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187)

난 활을 도로 활집에 집어넣곤, 타고있던 돌개바람에서 대물저격총을 꺼내들었다.

곰 대가리도 한방에 터뜨려버리는 고폭소이철갑탄을 겨우 쥐 같은거한테 쏘긴 아깝다만, 여기서 멈추고 싶은 생각도 없다.

철컥, 쾅! 철컥, 쾅!

난 계속 약실에 탄약을 밀어넣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주위에 있는 짐승들은 검과 활과 총에 의해 찢기고 잘리고 꽂히고 터져나가며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빠르게 수가 줄어드는 짐승들, 아까울 정도다.

아껴가며 죽이고싶다.

"크, 하하, 하하하하하!"

번쩍 뛰어오르는 고양이의 대가리를 고폭소이철갑탄으로 터뜨려버리곤 나는 호쾌하게 웃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런 내 귀에, 성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훈씨! 성훈씨! 어디예요! 성훈씨!"

하아?

한창 즐거운데.

내가 웃는 소릴 들었으면 내가 무사하다는 것도 알 텐데 왜 저렇게 걱정스럽게 소리는 질러대는거야.

아아, 폭발 때문에 잠깐 통신이 끊겼었나?

혹은 터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넘어졌다거나.

그럴 수 있지.

난 웃음을 멈추곤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하아, 후우. 여보세요. 내 말 들려? 가연씨."

"성훈씨! 성훈... 아, 성훈씨! 살아있었어요?! 살아있었군요!"

"그럼 살아있지 죽었을까봐? 죽이고 온다고 했잖아"

난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성가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행이예요. 폭발이 너무 가까워서 난 하마터면 성훈씨가..."

난 피식 웃어버렸다.

아, 김 새버렸어.

어차피 주위에서 날뛰는 짐승들은 꽤나 수가 줄었고, 몇몇 남은 놈도 그림자 전사 선에서 알아서 정리되는 수준이다.

오늘 하루종일 가속과 공간발톱을 써댔더니 스텟도 슬슬 거덜났고.

난 대물저격총을 돌개바람에 넣고는 말했다.

"난 안 죽어요. 걱정 마. 그보다, 곰은? 어떻게 됐어요? 거기서는 잘 보일텐데."

코너가 살짝 꺾이는 곳이라 거대한 고깃덩이가 멀리 보일 뿐, 전체적으로 상황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는다.

성가연이 말했다.

"죽었어요. 몸통이 터지면서 사지가 떨어져나갔어요. 머리쪽은 거의 뭐, 말 그대로 폭탄 맞은 상태고요. 진짜 완전히 죽었어요."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잘 됐네."

그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성훈씨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여기선 안 보이는군요."

"아, 남은 짐승들이 여기 좀 있길래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의 목소리 너머로 환호가 들려온다.

특임대원들 뿐만 아니라 다른 생존자들까지 옥상에 올라와 있나보다. 남자 목소리와 여자 목소리가 뒤섞여 어지럽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환호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듯 크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성훈씨가 무사하다니 무엇보다 다행입니다. 작전도 이제 슬슬 마무리 보면 될 것 같은데, 귀환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내렸던 전기를 올리겠다는 거군.

짐승들 수도 대폭 줄여놨고, 무엇보다도 목표였던 산의 주인, 괴물곰까지 숨통을 끊어놨으니 이제 더 볼 일 없다.

옆을 돌아봤다.

그림자 전사가 엎어져있는 대형 고양이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짐승들은 거의 도륙나 파편을 흩뿌리며 죽어있었다.

다른 짐승들은 없어보인다.

난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래요. 여기도 슬슬 정리했고, 지금 돌아가죠. 가서 봅시다."

그러며 손을 내밀었다.

그림자 전사가 내게 쇄도해 검을 되돌려준다.

난 검을 내리쳐 핏물을 빼내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스르릉-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참 맑네.

구름도 없냐.

"후우."

딱 이 타이밍에 소나기가 쏟아져주면 좋은데.

피도 좀 씻어내고 말이지.

돌아가자.

폭탄이 헤집어놓은 도로는 짐승의 시체들로 데코되어 끔찍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흡족하다.

내가 뚫어놓은 커다란 멧돼지 너머 원전이 보인다.

나는 미소지으며 돌개바람의 핸들에 손을 얹었다.

다 끝났다.

돌개바람이 알겠다는 듯이 엔진을 회전시키며 내게 호응해 왔다.

귓가엔 작전 성공을 기뻐하는 환호가 들려오고, 날씨는 맑으며, 피는 뒤집어 썼으나 찝찝하긴 커녕 상쾌하고 즐겁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송중사. 이제 슬슬 전기 올려도 되지 않아?"

"네, 대장님. 지금 곧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내려가겠습니다?

송중사, 옥상에 올라가 있었구만.

놓치기 아까웠겠지. 좋은 구경거리였을 테니.

"성훈씨, 수고했어요. 고생했어요!"

성가연.

아까 구해 온 세 사람은 알까?

성가연이 아니었으면 당신들 다 죽었어.

돌개바람을 느긋하게 몰아 달려가며 나는 웃었다.

"됐어요. 이제 전기 올리고 나면 어떻게 되는겁니까? 상수도원으로 바로 가요?"

특임대장 성규혀이 내 질문을 받았다.

"아뇨. 일단 서래마을로 갑니다. 대통령과 대면회의를 하고 나서 작전 전개하는걸로 가닥을 잡았어요. 성훈씨도 가셔야죠?"

음.

회의라?

이크.

짐승 시체 덩어리를 밟을 뻔했네.

난 돌개바람을 옆으로 몰아, 내장을 쏟아내며 죽어버린 짐승을 피해 달렸다.

"그럴거면 난 일단 우리 식구들한테 좀 가봤으면 싶네요. 며칠째 나와 있느라 다들 걱정하고 있을겁니다."

"흐응. 애인들한테 돌아가고 싶으시다?"

아오, 성가연.

말 속에 뼈가 들어있어.

난 웃고는 물었다.

"회의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글쎄요. 그렇지 않아도 비서실장하고 잠깐 이야기 해봤는데, 아무래도 상수도원이라 상황이 쉽지가 않습니다."

"쉽지가 않다?"

"네. 놈들은 위험합니다. 아시다시피. 수틀리면 물에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거죠."

...아아.

그렇지.

그 놈들 모가지를 썰어버릴 이유가 거기에 있었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치누크는 못 쓰겠군요."

치누크엔 대형 프로펠러가 두 개나 달려있으니 우리 간다! 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꼴이다.

"네. 도로가 군데군데 막혀있으니 차량도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려고요?"

"글쎄요. 가연이는 우리도 성훈씨처럼 오토바이 타고 다니자고 하더군요."

오토바이라.

열댓명이 오토바이 타고 작전하러 다니면 꽤나 볼만 하겠는데?

그거 괜찮네요 라고 말하려는데, 송중사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대장님. 지금 제어실에 박소장이 안 보이는데 혹시 옥상에 있습니까?"

잠시 후 특임대장 성규혁이 대답했다.

"아니. 여기 없는데. 제어실에 안계시다고?"

"네."

"어디 계시겠지. 화장실 간 거 아니야? 찾아봐."

"찾아봤어요. 아무데도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거지? 설마 벌써 떠난건 아니겠지요?"

높낮이가 평소같지 않은 송중사의 말에 특임대장 성규혁이 버럭 화를 냈다.

"그걸 보고 있어야 되는게 너잖아 새끼야. 뭐하냐 너? 빨리 찾아! 가연아. 일단 지금 상황 괜찮으니까 방어팀 데리고 원전 좀 돌아봐. 박소장 찾아봐."

"알았어."

박소장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난 멀리 원전을 내다봤다.

수백미터나 날아온데다 도로가 엉망진창이라 제대로 속도를 내어 달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공간발톱으로 날아가자니 싸우느라 스텟이 거덜났다.

뭐 어떻게 된 거지?

이어폰으론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뒤섞여 뭐라고 얘기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폭탄이 터지며 형성된 크레이터를 돌아 달려가는 와중, 성가연의 말이 이어폰으로 들려왔다.

"오빠. 여기 지금 생존자 여자분이 박소장 보셨다는데?"

"어, 그래? 송중사 이 새끼 진짜. 박소장을 어디서 봤다고?"

"아랫층으로 내려가는 것까지만 봤대."

송중사가 주눅든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1층까지 내려왔습니다. 정문 안에서 잠겨있는데요?"

안에서 잠겨있다?

그럼 밖으로 나간건 아닌 모양인데.

성가연이 말했다.

"일단 그럼 송중사님, 우리 방어팀이 2,3,4층 수색할테니까 송중사님이 1층 맡아서 수색해주세요."

"네, 가연씨."

그때 송중사가 아, 하더니 말했다.

"혹시."

특임대장 성규혁이 화난듯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혹시 뭐? 뭐 할려고? 송중사."

"지하실에 한 번 가보겠습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지하실 가지 말라고 박소장이 말했잖아. 피폭된다고. 설마 자기가 그렇게 말해놓고 스스로 들어갔겠냐?"

"하지만 대장님. 1층은 아시잖습니까. 식당 있고 사무실 하나 있고 별거 없어요. 다 유리창이고 뚫려서 여기서 봐도 다 보입니다. 사람 그림자도 없어요."

"송중사, 잠깐 있어 봐. 혼자 가지 말고, 어?"

"잠깐이면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에코효과를 입힌 듯한 유달리 큰 발소리.

송중사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끼익-

"문이 열려있네?"

송중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명이 터졌다.

놀라 소스라쳐 지르는 짧은 비명.

뭐야, 무슨 일이야?

나도 놀라버렸다.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송중사! 송중사! 무슨 일이야! 어이!"

특임대장 성규혁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뛰고 있거나, 계단을 서둘러 내려가고 있거나 하는 모양이다.

"가연아! 지하 내려가 봐! 대원들 데리고! 폭파팀! 옥상에서 경계해! 미니건 잡아!"

"알았어!"

성가연이 대답했고, 특임대원들이 뒤이어 짧게 응답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크게 말했다.

"송중사! 내 말 들리나? 어이! 송중사!"

돌겠네.

지하실이 뭐 어떻게 된 건데?

왜 비명 지른건데?

송중사는 왜 대답 안하는데?

빨리 가고싶어도 갈 수가 없다.

젠장.

가앙, 크륵, 가아앙! 크르륵.

널부러져있는 커다란 짐승 시체들과 구덩이, 그리고 도로에 널려있는 내장과 돌멩이 덩어리들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답답해져 말했다.

"아이, 씨발. 예? 거기 어떻게 됐어요? 송중사! 내 말 들립니까?"

그때 송중사가, 내 말에 대답하려 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고 있었다.

"주... 죽었습니다. 박소장, 여기서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특임대장 성규혁이 크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박소장이, 왜 거기서, 죽어!"

뛰어 내려가랴 소리치랴 정신없어 보인다.

잠시 후, 성가연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특임대원들이 희미하게 신음을 흘린다.

뭔데 씨발.

뭔데?

"뭐 어떻게 된 거야. 가연씨. 박소장 죽었다고?"

돌개바람을 몰아달리며 물어봤지만 성가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온 것은 특임대장 성규혁이었다.

"...씨발."

짧은 한마디.

어떤 심정인지, 뭘 봤는지 예상이 되는 욕이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나직이 말했다.

"...떠나겠다더니 이런 거였나. 박소장, 씨발. 알고보니 미친 새끼였네."

원전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본거지?

"어떻게 됐습니까? 박소장 진짜 죽었습니까?"

구덩이를 피해 돌개바람을 꺾어 달리며 물었다.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예. 자기 머리에 총을 쐈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다른 사람들?"

"남자 하나, 여자 하나, 그리고 젊은... 아니, 어린? 열 네다섯살 쯤 된 여자애 하나. 이렇게 같이 죽어있습니다. 머리에 한발씩 박아넣고 마지막으로 자기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군요."

...지하실에 그럼 네 사람이 죽어있단 소리야?

...잠깐.

그럼 그동안 지하실에서 들려왔던 괴상한 소리는...

"일어나, 송중사. 뭘 쳐 울고있어."

특임대장 성규혁이 사납게 으르렁대며 말했다.

힘을 쓰는지 목을 긁는 소리가 몇 번 들린다.

발소리와 함께 특임대장 성규혁이 말했다.

"가연아. 대원들하고 같이 여기 수습 좀 해라."

"어? 아, 응. 밖에다?"

"음. 화장해야 되겠지. 지금 어디 묻을 데도 없고. 저 앞에 바다니까 태운 뒤에 뼈만 바다에 던지는 걸로 하자."

"알았어. 그럼 밖에, 저 치누크 있는데다 갖다둘게."

조금만 더 가면 원전이다.

머리가 복잡하네.

지하실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건 이미 알고있었다. 나를 비롯한 대원들이 궁금해 하고 들어가보려 했지만 박소장은 몹시 껄끄러운 거짓말을 늘어놓아 그걸 막았다.

왜?

겨우 이렇게 동반자살 하자고?

어째서?


2