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187)

언덕을 끼고 완만하게 꺾어지는 커브가 보일 뿐, 원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드론 띄웠어요? 지금 커브 돌고있는데 내가 보입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아뇨. 드론은 지금 충전중입니다. 성훈씨가 보이진 않아요. 언덕 너머에 있는거면, 성훈씨. 내 말 잘 들어요. 중앙선을 쭉 타고 와야합니다. 아시겠죠? 반복합니다. 중앙선입니다."

아아.

중앙선을 제외한 양쪽 도로에 넓게 폭탄을 설치해뒀구만.

뒤에서 쿠쾅, 콰쾅! 하며 거대한 괴수와 짐승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미소짓고는 말했다.

"그래요. 중앙선, 알겠습니다."

인코스를 타고 커브를 돌던 와중, 몸을 살짝 올려세워 돌개바람을 서서히 중앙선으로 몰고 들어갔다.

커브가 끝났다.

멀리 원전이 보인다.

커브가 끝나자마자 성가연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성훈씨! 보여요!"

꽤나 반가운거 같은데.

고개를 들어 원전을 바라봐도 내 눈에는 누가 있는지 없는지 보이질 않는다.

성가연이 반가워하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굉음이 터져나왔다.

뒤쪽 언덕의 나무들이 작살나 흙과 돌과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돌개바람까지 튀어오진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등줄기가 짜릿해질 정도다.

날 껴안고 있던 유부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신음하며 말했다.

"맙소사, 뭡니까 저 괴물은...?"

중앙선에 돌개바람을 맞춰 달리느라 뒤돌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성규혁이 뭘 봤는지는 알겠다.

갑자기 전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데?

어벤져스 1편에서 공중을 날아다나는 우주 괴수를 아이언맨이 유인하며 아마 이런 말을 했었지?

"다들 준비하세요. 잔치 데려갑니다."

성가연이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아니 저게 어떻게 잔치예요...?"

어떻게 이렇게 상황이 비슷하냐.

성가연이 하는 말까지.

난 웃으며 액셀을 다시 당겼다.

가아아앙!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기폭장치 준비해. 앞에 깔아둔 지뢰 다 터지고 나면 내 지시에 맞춰 크레모어 터뜨린다. 알았나?"

특임대원들이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돌개바람을 달려 도로 위를 질주해 나아갔다.

도로를, 대지를 짓밟으며 달려오는 굉음.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포효.

지뢰를 밟고도 신나서 짖어댈 수 있는지 보자.

난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즐거운 기분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려나아갔다.

보인다.

확실히 있다.

도로에 깔아둔 지뢰가.

양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점선들 주위로 뿌려두듯 설치해놓은 지뢰들이.

지뢰밭 위를 달리며, 나는 기다렸다.

크르릉, 우르르르릉!

놈이 짖어댄다.

그러며 달려온다.

땅을 짓뭉개며 놈이 뛰어온다.

수많은 짐승들과 함께, 도로 위를.

그리고 터졌다.

단발적인 폭음이.

땅을 파헤치며, 공기를 밀어내며,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하는 단발성 굉음이 뒤에서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괴수의 포효가 일그러졌다.

소리만 들어도 짐작이 된다.

지뢰를 밟아놓고도 달려오던 속도를 못이겨 앞으로 넘어진다. 그러며 더욱 많은 지뢰를 깔아뭉갠다.

지뢰는 연속적으로 터진다.

쿠콰콰콰쾅!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폭음은 내 기분을 너무나 즐겁게 만들어 준다.

우르르르릉!

놈이 포효한다.

아까와는 다르다.

스스로 엎어지며 깔아뭉개버린 인마살상용 대인지뢰가, 또 대전차지뢰가 온 몸 구석구석을 힘껏 헤집어놓고 퍼뜨리며 분출해대어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어 내는 소리.

쥐어짜듯한 괴성이 산발적인 폭음 속에서 그렇게 터져나왔다.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만면에 한껏 미소를 띄우며 돌개바람을 달려 나아갔다.

지뢰가 터지는걸 직접 볼 수 없는게 약간 아쉬운걸.

하지만 지금 고개를 돌렸다간 중앙선을 벗어날 것 같단 말이야.

원전이 가까워진다.

브레이크 없이 도로를 질주한 덕에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뒤에서는 끝없이 폭탄이 터지고 있고, 짐승들이 포효하고 있다.

또 귓가에는 특임대원들의 환호가 들려오고 있다.

나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띄고, 왼손을 내밀었다.

이제 원전이다.

철조망이 보인다.

"어떻게 됐습니까? 놈은?"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해왔다.

"엎어졌어습니다. 하지만 다른 짐승들은 여전히 달려오고 있어요. 어서 들어와요. 크레모어 터뜨릴 겁니다."

"그래요. 지금 가죠."

난 왼손을 힘껏 주먹쥐었다.

공간이 순식간에 확대된다.

철조망이 발아래를 스쳐지나간다.

"으아악!"

"꺄아아!"

등 뒤에서 부부가 소리를 지른다.

애는 기절한건가? 조용하네.

돌개바람은 활공하듯 공기를 가로지르며 나아가, 서서히 땅에 착지했다.

카카카카!

육중한 무게에 짓눌린 돌개바람의 뒷바퀴가 지면에서 밀려난다.

난 액셀을 힘껏 당기며 자세를 제어했다.

"후우."

이것도 계속 하다보면 익숙해지겠는데?

아우, 엉덩이 아파 제길.

가아아앙!

돌개바람을 몰아 관리건물 앞에서 세우고 나서야 내게 매달려 있던 유부녀와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난 말했다.

"다 왔어요. 여긴 안전할겁니다."

내가 돌개바람에서 내리자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따라 내린다.

어지러운 모양이다.

멀리서 쿠쾅, 쾅! 하며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깔아둔 지뢰가 나름 역할은 하고 있는 모양인데, 오면서 봤던 지뢰밭 치고는 터지는 소리가 제법 드물다.

난 귀에 손을 얹고는 건물 위를 올려다봤다.

"규혁씨. 도로 어떻게 되고 있어요? 다 죽은건 아닐텐데."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해왔다.

"아, 네. 성훈씨. 지금 놈들이 지뢰를 피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도로를 거의 메우다시피 몰려들고 있군요. 끌어들인 뒤에 크레모어를 터뜨릴겁니다. 성훈씨는 어딥니까? 원전에 왔습니까? 생존자분들은요?"

"네."

내 뒤쪽엔 세가족이 서로 부둥켜 안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난 그들을 힐끗 쳐다보곤 말했다.

"왔습니다. 지금 바로 밑에 있어요. 생존자들도 같이 왔는데, 다른 생존자 분들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야 될 것 같군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해왔다.

"아, 네. 송중사에게 얘기해두겠습니다. 성훈씨는 올라오시겠습니까?"

짐승들이 폭탄 맞고 터져죽는걸 놓칠 순 없지.

난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가죠."

돌개바람을 소환해제하자 세가족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설명하기 귀찮다.

난 그저 미소지어 보이곤 건물로 손짓하며 말했다.

"가시죠."

건물로 들어가니 송중사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 성훈씨. 수고하셨습니다. 이 분들은 제가 맡겠습니다."

"고마워요."

난 곧장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뒤에서 송중사의 말이 들려온다.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자, 절 따라 오세요."

까칠할 땐 까칠하기도 하지만 저럴 땐 또 제법 믿음직하게 말하는걸.

난 짐승들이 폭발에 휘말려 터져나가는걸 어서 보고싶은 마음에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성가연이 내게 뛰어왔다.

"성훈씨. 고생했어요."

아... 성가연.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구해서 오지도 않았겠지.

알게모르게 나한테 자꾸 영향을 준단 말이야, 이 여자.

한마디 할까 싶다가도 성가연의 예쁜 얼굴과 미소를 보고있자니 그럴 마음이 사라진다.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능력 닿는대로 하는거죠. 고생은 무슨."

그때 두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김대위와 박대위였다.

김대위가 웃으며 말했다.

"성훈씨. 원전에서 이것저것 활약 많이 했다는 소식은 특임대장한테서 듣고 있었습니다. 훌륭합니다."

난 두 사람을 보곤 살짝 놀랐다.

치누크, 아직 안 떠났구나.

그리곤 깨달았다.

아아, 작전 끝나자 마자 특임대원들 싣고 갈 생각인거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상수도원.

특임대원들끼린 서래마을과 이미 이야기가 된 모양이지.

난 미소짓고는 대답했다.

"아직 작전 안 끝났잖습니까."

멀리 서있던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온다.

우린 서로 쳐다보곤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다가갔다.

특임대장 성규혁은 특임대원들과 함께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레모어를 터뜨릴 타이밍을 보고있는거겠지.

그의 곁으로 다가가 도로를 내다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도로와 산을 쥐떼가 새카맣게 메우며 용케도 지뢰를 밟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군데군데 대형 짐승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확실히 작전은 끝나지 않았음을 놈들이 알려주고 있다.

그 너머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폭발안개 사이로 거대한 괴수가 엎어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걸 보니 지뢰밭을 깔아뭉개며 온 몸으로 폭발을 얻어맞은 타격이 크긴 컸나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기폭장치 준비. 내 신호에 맞춰 터뜨린다."

도로를 뛰어 온, 산에서 내려 온 짐승들이 도로를 새카맣게 물들이며 원전을 향해 접근하고 있다.

도로를 메운 짐승들을 바라보던 성규혁이 나직이, 힘주어 말했다.

"폭파."

폭파.

특임대장 성규혁의 지시가 끝남과 동시에 도로가 뒤집어졌다.

백수십여개에 달하는 크레모어가 일제히 터지며, 도로를 새카맣게 메우고 있던 짐승들이 한 순간에 파편이 되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폭발은 연쇄적이지도 산발적이지도 않았다.

일제히 터진 폭탄은 마치 대지가 재채기하듯 그 위에 있던 모든걸 분쇄해 허공에 흩뿌려댔고, 도로를 메우고 있던 짐승들 대부분이 그 한 순간에 였던 것들이 되어 피바람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크레모어가 내뿜은 천둥소리 직후, 고요가 찾아왔다.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모두가 환호를 울렸다.

"꺄아아! 와아아!"

누가 날 덥석 껴안았다.

등에서 폭신하고 말랑한 감촉이 느껴진다.

성가연.

왜 이러냐 나한테 진짜.

가슴 졸라 크네.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방어팀! 미니건 잡아!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다! 뭐 하는거야!"

그의 말에 환호하던 특임대원들 몇이 서둘러 미니건을 붙잡았다.

특임대장 성규혁의 말대로였다.

엄청난 수의 짐승들이 한 순간에 파편이 되어 흩날리긴 했어도,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놈들의 수가 결코 적다고 볼 수 없었다.

날 껴안고 있던 성가연이 손을 놓곤 서둘러 미니건으로 달려간다.

약간 서운하네.

가슴 감촉 좋았는데.

특임대장 성규혁이 도로를 가리키며 외쳤다.

"쏴! 움직이는거 전부 쏴!"

즉시 특임대원들이 미니건을 갈기기 시작했다.

부우우웃- 부우우우웃-

말벌떼 날아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퍼진다.

폭발이 만들어 낸 피안개와 먼지구름 때문에 뭐가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진짜 말 그대로 움직인다 싶은 것엔 죄다 총알을 박아넣고 있다.

짐승들 죽은건 죽은거고, 중요한건.

난 옆을 돌아봤다.

멀리 엎어져 있는 거대괴수.

놈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다.

역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놈은 안 죽었다.

겨우 지뢰 몇십개 밟고 터뜨렸다고 금새 죽어 나자빠질 놈이 아니지.

으르르르-

놈이 내는 소리가, 공기의 울림이 미니건의 포화소리 속에서 나직하게 들려온다.

폭발안개 속에서 짐승들 몇이 움직인다.

놈들은 안개를 해치고 거대괴수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뭐 할려고 저러는거지?

콰쾅! 쿠쾅!

지뢰가 터진다.

짐승들이 거대괴수에게로 되돌아가고 있는거다.

피안개 속에서 제대로 볼 수 없긴 놈들도 마찬가지인건지 지뢰 폭발이 점차 거대 괴수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거, 분명히...

난 내 옆에 선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말했다.

"회복할려고 저러는겁니다. 놔두면 또 일어날거요."

특임대장 성규혁도 마침 나와 같은 곳을 보고있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폭파팀. 대전차로켓 준비."

폭파팀은 이미 대전차로켓을 어깨에 메고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그들을 돌아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 기다리지 말고, 저 괴물 완전히 죽어 없어질 때까지 쏴버려."

"알겠습니다."

폭파팀이 각자 대전차로켓을 조준한다.

난 특임대장 성규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걸로 안 될 거요."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와 괴수를 번갈아 바라본다.

괴수는 이미 지뢰 수십발을 얻어맞았다.

지뢰밭에서 구르고도 아직 살아서 으르렁대고 있다.

겉에 대전차로켓 몇발 맞는다고 죽는다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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