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총구의 파동이 겹쳐 공기가 젤리처럼 파도치는 것같다.
"후읍!"
숨을 가다듬고는, 다시 탄약을 약실로 밀어넣었다.
철컥!
그리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고폭소이철갑탄이 강선을 따라 맹렬하게 회전하며 화염을 뚫고 튀어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등줄기가 섬칫하다.
나 지금 가속 몇번이나 썼지?
몇번이나 유지하고 있었으니, 거의 한계에 다다랐을 텐데.
객기는 부리면 안 된다.
난 즉시 몸을 돌려 시트에 앉아, 대물저격총을 돌개바람에 넣어두고 상태창을 켰다.
...아슬아슬하다.
겨우 두 번 밖에 남지 않았어.
"후우..."
난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액셀을 당겼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오라는 명령은 하지 않는다.
가속상태에서 그림자 전사를 풀어놨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림자 전사도 공격횟수가 거의 다 됐을거다.
슈화확!
검은 기운이 내게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내 손에 검이 들어왔다.
"...하아."
돌겠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난 검을 내리쳐 피를 빼내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가속이 끝나길 기다렸다.
가---아--아아앙!
느릿하던 풍경이 번개처럼 옆으로 지나간다.
바람이 머리칼을 뒤로 잡아당긴다.
난 눈을 가늘게 뜨고, 앞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철조망을 바라봤다.
우오오어얽!
뒤에서 놈이 괴성을 지르며 엎어진다.
동시에, 인간의 비명들도 터져나온다.
...안 죽었다.
공격횟수를 거의 다 썼다.
그럼에도 놈은 안 죽었다.
"쯧."
좀 자만했나.
약간 오만했을지도 모른다.
나 정도면 저런 괴물 같은건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여긴 모양이다.
하지만 부족했다.
닿지 못했다.
젠장.
철조망이 가까워진다.
동시에, 뒤에서 놈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오오오오!
공기가 부들부들 떨린다.
땅을 딛을 때마다 콘크리트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린다.
어쩔 수 없다.
여기선, 장기전으로 가자.
난 고개를 돌려 멀리 도로를 바라봤다.
전방, 철조망 너머엔 공사중인 넓은 터.
그리고 그 옆으론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길.
난 길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주먹쥐었다.
순식간에 지면이 멀어진다.
철조망이 내 발아래로 지나간다.
가아아아앙!
난 수미터 위를 돌개바람에 탄 채 활공하며 지면을 내려다봤다.
미친, 존나 빠르네.
땅이 잔상처럼 보일 지경이다.
지금은 공간발톱 시전중이 아니라 착지충격은 흡수가 안 된다.
체력업적 스킬을 믿는 수밖에.
난 안장에서 반쯤 일어나, 허벅지를 단단하게 굳히고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공간발톱에 의해 제비처럼, 쏜살같이 날아간 돌개바람이 활공한 끝에 지면에 닿았다.
쿠콰콰콰!
타이어가 좌우로 밀린다!
"큭, 개씨발!"
세울 수는 없다!
브레이크 밟으면 자칫하다 돌아버린다!
난 힘껏 액셀을 당기며 다리에 힘주어 돌개바람을 제어했다.
흙먼지를 S자로 일으켜가며 간신히 균형을 잡자마자 곧바로 커브가 나타났다.
즉시 온 몸을 비틀어 옆으로 누우며 핸들을 꺾었다.
카카카카!
고속으로 회전하는 타이어가 지면을 힘껏 긁는다.
제길, 너무 빨라!
감속할 여유가 없냐 미친!
무릎이 땅에 닿을 것같다.
난 이를 악물곤 액셀을 힘껏 당겨 돌개바람의 가속도를 더욱 올렸다.
카카카카!
지면을 긁으며 옆으로 밀려나던 돌개바람이 어느 순간 앞으로 쏠려나갔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릎 보호대도 없는데 땅에 닿았으면 죽고싶을 정도로 갈려나갔을거다.
가아아아앙!
두번째 커브가 다가온다.
이번엔 좀 안정적으로, 라는 생각을 하며 안심하려는 찰나, 뒤에서 지면을 밟아뭉개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쾅, 콰쾅! 콰쾅!
놈이다.
나를 쫓아오고 있다!
난 힐끗 뒤돌아보곤, 두번째 커브를 틀어 왼쪽으로 꺾어 달렸다.
마치 온 몸에 돋아난 촉수처럼 인간의 몸뚱이를, 인간의 사지를 휘날리며 놈이 쫓아오고 있었다.
우오오오오! 우어어어얽!
포효소리가 등줄기를 짜릿하게 때린다.
실감나게 짖어대네 씨발.
난 욕을 지껄이며 코너를 돌아, 그대로 도로를 타고 달려나갔다.
가아아아앙!
왼쪽으론 원전.
오른쪽으론 숲.
두 개의 풍경이 양 옆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그 때, 숲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이이이익!
난 숲을 힐끗 돌아봤다.
풀숲이, 나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짐승들이 내 앞으로, 도로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쥐와 고양이와 별의 별 잡것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내 앞길을 막아선다.
"미친 씹!"
난 이를 갈며 핸들을 꺾었다.
나를 붙잡으려 공중으로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놈들.
그러나, 돌개바람의 속도를 놈들이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난 좌우로 꺾어가며 오른쪽으로 몰아달렸고, 놈들이 나를 덮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놈들의 포위를 뚫고 달려나아갔다.
가아아아앙!
돌개바람의 엔진이 타오르듯이 맹렬히 돌아간다. 그리고, 짐승들과 풀과 나무와 온갖 것들이 내 좌우로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돌개바람 아니었으면 백프로 뒤졌겠는데.
앞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는데,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다.
"성훈씨! 어떻게 된 겁니까!"
이어폰 괜찮네.
그 난리에도 귀에서 안 떨어져 나갔어.
난 맞바람에 실눈을 뜨며 피식 웃었다.
"거기 좀 비좁아서요. 넓은데서 싸울려고 데리고 가는겁니다."
"다 데리고 갈 필욘 없었잖아요! 괜찮은 겁니까?"
...뭐라고?
다 데리고?
"짐승들이 전부 다 나를 쫓아 온다고요?"
"네. 지금 전부 당신을 쫓아 나가고 있어요! 혹시 뭐 했습니까? 유인 같은거?"
"아니, 그런거 안 했는데."
그 때 성가연이 말했다.
"짐승들이라 그럴거예요. 뭐가 도망치면 무조건 쫓아가게끔, 그거 본능이거든요."
본능적으로 날 쫓아 온 거라고?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놈들의 우두머리가 당신을 쫓아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놈들 대부분이 당신을 쫓아 나갔어요."
그렇단 말이지.
난 숲을 힐끗 쳐다봤다.
날 쫓아온다는 놈들은 그래도 네발 달린 짐승들이라 돌개바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이젠 간헐적으로 튀어나올듯 말듯 하며 옆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짐승들.
난 시선을 돌려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차라리 잘 됐어. 이대로 작전 계속 진행해요. 내가 놈들 끌고 멀리까지 가 있으면 원전은 안전할거야."
여차하면 나 혼자서 모조리 사냥해버릴 수도 있는거고.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혼자선 무립니다, 아무리 성훈씨라도!"
"아니, 성훈씨 말이 맞아요."
성가연이 말했다.
"성훈씨. 솔직히 말할게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저희가 갖고 온 대전차포탄이랑 폭약들, 거의 다 썼어요. 미니건 탄약도 얼마 안 남았고요. 거의 한계였어요."
난 피식 웃었다.
바람에 밀려 침이 나올 것같다.
"그래요?"
"네. 미안하지만, 성훈씨. 당신 계획대로 해요. 저희는 대위님들한테 지원요청 할게요. 탄약 보급하고 폭약 재설치할 때까지만 버텨줘요. 그렇게 해줄 수 있어요?"
이젠 숲에서 짐승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과, 뒤에서 들려오는 짐승들의 괴성, 그리고 괴물곰이 아스팔트를 뭉개며 달려오는 소리 뿐이다.
성가연.
작전 성공이 최우선이다, 이거지.
역시 특수부대는 특수부대야.
여자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되겠어.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그래요. 한 번 해 봅시다."
성가연이 말했다.
"...당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무사할 거라고 믿어요. 다치지 말아요. 살아서 다시 만나요."
특임대장 성규혁도 한마디 덧붙였다.
"버티고 있어요. 우리가 지원하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성훈씨."
난 보는 이 없음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안 죽어. 그런 걱정은 말아요. 나중에 봅시다."
난 그렇게 말하곤 다시금 액셀을 힘껏 당겨 도로를 달려나갔다.
생존자들을 구출해왔던 마을.
지금은 비어버린 곳.
거기가 목표다.
가아아아앙!
돌개바람을 몰아 마을에 도착하고선, 곧장 편의점을 찾아갔다.
생존자들 구출할때 털었던 편의점엔 거의 남아있는게 없다.
한 골목 더 들어가 드러난 편의점.
안에 좀비 몇놈이 크르륵거리고 있다.
난 돌개바람에서 내려선, 곧장 검을 빼들고 편의점으로 벌컥 들어갔다.
"크롸랅!"
돌개바람에서 내릴 때부터 날 홱 돌아보던 놈들이 발광하며 덤빈다.
난 검을 휙 던지곤,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슈확!
그림자 전사가 튀어나와 놈들에게 휘몰아쳤다.
피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촥, 촤악!
나는 한가롭게 피를 얻어맞으며, 선반에서 담배 몇 갑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뒤돌아섰다.
그림자 전사가 내게 다가온다.
검을 받아들곤, 포장이 부풀어있는 핫바 따위를 지나 컵커피 하나랑 에너지바를 상자째 집어들었다.
이만하면 하루이틀쯤은 버티겠지.
그리 오래 버티고 있을 생각은 없다만.
편의점을 나서자 멀리서 쿠쾅, 콰쾅하며 괴물곰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잡짐승들도 놈과 함께 달려오고 있겠지.
돌개바람을 집어넣곤 앞에 있는 건물을 바라봤다.
빌라인지 아파트인지 애매한 다가구 건물.
생존자들을 구출했던 단지에서 한블럭 떨어져 있지만, 여기나 거기나 낡은건 마찬가지다.
시골에 있는 아파트촌에 흔히 있을법한 낡은 건물.
난 위로 손을 내밀어 주먹쥐었다.
스웅!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단숨에 수십미터를 뛰어올라 아파트 지붕 위를 활공하듯 내려앉았다.
"휴우."
공간발톱, 재밌단 말이야.
난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담배 포장을 뜯어 한까치 입에 물었다.
원전 작전, 금방 끝날거라 생각해서 시가도 안 가져왔는데 말이지.
시가 한대 쫙 빨았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한가롭게 불을 붙였다.
위에서 바라보니 놈들이 달려오는게 보인다.
아직 수백미터는 떨어져 있다.
깨알같이 보이는 짐승들. 옥상 벽에 팔꿈치를 얹어 내려다보며 담배연기를 내뱉았다.
"후우."
완전히 회복하려면 다섯시간쯤 필요한데.
다 회복하고 나면 철조망에 전기 다시 올라가겠네.
"그냥 여기서 뻗대고 있지 뭐."
내 말이 들렸던건지 성가연이 대답해왔다.
"안전지대를 찾았어요? 성훈씨 어디예요?"
"지금 그, 어디냐. 여기 무슨 동넨지 모르겠네요. 원전 밑에 마을요."
"거긴 괜찮아요?"
난 웃고는 말했다.
"난 괜찮아요. 내 걱정 말고, 거긴 어때요? 사람들 제법 놀랐지 싶은데?"
성가연이 한숨쉬고는 말했다.
"네에. 생존자분들, 여자분들이 많이 놀랐더라고요. 폭탄 터지는 소리를 일반인 분들이 이렇게 가까이서 듣는 일이 잘 없으니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금은 안전한거죠? 철조망은요?"
"철조망 좀 상하긴 했는데 통째로 나간건 없는거 같아요. 지금 우리 대원들이 나가서 기둥 뽑힌거 다시 꽂고 있어요."
성가연이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폭탄이 좀 더 있으면 좋겠는데 이제 남은게 없네요. 대위님들한테 아까 연락했는데 아무리 빨라도 두세시간은 걸린대요. 정말 성훈씨 아니었으면 방어선 다 무너질 뻔 했어요."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