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놈은 목숨만 붙어있다면 다른 짐승들을 빨아먹어 회복할 수 있다. 완전히 숨통을 끊어놓을 정도의 타격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방법이 있습니까?"
그의 말에 난 옆을 돌아봤다.
옥상 계단출입구엔 미니건 탄약과 대전차로켓 탄두, 그리고 각종 폭발물들이 쌓여있었다.
"크레모어 좀 남았습니까?"
쐐애애액!
폭파팀의 대전차로켓이 공기를 찢으며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둥글게 피어났다. 새카만 안개가 주위에 퍼져나간다.
대전차로켓이 터지며 만들어진 검은 안개와 연기. 거의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목표물을 향해 폭파팀은 계속해서 로켓을 쏴댔다.
우르르르릉!
계속적으로 폭발하는 환경 속에서 놈이 울부짖었다.
공기가 부들부들 떨린다.
검은 연기가 순간적으로 뒤흔들리며 퍼져나간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돌아봤다.
"크레모어 좀 남긴 했습니다. 스무개 정도요. 어쩌려고요?"
난 쌓여있는 탄약과 폭발물들을 바라봤다.
그 더미 옆에 놓여있는 더플백들.
"크레모어 원격기폭 설정하고 기폭장치 나한테 주세요."
특임대장 성규혁에게 그렇게 말하곤 폭발물들을 향해 걸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폭파팀에게 눈짓하자, 다섯명의 대원들이 들고있던 로켓을 내려놓고는 나를 따라왔다.
폭파팀이 폭발물 더미에서 크레모어를 꺼내 기폭설정하곤 나를 바라본다.
난 말없이 크레모어를 받아 더플백에 집어넣었다.
내 곁에서 보고있던 특임대장 성규혁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물었다.
"성훈씨.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세 개, 네 개. 그리고 계속 크레모어를 받아 더플백에 집어넣는다. 난 크레모어를 받아 넣으며 말했다.
"말했잖습니까. 로켓 좀 쏜다고 저거 안 죽어요."
크레모어는 모두 스물네개였다.
두툼한 크레모어를 스무개 넘게 집어넣으니 더플백 지퍼도 제대로 잠기질 않는다.
특임대장 성규혁은 내가 뭘 하려는지 짐작한듯 신음을 흘렸다.
"...위험합니다."
난 더플백을 짊어메고 일어섰다.
묵직하네.
폭파팀이 내게 기폭장치를 내민다. 작대기에 방아쇠가 달린게 언듯 봐선 RC카 조종기처럼 생겼다.
난 그걸 받아 허리의 리프팅벨트에 걸어놓곤 특임대장 성규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전하고 싶으면 애초에 여기 안 왔겠죠.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은 대답할 말이 없는지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을 못했다.
난 그런 특임대장 성규혁의 어깨를 한 번 짚어주곤, 옥상 끄트머리로 걸어갔다.
내가 하는 모양을 보고있던 김대위와 박대위가 나를 따라온다.
김대위가 말했다.
"성훈씨. 그거... 그거 들고 뭐 어쩌려고요?"
난 대답하지 않았다.
미니건을 갈기고 있던 방어팀, 그리고 방어팀 리더 성가연도 나를 쳐다본다.
"등에 멘거 뭐예요?"
성가연이 묻는다.
대답대신 엄지손가락만 한 번 올려줬다.
그리곤, 옥상 벽을 밟고 올라섰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성가연에게 나직히 말했다.
"크레모어다."
성가연이 놀라며 외쳤다.
"성훈씨! 뭐 하려는거예요!"
난 곧장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추락하는 사이, 즉시 돌개바람을 발 아래에 소환했다.
터억!
묵직하네.
난 밟고 선 돌개바람의 안장 위에서 몸을 숙여 올라타곤, 멀리 보이는 검은 연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차례 대전차로켓이 폭발해 내려앉은 검은 안개구름.
저 안에 놈이 있다.
한 손으론 돌개바람의 액셀을 붙잡고, 한 손으론 검은 안개를 가리키며, 나는 주먹쥐었다.
쿠화확!
단숨에 공간이 빨려들어온다.
발 아래의 도로는 온갖 폭발로 헤집어지고 파헤쳐져 크고작은 구덩이가 사방에 형성되어 있었다.
핏물과 고깃덩이와 내장이 구덩이로 미끄러지며 채워지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아래에 두고, 나는 고개를 들어 검은 먼지구름을 바라봤다.
짐승들이 모여들어간 중심부.
저 곳에 놈이 있다.
가속이 끝났다.
공간발톱에 의해 탄력을 받은 돌개바람이 맹렬한 속도로 지상에 내려앉는다.
카칵, 가아아앙!
나는 구덩이와 고깃덩이들을 피해가며 돌개바람을 내달렸다.
귓가로 성가연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훈씨! 폭탄 그렇게 들고 가면 어떡해요! 성훈씨이!"
맞바람이 머리칼을 짓누른다.
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덩어리는 내 거라고 했잖아. 걱정 마. 죽이고 올테니."
"성훈씨!"
풍경이 빠르게 멀어진다.
검은 먼지구름은 빠르게 다가온다.
작은 짐승들은 도로 위에 없다.
이미 지뢰를 밟고 터져죽었거나, 혹은 괴수의 몸에 달라붙어 죄다 빨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으르르르-
가까워질 수록 놈의 로어가 공기를 진동하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가아아앙-
내 돌개바람의 엔진소리도 힘차게 도로 위에 깔린다.
내가 놈의 로어를 들었듯, 놈도 돌개바람의 엔진을 들었다.
검은 먼지구름이 불쑥 흐트러지며 퍼져나갔다.
놈이 몸을 일으켰다.
입고있던 검은 먼지구름을 끌어당기며, 놈이 대가리를 들어올렸다.
눈이 보인다.
쩍 벌린 아가리가 보인다.
우르르르릉!
공기가 진동한다.
그래.
이거지.
난 잡고있던 핸들을 놓고, 왼손을 놈의 아가리를 향해 내밀었다.
놈이 몸을 숙인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나를 향해 몸을 숙여온다.
아직이다
좀 더, 조금 더 가까이.
액셀 당긴 오른손에 힘을 꽉 주고, 나는 놈의 아가리를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고 있다.
가아아앙!
우르르릉!
놈의 아가리가 놈의 눈을 가린다.
놈의 대가리가 태양을 가리웠다.
사방이 어두워진다.
지금이다.
나는 주먹쥐었다.
쿠확!
나는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닿았다, 라는 느낌이 든 직후 사방이 환해졌다.
가속.
[자동 시전 : 가속]
온 몸에 달라붙어 있던 피와 살점과 손톱 따위들이 느릿하게 내 몸에서 떠나간다.
난 찐득해진 얼굴을 손으로 훔쳐내곤 뒤돌아봤다.
놈의 몸을 뚫고 나온 직후.
유성처럼 핏물을 내 뒤로 흩날리며 나는 공중에 떠 있었다.
한결 가볍다.
묵직한 더플백을 더이상 메고있지 않으니까.
나는 허리에서 기폭장치를 꺼내 쥐었다.
처음엔 무슨 부엉이인줄 알았지.
알고보니 괴물이었어.
이제 죽자, 괴물새끼야.
나는 트리거를 당겼다.
두툼한 베이스드럼이 울리는 소리가 놈의 몸 안쪽에서부터 울려나와 공간을 밀어냈다.
젤리처럼 둥글게 퍼져나가는 파동과 낮게 울리는 진동.
가속의 중심에서, 놈의 몸이 느닷없이 부풀어올랐다.
가죽의 혈관마저 선명히 보일 정도로 부풀어오른 괴물의 껍데기가 마침내 가뭄을 맞은 메마른 땅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수십개의 크레모어가 일제히 폭발하며 발생한 둥근 파동은 거침없이 기세를 확장하고 있었고, 그 일렁이는 기운을 괴물은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가깝다.
너무 지나치게 가깝다.
둥글게 파도치며, 공기를 젤리처럼 밀어내며 넓어지고 또 퍼지는 폭발의 파동.
한 눈에 보기에도 압력과 기세로 찢어발길 듯 내부 공간을 뭉개뜨리고 있었다.
파동의 영역에 들어선 풀숲의 풀들은 뿌리채 뽑혀나갔고, 나무들은 파편을 흩뿌리며 드러눕는다.
저거에 휘말리면 나조차도 죽을지 모른다.
강력한 진동은 심장의 박동마저 밀어젖혀 멈추게 할 것이며, 내장과 뇌가 단숨에 으스러져 눈코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죽게 될거다.
저 파동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흉악한 기운을 품은 채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난 즉시 고개를 돌려 왼손을 내뻗었다.
멀어져야 돼.
원전과 반대방향이긴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난 즉시 손을 움켜쥐어 공간발톱을 발동했다.
쓔확!
풍경이 급속도로 다가온다.
족히 수십미터는 날아갔다.
발아래에선 이제야 겨우 원전에 도착한 듯한 발 느린 짐승들이 어그적거리며 느릿하게 털을 휘날리고 있다.
몇마리 되지는 않는다만, 큰 짐승들이 제법 끼어있다.
저 파동이 얼마나 멀리 뻗어 올지 예측이 안 된다. 아마도 밑에 짐승들도 휘말릴 것 같은데.
좀 더 멀어지는게 좋겠어.
충분히 멀어진 것 같지 않다.
나는 먼 도로를 향해 다시 한 번 왼손을 내뻗었다.
돌개바람도 내 마음을 아는지 엔진이 느릿하게 또 육중하게 으르렁댄다.
난 액셀을 힘껏 당기며, 왼손을 주먹쥐었다.
슈화확!
커브길 근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커브를 마악 돌아 들어오던 커다란 멧돼지가 눈에 띈다.
그래.
기왕 날아온거, 저걸 목표로 잡고 내려가자.
두우웅- 하며 폭발의 묵직한 음파가 끝끝내 귀를 괴롭히는 와중에도 짐승들은 미처 반응을 못해 앞으로 열심히, 또 느릿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뛰는 멧돼지를 향해 왼손을 내밀어 조준했다.
그리고, 움켜쥐었다.
공간이, 땅과 짐승이 단숨에 확장된다.
푸콰콱!
뭔가가 돌개바람에, 내 주먹과 얼굴에 닿았다.
아스팔트를 박살내며 내려앉았다. 멧돼지를 머리부터 뚫고 들어갔음에도 내겐 그정도의 느낌밖에 없었다.
나직하게 으르렁대는 돌개바람의 엔진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나는 뒤돌아봤다.
일직선으로 뚫려버린 멧돼지의 몸통 한가운데로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몇 회 째인가의 가속이 마침내 끝났다.
그와 동시에 여러 소리들이 일제히 귀를 강타했다.
크레모어가 폭발한 둔한 굉음과 아스팔트가 박살나는 폭음, 그리고 뚫려버린 멧돼지의 단말마가 뒤섞여 불쾌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여러 종류의 천둥이 일시에 몰아친 것같은 소리의 파장이 한 차례 지나갔다. 뒤이어 산과 들과 나무와 땅이 뒤흔들렸다. 먼지구름이 놀라 뛰쳐오르며 맹렬히 뻗어온다.
먼지태풍이 불어닥친 것같다.
피와 내장이 가득 묻어있는 팔을 들어 먼지를 가려본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꽤나 멀리 떨어졌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밀려 쓰러질 것만 같다.
난 비틀대는 돌개바람에서 한 발을 내려 땅을 딛어 몸을 지탱했다.
멀리 피와 살점과 내장과 온갖 잡스러운 것들이 하늘로 분수처럼 치솟아 오른다.
놈이다.
괴물이 물풍선처럼 터지며 안에 있는 것들을 가득 뿜어올린거다.
그리고 직후, 내게 뚫려버린 멧돼지가 피를 토하며, 내부에 있던 온갖 대가리와 팔다리와 내장들을 질질 흘리며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쿠웅!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가 가벼운 진동을 싣고 돌개바람을 흔든다.
"후우."
폭탄 수십개가 코 앞에서 터지는건 이런거지.
크레모어 하나만 터져도 산 속 나무가 파도치는데, 수십개의 크레모어를 놈의 몸 속에 비집어넣고 한번에 터뜨려버렸다.
이정도 위력쯤은 나와줘야지.
주위에는 짐승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다.
파동을 못이겨 앞으로 옆으로 쓰러진 모양이다.
이 놈들 자세 좋은데?
난 즉시 검을 움켜쥐고 빼며 옆으로 집어던졌다.
기왕 나온거 잡것들 머리나 좀 따버리지 뭐.
슈확!
그림자 전사가 내 몸에 내려앉은 그림자에서 뻗어나와 형태를 이루며 검을 움켜쥔다.
나는 활과 화살을 허리에서 뽑아들어 그림자 전사와 함께 주위의 짐승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끼이익! 끼이이익!
몸통이 갈라지며, 쥐들이 비명지른다.
캐애앵! 퀘레레렑!
머리와 몸통에 수십발의 화살이 빗발처럼 들이꽂힌 개가 펄쩍 펄쩍 뛰어오르며 짖어댄다.
그렇게 화살을 쏘며, 나는 계속 괴물이 터져나간 자리를 곁눈질했다.
다시 일어날건가.
다시 부활하길 바라는 마음과, 그대로 죽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공존한다.
왜냐하면, 다시 일어나면 또 폭탄을 쑤셔박아버릴 수 있으니까.
핏, 핏, 핏!
등에 맨 두 개의 화살집.
하루종일 싸워댔더니 60발의 화살이 거의 동날 지경이다.
나는 끝없이 짐승들을 향해 화살을 박아넣으며, 나의 그림자 전사가 고양이의 사지를 잘라내고 머리통을 쑤시는 광경을 마주하며, 마음 속 가득히 차오르는 흡족함을 느꼈다.
더, 더 죽이고 싶다!
더!
일어날려면 일어나.
괴물새끼야.
일어나 봐!
나는 온 몸에 묻은 피를 질질 흘려가며 괴물곰을 바라봤다.
그건 더이상 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어디가 대가리고, 어디가 앞발 뒷발인지도 분간할 수가 없다.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 듯한 거대한 고깃덩이들 몇 개가 되었을 뿐이다.
터지는 방향으로 파편을 분출해 뭐가 됐든 한 순간에 갈아버리는 크레모어라면 충분히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지.
"하, 하하! 하하하하!"
핏, 핏, 핏!
화살을 쏘며 나는 웃었다.
이렇게 즐거운 기분이라니,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모르겠다.
허리를 짚어보니 화살은 이제 한 발 남았다.
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