몸이 폭약과 고폭소이철갑탄에 흉측하게 헤집어져 있는 몸뚱이.

그 흉물스런 몸뚱이를 찌르고 또 베고있는 나의 그림자 전사.

난 그 모든걸 눈에 담으며, 미소지었다.

너도 계속 난자당한 끝에 죽을거야.

죽을 때까지 죽어라, 괴물새끼야.

나는 미소진 입가로 이를 악물며, 방아쇠를 당겼다.

득, 득, 득, 득!

돌개바람의 핸들을 잡고있던 다른 손도 놔버리곤, 허벅지에서 잉그램을 뽑아 들어 놈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자동소총 두 정과 검 한자루라는, 3인분의 화력을 괴물곰에게 일시에 쏟아부으며, 나는 웃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드득, 드득, 드득, 드득!

총구에서 화염이, 그리고 탄환이 날아간다.

느리게, 또 빠르게, 빗발치듯 총알이 쏟아져 나간다.

그러며 멀어진다.

쉽게 눈치챌 정도로, 옆으로 미끄러져 드리프트하고 있음에도 놈은 돌개바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철컥.

탄창이 비었다.

난 두 잉그램의 탄환을 모두 쏟아붓고는, 하나를 허벅지의 가죽띠에 꽂아넣고 탄창을 갈았다.

그리고, 다른 잉그램을 꺼내 탄창을 갈고는, 다시 놈을 향해 두 손으로 잉그램을 갈겼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제기랄, 옆으로 길을 깔아뭉개면서 계속 드리프트했더니 넘어질것같다.

넘어지지 않게끔 몸에 힘을 주고, 가속을 끝까지 유지시키며 탄창을 모두 비웠다.

순식간에 도합 120발의 탄약이 내 손을 떠났다.

더 못 버텨.

넘어진다.

난 잉그램을 허벅지의 가죽끈에 꽂아두곤 핸들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발로 지면을 힘껏 짓밟으며 일어났다.

밀리는 지면과 짓밟는 발이 느리게 마찰하며 먼지를 느릿하게 피워올린다.

무겁다, 젠장!

드러눕던 도중의 오토바이라, 체력업적스킬로도 버거울 정도로 일으키는게 무겁다.

"크윽!"

이를 악물고 일으켜서는, 기어페달에 발을 얹어놓고 한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이대로 질주하면 놈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진다.

그림자전사는 내게서 일정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다.

가속이 끝났다.

가--아-아아앙!

돌개바람이 힘껏 달려나가는 것과 동시에, 검이 내 손으로 날아와 잡혔다.

돌아오라는 명령은 하지 않았다.

거리가 벌어져 그림자 전사가 스스로 귀환한거다.

그림자 전사의 유효거리가 좀 더 길었다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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