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187)

미친 놈들이란 아마도 좀비을 말하는 모양인데, 미치려면 미칠만한 정신이 존재해야 된다.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미칠 만한 정신 같은게 애초에 존재하질 않는다.

말을 할 수도 없으니 의사소통도 안되고, 놈들의 유일한 행동양식은 사람을 보면 달려가 잡아먹으려 든다는 것 하나 뿐이다.

난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놈들은 사람을 꾀어내지 않습니다. 뉴스나 유튜브를 봤으면 알 텐데요."

남자가 숨을 헐떡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뉴, 뉴스를 어떻게 믿습니까? 죄다 거짓말 뿐인데. 세상이 전부 이렇게 됐다고 하는 것까지만 보고 그 뒤부턴 아예 쳐다도 안 봤습니다. 이건, 이건 틀림없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킨겁니다. 그래서 그걸 은폐할려고, 다 조작이예요. 미국 대통령하고 짜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킨걸 무슨 괴물이 나타난거라고 조작한겁니다."

"...뭐라고요?"

"정말이예요. 진짭니다. 라디오에서 계속 그 얘기예요."

...라디오?

라디오 무슨 라디오?

요즘도 라디오가 있나?

아니, 그 전에, 무슨 음모론을 나불대는거지 이 사람은?

난 어이가 없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남편을 바라봤다.

"...방금 저 괴물쥐를 못 봤습니까? 사람 뿐만이 아니라 짐승들도 저렇게 변해버렸어요. 보고도 모릅니까?"

"그, 그것도 마찬가집니다. 미국 대통령이 진실을 은폐한거예요. 놈들이 동물실험을 한 끝에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 무슨 세균병기를 터뜨린겁니다. 그래서 동물들이 저렇게 된 거예요. 사람들도요. 원래는 그냥 시위를 할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세균병기를 맞는 바람에 모두가 사람을 뜯어먹는 미친놈들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 모든게 다 미국이 저지른 일입니다. 우리 정부는 거기에 동조했고요. 나쁜 놈들이예요."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미친인간인가 이 씨발놈은?

그런 생각이 표정으로 나온 모양이다.

남편이 내 얼굴을 보더니 고집스럽게 말했다.

"진짜라고요. 진짭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모양 이꼴이 된 거예요. 그러니 저희가 정부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면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밖에 나갔다가 세균병기에 저희도 노출되면 어떡합니까? 이미 거기 감염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뜯어먹고 다니는데."

쑤걱, 퍼걱!

그림자 전사가 짐승들을 썰어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림자 전사가 베란다 밖으로 나가, 벽에 달라붙어 있는 놈들까지 추적해 죽이고 있는 모양이다.

난 짐승들이 죽어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남자를 바라봤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이 인간은?

종말이 찾아온 세상을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이해해보려 한 결과 이렇게 된 건가?

잠깐.

난 갸웃하며 물었다.

"방금 라디오에서 그걸 다 들었다고 했습니까?"

"예."

"무슨 라디오요? 어디서 송출하는 겁니까 그거?"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남자는 그렇게 대답하곤 눈을 내리깔았다.

난 남자를 내려다보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어딥니까 거기가?"

남자는 대답없이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제스쳐인 것같다.

돌겠네.

그 때, 뒤에서 이이익!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좌우사방에서 아파트를 타고 기어올라오니 그림자 전사 혼자서는 다 감당할 수가 없었나보다.

뒤돌아보니 쥐 두어마리가 베란다로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이이-이--익---

쥐가 짖는 소리가 늘어난다.

난 즉시 활과 화살을 뽑아 매겨 당겼다.

핏, 핏.

느릿하게 날아가는 화살을 외면하곤 다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속이 끝났다.

퍼퍽!

끼이익! 끼익!

쥐 두마리가 단숨에 머리가 뚫려 베란다 밖으로 추락해 떨어진다. 그 광경을 본 남편과 마누라, 애가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기 그냥 있어도 안 되겠는데.

스텟 풀충전도 안됐고, 아직 싸울 때가 아니다.

"안방으로 일단 갑시다. 일어나요."

마누라의 팔을 붙잡고 일으키자 남편과 애도 같이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의 집 냄새가 훅 난다.

수개월을 외출을 못 한 탓인지, 환기를 못했기 때문인지 꽤 남의 집 냄새가 진하다.

창문을 보니 장롱 문짝을 뜯어내 보강해놨다.

그래도 할건 다 해놓고 있었네.

난 문틀을 밟고 서서 손을 내밀었다.

돌아와.

밖에 있던 그림자 전사가 희미한 바람소리를 내며 되돌아와 내 손에 검을 건네주곤 사라졌다.

난 검을 내리쳐 피를 빼내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슈르릉- 착.

그리고 방문을 닫고는, 곧장 침대를 들어 문을 틀어막았다.

방 안에 있던 TV와 화장대도 들어다 침대에 얹어놓고, 장농을 당겨 창문도 막아놨다.

주위에 있던 놈들은 그림자 전사가 처리해놨을 테고, 소리만 내지 않으면 한동안은 괜찮겠지.

놈들이 문을 뚫고 들어오면 그땐 맞서 싸우면 되고.

지금은 일단...

난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대어 조용히 하라고 알려주곤, 폰을 꺼내 가리켰다.

이걸로 얘기합시다.

남편이 알아들은건지 고개를 끄덕이곤 자기도 폰을 꺼내들었다.

난 곧장 메세지를 입력했다.

[누가 그런 음모론을 퍼뜨리고 다닙니까? 라디오라고 했는데, 방송을 누가 하는거죠?]

남편이 난처한 얼굴이 되어 눈을 굴리더니 메세지를 입력했다.

[모릅니다.]

밖에서 끼익! 이이익! 하며 쥐들이 설치는 소리가 점점 들려온다. 대여섯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얼굴이 엉망인 애를 닦아주던 마누라가 긴장하며 문을 바라봤다.

난 손을 내밀어 진정하라고 하고는, 다시 남편을 바라보며 메세지를 입력해 보여주었다.

[누군지 아시면 말씀해주셔야 됩니다. 당신들처럼 구조될 기회가 있음에도 그런 음모론을 믿고 구조에 응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 결국 다 죽게 될겁니다.]

남편이 나와 폰을 번갈아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난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 시기에 이런 음모론이 퍼지고 있는건 위험합니다. 당신들도 방금 내가 없었으면 다 죽을 뻔한거 아닙니까.]

짐승들 끌고 온 건 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 이미 며칠 전에 밖에서 나오라고 한참 소리질렀다고. 그때 안 나온건 당신들이 선택한거지.

남편이 망설이다가 메세지를 입력했다.

[저, 그런데 밖에 짐승들은... 여기에 갇혀있으면 이제 어떡하면 좋죠?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딴소리는 씨발.

난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조용히만 있으면 될겁니다.]

아마도.

놈들은 이미 집 안에 들어왔다.

타타탁, 타탁 거리며 짐승들이 집 안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따금 뭘 긁거나 끽끽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놈들은 집 안을 수색하고 있다.

하지만 집 전체에 남의 집 냄새가 진하게 내려앉아 있어, 여기에 설령 사람들이 있어도 냄새로는 추적할 수 없을거라고 확신한다.

난 문 밖으로 잠시 귀를 집중해보다 다시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봤다.

[지금은 일단 조용히 있어봅시다. 그동안 아는대로 말씀해주시죠. 그 라디오 방송.]

남편이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를 힐끗거리며 바라보다 천천히 메세지를 입력했다.

[모릅니다. 전 아무것도 아는거 없어요.]

난 눈을 가늘게 뜨곤 남편을 바라봤다.

[혹시 라디오 방송하는 놈들을 보호하려 하는 거라면, 잘못 짚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위험하다고요.]

내가 내민 폰은 애와 마누라도 보고있다.

유치원에 다닐까 말까 싶은 애가 내 폰을 보고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누라는 확실히 알아봤다.

난 메세지를 다시 입력했다.

[며칠 전에 내가 나오라고 밖에서 외쳤을 때 나왔으면, 당신들은 그 때 구조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원자력 발전소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을겁니다. 그 때 구조한 사람들 전부 원전에 있어요.]

내 메세지를 본 남편과 마누라의 표정이 눈에띄게 변했다. 남편은 그러나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폰을 꺼내 메세지를 입력한 것은 마누라였다.

[정말로 그 때 사람들 구조해서 가셨나요? 다들 원자력 발전소에 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구조당시엔 다들 건강이 좋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꽤 나아져서, 어제 저녁엔 김치볶음밥을 한솥을 볶아서 우리 특임대원들하고 나눠먹더군요.]

내 폰을 본 마누라가 침을 꼴깍 삼켰다.

머리는 묶어놓긴 했지만 살짝 산발이고, 안색은 초췌하다. 한 눈에 봐도 제대로 못 먹고 지냈다.

난 메세지를 다시 입력했다.

[그동안 뭘 먹고 산 겁니까?]

마누라가 떨어지려는 눈을 끌어올려 폰에 메세지를 입력했다.

[이 일 터지기 전에 남편이 실직했어요. 그래서 직장 구할 때까지 먹을건 좀 사놔야 되겠다 싶어서 쌀이랑 라면 같은걸 좀 사놨거든요. 그것도 며칠 전에 다 떨어졌어요.]

마누라는 초췌한 얼굴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고는 다시 메세지를 입력했다.

[이제 김치도 없고 간장도 없고 어떻게 해야되나. 다 죽는건가 생각했어요. 이래갖고 어떻게 살아요?]

결국 마누라는 못 참고 눈물을 한 방울 뚝, 떨어뜨렸다.

아내가 소리내지 않고 눈물을 떨구는걸 본 남편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다.

난 나직이 한숨을 내쉬곤 메세지를 입력해 남편에게 내밀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라디오 방송하는 그 위험한 놈들 빨리 멈추게 해야돼요. 그런거 믿다가 여러사람 죽습니다.]

남편은 내 폰을 보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럼 라디오에서 나온게 다 거짓말이라는 겁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메세지를 입력했다.

[어느 부분이 거짓말이란 겁니까? 정부를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까? 라디오에선 사람들 잡아다 생체실험도 한다고 했어요.]

진짜 단단히 세뇌됐네.

이 사람도 종말 이전에는 그래도 멀쩡했을 텐데 어쩌다 이런 음모론에 심취하게 된거지?

종말이 시작됐기 때문인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거나 붙잡고 매달린 결과 이렇게 된 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난 고개를 젓고는 폰을 들었다.

[다 거짓말입니다. 밖에 있는건 무슨 세균병기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미쳐서 사람들 물어뜯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저건 인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짐승들도 짐승이 아니예요. 그냥 괴물입니다.]

서래마을 정부측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부르지.

나는 좀비라고 하지만, 여기선 그냥 괴물이라고 하는게 낫겠다.

남편은 내 메세지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못 믿는 눈치다.

난 메세지를 다시 입력했다.

[미국 대통령이 무슨 재주로 세상을 다 이렇게 만듭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얼마전에 평택 미군기지에 다녀왔어요. 그 미군들도 대부분 죽거나 괴물이 되어버리고 산 사람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그들도 미정부랑 연락이 안된다더군요. 미대통령도 죽었을지 모른다고요.]

아니면 변해버렸을지도 모르는거고.

누가 알겠냐고 그걸.

남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끝까지 못 믿는 눈치였다.

그가 메세지를 입력했다.

[어차피 한통속 아닙니까? 평택에 미군이나 미국 대통령이나.]

이 인간은 그냥 돌아버렸네.

아예 말이 안 통한다.

그때 애를 안고있던 마누라가 뭔가 메세지를 입력하더니 내게 내밀었다.

[원전에 가면 정말 안전한가요? 먹을것도 많나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거기 모여있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려서 여기보단 훨씬 안전합니다.]

그러자 마누라가 남편을 힐끗 쳐다본다.

아내는 결심을 맺은 눈빛이었고, 남편은 난처한 표정이다.

마누라가 메세지를 입력한다.

그걸 본 남편이 마누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마누라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메세지를 끝까지 입력해 내게 보여주었다.

[갈게요. 저희 좀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이 여자하고는 말이 좀 통하네.

난 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귀를 기울였다.

타탁, 타타탁 하며 짐승들이 아직 돌아다니고 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메세지를 입력해 내밀었다.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라디오 방송을 누가 했는지는 혹시 아십니까?]

마누라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표정이나 태도가 남편과는 다르다.

알려주고 싶지만 모른다는 듯하다.

그녀가 메세지를 작성해 내게 내밀었다.

[진짜 잘 몰라요. 아마 남편도 모를거예요.]

그러면 좀 난감한데.

전파 추적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나?

송중사는 모를거고 수현이라도 그런건 할줄 모를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누라가 다시 메세지를 입력했다.

그걸 본 남편이 마누라의 손목을 다시 콱 붙잡는다.

이번엔 세게 쥐었는지 마누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 남편을 노려보며 천천히 검자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손 놓습니다."

이 병신새끼 아까부터 음모론에 심취해서 미국 대통령 어쩌고 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여차하면 이새끼 먹이로 던져주고 마누라랑 애만 잡고 튀어도 난 상관없다.

남편이라는 병신새끼한테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 밖에 있을 짐승들은 내 목소리를 못 들은 듯하다.

조용히 말한 탓도 있겠지만, 와장창 해대며 집 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부엌이고 뭐고 거의 거덜났겠는데.

내 시선을 본 남편이 움찔하더니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러자 마누라가 남편의 어깨를 팍 밀친다.

그녀는 남편을 힘껏 노려보고는 내게 다가와 내 곁에 섰다.

당신과는 더이상 같이 못 있겠다는 것같다.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와 마누라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마누라가 메세지를 입력해 내게 내밀었다.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는데, 방송 끝날 때마다 이런 말을 했어요. 물은 생명입니다. 저희가 여러분의 생명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대충 알겠네.

애초부터 서래마을의 대통령 민정우 방송에 극도의 반감을 표한 놈들. 상수도원을 장악한 그 놈들.

물은 생명입니다 라는, 무슨 3류 카피라이트 같은 소릴 지껄여대며 음모론을 퍼뜨릴 만한 놈들이라면 그놈들 뿐이다.

난 허리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미친놈들 진짜 빨리 처리해야 되겠는데.

서래마을 세력 중심으로 생존자들이 모여줘야 농사지을 인력도 확보되고 애도 키우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도 있게 된다.

그걸 음모론을 퍼뜨려 방해하려는 놈들은 정확히 암세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수도원에 있는 놈들은 빨리 제거되어야 된다.

중요한건 놈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걸 특임대원들이나 서래마을측은 모른다는거지.

요즘 누가 라디오 같은걸 듣냐고.

난 한숨을 내쉬고는 방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그리곤 메세지를 입력해 앞에 내밀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좀 쉬었다가 원전에 갑시다.]

마누라가 내 폰을 들여다보곤 내 옆에 애와 같이 앉았다. 남편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마누라와 나를 번갈아 보며 서성거리다 뒤늦게 방바닥에 앉았다.

그가 메세지를 작성해 내게 내밀었다.

[진짜 그렇게 믿는겁니까? 정부가 이 사태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뭘 씨발 믿고 자시고가 있어.

정부가 무슨 재주로 전세계적인 종말을 불러일으키냐.

난 하도 같잖아서 남편을 쓱 쳐다보곤 고개를 저었다.

어이도 없고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제스쳐였지만, 남편은 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가 메세지를 다시 작성해 내게 내밀었다.

[그럼 이 사태는 도대체 왜 일어난 겁니까? 왜 사람들은 사람들을 뜯어먹는거죠? 왜 짐승들은 저렇게 괴물이 된 겁니까? 미국이 만든 세균병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원인이 뭡니까?]

내가 읽었음을 확인한 남편이 다시 메세지를 작성해 내밀었다.

[왜 우린 이렇게 된 겁니까?]

종말이 왜 찾아왔느냐.

그걸 내게 묻고있는거다.

그걸 씨발 내가 아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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