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187)

몸통 길이만 2미터에 육박하는 대형 괴물짐승이 한순간에 도륙나 사지분해되었다.

느릿하게 퍼져가는 핏방울의 폭죽과 오체분시된 덩어리들이 허공에서 유영한다.

수십발의 화살이 들이꽂혀 회전하는 덩어리들을 바라보며,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림자 전사가 내게 손을 뻗으며 검을 되돌려준다.

이 놈은 죽었다.

개였든 고양이였든, 였던 것들이 되었을 뿐이다.

평택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도 그랬지만, 대형화 된 개나 고양이 따위는 그 때도 이미 내 적수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늘었지.

아직 가속은 유지되고 있다.

난 밖을 힐끔 내다봤다.

소리에 놀라 흠칫하는 쥐 몇마리가 있을 뿐이다. 대부분 마을 이곳저곳에 뿔뿔이 흩어져버렸겠지.

이 놈들은 나를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나서 사방에 피바람을 뿌리고 사라지는 놈?

생각해보니 즐거운걸.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돌개바람을 아파트 출입구에 소환했다.

그리고 뒤돌아봤다.

가속이 끝났다.

피가 사방으로 휘날린다.

후두둑, 하고 핏물이 내 뺨에, 목덜미에 날아와 부딪히고, 육중한 고깃덩이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날라가고 떨어졌다.

우당탕, 콰당!

"으아!"

유부녀가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그들도 피를 얻어맞아 붉게 물들어버렸다.

난 손을 내밀어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보이곤, 곧장 돌개바람을 가리켰다.

"타요."

애가 혹여 비명을 지를까 뒤통수를 붙잡고 품에 꼭 안고있던 남편이 놀란 얼굴로 돌개바람을 바라봤다.

"저, 저건 어디서 나온...?"

"됐으니까 타라고. 시간 없어요."

날카로운, 또 유려한 디자인의 돌개바람은 길이만 거의 2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모터바이크다.

애는 부모가 안을테고, 사실상 세명.

세사람 정도야 앉을 수 있겠지.

안장에 올라타 핸들에 손을 얹자, 즉시 으르르릉 하며 시동이 걸린다.

내가 타는걸 본 일가족이 서둘러 다가와 내 뒤에 앉았다.

유부녀가 애를 받아 안고 내 뒤에, 그리고 남편이 맨 마지막에.

안장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무겁네, 젠장.

이이익! 끼이이익!

방금 이 자리에서 대형 짐승이 터지듯 개박살나, 그 소리를 들은 쥐들이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난 즉시 액셀을 당기며 크게 말했다.

"놓치면 죽어. 꽉 잡아!"

콰콰콰!

뒷바퀴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바닥을 긁었다.

그리고 우리는 총알같이 튀어나갔다.

계단을 단숨에 뛰쳐나가 활공하듯 공간을 가로지르고는 바닥에 착지했다.

안장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무겁다.

착지 충격으로 돌개바람이 제대로 제어가 안 된다.

돌개바람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어대는 사이,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핸들을 꺾으며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사방에서 쥐들이 몰아닥쳤다.

"으아아!"

아내와 안장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남편이 놀라 비명을 지른다. 아내도 덩달아 소스라치며 소리질렀다.

시끄럽다고!

닥쳐!

말할 시간도 없다.

난 이를 악물고는, 몸을 기울이며 한 발을 내려 땅을 딛었다.

신발 밑창이 갈려나간다.

그리고, 힘껏 액셀을 당겼다.

가아아앙!

아파트 단지 중심, 차도 몇 대 없는 손바닥만한 주차장에서 돌개바람이 맹렬히 회전하며 급격하게 커브를 돌았다.

끼이이익! 끼이익!

튀어오른 쥐들이 뒤로, 옆으로 번쩍번쩍 지나간다.

난 다리를 올려 브레이크에 얹고는 쥐들을 피해 좌우로 몸을 비틀어가며 돌개바람을 내달렸다.

개씨발, 무릎이 욱씬거리네.

체력업적 스킬 아니었으면 무릎 아작났겠는데.

한 발로 가속받은 돌개바람과 네사람의 무게까지 지탱하며 커브를 돌았더니 종아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끼에에엑!

쥐 한마리가 정면에서 번쩍 뛰어오른다.

급격하게 확대된다.

"씹!"

즉시 몸을 비틀어 돌개바람을 기울였다.

놈이 옆으로 스쳐지나간다.

공기압 때문에 귓가로 쐐액 소리가 들리더니 멀어졌다.

"후우!"

겨우 바로 세우곤, 도로를 향해 달려나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무겁다.

육중하다.

뒤에 세명이나 올라타 있으니 평소에 몰고다니던 날렵한 돌개바람이 아니다.

돌겠네 씨발.

이이익! 끼이이익!

쥐들.

그리고 쥐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도발당한 대형 짐승들이 사방의 골목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지금은 못 싸운다.

뒤에 탄 사람들 개먹이로 던져줄거면 싸워도 상관없다만, 하다보니 개먹이가 되는 경우와 내가 직접 개먹이가 되라고 등떠미는건 경우가 다르다.

크아아악! 캬아아악!

쥐들, 개들, 고양이들, 그 사이에 좀비들까지 뒤섞여서 도로가 아수라장이다.

거대한 덩어리들과 작은 덩어리들이 산개하며 모여들고 뭉쳤다가 흩어지며 오로지 나 하나를 쫓아 앞에서 옆에서 또 뒤에서 뛰어든다.

고속도로를 역주행 하는게 차라리 더 낫겠네.

난 이를 악물고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가속을 활용해가며 놈들을 피해 돌개바람을 몰아달렸다.

가속 없었으면 부딪혀도 진작 부딪혔을거다.

우웅, 쒸웅! 하며 양쪽 귓가에서 들려오는 풍압소리와, 풍압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덩어리들을 뒤로 넘겨가며 도로의 점선을 빠르게 지나쳐 달려나갔다.

크지 않은 마을이다.

조금만 달리면 활주로같은 도로가 나온다.

조금만 더 달리면!

돌개바람의 엔진이 맹렬하게 가동하며 타이어를 회전시킨다.

가아아앙!

조금만 더!

그 때, 대지가 진동했다.

우르르르릉!

공기가 부들부들 떨린다.

"으아악! 아악!"

등 뒤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심장이 터질 만큼 공포스러운 기운이 공기에 쫙 퍼져나간 탓이다.

난 이를 악물고 앞을 바라봤다.

저기다.

저기서 터져나왔다.

놈이다.

괴물이 저기에 있다.

마을 어귀, 깎아낸 언덕 위로 무성한 숲 속.

저 곳에 놈이 있다.

돌개바람과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마을 입구의 숲 속, 풀과 잎과 가지들이 다시 한 번 뒤흔들렸다.

으르르르릉!

멀리서 들었을 땐 부엉이소리 같았다.

가까이서 들으니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소리다.

우지직, 와작!

나무들이 꺾어지고 쪼개지며 앞으로 옆으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쩌적거리며 엎어진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풀과 흙을 퍼내고 터뜨리며 사방으로 흩날린다.

그리고 놈이 나타났다.

온 몸에 덕지덕지 쥐와 개와 고양이들이 달라붙어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거대한 괴물이.

표면으로 드러나있던 인간 무더기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크고작은 짐승들이 메꾸고 있다.

잡아먹었다고 보기도 힘들고, 잡아먹히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너무나 기상천외한 광경이라 설명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다리가 넷, 대가리가 하나, 몸통이 하나인 괴물일 뿐이다.

마을 어귀 언덕 숲에 똬리를 틀고있던 거대 괴물이 나무를 쓰러뜨리며 도로로 철퍽철퍽 기어내려왔다.

온 몸에 구더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크고작은 짐승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굳은살이 떨어져나가듯 떨어지는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난 즉시 깨달았다.

저건 껍데기다.

내부에 있던, 내장이든 뭐가 됐든 어쨋든 저 껍데기 안에 있던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아마도...

괴물의 더욱 거대해진 대가리가 이쪽을 향한다.

눈이 하나다.

그 안에 사람 머리가 여럿 들어있다.

사람 머리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뜨고 나를, 돌개바람을, 그리고 돌개바람에 타고있는 사람들을 쳐다본다.

괴물이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굉음이 터졌다.

우르르르릉!

"개씨발!"

소리에 밀려 돌개바람이 순간 흔들렸다.

귀가 터질 것같다.

등 뒤에서 남편과 마누라가 비명을 질러댄다.

정신 나가겠네 씨발 진짜.

닥쳐, 닥치라고!

난 괴물을, 괴물의 눈 속에 든 인간의 머리들과 눈들을 노려보며, 액셀을 꽉 붙잡았다.

속도를 줄일 수 없다.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이대로 가는거다.

가아아앙!

뒤쫓아오던 놈들은 이미 돌개바람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뒤에 있는 놈들은 뭐가 됐든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저 놈이 문제다.

놈이 나를 노려본다.

눈 속에 여러 머리들과 그 눈들이 나를 쳐다본다.

앞발 하나를 들어올린다.

커졌다.

원전에서보다 더 커졌다.

좀비 뿐만 아니라 그냥 짐승들까지도 모조리 잡아먹어, 아니, 몸으로 흡수해 빨아들인 것같다.

발톱이 있어야 할 자리엔 어느 부위인지 알 수 없는 무수한 뼈들이 살점과 내장과 근육에 뒤엮여 발톱같은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너머에 사람의 팔다리가 털처럼 무수하게 돋아나 있다.

앞발 하나만 해도 너무 거대해, 무슨 컨테이너 박스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같다.

앞발이 만들어 낸 그림자가 도로를 가득 메운다.

올라가던 앞발이 멈췄다.

난 괴물의 눈 혹은 눈들에서, 공중의 앞발로 시선을 옮겼다.

내리찍을 작정인거다.

파리잡듯이.

저거에 찍히면 나도, 내 뒤에 타고있는 일가족도 저 놈의 몸 속으로 가죽만 남기고 빨려들어가 흡수될려나.

...소름끼친다.

놈이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다시 짖어댈 작정이다.

짖으며 앞발을 내리찍으려 하는거겠지.

으르르-

놈이 짖으려 한다.

앞발을 내리찍으려 한다!

으드득!

이를 악물고, 나는 왼손을 핸들에서 놔버렸다.

그리고, 앞으로 내밀었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르--르----

목울대가 거칠게 울리는, 몸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릿하게 늘어진다.

놈의 아가리와 목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공기의 파장이 파동을 만들어내며 젤리처럼 둥글게 퍼져나가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실제로 공기를 밀어낼 정도의 굉음을 저 놈은 터뜨리고 있는거다.

놈의 괴악스러운 앞발이 느릿하게 내려오고 있다.

나는 놈의 앞발들과 뒷발들의 공간으로 시선을 내렸다.

저기다.

저 빈공간이다.

나는 펼쳤던 왼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기나긴 터널같은 어두운 공간이 급격하게 확대되며 순식간에 환해졌다.

가속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손가락과 발가락, 팔다리, 그리고 그 사이에 벌레처럼 끼어있는 머리통과 머리칼들이 놈의 털마냥 자라있는 기괴한 광경.

느릿하게 지나가는 괴기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도로에 폭탄은 충분히 설치해뒀겠지.

믿는다, 특임대장 성규혁.

가속이 끝남과 동시에 늘어졌던 돌개바람의 엔진소리가 다시금 귓전을 때렸다.

가아아앙!

액셀을 힘껏 당겨 도로를 질주해 나아가는 사이, 뒤에서 우렁차게 괴성이 터져나왔다.

우르르르릉!

고속으로 질주하는 돌개바람 위에서도, 거센 풍압을 얼굴과 온 몸으로 맞아가며 달리고 있음에도, 공기의 진동은 내 몸을 뒤흔들었다.

미친새끼 씨발, 오지게 짖어대네 진짜.

도로 전체가 우퍼스피커가 된 듯이 들썩이는 것같다. 그 도로 위에서 균형잡기 위해 애쓰며 나는 액셀을 힘껏 당겼다.

"뒤에 괜찮아요?!"

내 허리를 붙잡고 있는 손과 등에서 느껴지는 체온으로 아직 뒤에 사람이 있는건 알겠다.

제정신은 아닐 것 같다만.

"에, 아아, 으! 아으!"

대답을 하려 했던 모양이다.

뒤에 거대한 괴물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기 때문인지 말이 되어 나오진 않는다.

"예, 예에! 아직, 아직 살아있습, 닛!"

맨 뒤에 앉은 남편이 소리를 질러댔다.

말을 끝맷질 못하는데 풍압에 밀려 숨이 막힌 모양이다.

살아있으면 됐어.

"그래요, 다행이네. 곧 원전입니다. 조금만 참아요!"

"예, 예에!"

남편의 대답 너머로 괴수의 포효가 다시금 들려온다.

짧으나마 도로를 질주한 탓인지 아까만큼 대지가 뒤흔들리진 않는다. 그러나 고막을 뚫을 것같은 괴성은 여전하다.

난 크게 말했다.

"특임대장! 들립니까! 지금 도로를 달리고 있어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해왔다.

"네, 성훈씨. 지금 도로를 보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무사하니 다행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용케 귀에서 빠지지 않는 이어폰이 상황을 잘 전달해주고 있었나보다.

난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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